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전문 언론인으로서의 여정 담은 《Burn Book》출간

여성이자 성소수자로서 자기만의 미디어 영역을 개척하다

트위터, 오픈 AI 사태 등 테크 기업들의 격변 때 기다리는 목소리

테크 기업 리더들의 비대한 자아를 참아주지 않는 진정한 언론인

리더는 문제일 수 있지만 기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보유한 모회사 메타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다. 10년 만의 방한이라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2박 3일 동안 그가 소화한 일정, LG전자 방문 및 확장현실* 관련 협업 논의,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의 만찬, 윤석열 대통령 면담 등을 보면 세계 최대의 빅테크 기업을 창업하고 이끄는 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확장현실: 증강현실, 가상현실, 혼합현실 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에게 경험과 몰입감을 제공하고 확장된 현실을 창조하는 초실감형 기술.

그렇게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받는 저커버그를 두고 “테크의 역사에서 가장 경솔하고 위험한 인물”이라고 직격하는 사람이 있다. 빅테크 비판론자의 반향 없는 일갈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왜 그런 발언을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바로 30년 넘게 실리콘 밸리와 테크 업계를 탐사해온 테크 전문 언론인 카라 스위셔(Kara Swisher)다. ‘실리콘 밸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30년 넘게 실리콘 밸리와 테크 업계를 탐사해 온 테크 전문 언론인 카라 스위셔. 그는 ‘실리콘 밸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 사진=flickr<br>
30년 넘게 실리콘 밸리와 테크 업계를 탐사해 온 테크 전문 언론인 카라 스위셔. 그는 ‘실리콘 밸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 사진=flickr

저널리즘을 전공한 스위셔는 지역 신문을 잠시 거쳐 1986년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다가, 1997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샌프란시스코 지국으로 이직한다. 이때만 해도 언론인으로서 그의 경력은 ‘전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성 위주 문화가 아직 미국의 언론사를 주도할 때였고, 더욱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희미하던 시절이니 레즈비언인 스위셔가 겪은 어려움과 불화가 어떨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근무하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이 보편적으로 보급되고, 숱한 테크 기업들이 시작하고 성장하던 시기였다. 관련 주식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다 어느 날 갑자기 꺼져 버린 ‘닷컴 버블’을 경험했던 때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미디어가 다루던 분야에서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던 스위셔는 새로운 땅을 개척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 실리콘 밸리의 테크 기업, 창업자들 그리고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다룬 '붐 타운(Boom Town)'이라는 칼럼을 만든 것이다. 이는 곧바로 월스트리트 저널의 히트작이 된다.

영향력 있는 테크 전문 언론인으로 성장한 스위셔는 2007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간판 기자 월트 모스버그(Walt Mossberg)와 함께 <올 씽스 디지털(All Things Digital)>이라는 테크 전문 인터넷 매체와 컨퍼런스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함께 진행하는 컨퍼런스에서는 2007년 테크 업계의 거목이자 라이벌 관계로 알려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한자리에 등장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7년 All Things Digital 컨퍼런스 당시의 모습. 왼쪽부터&nbsp;월트 모스버그, 카라 스위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 사진=All Things D 홈페이지
2007년 All Things Digital 컨퍼런스 당시의 모습. 왼쪽부터 월트 모스버그, 카라 스위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 사진=All Things D 홈페이지

스위셔와 모스버그는 2013년 월스트리트 저널을 완전히 떠나고 <올 씽스 디지털>도 정리한 다음, 2014년에 또 다른 테크 전문 인터넷 매체 <리코드(Recode)>를 창립한다. 올 씽스 디지털 컨퍼런스의 후속작인 <코드 컨퍼런스(Code Conference)> 역시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리코드가 2015년 뉴미디어 그룹인 복스 미디어(Vox Media)에 인수되기는 했지만, 레거시 미디어에서 경력을 시작한 언론인이 자신만의 브랜드와 콘텐츠로 독립하여 자리를 잡은 대표적 성공 사례였다.

인터넷 매체나 컨퍼런스도 있지만, 스위셔가 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 매체는 팟캐스트였다. 리코드를 창립한 후 2015년에는 <리코드 디코드(Recode Decode)>를 진행했고, 2018년에는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스캇 갤러웨이(Scott Galloway)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팟캐스트 <피벗(Pivot)>을 내놓았다. 갤러웨이의 전공은 마케팅이지만 테크 기업의 동향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그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에 대해 분석한 책은 《플랫폼 제국의 미래》(비즈니스북스, 2018)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

레거시 미디어 중에 가장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환에 나선 <뉴욕타임스>도 스위셔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스위셔는 2018년부터 뉴욕타임스 외부 필자로 참여하여 정기적으로 기고를 했고, 둘의 협력 관계는 2020년 9월 인터뷰 전문 팟캐스트 <스웨이(Sway)>로 이어진다. 첫 게스트가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였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 스위셔는 테크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권력과 부를 휘두르는 사람들이라는 독특한 시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2020년 11월에는 콜럼비아 로스쿨의 젊은 교수가 출연하여 반독점 소송의 역사, 빅테크 기업의 독점적 행태와 규제 방향을 풀어냈다. 2021년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연방공정거래위원장으로 지명된 바로 그 리나 칸이다.

2022년 하반기에는 뉴욕타임스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복스 미디어의 뉴욕 매거진으로 복귀하여 2022년 9월부터 팟캐스트 <온 위드 카라 스위셔(On with Kara Swisher)>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테크 기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스위셔의 팟캐스트와 기사는 반드시 참고해야 할 자료로 꼽힌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샘 알트만이 오픈AI에서 축출되었다가 복귀하는 사건의 와중에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그의 팟캐스트를 기다렸다. 스위셔의 장점은 오랜 실리콘 밸리 취재 경력으로 인해 막후의 이야기까지 정확하고 폭넓게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커버그를 “테크의 역사에서 가장 경솔하고 위험한 인물”이라고 한 것처럼 테크 기업과 창업자들을 솔직하게 평가하는 데 있다. 스위셔는 머스크와 단독 인터뷰도 여러 차례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지만, 스위셔가 머스크 비판 기사를 리트윗하자 머스크가 관계를 끊어버린 사건도 있었다. 빅테크 기업을 이끈 창업자들은 어쨌든 강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일 수밖에 없는데, 스위셔처럼 이를 에두르지 않고 드러내는 언론인은 없다. 단순한 독설이 아니라 언론인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고 또한 여성과 성소수자라는 이중의 소수자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비대한 자아를 참아주거나 포장하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에는 아직 스위셔의 책이나 팟캐스트가 널리 소개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말콤 글래드웰, 파리드 자카리아, 데이비드 브룩스, 등 글로벌 인플루언서 9인이 정치·경제·역사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코로나19가 가져오거나 가져올 충격을 진단한 대담을 모은 《코로나 이후의 세상》(모던아카이브, 2021) 중 한 꼭지로 소개된 것이 전부다.

이번에 카라 스위셔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의 신간 《Burn Book: A Tech Love Story》가 2월 27일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스위셔 자신에 관한 회고록이지만 테크 전문 언론인으로서 여정을 다루었기 때문에, 30년 넘게 취재해 온 테크 기업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출간 이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책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책 자체의 문제이기보다, 수많은 팟캐스트와 기고를 통해 스위셔라는 사람 그리고 그가 다루는 테크 기업과 창업자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어 딱히 책으로만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없는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2월 27일 출간된 카라 스위셔의 신간 《Burn Book: A Tech Love Story》.&nbsp;스위셔 자신에 관한 회고록이지만 동시에 30년 넘게 취재해온 테크 기업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 사진=카라 스위셔 트위터
2월 27일 출간된 카라 스위셔의 신간 《Burn Book: A Tech Love Story》. 스위셔 자신에 관한 회고록이지만 동시에 30년 넘게 취재해온 테크 기업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 사진=카라 스위셔 트위터

스위셔는 테크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의 자아도취와 상식을 뛰어넘는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테크 기업의 미래에 대해서는 희망적이다. 단순히 테크 기업이 상업적 성공을 이어가고 주가 또한 오를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보유하고 개발하는 기술이 가져올 변화가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희망이다.

책의 부제가 ‘테크 러브 스토리’인데, 스위셔는 테크 기업과 함께 성장하고 성공해온 사람이고 그들이 가진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경영하거나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시각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반론과 비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스위셔는 이전과 다른 수준으로 머스크가 X(구 트위터)에서 벌이는 일련의 사건을 비판하고 평생 취재해왔고 애정을 가진 테크 기업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테크 기업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스위셔에 대해 여태까지 잘 몰랐다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국내에 꼭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면 하는 책이다.


글쓴이 유정훈은
변호사(한국 및 미국 뉴욕 주). 2011년 버락 오바마에 맞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시점에 미국 연수를 하며 미국 정치·선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미국 정치와 법에 관한 ‘덕질’을 계속하고 있다. 메디치미디어에서 조영학, 강성민, 이충노, 황석희 등과 함께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를 냈다. 각종 언론 매체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