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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편집 2020. 05-28. 06:07

[고삼석 칼럼] ICT 뉴딜에 ‘헛돈’ 쓰지 않으려면 방향·목표를 잘 잡아야

by | 2020년 4월 20일 | 국제, 정책, 정치

#세계 각국, 앞다퉈 ICT 투자 확대
  경기부양 겸해 미래 신산업 육성
  글로벌 기술패권까지 일석삼조 효과
#‘디지털 뉴딜’엔 정부 역할이 중요
  관리자 아닌 해결사로 적극 나서야
 ① ICT 핵심 인프라에 집중할 것
 ② 스마트시티로 디지털 사회 혁신을
 ③ 새 시대 경제‧사회 규범 재정립하라
 ④ ‘디지털 복지’로 정보격차 해소해야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전 세계는 전염병과 경제 쓰나미라는 두 개의 적을 만났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은 1분기 GDP 성장률이 –6.8%라는 최악의 수치를 발표했다. 지금이야말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성된 뉴 노멀 시대의 종식과 함께 새로 도래할 넥스트 노멀(Next Normal)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다.

컨설팅 기업인 매킨지는 코로나19 이후 나타날 변화를 예측한 보고서 ‘Beyond coronavirus: The path to the next normal’에서 ‘넥스트 노멀’이란 용어를 선보였다. 코로나19 이후 비즈니스 방식, 유통·서비스, 일상생활 등 전통적인 경제 및 사회질서에서 극적인 변화, 즉 재구조화가 일어날 것이란 전망을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온라인 중심으로 소비패턴 변화의 가속화, 글로벌 분업구조(Global Value Chain, 이하 ‘GVC’)의 퇴조, 자동화의 가속화, 온라인 교육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1990년대 이후 지난 30년간 전 세계는 정보통신기술(ICT)에 힘입어 GVC에 기반한 경제·생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세계경제포럼(WEF) 등도 각종 보고서를 통해 ICT 관련 정책이 코로나19 이후 새로 형성될 경제·정치·사회 질서를 예측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주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ICT 분야의 메가트렌드, 즉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과 디지털 뉴딜(Digital New Deal)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이어 필자가 오랫동안 방송통신 및 ICT 정책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디지털 뉴딜정책을 통해 어떻게 경기진작과 신산업을 꾀할 것인지 그 방향과 전략을 제시할 생각이다.

#언택트 문화의 전방위 확산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택트(untact: un+contact)), 즉 비대면 문화가 사회·경제 전 분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e-커머스 방식으로 정보·상품·서비스를 마케팅 혹은 소비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미디어를 통한 문화상품 소비 등이 보편화되면서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모든 비대면 활동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언택트란 단어가 폭넓게 쓰인다.

언택트 문화는 코로나19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그동안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꾸준하게 진행된 디지털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OECD 36개 국가 중 2위를 차지하고 인터넷 속도나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디지털 모바일기기인 스마트폰의 국내 보급률은 95%에 이른다. 스마트공장, 스마트워크를 비롯해 산업현장에서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본격 도입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의 발전, 기기의 보급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탄탄한 디지털 역량을 쌓아왔기 때문에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언택트 문화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초연결사회 비전을 재정립해야

코로나19가 ‘1차 충격’이었다면, 향후 디지털 전환의 속도와 범위는 넥스트 노멀 시대에 새 질서의 윤곽을 좌우하는 ‘2차 충격’이 될 것이다. 언택트 문화 확산이라는 ‘현상’뿐만 아니라 디지털 전환이 추동하는 사회·경제적 변화의 올바른 방향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욕대 교수인 사회학자 에릭 클리넨버그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라고 역설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미국 사회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비중 있게 다뤄야 하는지를 재정립하여 장기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첨단 ICT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유사한 발전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 간에 직접 접촉을 최소화하는 언택트 문화가 확산되고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소위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지난해 주최한 행사에서 ‘지능형 연결(Intelligent Connectivity)’을 주제로 초연결사회의 미래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초연결사회란 ‘ICT를 바탕으로 사람, 프로세스, 데이터, 사물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지능화된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와 혁신의 창출이 가능해지는 사회’를 말한다.

특히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상용화된 5세대(5G) 이동통신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각종 첨단기술을 결합시켜 산업현장과 사회 전반을 연결하고 혁명적 변화의 촉진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사회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간다는 공진화론(Coevolution Theory)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19는 향후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 뿐 아니라, ‘디지털 혁명’의 내용과 방향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일례로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고독이라는 전염병(loneliness epidemic)’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피해는 부유층이나 젊은 층보다는 저소득 계층이나 노년층, 장애인 같은 취약계층에게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도 계층, 지역. 성(性), 국가 간에 디지털 매체·서비스 접근이 불평등하게 전개돼, 정보격차(digital divide) 해소 문제는 각국 정부의 중요한 정책 이슈였다. 디지털 소외계층은 코로나19 피해까지 이중·삼중으로 떠안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코로나19 확진 비율이 다른 인종보다 훨씬 높고, 여러 주(州)에서 사망자의 7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연대, 시민 보호 프로그램 등에 더 많은 정책적 관심과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이유다.

#경제위기를 디지털 뉴딜로 극복해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면서 시민들이 연대해 맞서 줄 것을 요청했다. 메르켈의 지적이 아니라도 코로나19는 현대사에서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자 위기로 기억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후 3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코로나19에 맞서 국운을 건 전쟁을 하면서 경제회생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재정·금융통화 정책을 총동원해 ‘헬리콥터 머니’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낙관론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더 많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앞다퉈 디지털 뉴딜 경쟁

코로나19 공황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사실상 ‘무제한’의 경기부양책을 앞 다퉈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사상 최대인 2조2000억 달러(약 27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내놨고, 일본은 총 108조 엔(약 1200조원) 규모의 긴급경제대책을 마련했다. 중국은 코로나19 발생을 전후로 총 34조 위안(약 580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1분기 성장률이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게 나오는 현실에서 ‘부족한 대책보다는 과도한 것이 낫다’는 정책 당국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 가운데 재정정책을 보면, 재난기본소득이나 고용유지 지원금 등 가계·기업에 대한 긴급자금 지원 같은 초단기 대책은 물론, 대규모 공공투자를 비롯한 다양한 부양책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이 가운데 주목해야 할 부분이 ICT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입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의 투자계획 중에는 이른바 신인프라(new infrastructure) 건설을 위한 구상이 들어있다. 신(新)인프라는 2018년 중국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제시된 개념인데, 철도, 고속도로, 공항, 항만 등 전통적인 인프라와 차별화된 의미로 쓰인다. 신인프라는 5G, 초고압(UHV) 전송, 도시철도, 신에너지(전기) 자동차 충전기,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산업용 인터넷 등 7가지이다.

이들 분야 대부분은 장차 디지털 경제를 이끌어갈 미래 ICT의 핵심 인프라다. 중국이 신인프라에 주목하는 것은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 경제구조조정을 통한 신산업 육성을 촉진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기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즉 신인프라에 대한 집중 투자는 2015년 중국이 발표한 ‘중국제조 2025’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차세대 ICT를 기반으로 산업 전반을 획기적으로 혁신하여 3단계 계획기간(2036~2045년)에 세계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중장기 국가혁신계획이다.

#미션 지향적 공공투자를 확대하라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국을 필두로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책의 주요 부분으로 디지털 뉴딜(Digital New Deal)에 관심을 쏟고 있다. 디지털 뉴딜은 1930년대 대공황 직후 경제부흥을 위해 국가가 개입한 ‘뉴딜 정책’에 뿌리를 둔 개념이다. 뉴딜에 디지털을 결합한 디지털 뉴딜은 첨단 ICT를 활용한 디지털 혁신, 이에 기반한 디지털산업 육성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자는 국가 주도형 발전전략이다.
민간과 공공 부문을 막론하고 언택트 문화의 확산에 따라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절감한 상황인 만큼 디지털 뉴딜 추진이야말로 시대적·사회적 흐름에 부응하는 전략이라고 판단된다.

디지털 뉴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역할의 재정립이다. 영국 서식스대학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마리아나 마주카토(Mazzucato) 교수는 혁신적 성장 과정에서 국가 역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는 <기업가형 국가>라는 저서에서 혁신성장이 민간에 의해 창출될 것으로 보는 것은 환상이라며, 실제로 미국의 성공도 정부의 과감한 미션 지향적(mission-oriented) 공공투자를 밑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단순히 관리·규제를 담당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혁신을 통한 신시장, 신산업 창출 과정의 주요 행위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공급 부문뿐만 아니라 신기술을 도입, 확산시키기 위한 수요 측면의 국가 역할도 주효했다. 인터넷부터 전기차 개발, 아이폰의 핵심 기술까지 대부분의 신산업이 정부 주도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코로나19 위기 전에도 소위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담론이 경제·사회 전반을 주도했다. 세계경제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이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의제로 제시한 4차 산업혁명은 “ICT의 융합으로 인간과 기계의 잠재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인류사적 대전환”을 의미한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이 ‘혁명’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경제·사회·문화적 변화를 초래할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ICT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환이 “세상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각국 정부 또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명제 하에 디지털 전환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위기 극복 전략의 하나로 디지털 뉴딜이 주목을 받으면서 ‘위기 해결사’로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수단으로 ICT 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정책 제안을 하려 한다.

제안1. 단기 정책성과 위해 ICT 핵심 인프라에 집중해야

첫째, 중국 사례에서 보듯이 디지털 뉴딜은 5G 네트워크 구축, AI 및 빅데이터와 관련된 범용기술 R&D 등 미래형 ICT 인프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또한 경제위기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해 단기간에 정책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기존 정책의 우선순위나 재원 배분을 재조정하여야 한다. 실제로 1930년대 대공황 직후 추진된 뉴딜은 평소 같으면 여러 세대가 지나야 이룰 수 있는 성과들을 극히 짧은 기간에 밀어붙여 다른 정책과 뚜렷하게 차별화되었다.

우리 정부는 현재 초연결지능화,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스마트시티, 핀테크, 에너지 신산업, 드론, 미래자동차 등 혁신성장 관련 8대 선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경제에 큰 충격이 가해진 만큼, 기존 정책에 대해서 신속하게 재검토할 사유가 발생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5G 네트워크 구축과 산업생태계 조성은 지능정보시대의 핵심 인프라인데, 장비 및 단말기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것들은 앞으로도 역량을 집중해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미국 쪽 사정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아직 코로나19 위기의 확산 방지와 경제적 충격 완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원격근무, 원격진료, 온라인 교육 등 디지털 전환에 필수적인 통신망 업그레이드, 온라인 공공시스템 강화 등 인프라 투자 중심의 4차 경기부양책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은 최근 AI 산업에 향후 10년간 매년 200억 유로(약 27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보건의료, 교통, 보안, 고용, 법률시스템 등 5개 부문을 주요 투자영역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는 미중의 선제적인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맞서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한 경제회생 및 혁신 전략으로 분석된다.

제안2. 스마트시티, 디지털사회 혁신을 결합해야

둘째, 코로나19 이후 중요성이 커진 언택트 경제 및 사회생활 관련 인프라, 즉 디지털 전환 연관 분야에 대한 재정 투입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자 비대면·비접촉의 언택트 경제·문화가 급속하게 확산돼 일상 및 사회생활, 기업활동 등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ICT 인프라 확충 등 디지털 전환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큰 규모로 진행될 것이다.
일상생활의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선 지역 단위로 추진 중인 스마트시티 구축 시범사업(부산·세종)을 모든 지자체 대상으로 빠른 시일 안에 확대 추진해야 한다. 스마트시티는 말 그대로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인공지능, 공유경제 등 첨단 ICT를 활용해 도시생활에서 발생하는 교통, 환경, 주거, 보안 문제 등을 해결하여 시민들이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똑똑한 도시’를 뜻한다. ICT 인프라를 활용해 전염병 유행에 대응하는 보건위생 프로젝트, 취약계층 복지 관련 사업, 시민안전 관련 사업을 시범적으로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말한 것들은 디지털 사회 혁신(digital social innovation) 전략과 맥락을 같이 한다. 디지털 사회혁신은 “기존 방식으로 해결이 어렵거나 새롭게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을 사회 구성원들이 협력하여 디지털 기술과 같은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들은 최근 몇 년간 교육, 공정경제, 사회공조, 위기·재난 정보 공유 등의 분야에서 ICT를 활용한 집단지성, 크라우드소싱,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igy)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최근에야 디지털 사회 혁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전환을 계기로 지역 및 전국 단위로 디지털 사회 혁신 체계를 구축하는데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제안3. 넥스트 노멀 시대 경제·사회적 규범 재정립

셋째, 디지털 뉴딜은 중장기적으로 경제구조를 개편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걸 목표로 추진해야 한다. 즉 단기적으로는 경기부양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되,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사회 체제를 어떻게 혁신해 나갈지 근본적인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
디지털 뉴딜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혁신성장의 촉진자 내지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혁신성장이란 “시장으로 이야기하면 창조적 파괴, 국가경제로 이야기하면 구조개혁”을 의미한다. 경제·사회의 구조와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사람 중심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성장전략이 바로 혁신성장이다.
따라서 코로나19라는 외부충격으로 인해 최근 표면화된 경제·사회 전반의 문제점들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후진적인 노사관계나 노동시장 문제, 비효율성이 드러난 각종 규제의 재설계까지 경제·사회 전반의 제도 혁신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서 민주성 확보는 필수조건이다.

ICT 뉴딜 과정에선 특히 사회적 규범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전통적 규범에 대한 예외 인정 요구가 빈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통적 규범과 현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 방안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감염 차단이라는 ‘공익’을 위한 개인정보의 활용과 엄격한 개인정보보호 사이에 생기는 충돌이 그런 사례다. 또한 팬데믹 상황에서는 국가주의, 고립주의,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므로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국제규범과의 충돌도 예상된다.

앞으로도 전염병으로 인한 재앙은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는 만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그 한계가 드러난 규범의 개혁 또는 이원적 규범 체계(평상시 vs. 위기상황)의 구축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모두가 예상하듯이 코로나19 이후 시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넥스트 노멀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제안4. 사회적 약자 위해선 디지털 복지를

마지막으로 위기상황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더욱 탄탄하게 구축함과 동시에 모든 시민들이 디지털 시대 주역인 ‘스마트 시민(smart citizen)’이 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계층 간 정보격차 해소는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가정에서 온라인 기반의 e-커머스 이용이 급증하고, 비대면 수업 등이 전면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층에 비해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은 배송서비스 이용이나 디지털 관련 활동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 수업에 필수적인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지 않거나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소위 ‘정보취약계층’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2019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농어민, 저소득층, 고령층, 장애인 등 정보취약계층이 디지털정보에 접근하거나 활용하는 능력 지수는 일반 국민 대비 69.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Digital Divide>라는 책을 쓴 하버드대학의 피파 노리스 교수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집단은 이를 수단으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강화함으로써 부유층은 더욱 부유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취약계층은 더욱 소외되고 낙후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사회계층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과 이용의 격차는 정치·경제·사회적 격차를 유발시키고, 이것이 다시 계층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디지털 전환, 특히 디지털 경제체제로의 진입이 노년층,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취약계층에게는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디지털 시대에 이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불평등과 갈등 문제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래서 디지털 전환, 디지털 뉴딜을 ‘디지털 복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가 진입할 초연결사회에서는 디지털 기기·서비스의 이용 여부가 부와 권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또 시민들의 복지수준과 사회적 서비스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정부가 사회복지 영역을 확대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주거 및 의료, 문화 복지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분야에서 드러난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모든 게 연결되는 ‘초연결’ 환경에서 시민들은 스스로가 ICT 활용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스마트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디지털 능력으로 무장된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디지털 사회를 ‘사람 중심 세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의 흥망성쇠는 자연조건이나 사회적 조건 등에서 비롯된 외부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성장 혹은 정체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류는 지금, 코로나19 위기의 출구가 아닌 입구에 서 있다. 미증유의 위기로 인해 인류 문명은 일시적으로 정체 혹은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진보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1918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스페인 독감 상황과 비교할 때, 요즘 코로나19와 싸우는 인류에겐 ICT라는 뛰어난 성능의 ‘무기’가 있다. ICT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의 크기와 그 이후 대한민국이 가야 할 ‘가까운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ICT 뉴딜에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고삼석 필자

미디어·ICT 정책전문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대통령을 국회와 청와대·행정부에서 직접 보좌했다.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과 신문방송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으며  최근까지 5년 5개월 동안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디지털 미디어 디바이드>, <스마트 모바일 환경에서의 참여격차와 정책적 대응방안>,  <5G 초연결사회, 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온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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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 <피렌체의 식탁>으로부터 코로나19 위기와 유럽 사회에 대한 또 하나의 칼럼을 청탁받고 관련 기사들을 정리할 겸 페이스북에 공유해왔다. 보통은 따로 코멘트를 달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자료실처럼 기사가 쌓이고 있었는데 5월 초에 공유한 칼럼 'How Germany Is A COVID Failure' 에 뒤늦게 인류학 전공자인 독일인 친구 M이 상당히 분개한 어조로 댓글을 달았다. 원 기사는 스리랑카의 언론인 Indi Samarajiva가 영어로 쓴...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오바마의 졸업식 축사…challenge와 empowerment

 “오바마는 우리에게 미국의 대통령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일깨워 주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20년에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동영상으로 전달한 졸업식 축사를 두고 한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임 대통령들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삼간다. 아니, 평가로 해석될 수 있는 말도 피한다. 그런데 오바마의 졸업식 축사는 트럼프 정권에 대한 평가로 해석되면서 언론매체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오바마는 왜 굳이 졸업식 축사를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을까? 미국의 학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