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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객원기자 칼럼] 보수 집권 위해선 시대적 난제, 주거·일자리 해법을 내놓아야

by | 2020년 8월 25일 | 정책, 정치


<피렌체의 식탁> 객원기자인 김세연 전 의원(미래통합당, 3선)이 첫 번째 칼럼을 보내왔다. ‘개혁 보수’ 성향의 김 전 의원은 4.15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물밑에서 보수의 역전 방안을 구상해왔다.

김 전 의원은 이 글에서 평소 생각해온 개혁적 보수의 길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역사인식의 정비, 둘째, 시대적 난제에 대한 해결책 제시, 셋째,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과 대비책 제시 등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5월 소책자 <Agenda 2050 최종보고서>를 발간했다. 여기에선 ▲글로벌 기계세(로봇세) 도입방안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연결 ▲개인정보 등 데이터 재산권 확보방안을 ‘눈여겨본 세 가지 어젠다’라고 제시했다.
김세연 전 의원은 2008년 처음 국회에 들어간 후 개혁성향 초선모임, 경제민주화 실천모임, 바른정당 창당 등에 참여해왔다. 지난해 11월 중순 불출마 선언을 통해 “자유한국당으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이뤄낼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며 ‘창조를 위한 파괴’를 촉구했다. 그는 당시 당내 최연소 3선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원장이란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 [편집자]

#집권당 정책실패의 반사이익 말고
  주요 현안을 주도할 능력 보여줘야
#보수정당 집권 위한 세 가지 처방
 ①5.18, 세월호, 탄핵의 역사인식 정비
 ②주거권 보장 위한 독자 해결책
 ③기본소득체제를 위한 실천방안
#2022년 보수 집권 원한다면
  극단주의 세력과 결별한 뒤 
  새롭고 건강한 동료들과 손잡아야
#단독 집권은 7~8년 후에야 가능

지난 17일자 언론 매체의 정치면 기사 제목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탄핵정국 후 지지율 첫 역전”이었다. 지난 20일에는 “지지율 재역전”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코로나19 재확산 영향도 있었겠지만 부동산정책의 대실패 결과 민심 이반으로 역전된 지지율이 8.15 광화문 집회를 계기로 재역전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조사는 8월 10~14일, 두 번째 조사는 8월 18~19일에 실시됐음)

2019년 4월에 시작되어 6개월간 지속되었던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이 광장 극우세력과의 물리적·정신적 결합을 촉진했고, 이렇게 당의 극우화를 주도했던 무능한 지도부는 4.15 총선 참패 이후 결국 스스로 무너져 내렸으나, 아직 그 여파가 완전히 가셨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8.15 광화문 집회에 당내의 몇몇 관계자들이 참여하긴 했으나, 이전과는 달리 당 지도부나 다수 현역의원들이 이들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는 모습은 보수정당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지난 5년간에 걸친 보수정당의 갑작스럽고도 허무한 몰락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지능력 마비’에서 찾아야 할 것인데, 이제서야 비정상으로부터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모든 걸 잃고 나서야 겨우 ‘자각 단계’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순도 높은 이념을 추구하는 ‘이념정당’보다 대중의 보편적 지지를 받는 ‘대중정당’을 추구해야 할 것임에도, 후기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은 지도부에서 기층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국가주의, 반공주의 수준에 머무른 퇴행적 인식과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극우화된 극렬 지지층의 경계(境界)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환호에 도취되고 휘둘리면서, 상식과 보편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다수 대중으로부턴 사실상 버림받은 상태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의 병세를 진단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병이 들었는지 자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그러나 4.15 총선 참패 이후 약간의 진통을 겪긴 했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당의 운영을 맡긴 것은, 개헌저지선 말고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이제 겨우 자각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겠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민주당에게 새누리당은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이 느껴졌을 때가 있었다. 민주당 실무진 사이에서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새누리당을 못 따라간다’는 자조와 탄식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나 권력에 취했던 집권세력의 오만과 탐욕은 급속한 몰락을 초래했고, 주요 선거마다 연전연승하던 당은 거꾸로 연전연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8월 중하순에 이르러 보수정당은 변곡점에 섰다. 지지율 역전 ‘3일 천하’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박근혜 정부처럼 ‘절대반지의 유혹’에 또다시 빠져든 것 같은 현재 집권여당의 연이은 실책을 발판 삼아 보수의 역전에 성공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있다.

미래통합당이 집권 가능한 보수정당으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현명한 유권자라면 이 정당이 과거에는 어디에 서 있었으며, 지금은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는 어디로 갈 것인지, 과거-현재-미래의 좌표를 관찰 또는 요구할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1) 퇴행적으로 치닫던 역사인식의 정비, 2) 현존하는 시대적 난제에 대한 해결책 제시, 3) 가까운 미래에 닥칠 문제들에 대한 예측 능력 및 대비책 제시, 이렇게 세 가지 범주로 살펴볼 수 있다.

감수성, 균형감각이 살아있는 정당
 
첫째, 미래통합당은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역사인식을 갖췄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의 현대사만 보더라도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으나, 국론 분열의 단층선을 따라가 보면 그 중에서도 ‘5.18, 세월호, 탄핵’의 세 가지 사건에서 가장 큰 균열이 발생했다는 진단에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공론장(公論場)에서는, 누구에게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합리적 의심에 기반한 정당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기에,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새로운 가설을 제기하면 그에 상응하는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 반박을 해서 그것의 수용 여부를 판단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비이성적인, 극단적인 주장을 지속적으로 비타협적으로 쏟아내어 의심과 분열을 구조화하는 것은 그 주체가 누구이든 간에 공동체 차원에서 견제를 받아야 하고, 허위로 드러날 경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5.18이나 세월호의 경우 피해자들과 함께 아픔을 느끼고 슬퍼할 수 있어야 하고, 바라보는 관점이 국민 다수의 상식적 판단에 수렴될 수 있어야 감수성과 균형감각이 살아있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정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인식에서도 똑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국정농단의 실체와 폐해가 탄핵에 이를 정도였느냐는 반론과 함께, 과실에 비해 처벌이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나,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린 측근들을 기용한 것이 모두 탄핵 당사자의 오판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가 헌법기관인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헌법 절차에 따라 실행된 점에서, 더 이상의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논란은 매듭지어야 한다. 즉, 당 구성원이나 지지층의 ‘탄핵 부정론’과 선을 그어야 한다.
진정으로 그 같은 국정농단을 반성했다면,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민주공화정에서의 권력 분립과 견제-균형의 원리를 실천하는데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야 앞으로 유사한 국정농단 사태 발생 시 보수정당의 문제제기에도 정치적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에게 이 정당의 인식이 상식적이고 보편적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5.18, 세월호, 탄핵’ 등에 대한 역사 인식의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미래통합당은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안정적 지지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한 발 더 나아간다면, 기본적인 역사인식에서 공동체 합의 수준에 따르지 못하는 인사들을 –소위 극우세력들을- 당에서 과감하게 정리해야 이 문제의 덫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주거정책의 철학 부재가 정책 빈곤 불러

둘째, 현재 공동체가 당면한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2020년 현재 공동체 내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어떤 문제도 ‘주거’와 ‘일자리’를 넘어설 것 같지 않다.
먼저 ‘주거’의 문제를 보자. 임기 반환점을 넘어선 문재인 정부의 집권여당이 4.15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위협하는 의석을 차지할 정도로 기세등등했으나, 23차례의 대책 발표가 모두 먹히지 않은 부동산정책에서 이렇게 결정적인 낭패를 볼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듯하다.

같은 행정부, 같은 장관의 입으로 발표한 정책을 믿고 따른 국민들이, 결국 뒤통수를 맞는 결과가 되었으니 민심 이반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그린벨트 해제냐, 용적률 확대냐, 또는 수요억제냐 공급확대냐, 수요억제 중에서도 금융규제냐 세제강화냐의 정책적 선택의 문제보다도 실은 더 큰 틀에서의 주거 정책에 관한 철학의 부재가 정책의 빈곤을 불렀다고 보여진다.
보수정권이 거시적인 경기조절수단으로서 ‘부동산 정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하곤 했다면, 진보정권은 미시적으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목적의 ‘집값 잡기 정책’을 이리저리 남용하다 곳곳에서 부작용만 일으켜온 형국이다.

지금은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과잉유동성 상태라서 부동산공급을 늘려도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상존하는데 결코 공급 확대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세제를 통한 불로소득 환수를 의도하더라도 과세인상분이 임차인이나 양수인에게 전가되는 결과라면 그런 정책의 실행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주거 정책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주택 보유의 욕구를 억누를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원하는 입지에, 적당한 가격에, 원하는 기간만큼 주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는다면, 지금처럼 하루에 출퇴근 시간으로 2~3시간을 써야 하는 지역에 3기, 4기 신도시를 건설하는 대안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총론만 보자면, 도심 내 주거 공급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한편, 같은 세대(世代) 내에서 주택 보유 여부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자산 격차를 벌어지게 하는 현재 상황을 방치해서는 통합되고 조화로운 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렵다. 국제적인 수준을 고려해 보유세를 조정하되, 동시에 소유를 택하든 임대를 택하든 생애주기를 통틀어 자산 격차 및 삶의 질에 큰 차이를 발생시키지 않는 정책 조합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일자리는 기술혁명에 맞춰 대책 마련해야

다음으로 ‘일자리’ 문제를 보자.
언제부터인가 괜찮은 일자리가 스멀스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증발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 문제는 1~2년 사이에 생긴 현상이 아니다.
그런데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민간에서 못 만들면 정부가 공공부문에서라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정부만능주의에 입각한 시각이다.
증기기관의 발명보다 더 본질적인 노동의 변화, 아니 노동의 종말을 초래할 인공지능(AI) 등의 기술혁명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100년 전 대공황 당시 썼던 처방으로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지금부터 새로운 100년을 넘기기 전에 노동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대체되는 -즉,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또는 인간의 일거리가 사라지는- 시대에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포스트 복지국가체제’를 준비하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경제적 자원을 최대한 비축해야 할 시점에 이렇게 무원칙하게 공공부문을 비대하게 키우느라 미래세대 생존재원을 당사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앞당겨 끌어다 쓰는 건 곤란하다.

일자리 문제는 인류사적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발생하는 구조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정책들로는 결과적으로 자원만 낭비할 뿐 그 대응과 효과에 명확한 한계가 보인다. 따라서 일자리와 노동의 문제는 다음 순서인 미래 이슈로 넘겨서 논의를 이어가는 게 적절하겠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현안을 주도하는 보수정당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 논쟁에서 비로소 주도권을 겨우 찾아온 정도일 뿐이다.
여전히 부동산 문제는 ‘공급만 확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지적 나태에 빠져 있고, 일자리 문제에 대해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기업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을 도와줘야 한다’는 단편적인 입장에 그쳐 왔다. 기업의 고용이나 생존 기반 자체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역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본소득체제’ 매개로 정치세력 연대 필요

정당은 정치적으로는 정권 획득을 위한 결사체이나, 정책적으로는 ‘시대적 난제의 해결사’가 되어야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보수정당도 그런 모습을 보여줬던 시기가 있었다. 예를 들면, 2012년 정국에서 ‘경제민주화’나 ‘한국형 복지국가’ 같은 정책들로 말이다. 경제민주화는 아직 완벽히 구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공동체를 옥죄는 이 시대의 최대 과제의 지위에서는 내려온 듯하다.

비록 2012년 대선 공약 채택 과정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배제되었다고는 해도, 박근혜 정부에서의 경제민주화 조치 결과로 일감 몰아주기 및 갑질 근절 등 각종 행위 규제들이 시행되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된 추가적인 견제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이전보다는 재벌이 현실 정치나 다른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는 데에는 우리 사회가 대체로 동의할 것 같다. 물론 급속한 기술과 시장의 변화로 재벌들의 기존 주력산업 경쟁력이 취약해진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총선-대선을 거치며 제도화된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은 -여전히 각각 많은 쟁점을 안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복지국가체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 미래통합당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에만 기대어 반사이익만 누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주요 현안에 대해 정책적으로 정국을 주도할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셋째, 보수정당은 가까운 미래에 한국과 전 인류에 닥칠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의 종말’ 시대, 즉 탈(脫)노동 시대를 맞이하며 국가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선보여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없어지는 일자리를 부여잡고 형식적인 가짜 일자리를 만드는데 혈세를 낭비하며 결과적으로 미래세대를 착취할 것이 아니라, 이른 시기에 ‘20세기형 복지국가체제’를 ‘21세기형 기본소득체제’로 이행할 준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에 복지국가체제의 사회안전망 핵심이라 할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이 얼마나 오래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 우리는 국민의 생존권 보장과 경제의 지속가능성 보장을 위해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인가? 불과 30여 년 앞으로 다가온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대책이 고작 ‘국가지급보장 법제화’라고 주장하는 여당에는 딱히 더 기대할 게 없긴 하다.
따라서 현 사회보장체제의 지속가능성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인정하고 기존의 진영논리를 초월하여 새로운 체제를 설계하고자 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연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기본소득 도입 땐 정부의 규모·기능 줄여야

그동안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그룹들은 공통적으로 자기 진영 내에서 때론 격렬한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돼왔다. 보수진영에선 재정보수주의 관점상 소요 재원의 규모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포퓰리즘이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 진보진영을 봐도, 거대 노조와 사회복지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즉 노동가치에 반하거나 기존 사회복지체계를 허무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보의 주류에서도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또한 기본소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정부의 규모와 기능을 과감하게 축소하는 행정개혁조치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모든 산업에서 빠른 속도로 무인화, 자동화가 이루어지는데 행정서비스 분야만 성역이 될 수는 없다.

아무튼, 이러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지긋지긋한 20세기형 이념 지형을 무너뜨릴 절호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념 갈등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국 사회가 탈이념 사회로 진화하는데 필요한 추동력을 기본소득 논쟁에서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외에도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많은 과제들이 도처에 있다. 이제는 코로나19 같은 글로벌 팬데믹이 일상인 뉴노멀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또한, 지구가 불타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전향적이고 공세적인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 인간은 이미 자신보다 우월한 새로운 종(種)을 창조한 것 같다. 인간-기계의 공존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동물권리 보호에도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보수정당의 능력으로는 급속히 바뀐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 맞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21대 국회 들어 일부 새로운 구성원들이 늘어나 얼핏 보면 변화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아직도 다수 구성원들의 지배적 세계관이 과거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있다. 2020년대 환경에 맞는 정책을 세우려면 지금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처방이 나와야 할 것인데, 아직도 상당수의 정책 콘텐츠가 이전 시대의 내용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연이은 공천 오류로 당내 세대 균형이 깨어지고, 시대변화에 대한 감수성과 중도로의 외연 확장성이 높은 개혁성향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한 결과이다.

그러나, 희망은 남아있다. 앞에서 살펴본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실천한다면, 기존에는 보수정당 옆에 오기를 거부했던, 이 시대 환경에 맞는 정책 처방을 치열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이 보수정당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드디어 만들어질 것이다.

‘고여 썩은 물’ 빠지려면 7~8년 기다려야

다시 한 번 보수정당의 집권처방을 요약해보자.
1) 먼저 5.18, 세월호, 탄핵에 대한 역사인식을 정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식이 다른 구성원들과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절연해야 한다.
2) 이 시대 가장 큰 문제인 주거권 보장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만들어 내놓아야 한다. 정부 정책 실정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대안이 아니다. 줄곧 이야기해온 단순한 공급 확대책은 철 지난 방식이고 과잉유동성 상태에서는 효력도 없을 것이다.
3) 탈노동 시대의 근본대책으로 복지국가체제에서 기본소득체제로의 이행이 절실함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 외에도 기후변화, 동물권 등 기존의 진보 어젠다 중 상당수를 과감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60~70대가 보는 세상과 10~20대가 보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의 변화를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미래통합당이 오른쪽 끝의 극단주의 세력과 제대로 결별하고 난 다음엔 뭘 해야 할까? 왼쪽 끝의 극단주의 세력과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고 이미 맹렬히 투쟁 중인 우리 사회의 여러 양심적인 지식인 및 시민들과 연대하여 중도에서 대연합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것도 김종인 비대위원장 재임 중에 추진되어야 성사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앞의 사람들이 워낙 망가뜨려 놓은 탓에, 보수정당 단독으로 다시 집권할 수 있으려면, 고여 썩은 물이 빠질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7~8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만일 2년 후에 꼭 집권하고 싶다면, 극단주의로 변질된 세력과는 단호히 결별하고, 건강한 생각을 가진, 새로운 동료들과 과감하게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김세연 객원기자

전직 3선 의원, 1972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총선 때 부산 금정구에서 처음 당선돼 18~20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엔 새누리당을 탈당해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2018년 1월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20대 국회 후반기엔 당내 싱크탱크인 여의도정책연구원 원장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11월 불출마 선언을 했으며 보수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기본소득, 기후변화, 기계세(로봇세) 등의 미래 어젠다에 집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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