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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뉴요커 대화에는 왜 감탄과 질문이 많을까? 공감력은 소통의 핵심

by | 2020년 8월 24일 |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기획 · 연재




대부분의 불행은 ‘같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의사소통,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면 불편하다. 갈등하고 대립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역시 같지 않다. 서로 입장이 다르다. 말하는 사람은 내용에 가장 많이 신경 쓴다. 무엇을 말할까에 집중한다. 그것을 준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정작 듣는 사람은 어떻게 말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말하는 자세와 태도, 옷매무새, 표정, 손짓, 말의 음색과 억양 등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말하는 사람은 주제를 각인시키는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자기와 관련 있는 내용이나 귀에 쏙 들어오는 한마디를 주목한다. 그리고 그런 말을 기억한다. 말하는 사람이 전하고자 했던 주제는 듣는 과정에서 실종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날이면 까마득히 잊히고 만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연설하는 사람은 자구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검토하고 퇴고한 후 연설문을 읽는다. 하지만 그걸 듣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지루하다. 듣는 사람은 친밀감을 기대한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청중 반응에 호응하면서 친근하게 연설하기를 바란다.

話者-聽者 ‘차이’를 이해하고 좁혀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사람들이 주의 깊게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잘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은 말하는 사람의 착각이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고 좁히는 게 말을 잘하는 비결이다. 리더는 특히 그래야 한다.

차이를 줄이고 ‘같지 않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일까. 바로 ‘공감’이다. 말 잘하는 사람을 관찰해보면 공감하는 역량이 뛰어나다. 공감 능력은 말을 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남 앞에서 연설할 때 공감 역량이 필요하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연설 역량은 교감 역량이다. 연설은 준비가 절반이고 현장 감흥이 절반이다. 충분히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 분위기가 예상과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게 교감 역량, 다시 말해 공감 능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병사들 앞에서 연설할 때 그 병사들의 엄마를 떠올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노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나의 반쪽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며 오열한 것은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공감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연설의 목적은 의사를 전달하고 공감을 획득하는 데 있다. 공감을 얻어야 호감을 얻을 수 있고, 호감을 얻어야 의견과 주장을 관철할 수 있다. 연설을 자주 해야 하는 리더는 평소 청중이 공감할 만한 내용을 준비해두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들이 공감하고 점수를 줄 만한 내용을 챙겨두고, 회사 대표는 구성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이 생각나면 그때그때 기록해둬야 한다. 연설해야 할 때 그것을 찾으면 이미 늦다.

내가 강연을 잘하는 비결도 공감에 있다. 강의와 강연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강의는 지식과 정보 전달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강연은 설득과 공감을 목표로 한다. 공감하는 강연을 위해서는 청중이 어떤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강의를 들으러 온 청중들의 마음 상태를 알아야 한다. 나는 강연장에 미리 가서 일찍 온 사람과 대화해보고, 청중석에 앉아 청중이 되어 본다. 이를 통해 청중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러면 청중과 한편이 되어 그들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말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강연하는 나도 그것을 즐길 수 있다.

거창하고 특별한 얘깃거리를 찾지 말라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도 결국 공감 능력이 좋은 것이다. 서사(敍事)에 능한 사람은 누구나 경험해 봤음직한 이야기를 펼쳐 ‘맞아, 맞아!’ 공감을 일으키고 몰입하게 만든다.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은 말하는 소재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소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하찮은 소재가 공감하기 좋은 재료이다. 말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거창하고 특별한 얘깃거리를 찾는다. 누구나 겪을 만한,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얘기를 할 때 공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이다.

설명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공감을 일으키는 설명에는 과정, 배경, 사례와 예시라는 세 가지가 들어 있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얘기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아니라 배경과 맥락을 말하고, 사례와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발표 잘하는 사람을 보라. 그 역시 공감대를 형성하는 능력이 좋은 것이다. 말하는 자신과 듣는 사람 사이에 주파수와 눈높이를 잘 맞춘다. 상대의 의중과 요구를 헤아려 주파수를 맞추고, 상대 수준을 파악해 눈높이를 맞춘다.

비판하고 반론할 때도 공감이 먼저!

토론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의 말을 비판하고 반론할 때도 공감이 먼저다. 공감하는 부분을 먼저 말한 후, 반론이건 반박이건 해야 한다. 공감은 ‘당신 말을 잘 들었다’는 표시로 읽힌다. 그럼으로써 상대의 날선 칼날을 무디게 만들고 경계감을 누그러트린다.

위로, 거절, 사과, 질책 등 일상적인 말에도 공감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바람직한 위로는 우산을 받혀주는 게 아니라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위로받는 사람의 심정과 처지에 공감해주라는 것이다. ‘아 그래, 그랬구나.’ 하면서 말이다.

남의 부탁을 거절할 때도 부탁하는 사람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해주면 설사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원망을 사진 않는다. ‘오죽하면 내게 와서 부탁할까’ 하는 마음으로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용건만 말해.’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부탁을 들어주고도 욕을 먹는다. 거절당한 사람은 ‘누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더라.’고 타박하지 않는다. ‘이따위로 거절하더라.’며 태도를 지적한다. 공감하지 않는 자세를 문제 삼는 것이다.

사과할 때도 매한가지다. 실컷 사과하고도 욕을 먹는 경우의 대부분은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고 피해를 입은 사람의 심정에 공감한다는 말을 빠트려서다.

훈계하거나 질책할 때도 공감은 필요하다. 직장에서 실적을 독려할 때, 부진한 실적을 책망하고 책임을 묻는다.
“도대체 왜 그래요? 과장이나 되는 사람이 말이야. 어떻게 할 겁니까? 대책이 있으면 말해 봐요.”
상사의 애타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지청구만으로는 기대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공감이 들어가야 한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사실을 말한다. “김 과장, 지난 분기 영업실적이 직전에 비해 5% 떨어졌군요.”
그런 다음 그것이 갖는 의미나 그로 인한 영향을 말한다. “이대로 가면, 우리 부서가 경영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할 수 있겠는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 과장도 힘든 거 알아요. 같이 분발해서 꼴찌만이라도 면해 봅시다.” 이렇게 공감을 표시하며 당부한다.

상대 얘기에 “정말?” “대단해” 맞장구

공감 능력은 남의 말을 들어줄 때도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은 상대가 내 말을 잘 이해하는지도 살피지만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내 말에 공감하는지 여부이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끄덕임은 공감보다 동의에 가깝다. 상대방의 표정과 행동을 따라함으로써 정서적으로 반응해줄 필요가 있다. 상대의 감정 상태를 마음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억울하거나 슬픈 사연, 화나는 얘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줘야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얼마나 화가 났어 그래. 내가 다 이렇게 열 받는데.”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페는 <뉴욕스케치>란 책에서 뉴요커들의 말버릇을 관찰해보니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감탄과 질문을 잘하더라고 소개했다. 상대 얘기에 습관처럼 “정말?”, “어머 대단해!” 이러면서 감탄사와 물음표를 달아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래서 어찌 됐는데?” 하며 상대의 말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낸다는 거다. 그러니까 대화를 잘하려면 경청, 공감, 질문, 이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듣고 공감하고 물어야 한다. 이 가운데 핵심은 역시 공감이다.

공감은 감정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뇌가 나에게 하는 하소연이다. 지금 이런 문제로 힘드니 제발 들어달라고 애원하는 게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 힘들지? 잘 하고 있어.’ 하며 공감해주면 뇌의 탄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되고, 뇌 역시 ‘이제 알았으니 됐다’며 응어리를 푼다.

공동 작업에도 공감 역량은 필수적이다. 공감력 있는 사람이 모여 일하면 서로에게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도 깊이 공감한다. 남의 일이 내 일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일하며,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힘을 모은다.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즐겁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뿌듯하다.
이런 문화에서는 구성원들이 가치를 공유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고,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이렇게 행동하자’는 것을 암묵적으로 합의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도 양보와 합의를 통해 효율적으로 대처한다.

인간관계 역시 공감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 내 말에 공감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당신 편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누구나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상대를 내편으로는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공감해주면 된다. 공감해주면 인간적인 유대감이 생기고, 반(半)은 먹고 들어간다.

공감력은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에 기반한다. 감정적으로 민감한 사람이 공감력이 좋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이성적이기 보다 감성적인 사람이, 똑똑하고 잘 사는 사람보다는 덜 배우고 못 사는 사람이 우수하다.

공감력을 높이는 네 가지 비결

내가 얼마나 공감력이 부족한지, 아내를 만나고서 알게 됐다. 공감력 있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측은지심이 있다. 기본적으로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어렵고 힘든 사람을 주목한다. 단지 눈길만 주는 게 아니라 행동한다. 그런 사람을 도울 방도를 찾고, 그러기 위해 사람을 모은다. 그리고 정부나 관련 단체에 도와줄 것을 촉구한다. 한마디로 사람을 사랑한다. 나아가 자연을 아끼고 환경을 생각한다.

아내는 쓰레기 분리배출에 사활(?)을 건다. 우유팩을 씻지 않고 버렸다든가, 우편물 봉지에 붙은 비닐을 떼지 않고 버린 게 발각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명절이나 휴가철 이삼일 정도 집을 비워야 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게 ‘구피’라는 열대어다. 아내는 혹여 구피가 굶어죽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작은 물통에 담아 연휴 내내 들고 다닌다. 밥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아내를 보고 ‘나를 그렇게 챙겨보라’고 말했다가 ‘구피’만도 못한 인간이 된 적도 있다.

둘째, 아량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심정, 사정과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배려하고 양보할 뿐 아니라 용서와 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화와 타협과 협상이 가능하다.
간혹 내게 그런 아량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를 잘못 본 것이다. 나는 눈치를 심하게 보는 편이다. 눈치 보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양보나 포기를 잘한다. 배려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구설에 오르기 싫어서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듣는 걸 무서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이란 소리를 듣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그렇게 처신하면 아량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셋째, 공동체의식이 있다.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연대의식이 있다. 나를 다른 사람과 연결하고 공동체로 확장한다. 직장인이라면 ‘내 상사가 더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덜 듣고 칭찬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조직의 애환과 영광이 자신의 영광과 애환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며 그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아내가 외국 가수에 푹 빠져 그자의 팬클럽을 주도한 적이 있다. 출신이 중국인지 홍콩인지, 근본이 배우인지 가수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그자 사진만 봐도 자지러지셨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회원들과 시시각각 정보를 교환하고, 돈을 모아 국내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고가의 양복을 선물하고, 급기야 자기들끼리 전용기를 빌려 중국까지 날아갔다. 내 생전에 TV에서만 보던 ‘오빠부대’를 우리 집에서 만날 줄 몰랐다.

넷째, 정의감이 있다. 불의를 보면 분노한다. 불이익을 감수하며 부당, 부조리, 불합리에 저항한다. 손을 들고 말하거나 앞에 나선다. 필요하면 자신의 희생까지 불사한다.

아내는 지하철에서 조폭 비슷하게 물건을 강매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술에 취해 여성에게 추근거리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불같이 화를 낸다. 나는 간이 콩알 만해지고 옆 칸으로 피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도대체 누굴 믿고 그러는지, 그리 오래 살고도 남편을 몰라도 그렇게 모르는지. 나는 그럴 때마다 조폭보다 아내가 더 무섭다.

공감력 있는 여자와 살기 힘들다. 때로는 용감해야 하고 가끔 좋은 사람 코스프레도 해야 한다. 그래도 지금 내가 글을 쓰고 강의하면서 살 수 있는 건 아마도 아내에게 전수받은 공감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1986년에 만나 30여 년을 살아오면서 아내의 공감력에 동화돼 왔다.
특히 한 살 터울인 아내와는 시대의 추억을 같이 한다. 지나간 얘기를 하면 공감하는 내용이 많다.
“우리 중고등학교 땐 팝송 많이 아는 친구가 왜 그렇게 부러웠던지…”
“야구선수에 대해 잘 아는 친구들도 인기가 많았지.”
“반에서 한두 명 있는 클래식 음악 듣는 애들은 정말 대단해 보였고…”
두런두런 이런 얘기 나누는 게 좋다. 그렇게 함께 늙어간다. 그만큼 공감대는 넓어진다.


강원국 필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는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말과 글보다 미소 짓는 표정이 더 인상적이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각종 강연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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