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사람을 읽습니다
처칠, 석유시대의 우연한 설계자석유의 위력을 세계에 알린 사람은 뜻밖에도 윈스턴 처칠이었다. 1911년 당시 영국 해군장관이었던 그는 독일과 해군력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해군 함대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었고, 그 결과 해군 함정의 속도와 작전 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석유가 석탄보다 부피도 작고 열량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세계는 아직도 석유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산업화시대에 접어들어 두 차례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세계는 석유와 중동 산유국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래서 중동
30년 경력의 편집자가 쓰는 책 만들기 천일야화 '배소라의 다시 들추는 책장'. 이번 아홉번째 글은 한국 공공의료의 여러 현장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왔던 김선민 전 심평원장의 책 《아픈 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를 소개한다. 의대생 시절부터 선천성 담낭질환, 대장암, 우울증 등 여러 병력을 거쳤던 김선민 전 원장은 누구보다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위치에 공감할 수 있는 의사였다. 성공 스토리를 다룬 자기계발서로 출발했던 책은 한국 공공의료의 여러 현실과 교차하는 개인사가 담긴 담담한 산문으로 세상에 나왔다. 개인의 경험이 세상
피해자는 누가, 어떻게 대변하는가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두게 되면서 교도소 재소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 게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인격이 무시되어도 좋다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재소자의 실상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갖출 수 없는 정도다.‘재소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 같은 논의는 자연스럽게 ‘가혹한 처벌이 오히려 강력범죄를 유발하며, 그래서 형벌의 목적을 처벌이 아니라 교화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어떻게 하면 교화를
상나라는 갑골문자로 기록된, 사실상 중국 최초의 고대 국가다. 흔히 은나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은(殷)은 상(商)나라의 수도를 말한다. 그전에 하(夏)나라가 있었지만, 고고학적 기록이 미흡해서 실재가 불분명하다. 주(周)나라를 중국 최초의 국가로 보았던 역사학자들은 상나라에 대한 기록이 갑골문으로 발견되면서 중국사의 시작을 상나라로 인정했다.기원전 1600년부터 약 550년간 존재했던 상나라는 인신 공양과 식인 풍습으로 유명했다. 리숴의 《상나라 정벌》은 인신 공양 구덩이를 발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장과 내용이 기록 필름을 감상
이슬람혐오의 가까운 기원, 약자에 대한 차별우리나라에는 이슬람에 호의적인 사람들보다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이유가 되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형편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혐오의 대상이 된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난민이거나 취업을 위해 입국한 사람들에 국한되었을 뿐 중동 부자들이 이슬람혐오 때문에 푸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슬람혐오가 약자에 대한 차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이 테러로 나타나고 더 나아가
‘배소라의 다시 들추는 책장’ 코너는 30년 경력의 편집자가 쓰는, 책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섭외부터 기획, 편집, 제작과 출간 이후 반응에 이르기까지 출판업에 종사하는 기획자만 알 수 있는 숨은 이야기들이 매달 펼쳐진다. 여덟번째 책은 공주시와 협업해 만들었던 이다. 두 기획자가 그 이전 작업에서 사랑하는 도시로 공주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공주시의 의뢰를 받아 책을 만들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부러 어렵게 갔고, 제안받은 만큼만 하면 될 것을 거꾸로 자꾸 제안을 하면서 일을 키웠다.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지 예전에 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도가 문명사회를 가르는 척도라고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만든 이런 변화가 기실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탄 지하철이 도중에 장애인단체 시위 때문에 멈춰 섰을 때였다.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어딘지 분간도 되지 않는 곳에 내려 헤매다보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머리로는 그들의 시위를 이해하겠는데 그것이 짜증을 가라앉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서구에서 한국 영화에 관한 비평적, 학술적 관심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지만, 이런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소개할 만한 학술서적이 별로 없었다. 한국 영화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영어 사이트도 달시 파켓이 운영하는 한국 영화 웹사이트(Darcy’s Koreanfilm.org)와 필라델피아의 한인 교포 벤 킴이 운영하는 키노 아시아(KinoAsia)라는 사이트 정도였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아시아 영화와 관련해서는 주로 일본, 중국, 홍콩, 인도 영
그런 중동은 없다: 중요하지만 대충 알아도 됐던 중동중동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는 데는 크게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에 비해 중동에 대한 정보는 놀랄 만큼 부족하고, 그나마 알려진 것 중에는 부정확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중요한 시장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중 가장 큰 시장인 사우디에는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 이래 언론사 특파원이 주재한 일이 없다. 정보가 부족하고 부정확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중에 중동 전문가의 시선을 빌어 중동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오랜 시간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맞아 〈피렌체의식탁〉은 덜 요란하게 그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글을 연중 소개할 예정이다. 기획의 세번째로 젊은 역사학도 유찬근 필자가 세 권의 책으로 김대중의 사상과 행동의 기원을 탐색한다. 김대중'만'을 조망하는 평전류를 제외하고, 한국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추적하는 책 가운데 《한국전쟁과 수복지구》 《애국의 계보학》 《야만의 시간》 등 세 권을 골랐다. 김대중은 안보로서의 민주주의를 주창했고, '인동초'라는 별칭처럼 마초적 남성성과 다른 새로운 남성성, 새로운 리더십을 구현했으며, 해외동포들과의 적극적 연
30년 경력의 편집자가 쓰는 책 만들기 천일야화 '배소라의 다시 들추는 책장'. 이번 일곱번 째 글에서 소개하는 책은 뉴욕 월가 출신의 금융맨이 충남 홍성으로 귀촌해 돼지농장 주인이 되는 과정을 책으로 담은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이다. 20여 년 만에 만난 대학 동기 L은 업계에서 빛나는 여러 순간들을 지나 수천 마리 돼지들을 돌보는 농장주가 되어 있었다. 기획자이자 편집자인 B는 그 극적인 변신에 한 번 충격과 감동을, 그 변화 안에 세심하게 감춰진 농업과 지역에 대한 헌신의 의지에 또 한 번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사람은
스스로 만든 명언이 유행하는 시대독서모임에서 이번 달에 읽을 책으로 선정한 것이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이라고 했다. 쇼펜하우어라는 이름은 익숙한데 그의 책은 읽은 기억이 없다. 그의 저서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하고 찾으니 내가 알았던 제목은 부제였다. 그의 저서 중에 통찰을 보여주는 구절을 발췌해 묶은 책인데,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격언)’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이었다.언젠가부터 명언이라는 말이 소셜미디어에 자주 보인다. 유명인사의 발언이나 드라마 한 구절이 회자되기 시작했고, 스스로 자기 말을 명언이라며 들고나오는 이들도
우현 고유섭(1905~1944)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한 해 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우리 미술사의 개척자였다. 우현은 우리나라 미술의 전통성을 찾은 인물이었다. 그를 생각하면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가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우현은 우리의 미를 ‘적조미(寂照美)’라고 했는데 야나기의 ‘비애(悲哀)의 미’와 맞물리면서 우리 미술을 수동적으로 평가한 일본인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고유섭을 따라다녔다.야나기는 일제가 광화문을 철거하려 할 때 맹렬하게 반대하며 타국의 문화유산 존중을
2030년 엑스포는 사우디의 리야드에 돌아갔다. 엑스포 중에 가장 권위 있는 ‘등록’ 엑스포가 불과 2년 전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렸는데 2025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고 다시 걸프국가인 사우디로 돌아간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2022년 월드컵이 카타르에서 열렸는데 2034년 월드컵도 사우디 차지가 되었다.저자는 불과 60년 전의 걸프국가*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불모의 황량한 사막에서 천막생활을 하며, 자신의 발아래 세계 최대의 유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라 가난 속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유목민이었으며, 석유가
‘다시 들추는 책장’ 코너는 30년 경력의 편집자가 쓰는 책 이야기입니다. 이번 호는 연말 특별 기사로 메디치미디어의 여러 브랜드를 통해 선보인 다양한 책들 중 한번 더 되짚어보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12권의 책을 모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품격의 역사, 논쟁의 역사, 아픔의 역사2023년 메디치의 서가를 관통한 첫 번째 주제는 역사였다. 각 영역에서 화제를 모은 세 권의 책을 통해 품격의 역사, 논쟁의 역사, 아픔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품격의 역사: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인 대통령 행사 이야기 《미스터 프레지던트》. 문재인 정부
'책'을 고르는 당신의 기준은 무엇인가. 눈닿는 온라인 장소 어느 곳에서나 인공지능(AI)이 당신의 취향이라며 강권하거나, 혹은 서점의 판매 순위 상위나 소셜미디어 속 명사들의 리스트를 따라가보는 독서도 있을 것이다. 2023년, 독서는 점점 진기한 체험이 되어간다. 그래도 일상을 되돌아보고, 사회를 응시하고, 시대정신을 품어보려는 노력에 가장 든든한 벗이자 스승은 역시 책이다. 메디치미디어의 저자, 피렌체의식탁의 필자,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난 생각의 이웃들에게 조용히 무심하게 청탁했다. 당신이 읽은 2023년도는 무엇인가.
'책'을 고르는 당신의 기준은 무엇인가. 눈 닿는 온라인 장소 어느 곳에서나 인공지능(AI)이 당신의 취향이라며 강권하거나, 혹은 서점의 판매 순위 상위나 소셜미디어 속 명사들의 리스트를 따라가 보는 독서도 있을 것이다. 2023년, 독서는 점점 진기한 체험이 되어간다. 그래도 일상을 되돌아보고, 사회를 응시하고, 시대정신을 품어보려는 노력에 가장 든든한 벗이자 스승은 역시 책이다. 메디치미디어의 저자, 피렌체의식탁의 필자,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난 생각의 이웃들에게 조용히 무심하게 청탁했다. 당신이 읽은 2023년도는 무엇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