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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칼럼] 기재부 혁파의 길 Ⅲ: 예산실이 쥔 ‘기게스의 반지’

by | 2020년 7월 24일 | 정책, 정치


기획재정부는 대한민국 행정의 심장부나 마찬가지다. 엘리트 관료들이 나라 살림을 좌지우지하는 곳이다. 기재부 안에서도 핵심 조직은 단연코 예산실이라 할 것이다. 512조원의 본예산(2020년 기준)에다 추경예산, 각종 연기금 운용을 감안하면 그들의 영향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기재부 예산실에서 일해본 고위관료 출신들은 “예산실은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비난 받는다”고 말한다. 얽히고설킨 이해 당사자가 많고 불만도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군사정부 시절에는 예산실 회식 일정을 경찰에서 일일이 체크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예산실 직원이 회식 후 귀가하다 음주단속에 걸리면 경찰과 관련된 수십억짜리 예산 민원을 해결하는 카드로 흔들기 위해서였다는 거다.
이런 현상은 요즘에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정기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의할 때 여야 실세 의원들은 예산안 통과를 빌미로 ‘쪽지 예산’을 넣어 기재부를 압박하고 자신들의 민원을 반영한다. 지역구에선 ‘영웅’이 될지 몰라도 국가 차원에서 보면 ‘반칙왕’ 노릇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예산안 심의의 본질을 뒤집는 ‘모럴 해저드’”라고 비웃지만 금세 “그 역시 한국적 현실이 아니냐”고 체념한다.
기재부 예산실은 나라 곳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피렌체의 식탁>은 박지웅 변호사의 ‘기재부 혁파의 길 Ⅲ’을 싣는다. 박 변호사는 2017년 8월부터 지난 1월까지 기재부 장관정책보좌관으로 일했다.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으로서 2년5개월 남짓 기재부 조직을 체험하면서 기재부와 정치권의 상호작용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편집자]

#연 512조 예산 주무르는 기재부 
  검찰-국방부 제치고 권력지도 1위 
#예산제도 어떻게 개편할까?
①예산실, 톱다운 방식 총액 배분 뒤
  개별 사업 적정성은 각 부처에 위임
②정부의 증액동의권, 국회 심사권 제한
  개헌 통해 자리에 맞는 권한 보장해야
③편성과정 공개하고 다양한 민원 반영
  쪽지예산, 밀실예산 막을 대책 세워야

예산실에는 기재부 다른 부서와 다른 독특한 위계질서 문화가 있다.
한참 늦가을 예산 시즌을 맞아 예산실장이 국회에서 내부 회의를 주재할 경우 모든 예산실 간부들은 참석하여야 한다. 언제든지 국회의원들의 송곳 질의에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산실에서 취급하는 많은 업무 내용들은 대외비 내지는 비공개가 많다. 간단한 책자 하나도 비공개로 취급되곤 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예산실에서 생산한 ‘주요 예산통계자료’를 보고 싶어 열람을 요청해 봤지만 결국 그 자료를 구하지 못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 책자를 열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금서(禁書) 내지는 무협소설의 비기(秘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예산의 총량부터 주요 사업의 내용과 이력을 포함하여 개별 사업의 단가 같은 내용까지. 사실 보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예산실장 임면(任免)은 경제부총리가 단독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당·청에서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요구하는 주요 사업, 개별 지역의 민원성 사업, 각 정보기관의 특수활동비 등 이런 사안들을 모두 매끄럽게 처리하려면, 기본적으로 ‘정치권’과 궤를 같이 하지 않는 사람을 앉히긴 어렵다.
형식상 예산실장의 최종 인사권자는 경제부총리이지만, 경제부총리가 개별 사업까지 일일이 다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산실장’이 모든 나랏돈을 챙기는 숨은 실세가 된다.

세종청사 4동 3층을 주시하라

이런 독특한 성격을 가진 예산실의 사무실은 부총리 집무실과도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다. 이른바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부총리 집무실은 세종정부청사 4동 5층에 있고, 다른 실장급(1급)의 집무실도 부총리와 근접하게 5층에 위치한다. (※기재부에는 6개의 1급 자리가 있는데 기획조정실장, 차관보, 세제실장, 재정관리관, 국제경제관리관 등이다)
하지만 예산실장의 집무실은 4동 3층에 위치한다. 또한, 예산실의 심의실(예산 룸)도 외부에는 원칙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필자도 한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놓쳐버린 게 참 아쉽다. 모든 예산심의는 이 곳에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예산실의 총량을 관리하고 숫자를 맞추는 곳은 헤드인 총괄라인(예산실장-예산총괄심의관-예산총괄과장-예산정책과장)인데, 이 분들이 곧 예산의 슬롯, 예산이 들어갈 곳에 대해서 주요 결정을 내리고, 예산의 큰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전체 총량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매년 7월경, 대통령 보고를 마칠 때까지는 그야말로 외부에 절대적으로 비공개 원칙을 지킨다. 수입-지출 예산증가율 자체가 소위 핵심 ‘야마(山)’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진다.

예산실, ‘기게스의 반지’를 낀 조직

다수의 독자 분들이 눈치를 채셨겠지만, 예산실은 아주 비밀이 많은 조직이다. 왜 그리 비밀이 많냐고 묻는 분들도 있겠지만, 기재부 안팎에 있다 보면 한없이 이해가 간다.
모든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중에 예산실을 찾지 않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에 모두가 아는 비밀은 없다. 모두에게 주어질 예상된 카드의 내용을 몰라야만 비밀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나. 어찌 보면 국가적으로 한정된 재원을 배분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예산사업을 다루기 때문에 기재부가 안팎으로 받는 요구사항들은 한 없이 늘어난다. 예산실장의 면담 스케줄을 보면 주간(週間) 일정은 거의 5~10분 단위로 쨔여진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예산사업의 주된 내용을 요령 있게 어필하지 않고서는 예산 검토 항목에 끼워 넣는 것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부처, 지자체 입장에서는 큰 공을 들여 사무관도 찾고, 과장급도 찾아가고, 가능하면 예산실장, 심의관(국장) 선까지 선을 대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예산실장이나 심의관만 알아서 될 일도 아니다. 사무관 한 명이 개별 예산사업에 X표를 그어버리면 그 사업의 추진은 출발부터 심각하게 난항을 겪는다.

필자의 경우에도 기재부 근무 시절 수없이 많은 민원전화를 사시사철 받았다. 하루 두세 건의 민원은 기본이었다. 개별 부처의 민원부터 시작해 국회 의원실의 민원, 지인을 통해 연락을 준 관계자의 민원들이 떠오른다.
필자도 누구에게 부탁 받고 잘 거절하는 성격이 못 돼서 수많은 민원들을 나름 성의껏 처리했다.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의 부탁을 전달하려면 품도 들고, 요령도 필요하다. 필자가 명색이 ‘정책’보좌관이지만, 막상 예산이 아니라 정책을 물어온 사람들은 언론사 기자 또는 정당 관계자 정도 밖에 없었다. 필자에 대한 다수의 니즈(needs)는 예산, 일정, 예비타당성 심사사항, 세 가지 항목이었다. 필자 같은 ‘어공’한테도 이러한 데, 정통 예산관료들에겐 오죽할까.

결국 예산과 관련된 많은 내용은 비밀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민원인들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히스토리가 아니다. 어떻게든 예산의 슬롯을 잘 알아, 예산을 따내면 되는 니즈가 강한 것이다. 반면 모든 민원의 총합을 이해하면, 큰 틀에서 민원인들의 행태가 보인다고들 한다.
이런 총체적이면서 디테일한 국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예산실 밖에는 없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기게스의 반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기게스의 반지’란 플라톤의 <국가>에서 등장하는 가공의 마법 반지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소유자의 마음대로 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예산 게임, 권력관계의 변화

예산실의 성격상, 많은 사람들은 예산실과 가까워지려 주변 인맥을 활용하고, 예산실 관계자들과 어떻게든 친분을 맺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예산실 사람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1년의 예산 주기를 통해 가타부타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수없이 닥치기에 일상적으로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의 경우에는 심지어 세 번의 추경예산까지 편성하지 않았나. 방대한 업무량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예산실 관계자들에게 항상 경의를 표할 뿐이다.

필자가 기재부에 있을 때도, 기재부를 떠난 후에도 주위에선 예산실에 대해 온통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예산을 따내지 못한 부처 관계자, 예산사업 관계자, 사업이 누락된 지역구 국회의원 등이었다.  그중 상당수의 불만은 예산 편성과 얽혀 있었다.

심지어 기재부 내에서도 예산실에 부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제정책 라인에서 정부부처 사업들을 엮어 내거나 서로 조정하기 위해서는 관련 예산을 쥐어 주든 다른 예산으로 유도하든 당근과 채찍 정책을 구사해야 할 때가 참 많다.
더욱이 한국 경제가 저성장 시대를 맞이해 경제성장에서 차지하는 국가재정 기여분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인데, 예산실에서 ‘노(NO)’를 해 버리면 곤란에 처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기재부 안팎에서 두루 예산실의 힘이 막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산실이 가진 파워는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최근 한 주간지에서 ‘대한민국의 권력지도 순위가 바뀌었다’며 기재부, 검찰, 국방부 순으로 이름을 나열했다. 한국 사회의 역학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국가권력은 돈(예산)과 공권력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제는 물리적 폭력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것 아니겠나. 검찰 권력 역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통제받는 세상이 되어 가는 반면, 돈을 쥔 권력은 아직 통제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아무튼 예산을 둘러싼 길고 복잡한 게임 과정에서 최후 승자는 결국 예산실이 될 수밖에 없다. 국회 안에서도 언제부턴가 예산결산특위 위원장, 여야 간사가 주요 보직으로 꼽히게 됐다. 예산안 심의·의결 과정에서 자기 지역구 예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 다른 의원의 지역구 예산을 도와줄 수 있는 힘, 그 모두가 기재부 예산실 파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 맞는 권한과 책임을

필자는 예산실에서 일한 전·현직 관료들과 많은 토론을 해봤고 개인적으로 혜안도 얻었다. 국가적 사업의 디테일을 알게 되다 보니, 정부 부처의 속내를 더 잘 알게 됐다. 각 부처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많은데, 예산실 출신 중에는 다른 부처를 그 부처 공무원보다 더 넓게, 더 깊이 보는 사람이 적지않다. 필자도 어느 부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알게 됐다. 국회·청와대까지 활동 폭이 확대되다 보니 정치게임의 본질도 이해하게 된다. 한 마디로 전략적 사고에 뛰어난 관료들을 많이 배출해낸다.

그러나 예산실의 조직과 관료들이 뛰어나다 해서 예산제도와 예산실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산제도 개혁의 문제는 예산편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예산제도를 둘러싼 권력관계의 변화를 말하지 않고서는 그런 논의들은 헛다리를 짚는 게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쯤 예산제도를 어떻게 개편할지 깊이 생각해 본다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이런 고민은 과거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Top-down 예산제도 개혁안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재부에서 각 부처별 예산한도를 정하고, 각 부처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편성하는 총액배분, 자율편성제도를 기획했다. 각 부처는 당연히 이 제도를 선호한다.
이 구상에 따르면, 매년 5월쯤 국가 재정운용계획상의 총수입/총지출 증가율을 정하고, 각 부문별 지출한도의 개략적 그림을 그린다. 계획상의 큰 얼개가 확정되면 각 부처로 하여금 자율편성을 하게 하고, 사업 심의를 통한 사업 추진 계획은 각 부처가 정하도록 하면 족하다. 이것이 당초 노무현 정부가 국가재정법을 도입하면서 계획했던 총액배분, 자율편성제도의 취지다.

그런데, 행정부처 일선에서는 이 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기존의 예산실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 잡는 큰 칼과 소고기를 손질하는 작은 칼 모두 다 쥐어주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체총량과 분야별 배분에 대해서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보다 고차원적 검토를 하되, 개별 사업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에 위임해주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예산실 공무원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지만, 세상의 삼라만상을 어찌 다 이해하겠는가. 개별사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성과평가를 엄격하게, 정확하게 측정해 처리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나 막상 성과평가에 대해선 기재부나 국회에서도 별 관심이 없다. 예산항목의 경제적 영향에 대한 피드백은 정량 평가 말고도 정성 평가가 있는데 후자는 아주 낮거나 거의 없는 편이다. 기재부와 예산실이 이런 사각지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면, 각 부처에 세부항목의 편성권한을 넘겨줘도 좋겠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기재부의 또 다른 파트너는 바로 국회 쪽에 있다. 그래서 국회 차원의 예산 관련 불만을 해결할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57조에 규정된 이른바 ‘증액 동의권’ 문제다. 국회는 정부 예산편성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갖고 있다. 그 핵심은 정부가 편성해 온 예산을 삭감 또는 증액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예산 삭감은 상관없지만, 예산 증액에 대해서는 정부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부. 예산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정부’란 곧 기재부 장관이다.
2019년 예산안 통과과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야당이 정부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만든 수정안에 대해서는 기재부 장관이 부동의권을 행사하고, 여당 측 수정안에 대해서 동의권을 행사해서 가결시킨다. 여당 입장에선 효율적 무기이지만 국회 차원에서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국회에서 증액 동의권을 전제로 예산안 심의·의결이 이뤄지다 보니, 개별 예산항목에 대한 국회의원의 심사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기재부의 예산편성 단계에서 못 넣은 지역 현안 사업들을 하나씩 끼워넣어야 하는데, 무작정 삭감만 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쪽지 예산’이 관행화되다 보니, 예산안 심의의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기국회 막판에 예산안 심사과정이 밀실거래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예산안이 상임위 예비심사를 거쳐, 예결특위로 넘어갈 때는 이미 국정감사가 끝난 11월이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12월 2일을 향해 쉼 없이 달리지만, 막상 하나의 예산사업을 심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도 안 된다. 국회의 잘못된 관행이다. (※물론 집권여당은 이런 문제점 때문에 「상시국회」를 하겠다며 7월에 관련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예결위는 ‘계수조정소위’를 넘어서 ‘소소위’, 심지어 ‘소소소위’까지 운영하는 기이한 형태가 되어버렸다. 현행 예산제도가 이런 문제를 가진 채 계속 유지·운영됨에도 궁극적인 해결방안을 못 찾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깔끔하게 해결하려면 결국 개헌을 통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한번에 풀어야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자기 역할 범위 내에서 충실하게 예산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제도의 기형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의사결정이 왜곡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개별 정부 부처 차원에선 자기 책임과 재량 하에 예산 총량 한도를 받아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기재부는 자기 범위 안에서 총량과 재정수지를 관리하되. 개별 사업예산에 대해서는 심사 한도를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산안 편성 단계에서 다양한 민원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국회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편성과정도 충분히 공개하게 만든다면 지금처럼 쪽지예산, 밀실예산과 같은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갈 수 있다.

요컨대 예산안 증액동의권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지에 대해 좀 더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 산하 ‘개헌특위’에서 논의를 벌였지만, 정치적 공방 끝에 이 문제는 부각조차 되지 못했다.
행정부처나 국회도 마냥 기재부의 예산안 독점 현상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예산제도의 틀을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뭔가 결론을 내리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행정부 각 부처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고, 기재부 또한 균형잡힌 역할을 수행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박지웅/변호사, 전 기재부 장관정책보좌관

더불어민주당 조세 전문위원,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 전문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금, 알아야 바꾼다(공저)>가 있다. 현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한민국 디자인에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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