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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의 ‘과학과 세상 사이’] 우린 과학자들을 왜 모를까? 이공계 무시해선 대한민국 미래가 없다

by | 2020년 6월 24일 | 정책, 최준석의 '과학과 세상 사이'

당신이 기억하는 물리학자 이름은 있습니까? 아인슈타인, 뉴턴, 호킹? 아니, 외국인 말고 한국 물리학자 이름을 혹시 아시는지? 기억나는 사람이 있으신지?
웬만큼 연배가 있다면 1970년대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분 말고 누가 또 있을까? 그렇다, 생각이 잘 나지 않을 것이다. 그게 한국의 보통사람이다.
한국인은 물리학자, 아니 한국의 과학자에 대해 모른다. 외국 과학자 몇 명을 알겠지만, 한국인 과학자 이름은 정말 모른다.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당신들도 노벨상 받아와, 그러면 기억해 줄게.’ ‘그 정도 급이 안 되면서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글쎄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건 눈높이와 과학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 시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존경은커녕 ‘이공계 무시’ 갇혔을 것
#언론까지 과학자·공학자에 무관심
 학술상, 과학자상 받아도 단신 처리
#영국 ‘크리스마스 강연’ 190년 전통
  BBC가 앞장서 보도하고 메시지 전달
#한국 화학자 수는 일본의 10분의 1
 ‘문과의 나라’가 되어선 미래가 없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 지면을 펼쳐본다. 내가 오래 일한 매체다. 과학자나 공학자 이름이 있는지 찾아본다. A섹션이 모두 28면. 살펴보기도 전에 그들은 신문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상 밖이었다. 두 명이 2면에 사진과 함께 크게 나왔다. 물리학자(임지순 포스텍 석좌교수, 전산재료 물리학), 생물학자(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개미 연구자)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기사를 보니, 신문사 행사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10년 전 타임캡슐을 묻었고, 시간이 지나 이를 열어 본 행사를 했다. 개인 사진이 나온 인물은 2면에 7명인데, 이중 과학자가 두 명 들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니, 기업인, 정치인 두 사람, 예술가(화가)였다. 과학자가 두 사람 들어있는 건 ‘구색 맞추기’라고 보인다.

그리고는 과학자나 공학자는 다른 지면에서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 스포츠, 연예인은 줄줄이 등장하나, 과학계 인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신문 25면에 가니 ‘과학’이란 큰 글자가 보인다. 하지만, 그러면 그렇지, 과학자 이야기가 아니다. ‘작곡가가 된 과학도’ 이야기다. 서울대 화학과를 다니다가 4학년 때 작곡과로 전과해 ‘뉴욕 필하모니 만나 날개 편다’는 제목이 달렸다. 1998년 과학올림피아드 은메달 수상자다. 올해 나이 40인데, 화학자의 길을 갔다면 신문에 이처럼 크게 보도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1919년 ‘아인슈타인’ 보도

<뉴욕타임스 과학>이란 책이 있다. 한국에는 2018년에 번역돼 소개됐다. 뉴욕타임스의 과학 기사 125개가 실려 있다. 뉴욕타임스의 과학 섹션인 ‘사이언스 타임스’에 실렸거나, 앞쪽 1면에 나온 기사들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관측으로 인정받은 순간을 다룬 1919년 11월 10일자 기사 ‘하늘의 빛이 온통 휘어져 있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 자택으로 아인슈타인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한 기사 ‘아인슈타인, 자신의 이론을 직접 설명하다’(1919년 9월 3일자)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반짝반짝 빛나는 기사들이다. 아인슈타인이 직접 “아마도 자신의 중요한 연구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에서 12명도 채 되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다”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물론, 한국 언론들은 이런 과학현장의 기사를 쓰기 힘들다. 한국 과학자 커뮤니티가 세계 과학의 중심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보도될 만한 가치가 있는 한국 과학자에 관한 이야기도 잘 보도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영욱 천문학자는 왜 외면 받았나?

연세대 천문학자 이영욱 교수가 지난 1월 미국 천문학회 학술지 (The Astrophysical Journal)에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이 잘못된 연구 결과에 주어졌다’는 내용의 논문을 썼을 때, 이에 주목하는 일간지는 없었다. 이영욱 교수의 주장은 당시 상당한 관심을 끌었으나, 한국의 주요 언론은 철저히 이를 외면했다.
애덤 리스(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천문학자) 등 201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세 사람의 연구는 ‘우주는 가속팽창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 줄은 아는데, 시간이 갈수록 팽창속도가 빨라지느냐, 아니면 팽창속도가 줄어들고 있느냐 하는 게 이들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들은 ‘초신성’이라는 천체들을 관찰해,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우주 팽창속도가 시간이 갈수록 더 빨라지고 있다, 즉 가속팽창 하는 걸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1999년에 내놓았다. 그리고 12년 뒤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한국 천문학자가 의문 부호를 던지며 스스로 연구한 뒤 ‘2011년 노벨 물리학상 연구는 틀렸다’라는 결과를 내놓았고, 천문학계의 주요 학술지인 APJ에 논문이 게재된 것이다. 미국 언론은 과학의 변방국가에서 나온 이단적인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러나 이영욱 교수의 연구에 고개를 끄덕이는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있다. 이런 게 있으면 한국 언론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기자 생활을 30년 넘게 해온 필자의 경험으로는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본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마저 短信 처리

그런 연구 이슈는 아니라도, 언론이 잘 다룰 수 있는 과학 뉴스가 있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이라는 게 있다. 과학기술부 산하 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이 매달 한 명의 과학자 혹은 공학자를 선정,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상이다.
이 상은 과학자와 공학자에게는 대단한 명예다. 한국연구재단 사이트에 가면, 역대 수상자 명단이 있는데, 한국 이공계의 후즈후(Who’s Who)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신문들은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수상자 소식을 피플 면에 조그맣게 처리하고 만다. 수십 년간 연구실에서 고군분투한 끝에 얻은 영예인데, 1단 크기 기사로 처박아버린다. 가장 최근의 수상자, 즉 6월 수상자는 한양대 대기과학자 예상욱 교수다. 한 곳 매체만 예 교수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뤘을 뿐이다.

국제 학술지 게재도 이젠 안 먹혀

한때, 학술지 <사이언스>, <네이처>에 한국 연구자의 논문이 실리면 한국 언론들이 주목했다. 이 두 개의 과학학술지의 주목도가 높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일부 과학자는 그들이 젊어서 쓴 논문이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실렸을 때의 기쁨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들 이름이 신문에 나왔다고 ‘아버지가 당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갖고 계신다’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한국인 과학자 논문이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실리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한국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다. 이제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 않는 한, 과학자 이름은 주요 언론의 지면에서 보기 힘들 듯하다.

삶은 존재 투쟁이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산다. 우리가 과학자와 공학자를 존중하고 우대하지 않으면 그들의 힘은 빠진다. 한 사회가 존중하는 직업군일수록, 해당 분야에 우수한 인력이 몰린다. 한국은 그런 측면에서 과학자와 공학자에게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방탄소년단(BTS)이나 아이돌 같은 연예인에 주목하고, TV 드라마와 넷플릭스에 빠져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이공계 지식인에게 그것의 반(半)에 반이라도 관심과 존중을 보내줄 수는 없을까? 한국 사회가 그들을 홀대하면 그 대가는 전체 구성원이 치르게 될 거라고 본다.

BBC와 ‘크리스마스 강연’의 190년 전통

다른 나라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다. 과학자가 언론의 주요 뉴스를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존재감은 나라마다 다르지 않을까?
영국의 사례를 한 번 보자. 가령 영국에는 매우 오래된, 그리고 권위 있는 ‘크리스마스 강연’(Christmas Lecture)이 있다. 1825년에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이클 패러데이가 시작했다. 패러데이는 전자기학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바 있다. 많은 청중이 모여 패러데이의 얘기와 실험에 시선을 집중했다.
크리스마스 강연의 전통은 지금까지 19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들이 요즘도 강연자로 초청받는다. 그건 그에게는 큰 영예이고, 영국 사회가 과학 커뮤니티에 보내는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영국 왕립연구소(The Royal Institution)가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강연의 내용은 동영상 서비스 업체 유튜브 사이트(www.youtube.com/user/TheRoyalInstitution)에 다 올라와 있다.
2019년 강연자는 수학자이고, 2018년 강연자는 형질유전학자다. 모두 다 여성 과학자다. 수학자인 한나 프라이(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는 ‘비밀과 거짓말: 수학의 힘’에 관하여, 형질인류학자 앨리스 로버츠(버밍험 대학) 교수는 ‘나는 누구인가’에 관해 강연했다.
영국의 공영TV인 BBC가 중계하며, 강연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청중을 사로잡는다. 나는 형질인류학자의 강연을 보면서 그 메시지 전달력에 감탄했다.

한국 화학자 수는 일본의 10%

한국 사회는 매년 10월에만 과학자에게 주목한다. 노벨상 수상자가 혹시 나올까 해서다. 그러나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의학상이 그냥 나오지 않을 거다. 한국 사회가 그들을 더 응원해야 한다. 노벨상 받으라고 채찍질하지 말고, 차분히 성원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자녀와 손자손녀에게 과학자의 길을 가도록 권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과학고를 나온 우수 인재에게 무작정 의대로 진학하라고 지도하지 말고…

내가 최근에 만난 강원대 화학자 이필호 교수는 “한국 화학자 수는 일본의 10의 1이라고들 말한다”고 했다. 한국 화학의 실력이 세계적 수준이나, 최정상은 아직 아니다. 물리학자, 천문학자를 취재할 때도 한국의 물리학자, 천문학자의 수가 작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그런데 화학자들을 만나서 같은 얘기를 또 듣는다.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그러니 우리는 과학에 관심을 쏟고 그들을 응원해야 한다. 정치 투쟁에만 전 국민이 몰입하는, ‘문과의 나라’로는 미래가 없다.

#덧

이 글의 벽두에서 이름을 아는 한국 물리학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답을 시도해 본다. IBS(기초과학연구원)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 몇 사람 이름을 언급하고 싶다. IBS는 순전히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한국이 처음으로 세운 정부연구기관이다. 그 조직 내부엔 학문 분야 별로 수십 개의 연구단이 구성되어 있다.
그중 물리학 분야 연구단을 이끄는 단장은 모두 스타 물리학자다. 모두 별처럼 빛나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중 기억나는 이름을 적어본다. (존칭, 직함 생략)
▲김영덕(암흑물질 연구, 세종대) ▲노태원(서울대, 응집물질물리학) ▲염한웅(포항공대, ‘솔리토닉스’ 연구자, 응집물질물리학) ▲이영희(성균관대, 나노물리학) ▲최기운(입자물리학 이론-우주론)


최준석 과학 작가/주간조선 선임기자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2019년)를 썼다. 과학책을 읽다가 과학책에 빠져 과학책을 썼다. 그래서 과학 작가가 되었다. 30여 년간 신문사 기자, 주간지 편집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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