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의 호락호락] '언행불일치 지구인들의 멸망 보고서' 윤태진 작가

소비에 절여져 겁 없이 스스로의 터전을 파괴하는 현대인들

멸망을 앞둔 지구인의 다섯 단계 감정 변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인간은 선해지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하는 슬픈 동물일 뿐이다

쇼펜하우어보다 더한 염세주의자가 전하는 씁쓸발랄한 위트와 유머

제목이 ‘해냈어요, 멸망’이다. 무엇을? 눈치 빠른 독자라면 제목과 표지만 스윽 보고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룡, 배달용기, 시든 화분, 넘치는 옷들, 그러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웃는 사람, 그 모든 것을 배경으로 뒤쪽 창문에... 어라, 지구가 망하고 있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무려 1632년에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때도 지구의 종말을 걱정했던가. 어쨌든 이제 그 말은 이렇게 수정될 거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오늘 특가할인에 맞춰 온라인 쇼핑을 하겠다.” 

직관적인 표지에 ‘해냈어’가 앞에 붙으니 묘하다. 이거 우쭐할 일은 아닌데, 확 와닿는다. 지구 멸망에 어디 고래나 새우나 나무가 일조하겠나. 죄다 인간이 자초하고 일조한 일이다. 저자에게 책을 한 줄로 소개해달라 물었다. “별거 아닌 줄 알았던 것들의 역습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심지어 개중에는 환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사용하는 평범한 일상의 물건들이 실은 다 환경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가령, 텀블러!

윤태진 작가는 스스로 '염세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니 독자를 향해 계몽할 리 만무. 먹지도 사지도 말자는, 그런 반소비주의를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외려 악착같이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리의!) 소비에 대한 한탄이자 반성문이다. 그리고 슬쩍 물어본다. 노력과 불편함을 동반한 실천, 진짜 하고 있나요? 혹시 자기만족에 그치는 실천 아니에요? 그래서 독후 총평. '아, 설득 당했다!' [편집자 주]

《해냈어요, 멸망: 언행불일치 지구인들의 인류 멸망 보고서》, 윤태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2024년 3월 / 사진=메디치미디어
《해냈어요, 멸망: 언행불일치 지구인들의 인류 멸망 보고서》, 윤태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2024년 3월 / 사진=메디치미디어

신혜선 미디어본부장(이하 신혜선) = 탁 와닿는 제목이 좋아요. 작가가 직접 지었다고 들었는데(*내부 기획회의 당시에도 투고된 원고의 제목에 끌려 출간을 결정했다고 한다).

윤태진 작가(이하 윤태진) = 쓰기 시작할 때부터 쓰는 내내 고민했어요. 일단 멸망이라는 단어를 꼭 넣자고 생각했고요. 멸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난 후 멸망과 어울리는 서술어를 고민했죠. 나랑 비슷한 일종의 체념, 혹은 반어적 분위기를 담을 단어가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떠올랐습니다. "해냈어! 그래, 우리는 멸망을 (기필코) 해낸 거야!”

신혜선 = 언행 불일치 지구인들의 인류 멸망 보고서, 라는 부제 그대로더군요. 정말 첫 페이지를 연 후 계속 '맞아 맞아' '어머, 나도 이런데' '어쩜 어쩜' 이러면서 읽었습니다. 지구를 지키자는 주의 주장의 책은 다양한 형식으로 참 많죠.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으세요?

윤태진 = 아뇨. 제가 지구 멸망 보고서를 쓴다고 하니, 다들 제가 환경운동가인줄 알더라고요. (웃음)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운동가도 아니지만, 반대로 지구를 멸망시키겠다고 각오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더더구나 아니죠. 대부분 그렇겠죠? 다만, 이렇게 평범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멸망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조차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평소에 머그컵을 즐겨 쓰고, 에코백 들고 다니면서 실천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그가 드라이브를 즐기고, 예쁜 에코백을 수집하는 게 취미라면? 모순이다. 당사자는 알고 있을까.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문득, 집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이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기념품으로 받은 텀블러와 유럽 여행 도중 방문한 미술관에서 고민고민하다 결국 사고야 말았던 텀블러까지. ‘아, 나의 집엔 도대체 몇 개의 텀블러가 있는 거야.’ 이런 걸 새삼 깨닫는 한심한 상황.

윤태진 = 결국 사람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아니 하고 싶은 만큼만 행동하고 있죠, 한 번쯤 경각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행자 분도 그게 됐다면 성공인 건가요? (웃음)

《해냈어요, 멸망: 언행불일치 지구인들의 인류 멸망 보고서》의 온라인 서점 카드뉴스 중 일부. 카드뉴스도 재미있(고 신랄하)게 만들었다. / 사진=메디치미디어
《해냈어요, 멸망: 언행불일치 지구인들의 인류 멸망 보고서》의 온라인 서점 카드뉴스 중 일부. 카드뉴스도 재미있(고 신랄하)게 만들었다. / 사진=메디치미디어

책 목차도 재미있다. 마치 큰 병을 앓는 사람의 심리 변화 같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하고 부정하다가 분노하고, 우울에 빠져 자포자기하고, 결국 적응하는 것처럼. 그러다 보니 꽁트집이 됐다. 읽다 보면 삐질삐질 웃음이 삐져나온다. 아내에게 늘 ‘말(言)로 뒤통수를 한 대씩 맞는 남편’의 이야기는 양념처럼 책 읽는 맛을 더한다. 가령, 이런,

아니 다시 읽지 않을 책을 왜 그렇게 쌓아두는 거야?

나에게 한없는 감동을 준 책들이라고. 언젠가 다시 읽을 거야.

그 언젠가가 언젠데? 10년 동안 한 번도 뽑지 않았으면서, 죽으려면 읽으려고?

갑자기 그 책이 보고 싶어지면 어떡할 건데.

다른 책 봐. 아직 안 읽은 책들이 더 많아.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못 읽어.

아니 근데 아까부터 왜 이렇게 죽는다는 얘기를 하는 거지. 듣는 사람 불안하게.

당장 죽고 싶지 않으면 치워.

당장 죽고 싶진 않아.

그래, 나도 당장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얼른 치워.

책에 나오는 부부 대화를 흉내 내다가 결국 ‘빵’ 터지고 말았다. 읽지도 않는 책, 혹은 다 읽은 책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하늘과 땅의 간극이지만, 우리 주변의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아이고, 웃을 일이 아니다. 메디치미디어는 출판사고, 작가는 책을 쓰는 사람인데.

윤태진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대부분 책이 엄청나게 쌓여 있잖아요. 아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틀린 말이 아니고, 제 말도 틀린 말도 아니고.

책도 결국 쓰레기가 되고 만다. 참으로 자기 모순에 빠진 상황 아닌가. 윤태진 작가는  "적극적으로 동참하느냐 소극적으로 동참하느냐의 차이가 아니겠냐"며 "지구 멸망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방법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 사진 = 백범선 메디치미디어 영상팀장
책도 결국 쓰레기가 되고 만다. 참으로 자기 모순에 빠진 상황 아닌가. 윤태진 작가는  "적극적으로 동참하느냐 소극적으로 동참하느냐의 차이가 아니겠냐"며 "지구 멸망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방법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 사진 = 백범선 메디치미디어 영상팀장

윤 작가는 이번 책을 쓰기 위해 재활용품 활용 현장을 방문했다. 비닐을 모아 큰 용광로에 넣고 기름을 만드는 곳이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왕 사용한 비닐이라면 함부로 버리지 말고 다른 자원으로 재생산해 사용할 수 있으니 차선은 될 수 있겠군. 가만, 이 기름을 만들기 위해 비닐을 수거하러 가야할 텐데, 차를 움직이려면 기름이 또 필요하고. 이게 잘하는 건가.’

윤태진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를 독려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소비를 문제 삼자면 자본주의 사회 자체를 문제 삼아야 되는 거니, 개인을 탓할 수도 없고요.

신혜선 = 하긴, ‘너처럼 안 쓰면 경제는 누가 살리냐’는 핀잔받기도 하죠.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돼요?

윤태진 = 거참, 그러게요. 그래서 죄송하네요. (웃음)

신혜선 = 우리가 언행 불일치인 건 맞아요. 천천히 혹은 빨리 멸망하느냐, 우리는 거기에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동참하느냐 이런 차이인 거 같아요.

윤태진 = 그렇죠. 뭘 해도 지구의 멸망에 동참하는 건데 일단 알고는 있자. 조금 더디게 가는데 일조하면 그것도 차선이니 그나마 낫지 않을까. 그 방법이야 각자 알아서 하는 수밖에요. 뭐, 또 아나요, 과학자들이 멸망을 막을 기술을 개발할 수도. (웃음)

신혜선 = 1만 년이 지나 ‘소주병(참이슬)’을 만난 우주인 이야기는 정말 웃기고 찡했어요. 초초단편 소설 같던데요.

윤태진 = 상상해봤어요. 유리병은 모래를 녹여서 만들죠. 일종의 돌 같은 거라 썩지 않아요, 그 유리병이 몇만 년 동안 남아, 이 지구상에 인간이 없어도 살아 존재하는 시간.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그때 유리병을 만나는 누구는 어떻게 반응할까, 상상해본 거죠.

'겨우 이런 것들' 때문에 멸망한다. 환경운동가도 아니지만 '지구 멸망'을 걱정하는 윤태진 작가는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음이면 다 용서받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자연을 파괴하고, 덕분에 빠르게 멸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 사진-백범선 영상팀장
'겨우 이런 것들' 때문에 멸망한다. 환경운동가도 아니지만 '지구 멸망'을 걱정하는 윤태진 작가는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음이면 다 용서받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자연을 파괴하고, 덕분에 빠르게 멸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 사진-백범선 영상팀장

윤 작가에게 독자들에게 책을 권하는 마무리 발언을 요청했다.  그러자, 책을 쓰게 된 모티브를 이야기한다.

"중학교 1학년 기술 시간이었어요. 공산품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지금 너희들이 쓰는 모든 물건은 언젠가 다 쓰레기가 될 것이다. 그 미래의 쓰레기가 전 세계에서 1초도 쉬지 않고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어요. " 

그때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큰 충격이었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었다고.

윤 작가는 “그때, 지구가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성장하면서 소비할 때마다 머뭇거리게 된 영향도 있지요. 물건을 좀 더 소중하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던 거 같고.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들도 있고. 어쨌든 그런 생각이 멸망을 조금 늦출 수 있는 걸까요? 하하, 어쩌면 정말 방법을 찾아낼지도 몰라요. 종의 특성상, 종은 (멸종의) 위기감을 느끼니까, 종이 멸종하지 않도록, 지구가 멸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요. 독자들도 잠깐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해냈어요, 멸망'을 쓴 윤태진 작가는 "우리의 모순과 이기심을 넌지시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렇게 부드럽고 웃기는 독설이라니. 하고싶은만큼의 실천은 자기만족일뿐이라고, 그저 슬쩍 던진다. /사진=백범선 영상팀장 
'해냈어요, 멸망'을 쓴 윤태진 작가는 "우리의 모순과 이기심을 넌지시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렇게 부드럽고 웃기는 독설이라니. 하고 싶은 만큼의 실천은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그렇게 진중한 화두를 슬쩍 던진다. 설득 당했다! / 사진=백범선 영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