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⑥ 범죄사회

부제에 다 담겼다, 안전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범죄의 모든 것

재판에서 피해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 그런데 정말 맞는 것일까?

재판이 진실을 찾고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라는 말의 허망함...

범죄를 예방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 이미 당도한 감시사회

범죄사회: 안전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범죄의 모든 것, 정재민, 창비, 2024. / 사진=창비
범죄사회: 안전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범죄의 모든 것, 정재민, 창비, 2024. / 사진=창비

피해자는 누가, 어떻게 대변하는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두게 되면서 교도소 재소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 게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인격이 무시되어도 좋다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재소자의 실상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갖출 수 없는 정도다.

‘재소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 같은 논의는 자연스럽게 ‘가혹한 처벌이 오히려 강력범죄를 유발하며, 그래서 형벌의 목적을 처벌이 아니라 교화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어떻게 하면 교화를 통해 범죄율을 낮추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 그 해법은 궁극적으로 형량을 낮추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에 대해 저자도 이 책에서 같은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면 그 주장처럼 형벌의 목적이 교화라고 하자. 그럴 때 피해자가 입은 피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교화를 위해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정당국에서 형벌을 감면하는 게 과연 정의에 부합하는 일일까? 범죄를 줄인다는 이유로 형벌보다 교화에 치중하는 건 본말이 바뀐 일은 아닐까?

이런 관점으로 보면 형사소송에서 검사만 기소할 수 있는 기소독점주의가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의심스럽다. 검사만 기소할 수 있다면 결국 피해자가 의지할 수 있는 건 검사뿐인데, 과연 검사가 피해자의 고통을 대리하고 있는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물론 검사는 피해자를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대리해 사회 정의를 지키는 게 본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다. 그러면 피해자의 고통은 누가 대리하는 것인가?

저자는 현재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를 피해자 자격으로 법정에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판사는 피해자를 만나보지도 않고, 피해자가 겪은 고통이 얼마인지, 피해자가 어떤 처벌을 원하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판결하는 것이다. 저자는 근대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를 참여시키는 제도를 필수로 두지 않는 것은 재판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르거나 피해자에게 휘둘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은 오로지 법은 죄 자체만 판단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범죄 상황과 동기를 고려한다는 양형의 감경요소와 가중요소도 배제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피해자의 상황을 배제해야 한다면 범죄자의 상황도 배제하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니 말이다. 저자는 양형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양형기준과 감경요소·가중요소를 수록하고 있는데, 법이 죄 자체만 판단한다면 그런 요소들을 왜 고려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중 흔히 ‘주취감경’이라고 불리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형량 감경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렇지 않아도 그에 대한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와서 다행히 요즘은 그런 관행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피해자가 형사재판에 출석하는 경우는 대체로 사실 확인에 필요한 증인으로 출석하는 정도라고 하면서, 이보다는 피해자를 정식으로 출석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범죄자가 법정이라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면서 피해자가 치유를 얻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의견도 피해자가 자기가 입은 피해와 고통을 증언하거나 형량에 대해 진술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TV나 인터넷 같은 오락거리가 없던 시대에 재판과 처형은 사람들이 잘 모이는 인기 있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1848년, 술에 취해 도둑질을 한 남성이 옆에서 그의 여동생이 울고 있는 동안 사람들이 꽉 찬 영국의 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남성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 그림=G. Cruikshank,&nbsp;Wellcome Collection gallery<br>
TV나 인터넷 같은 오락거리가 없던 시대에 재판과 처형은 사람들이 잘 모이는 인기 있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1848년, 술에 취해 도둑질을 한 남성이 옆에서 그의 여동생이 울고 있는 동안 사람들이 꽉 찬 영국의 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남성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 그림=G. Cruikshank, Wellcome Collection gallery

범죄를 사전에 예방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보다 그저 CCTV...

형사재판에 관한 보도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구속 기준’과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심지어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런 피고인은 하나같이 힘 있는 사람들이다. 원칙이 일관성이 없고 차별적이라는 말이다. 

이런 원칙에 대해 저자는 “오판일 경우 피고인이 입는 불이익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구금되는 동안 심신이 큰 고통을 겪고 직장도 잃게 되고 가족도 큰 피해를 볼 뿐 아니라 그 판결을 근거로 피해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압수수색, 감청, 체포, 구속을 할 수 있는 수사기관은 피의자보다 힘이 막강하며, 이러한 힘의 차이로 인해서 피고인이 위축되고 무력해져서 마땅한 주장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재판이 진실을 발견할 수도 없고 정의를 세울 수도 없고.

하지만 나는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재판이 과연 진실을 발견하고 정의를 세우는 절차인가 하는 데에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시중에 널리 회자되는 것처럼 소송은 확인된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절차일 뿐 진실을 발견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데 십분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다.

판사로 시작해 국제재판소와 방위사업청을 거쳐 법무부 법무심의관으로 공직을 마친 저자는 재직 중에 소설 여러 편을 발표해 다수의 문학상을 받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또한 <알쓸범잡>을 비롯해 여러 방송에 출연해 법과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아 이름을 얻기도 했다. 그런 이력인 만큼 이번에 발간한 <범죄사회>에서는 과학수사를 주제로 하는 글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2019년 8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스마트 차이나 엑스포'에서 얼굴 인식 기술을 홍보하는 부스의 모습. 중국은 국가 전략인 '중국 제조 2025'의 중요 기술 중 하나로 안면 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br>
2019년 8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스마트 차이나 엑스포'에서 얼굴 인식 기술을 홍보하는 부스의 모습. 중국은 국가 전략인 '중국 제조 2025'의 중요 기술 중 하나로 안면 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

저자는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전체 범죄 건수가 193만 건에서 153만 건으로 2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는데, 그것은 곳곳에 설치된 CCTV나 휴대폰으로 범행 현장을 쉽게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며, 과학수사가 그에 크게 힘입었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비대면으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강도나 절도, 폭력과 같은 전통적 범죄에 한하는 일이기는 하다.

저자는 과학수사의 공헌을 설명하면서 DNA가 수사의 정확성을 얼마나 높였는지 누누이 설명한다. 그러면서 현재 모든 국민의 지문이 등록되어 있듯이 모든 국민의 DNA도 등록하자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한다. 아울러 30~40대 직장인들은 전국에 깔린 1,600만 대의 CCTV에 하루 평균 98회 이상 노출된다는 놀라운 사실도 소개한다.

또한 책 후반부에서 ‘범죄예방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지금까지 개발된 기술을 사용하면 폭력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은 사람이나 범죄 가능성이 특별히 고조되는 시가를 특정할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 같은 ‘범죄예방 시스템’은 기술적인 어려움보다 윤리적 민주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 국민 개개인의 사생활뿐 아니라 내면까지 검열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교통신호를 위반하면 전광판에 차 번호와 차주 이름이 뜨는 것을 사례로 들고 있다.

나 역시 중국에서 안면인식기술을 이용해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보행자 얼굴과 이름을 전광판에 띄운다는 뉴스를 듣고 아연실색한 일이 있다. 아무리 단속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에게 DNA 등록을 의무화한다면 그 저항이 어떨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네옴시티'는 우리의 미래가 될까

지금 사우디는 전대미문의 거대사업인 ‘네옴시티’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의 주관기관인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의 수장은 공식적인 회의 석상에서 네옴시티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는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전 주민에 대한 상시 감시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인데, 주민의 상당수를 외국인으로 채우겠다는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명실공히 전제왕정국가이니 그런 생각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인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할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는 것일 뿐. 아마 우리도 주민등록증을 처음 만들 때 가졌던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네옴 프로젝트 펀드에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공개한 네옴시티 홈페이지의 일부. 네옴시티는 '안전한 도시'를 내걸고 투자자 및 거주자를 모으고 있다. '안전'의 핵심은 일상적인 감시체제다. / 사진=네옴시티 프로젝트 홈페이지
네옴 프로젝트 펀드에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공개한 네옴시티 홈페이지의 일부. 네옴시티는 '안전한 도시'를 내걸고 투자자 및 거주자를 모으고 있다. '안전'의 핵심은 일상적인 감시체제다. / 사진=네옴시티 프로젝트 홈페이지

'안전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범죄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과학수사부터 시작해 판사의 형량이 낮은 이유, 교도소의 현실, 범죄의 원인, 범죄예방 시스템을 설명한 후 '사는 듯 사는 삶'을 위한 입법을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저자의 이력만큼이나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저자는 과거에 정신병을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한 연구들이 많았다면서 요즘에는 특히 조현병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범죄예방을 언급한 장에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해 법관의 결정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를 추진하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행간에서 저자도 그에 동의한다는 생각이 읽힌다.

사회보건학자로 소수자와 약자의 건강권을 연구하는 서울대학교 김승섭 교수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일관되게 “한국에서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편견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그와 대담을 나눈 코리건 일리노이 공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미국에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전체 인구보다 약간 높은 정도이다. 범죄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성별과 연령으로, 젊은 남성이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렇다고 젊은 남성을 시설에 가두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동안 내가 알아 온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내가 저자가 쓴 글의 행간을 잘못 읽은 것일 수 있다.


글쓴이 박인식은
사우디 현지법인에서 13년 근무한 것을 마지막으로 사십 년 넘는 직장생활을 마치고 바빠서 미뤄두었던 책 읽기와 글쓰기로 '세컨드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다. 은퇴 얼마 전부터 책 읽고 리뷰 쓰는데 재미를 붙였다. 대략 매주 한 편 정도, 250편 정도의 책 리뷰를 썼다. 한국 남성 평균수명 여든셋, 리뷰 천 편도 가능하겠다 싶어 그것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삼았다. 압둘라 국왕 재임 시절부터 살만 국왕이 즉위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세로 등장하기까지 사우디아라비아 격동의 세월을 현지에서 지켜본 '현장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