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당 과반 못 넘으면 조국혁신당이 국회 캐스팅 보트 

총선 후 이재명 민주당과의 선명야당 경쟁 가능성

수사, 재판, 수난의 5년... 준비된 정치인으로 돌아오다   

외교, 환경, 의료, IT 전문가 영입은 ‘길게 정치’할 뜻

민주화가 검찰을 낳고, 검찰이 조국을 낳는 아이러니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에 이런 게 있다. "사람 참 안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사람들은 잘 변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변하고,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변한다. 어떤 사람의 변화는 때로 자신의 변화를 뛰어넘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어느 나라고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자조가 유행인 와중에,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그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번 선거의 최고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남이 만들었던 이슈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조국 현상'의 이면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3월 3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조국혁신당 창당대회에서 조국 인재영입위원장이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당 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백범선 메디치미디어 영상팀장
3월 3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조국혁신당 창당대회에서 조국 인재영입위원장이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당 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백범선 메디치미디어 영상팀장

준비된 정치인

조국 전 장관과 유튜브 방송을 하다가 그가 ‘준비된 정치인’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은 간명하고, 고난의 서사도 충분하고, 외모도 단단해졌다. 요즘 화제의 말이 된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은 너무 길다’는 선거구호(겸 건배사!)도 방송에서 태연하게 술술 뱉었다. 뒤로 물러나 관조하고 조망하는 학자풍의 말은 아니다. 

지금 조국의 말은 대중적이고 정치적이다. 박지원 전 실장은 조국과의 방송에서 “정치인의 말은 방송에 뽑힐 정도로 짧아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10~12초 정도 분량에 딱 한 문장’을 제시했는데 조국의 말이 그렇다. 짧기만 한 게 아니고, 어렵지 않다.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왜 휴대전화 비번을 공개하지 않나요?”라고 툭 쳐낸다. 물은 게 아니어도 받아치는 효과가 있다. 휴대전화나 비밀번호 같은 말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수시로 쓰는 말이다. ‘여의도 사투리’가 아니다. 

여의도 사람들은 ‘결사, 적반하장, 천인공노’ 이런 말들로 설명하거나 남을 비판한다. 대충 헤아려보면 2백 단어 정도를 이렇게도 조립하고 저렇게도 조립해서 의사표현을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실제 죽음을 무릅쓰고(결사!) 싸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적반하장이란 말이라는 말은 이제 누구나 아는 한국말도 아니고, 일상 대화에서 나올 일은 더 적다. 조국은 먹물 지식인으로서 사회과학적 사고가 기본이지만, 그의 말에서는 보통 사람들과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내밀어준 손을 기억하다

그는 법학자다. 문과의 끝판왕이라는 서울법대를 나왔다. 판검사, 변호사의 길로 가지 않고 학자의 길을 걸었다. 2019년 이후 5년은 보통의 법학자나 일반적인 지식인들이 체험하기 힘든 여러 경험을 겪었다. 수많은 혐의로 기소되어 수사를 받고, 재판을 치르고, 가족이 구속·수감되었으며, 자녀의 졸업장이 박탈되고 식구가 투병하는 걸 지켜봤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 등 돌리거나 외면한 지인, 동료들도 많았다. 힘들었을 것이다. 매일 자신의 무엇이 문제인지, 왜 이런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지, 공격의 사령탑이 있다면 과연 어떤 원리와 공식으로 움직이는지, 개인과 사회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학습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경험과 시간이 조국을 대중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그와 학력·경력이 비슷한 사람들은 이 시기에 검사, 판사, 단체장, 국회의원, 사업체 대표나 기관장, 하다못해 변호사나 교수 신분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자리에 있다 보면 아무리 겸허한 사람도 유권자나 소비자, 동료 시민을 동등하게 보기 쉽지 않다. ‘아랫사람’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조국은 모든 걸 잃어가는 상황에서 일면식도 없지만 자신을 편들어주는 시민들을 만났다. 그를 위해 피켓과 촛불을 든 이가 있었고, 조용히 밥값을 내고 간 사람도 있었다. 우물에 빠져 위에서 내미는 구조의 손길을 바라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투박하고 직선적인 연대의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그 감사함을 새기면서, 이 친절한 마음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자신의 목소리가 우물 밖으로 퍼져 나가고, 마침내 세상에 메아리가 될 수 있을지 궁리했을 것이다. 

불쾌한 도전자에 대한 응징

조국이 우물에 빠진 것은 그가 인정하다시피 본인의 하자도 있지만, 검찰 개혁을 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 초기의 정책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 등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발제자였고, 집행자였다. 검찰로서는 그들 권력에 대한 불쾌한 도전자였다. 검찰권력에게 조국이 고시 합격자가 아닌 것은 내심 무시할 수 있는 핑계였다. 

검찰은 민주화 이후 지난 삼십몇 년 동안 매우 힘이 커졌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의 검찰은 경찰이 저지르고 국정원이 지휘하는 시국사건에서 이들의 법적 청부인이었다.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 지방자치제 실시, 수평적 정권교체 등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 반대편에서는 경찰과 정보기관의 힘이 약해지고, 그 사이로 검찰이 약진하는 권력기관 내 지형도 변화가 있었다. 지금 검찰은 검찰 출신 대통령과 여당 위원장까지 배출했다. 권력의 하수인에서 중추를 거쳐 권력 그 자체다. 

조국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당시, 인터뷰 기사와 함께 조국 대표를 표지에 실은 <시사인> 629호(2019년 10월 8일자). "죽을힘 다해 검찰개혁 하겠다"는 다짐은 검찰권력에게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 사진=시사인

복수하는 정치에 당한 록키

조국이 우물에 빠진 두 번째 이유라면 노무현 타계, 박근혜 탄핵 등을 거치며 보수 진보 양쪽간 보복의 누적, 트라우마의 누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사형수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식에 전두환, 노태우를 초대하고 재임 중 여러 차례 전직 대통령과의 자리를 만들었지만 그 이후 이 화합의 전통은 흐려졌다. 김대중과 그 이후의 진보정권들은 권력기관 균형 및 시민권의 회복에 힘썼지만, 검찰이라는 새 ‘주먹’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 보수정권은 더 했고.  

진보정권 입장에서 보면 보수정당, 지역, 언론, 재계와 학계, 심지어 강성 노동계 등 여러 상어떼 속에서 소수 정권이라는 뗏목을 지켜줄 존재로 검찰을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장치 등 검찰권 운용 및 국가 통치역량(statecraft)에 대한 고민은 모자랐던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민주화 이전 군부나 정보기관, 경찰에 밀렸던 검찰은 권력집단 내 서열 리스트의 최상단에 올라갔다. ‘기득권 그룹을 길들이기 위해 검찰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태도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검사와의 대화에서 그를 인정하지 않는 검사 정서와 마주쳤다. 그 끝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집요한 검찰 수사였고, 투신이었다. 박근혜 탄핵은 직접적으로는 세월호 참사에 기인할 테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투신에 가닿는다. 노무현 투신은 검찰이 주도했지만, 박근혜 탄핵은 시민 여론과 국회 다수, 헌법재판소에 의해 합헌적으로 이루어졌다. 진보 쪽에서는 이러한 절차를 들어 두 사건이 다르다고 하지만, 심리적 측면에서 보면 보수가 입은 상처 또한 노무현 타계 못지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전·현직 대통령을 불의에 타계, 퇴진하게 하면서 한국 사회 양쪽의 골은 깊어졌다.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은 상처 입은 보수의 총결집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는 진보에 대한 복수를 희망했고, 검찰은 권력 유지를 희망했다. 두 가지 희망의 결합이 2022년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이다.        

지금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검사 또는 검찰 출신 인사들이 개입하고 결정하는 검찰의 시간이다. 그 권력이 극성기를 달리는 한편에서 ‘정치인 조국’의 시간이 열리고 있다. 5년의 수난이 조국을 법학자에서 대중정치인으로 변화시켰다면, 지난 2년 동안의 검찰 출신 대통령 시대는 검찰에 대한 국민 전반의 인식을 바꾸었다. 피의자 조국에 대한 일반 인식의 변화가 그 증거다. 진보 쪽의 시민들은 조국을 두고 2019년만 해도 양론이 있었으나, 지금은 조국이 ‘당할 만큼 당했다’며 동정하는 여론이 더 커진 것 같다. 심지어 일부에게 조국은 매 라운드 다운을 당하고도 다시 일어나는 록키처럼 인식된다. 

2017년 5월 25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춘추관 브리핑 장면.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인권 경시'와 결별하겠다며&nbsp;‘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위상을 제고할 것을 밝혔다. / 사진=대한민국 청와대
2017년 5월 25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춘추관 브리핑 장면.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인권 경시'와 결별하겠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위상을 제고할 것을 밝혔다. / 사진=대한민국 청와대

캐스팅보트, 조국의 정치적 역량의 시험대

조국의 시간은 어디까지 갈까? 이태원 참사, 채상병 사망, 이종섭 출국 같은 사안들에 대한 특검법안들, 또 검찰권 축소 조정을 골자로 하는 법안 제출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 부실을 탓하는 또 다른 국정조사와 특검법 등이 발의될 것이고, 그때마다 국회의 권한을 최대한 사용하려 할 것이다. 영입 4호 인사인 김형연 전 법제처장의 인터뷰를 보면 선거 후 일련의 법률적 공세에 대한 구상이 정리돼 있음이 느껴진다.  

1당과 2당이 모두 과반을 못 넘기면 조국혁신당이 공식적으로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양당이 140-145석 정도에서 팽팽한 형세로 선거를 끝낸다고 전제하고 현재의 비례 여론조사를 대입하면 10석 안팎의 조국혁신당이 입법부의 여러 현안에서 결정권을 갖는 형국이 예상된다.

조국이 하자면 이재명이 호응하고, 이재명이 하자면 조국이 호응하는 국회가 탄생할 수 있다. 첫 여소야대 국회인 1988년 13대 국회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그런 식으로 서로 호응한 바 있다. 3월 5일 조국 면담 후 이재명의 발언에서는 총선 후 두 당간 본격적인 선명야당 경쟁이 점쳐진다. 두 사람 다 경험과 명분과 세력적 측면에서 이유가 충분하다. 

여당이 과반수를 넘긴다 해도 조국은 더 쌩쌩할 가능성이 높다. 여당의 과반 확보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상당히 후퇴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책임논쟁이 벌어지고 이 경우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은 조국은 여기서 비켜 서 있을 것이다. 2024년의 정국에서 총선 전은 맛보기이고 총선 후가 본격 드라마의 개막일지 모른다. 

조국 밀알론, 그의 정치는 마침내 숲이 될 것이다

조국은 피의자다. 언제든 대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되고, 구속 수감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조국 정치의 리스크이면서, 한편 관전과 지지의 긴박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만약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조국의 정치는 그대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뿌린 씨앗들, 동료 의원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갈까. 후자라면 조국은 성공한 정치인이다. 정당 창당과 (현재 상태에서) 성공의 경험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두 번째 우물 탈출에 대한 확신을 높이고 있다.

조국은 기왕 정치를 시작한 만큼 끝까지 가보자는 결심을 한 것 같다. 외교안보의 김준형, 환경 전문가이자 박원순 시장의 측근이었던 서왕진, 의료개혁의 전문가인 김선민, IT 전문가인 이해민 등의 영입은 당 안팎의 불안감을 털어내거나 검찰개혁 전문 정당의 이미지를 벗기 위한 목적이 먼저겠지만, 당대표 조국이 이 정당을 일회성으로 만들지 않고 가는 데까지 가보겠다는 의지의 표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최근에는 자신의 저서 《가불 선진국》에서 ‘가불’ 딱지를 뗀 선진국, 바로 사회권 선진국, 선진복지국가를 당의 목표로 강조하고 있는데,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은 검찰의 비대화를 낳았고, 검찰은 다시 조국을 낳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다. 이런 맥락에서 조국과 검찰이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몇 년 현실파악에 상당히 유효한 관점으로 보인다.

3월 5일, 국회 본청 민주당대표 회의실에서 이재명 대표를 예방한 조국 대표. 이날 회동에서 두 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 손을 잡을 것을 밝혔다. / 사진=민주당 포토갤러리
3월 5일, 국회 본청 민주당대표 회의실에서 이재명 대표를 예방한 조국 대표. 이날 회동에서 두 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 손을 잡을 것을 밝혔다. / 사진=민주당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