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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현 칼럼] G12 시대, 한국의 기초과학이 이탈리아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by | 2020년 7월 7일 | 국제, 정책



이탈리아는 명품 패션, 자동차, 관광, 피자, 축구의 나라다. 그런데 로마로 들어가는 국제공항의 이름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이탈리아는 과학의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
최초의 과학자로 일컬어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의 제자 격인 토리첼리는 역사상 두 번째로 우량계를 발명했다. 알다시피, 그 첫 번째는 세종대왕의 맏아들인 이향이 발명한 측우기이다. 무려 200년을 앞선 발명. 그런데 측우기는 단순하게 빗물을 통에 받았다가 그 높이를 측정한 도구지만, 토리첼리의 우량계는 유체역학을 연구하여 빗물의 양을 연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다.

고대 로마제국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과학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한 피보나치, 3차 방정식의 근을 구한 카르다노, 근대 역학을 재정립한 라그랑주, 페아노 곡선의 쥐세페 페아노가 모두 이탈리아 사람이다.
토성의 위성들과 카시니 간극을 발견한 카시니, 인류 최초로 소행성 세레스를 발견한 피아찌, 전지를 발명한 알레산드로 볼타, 무선 전신을 발명한 노벨상 수상자 마르코니, 세포 내의 골지체를 발견한 카밀로 골지, 양자통계역학과 핵물리학의 엔리코 페르미 등도 그렇다.
최근에도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세계 두 번째 중력파 망원경의 건설을 주도했고, 암흑물질의 주요 후보 중 하나인 액시온(axion)을 검출하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이탈리아 이야기를 왜 장황하게 하는가? 이탈리아는 G7 국가 중 하나이다. G7 국가의 기초과학 수준을 이탈리아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기초과학의 대명사인 천문학 분야로 범위를 좁혀서 생각해 보자. 이탈리아와 한국은 살림살이와 인구가 엇비슷한데 과학 분야에서 한국이 조금 뒤처진 것 같으니, 한국 과학도 20~30%만 커지면 그와 비슷한 정도는 되겠거니 하면 수긍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천문학자 수를 조사해 보면, 이러한 추정은 얼토당토않으며 한국 천문학은 그 규모가 현재의 250% 수준으로 커져야 이탈리아에 필적하게 됨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천문학을 연구하다 보면 국제 수준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 그것을 실험으로 검증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가 힘든 것 같다. 왜 그럴까? 안타깝게도 한국의 천문학계는 아직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천문학 분야만 그러겠는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해양학, 대기과학 등도 나름대로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그 분야들 안에서 경제적 유용성이 덜할수록 천문학과 비슷한 처지일 터이다.
(타 분야에 대해서는 필자의 전문성에 한계가 있다. 다만, ‘그것은 천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냐?’고 묻지만 말아 주시기를 바란다.)

필자는 교토대학의 유카와 연구소에서 3년마다 열리는 중력파 천체물리학 관련 국제학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150명 정도의 이름 높은 학자들이 참석했다.
어느 분이 물었다. “한국 사람은 몇이나 되던가요?”
나는 좀 엉뚱하게 답했다. “한국은 전 세계 인구의 1% 정도 됩니다.”
150명의 1%를 반올림하면 한국 사람은 두 사람이 참석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한국은 전 세계의 과학 연구의 1%만 담당하면 되는 것일까?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GDP의 2%쯤 된다.

지난 2016년에는 무려 40년 동안의 연구 끝에 라이고(LIGO) 과학협력단 프로젝트에서 마침내 ‘중력파 검출’을 발표했었다. 그 연구 결과가 발표된 첫 논문의 저자는 모두 1004명이었다. 그 가운데 한국인 저자는 15명, 라이고 과학협력단에 참여한 한국인 과학자는 약 20명이었다. 비율로는 2%다! 그러면 한국은 전 세계의 과학 연구의 2%를 담당하면 될까?
2008~2012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출간된 과학 논문 가운데 각국의 비율을 보면, 미국 23%, 중국 15%, 영국 7%, 독일 6%, 일본 5.5%, 프랑스 4.5%, 캐나다·이탈리아·인도 3%인데, 한국은 2.5% 정도다.

국가별 인구나 GDP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과학은 국제 사회에서 지금보다 50% 정도는 더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만 과학의 국력이 G7 국가인 이탈리아 정도는 될 것이다. 지금의 두 배가 되어야 일본, 프랑스 등과 비등해진다. 목표를 어느 정도로 잡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초연구개발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렸다.(기초과학이 아니라 기초연구라고 한다. 왜일까?) 그러나 과학 연구 인력을 증원한다거나 기초과학 연구소를 설립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연구비를 두 배로 늘리면 과학 연구 성과가 두 배로 성장할까?

이런 조건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 과학자들이 연구비를 두 배로 받아서 능력치를 높임으로써 두 배의 논문을 쓰면 된다. 이게 가능할까? 한국 과학자들은 선진국에 비해서 그렇게 무능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은 편이다.
한국의 인력은 자질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학생들은 PISA라는 수학적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이고, 수학·물리·천문 올림피아드 등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둬왔다.

2017년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 과학자들이 주(主) 저자나 교신 저자로 발표한 논문의 비율은 20%이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가 25~30%인데 비해서 조금 낮지만, 중국, 일본 등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주도적 연구 비율이 웬만한 나라만큼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력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그러나 인력은 하루아침에 늘어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어떤 특정 주제로 공동 연구를 하려 해도 사람을 충분히 모으기가 어렵다. 반면에 일본, 중국에서는 인기 없는 분야라도 흥미를 공유하는 전문 인력이 보통 10~20명쯤 모이는 듯하다.
현대 과학은 수백 명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협력해 놀라운 연구 결과를 얻는 일이 많다. 그런 거대과학도 프로젝트 전체를 전문 분야별로 소인수분해하여 소그룹들이 분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개별 전문 연구 그룹이 형성되지 못하면 그들이 협업해 거대과학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국 과학자들은 선진국의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 연구 주도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다. 주도권이 없으면 노벨상은 받지 못한다.
(물론 꼭 노벨상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노벨상이 그 나라의 과학 수준을 나타내는 올림픽 금메달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우리나라 과학이 2.5%가 아니라 5%의 역할을 하려면, 과학 연구 인력이 두 배, 즉 200%가 되어야 한다.

“20%가 아니라 200%라고요?” 놀라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별빛이 2.51배 밝아지면 우리의 눈은 한 단계 더 밝아진 것으로 느낀다. 지진도 몇 배가 강해져야 지진 규모 숫자가 달라진다. 우리의 감각은 이러한 물리 법칙을 따른다. 그래서 20%가 아니라 200%가 많아져야 우리는 한 단계 성장했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다. 이 수치를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 파악해보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의 천문학 박사 수를 ‘전수조사’ 해보았다. 그 결과는 무척 흥미로웠다.


먼저, 각국의 명목 GDP와 천문학자 수를 그려보니, 각국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미국은 예외적으로 뚝 떨어져 있고, ▲영국, 프랑스, 독일처럼 인구가 제법 되면서 소득도 높고 천문학자 수도 많은 선진국 그룹 ▲오스트리아, 벨기에, 이스라엘, 핀란드, 뉴질랜드, 덴마크 등과 같이 개인 소득은 매우 높으나 인구가 작은 소위 강소국 그룹 ▲폴란드, 체코, 그리스, 포르투갈, 헝가리, 아르헨티나와 같은 개도국 그룹, 그리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멕시코와 같이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소위 브릭스 국가 그룹이 보였다.  [그림1 참조]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국은 이들 그룹의 한가운데에 홀로 놓여 있었다. 한국이 선택의 갈림길에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구와 경제력을 고려하면 우리는 강소국이 아니라 선진국 그룹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경제력과 천문학의 규모를 인구 1인당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 미국·영국·호주 등의 선진국들은 1인당 GDP의 변화와 상관없이 1인당 천문학자 수가 일정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비율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의 천문학자 수가 얼마나 되어야 적정한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선 천문학 박사가 300명쯤 일하고 있다. 경제력과 인구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에서 일하는 천문학 박사가 550명이 되면 스페인·캐나다·일본 수준이 된다. 약 800명이 되면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수준이, 1000명이 되면 미국·영국·호주 수준이 된다.

요컨대 한국의 천문학 규모는, 인구비율을 기준으로, 스페인·캐나다·일본의 50% 수준이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40% 수준이고, 미국·영국·호주의 30% 수준이라는 얘기다.  [그림 2 참조]


다음으로, 최근까지의 천문학 인력 증가 이력을 조사해 향후 추세가 어떻게 변화될지 조사해 보았다.
최근 20년간 정부는 GDP 증가율에 따라 인력 증원을 해왔으므로 전체 인원 수는 완만한(!) 지수함수의 증가 양상을 보인다. 그 추세라면, 앞으로 10년 뒤에야 현재의 스페인·캐나다·일본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한 세대인 20년이 지나야 이탈리아·프랑스·독일의 수준에 이를 것임을 알았다. 단, 그 나라들이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말이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는가?

한국 천문학은, 아니 나아가 한국 과학은 왜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 이 문제는 지난 20년 동안 많이 논의되었다. 거기에서 제기된 주요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들이 과학기술을 경제를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헌법 제9장 경제 부분에 들어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27조 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저 헌법 조문을 ‘정부는 국민 경제의 발전에 유익한 과학기술만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과학이 무엇인지, 기술과는 어떻게 다른지, 왜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개발 체계에 개선할 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6T’, ‘혁신’, ‘녹색 성장’, ‘창조 경제’, 그리고 ‘4차 산업혁명’ 등을 기치로 내세웠다. 구호와 거버넌스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국민경제에 유용한 부문에 대한 ‘선택과 집중’ 기조는 바뀌지 않은 듯하다.
정부 조직상으로도 과학기술은 경제에 종속되어 있는 느낌이다. 청와대 정책실에는 경제수석비서관은 있어도 과학기술수석은 없고 과학기술 보좌관이 있을 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ICT)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역할은 조금 분명해졌으면 좋겠다. 헌법 기구인 대통령 과학기술자문회의에도 현장의 과학자들을 많이 참여시켰으면 좋겠다. 기획재정부는 과학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해 과학 부문을 재정적으로 배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국회에도 과학자들이 몇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이후 우리 정부는 기업의 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었다. 대신 연구개발비에는 정부 지원이 허용돼 이를 계기로 과학기술 예산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업·경제와 직접 관련된 정부 부서에 속한 출연연구소들은 협회(학회), 기금 등과 협력할 수 있었다. 반면, 과학기술 부문의 출연연구소들은 협회 대신에 학회가, 기금 대신에 정부 출연금만이 있다.(과학기술진흥기금은 그 주된 용도가 기업의 연구개발 및 사업화 지원이다.)
한국 과학의 진흥을 위해선 미국, 영국 등과 같이 과학기술을 지원하는 비영리 사설 재단의 설립·운영을 제도적으로 도와줄 필요도 있겠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크게 부딪히는 문제는 인력이 적정 규모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기초과학 연구소가 거의 없다는 말도 된다. 누군가는 “무슨 소리냐? 정부출연연구소도 많고 기초과학원도 설립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하실 것 같다.
물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다른 정부 부서 산하에 여러 개의 정부출연연구소가 설립되어 일부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고, 2011년에는 기초과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기초과학연구원도 설립되었다.

그런데, 과학기술 부문에는 뿌리(기초과학), 줄기와 가지(응용과학, 공학, 기술), 그리고 꽃과 열매(산업기술) 등이 있다. 이 분야들은 그 특성과 역할에서 차이가 있고, 그래서 독일의 경우 막스 플랑크 연구회, 프라운호퍼 연구회, 헬름홀쯔 연구회 등으로 나누어 분야별 지원 방식을 달리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과학과 기술의 개념을 혼용하여 연구소의 임무가 뒤섞여 있는 감이 있고, 뿌리도 없는데 열매를 맺으려 하고, 열매만을 강조하여 뿌리를 심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거의 없다고 말한 것이다.

한국은 경제 규모가 이미 세계 10위 안팎인 나라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G7에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 등을 포함한 새로운 선진국 클럽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문재인 대통령을 G7 정상회담에 초대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보여준 한국의 진단·방역 능력이 크게 어필했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 성공의 배경에는 분자생물학, 생리의학, 인공지능, 컴퓨터 과학 등 기초과학의 기여가 깔려 있다.

이처럼 세계를 이끌 정도의 과학과 기술은 우리나라 국력의 큰 골간이다. 우리의 과학도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하고 국제 사회에서 우리가 감당할 부분엔 책임질 수준이 되면 좋겠다.
인구 비율 만큼인 1%만 책임져서는 곤란하다. 현재 수준인 2.5% 정도로도 부족하다. 적어도 5%는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인력을 늘리고, 기초과학 연구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연구소를 설립하고, 정부 행정 지원 체제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안상현 필자

천문학자이자 작가. 어렸을 때부터 별 보는 일을 좋아했기에 천문학을 전공했고, 별을 연구하는 일을 택하게 되었다. 저서로는 <우주의 측량>,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 <우리 혜성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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