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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편집 2020. 05-28. 13:07

[고한석 칼럼] 4‧15 총선 후 혁신 없다면 ‘죽음의 계곡’에 빠진다

by | 2020년 4월 3일 | 정책, 정치

#정치 주도 세대 30년 주기로 교체  
  2030년대까진 586, 그후 90년대생 
#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쟁취한 정당
  국정운영 서툴러 舊세력에 정권 뺏기나
  자기혁신 성공하면 장기집권 가능성
  한국 말고도 대만·몽골도 비슷한 패턴
#대선·총선 연패하고서야 뼈를 깎는 혁신
  10년 단위로 재집권해 시대정신 구현
  차기 대선, 21세기 어젠더 격전 벌일 듯

 4·15 총선의 전체 판세와 격전지 결과를 예측하느라 요즘 국내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무척 분주하다. 한국정치를 경제이론과 정당사, 빅데이터로 설명해온 고한석 필자가 이번 총선을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선거역사와 세대 분석으로 풀어보았다.
한국정치를 관통하는 큰 흐름에서 4·15 총선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여야 정당의 흥망과 세대교체, 총선-대선의 연계 사이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무릇 선거란 바닥민심을 반영하지만 10년, 20년, 30년 단위로 볼 때 새로운 시대정신을 표출하는 것이다.
고한석 필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경험을 반영해 4·15 총선을 전후해 몇 가지 저류(底流)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 30년 주기로 볼 때 2030년대까진 586세대가 정국을 주도하나 2040년대부턴 촛불항쟁을 경험한 1990년대생(현재 20~30대)이 전면에 나설 것이다. 2020∼2022년의 정치와 선거에선 50대가 여전히 큰 방향을 좌우한다.
둘째,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이룬 뒤 민주진영 정당은 첫 집권에 성공하지만 국정운영 미숙으로 구(舊)세력에게 정권을 뺏긴다. 하지만 민주진영이 자기혁신에 성공한다면 장기간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진보·보수진영 어느 쪽이든 정권을 뺏긴 다음 두세 차례의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야 비로소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다.
넷째, 한국정치에선 87년 민주화 이후 보수·진보세력이 각각 두 번씩 10년간 집권했는데, 이는 자신의 과제와 시대정신을 구현할 기회가 된다. 이번 총선 뒤 치를 2022년 대선의 핵심 주제는 더 이상 20세기적 과제가 아닐 것이다. [편집자]

필자는 몇 년 전에 직접 나무로 세일링(sailing) 보트를 만들어 탄 적이 있다. 요트(yacht)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세일링 보트라고 하는 이유는 엔진·선실이 있는 그런 거창한 배가 아니라 길이 17피트(약 5m)의 2~3인용 보트에 두 개의 돛을 달아서 바람으로 항해하는 작은 배였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 배를 몰다 보면 일차적으로는 바람의 방향이 중요하다. 바다에서 바람의 방향과 세기는 수시로 변한다. 거기에 맞춰서 돛과 키를 계속 바꿔줘야 한다.
하지만 절대로 홀시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바로 해류(海流)다. 육지와 가까울 때는 썰물·밀물 때에 따라서 해류가 다르고 바다 밑 지형에 따라서 또 다르다. 해류를 거슬러 가려면 훨씬 더 힘이 들고 상당한 항해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다 지도인 해도(海圖)에는 해류가 표시되어 있다. 결국 바람과 해류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배를 몰아갈 수 있다.

모든 선거는 이슈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이슈는 바람과 같다. 어디서 불 지도 모르고 얼마나 거셀 지도 잘 모른다. 바람에 맞춰서 돛을 이리저리 조종하듯 선거 캠프마다 여러 이슈에 대처하면서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큰 흐름들이 존재한다. 눈앞의 이슈 때문에 한두 차례 선거의 풍향이 바뀌기도 하지만 큰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이번 4·15 총선에서 누가 승리할지, 몇 석이나 얻을지 따지기보다는 이 저류(底流)들을 살펴보려 한다.

모든 선거의 가장 밑바닥에는 경제 주기가 있다. 장기 주기는 핵심기술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데 50~60년 주기의 콘트라티에프 파동(Kondratiev Wave)이 있다. 소위 4차 산업혁명론의 근거가 되는 주기론이다. 핵심기술은 증기기관→내연기관&전기→컴퓨터&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자본주의의 수렴/확산에 따른 ‘40년 주기론’이라는 가설을 갖고 있다. 확대재생산은 자본의 운명이다. 자본주의는 20~30년에 걸쳐서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확장되면서 안정적인 성장기를 거친다. 이 시기에는 누구나 형편이 좋아진다. 그러다가 이러한 확장이 멈추면 다시 내부/외부 갈등(예컨대 내부적으로는 계급갈등, 외부적으로는 전쟁)을 겪게 되고 새판을 짜게 된다. 그 결과를 기반으로 20년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대외적/지리적으로 확장되면서 다시 안정 성장기를 누린다. 이러한 패턴이 세계화(자본주의적 가치사슬의 지리적 확장) 과정에서 반복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에 의거해 자본의 초과이윤이 사라지면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효율적 시장 가설로도 설명한다. 자본의 내부경쟁이 격화되면 초과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지고 추가적 노동공급 예비군이 없어져 노동비용 상승, 설비투자 증가로 한계이익이 제로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다시 파국적인 새판 짜기에 들어가고 그 결과가 안정화되면 다시 20~30년간 장기 성장국면이 등장한다.

대체로 보면 1890~1920년대 확장/성장기, 1930년~1950년 갈등 및 새판 짜기, 1950~70년대 전반기 확장/성장기, 1970년대 후반기~1990년대 갈등/새판 짜기, 1990~2010년대 확장/성장기였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2010~2020년대엔 갈등 및 새판 짜기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제·정치 역시 이러한 추세와 맥을 같이 하였으며, 작금의 미중 무역전쟁과 유럽(EU) 내부의 갈등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아프리카 대륙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확장되면서 상품-노동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면 다시 성장국면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기 주기에 따라서 무역환경과 산업구조도 변화한다. 자원 무역(식민지 착취 포함)에서 상품(완제품) 무역으로, 다시 글로벌 가치사슬에 따른 부품 무역으로 변화하였고 한국의 산업구조 역시 이에 기반해 변화하였다. 여기에 다시 정보/콘텐츠 무역이 산업의 중심부로 등장하고 있다. 산업구조가 변한다는 것은 기존의 고부가가치 산업이 저부가가치화 되면서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항상 부드럽게 이행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산업에 관련되어 있던 자본과 노동은 쇠락하고 새로운 자본과 노동이 흥성하게 되면 양자 간에 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다.

정부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전환을 촉진하면서 부작용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대부분 국가의 산업구조는 중기적으로 20년간의 호황, 10년간의 불황 주기를 갖는다. 60~70년대 후반까지 호황 국면이었다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는 불황국면이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후 한국의 산업구조는 사실상 30년간 변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서 초기의 20년간 호황 국면이 지난 후 최근 10년 동안 산업구조 변환이 지체되어 전반적으로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경제는 정치와 선거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경제 역시 일종의 저류로 작용할 뿐 직접적인 파도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는 경제행위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에 일정하게 그 자신이 경제행위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IMF 외환 위기처럼 명백하게 집권여당의 경제정책 오류가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한, 경제 요인은 마치 흘러내린 휘발유와 같이 조금씩 땅을 적시지만 그것 자체로 불이 붙지는 않는다. 여기에 경제외적인 커다란 이슈가 성냥불처럼 던져졌을 때 민생고 불만이 휘발유로 흥건히 적셔진 민심을 폭발시킨다.

정치환경에도 또한 저류가 있다. 물론 데이터를 통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아닌 필자의 직관인 만큼 독자들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고 그럴 듯 하다면 그럴 듯한 것이다.

1. 30년 주기의 세대 주도 가설과 586 시대

필자는 30년 주기의 세대 주도 가설을 갖고 있다. 일종의 장기 이론이다.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한국에만 국한된 가설이다. 한국의 정치운동은 1900년대생, 1930년대생, 1960년대생이 순차적으로 주도해왔다는 가설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5개의 하위 가설도 있다.

(1) 정치와 선거는 50대의 방향에 의해 좌우된다.
(2) 20대에 형성된 세계관 및 정치관은 평생을 간다.
(3) 20대 시절에 10년 동안 가장 격렬한 사회적 경험을 집단 공유한 세대는 그 이후 20년을 주도한다.
(4) 해당 세대가 주도하는 동안 그 이후 두 개의 10년 세대는 선도 세대의 지지 세력이 된다.
(5) 20대는 50대와 가장 격렬하게 대립한다.

첫째, 한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50대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의 여지가 없다.

둘째, 한국처럼 압축성장을 한 사회에서는 ‘나이 들면 보수화된다’는 ‘고(高)연령 효과(aging effect)’보다는 젊은 시절의 이념지향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는 ‘세대 효과(cohort effect)’가 더 유효하다. 사회의 변화 폭이 작으면 젊었을 때 혈기는 그저 나이에 따른 특성이고 나이가 들면서 그 이전 세대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고 똑같은 사회에 살게 되면서 결국 젊었던 시절의 생각을 버리고 이전 세대의 주장에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사회 변화가 극심하면 나이를 먹어도 그 이전 세대와는 다른 경험과 사회에서 살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이전 세대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지향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셋째, 왜 1900년대, 30년대, 60년대생들이 주도하는가. 위의 세대 효과에 따르자면, 20대에 겪었던 강렬한 경험이 무엇보다도 이들의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900년대생들은 그들의 20대에 식민지화에 대한 저항, 특히 3·1운동 및 항일운동의 불세례를 맞는다. 이봉창(1900년생), 윤봉길(1908년생), 유관순(1906년생) 등 독립운동을 펼친 민족주의자들이 그로 인해 일찍 목숨을 던진 경우라면, 박헌영(1900년생)으로 대표되는, 항일운동의 이념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좌파 지식인들은 분단·내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930년대생들은 20대에 6·25전쟁을 겪고 성공적으로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했고, 60∼70년대엔 경제발전을 주도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전두환(1931년생), 노태우(1932년생)이다. 1960년대생들은 20대에 5·18 광주항쟁, 6월 항쟁, 노동자 대투쟁을 겪고 세계화 및 3저 호황, 공산권 붕괴로 새로운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넷째, 왜 00년대, 30년대, 60년대생이 주도하였는지 또 하나의 이유로는 ‘20대는 50대와 싸우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정립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이는 한국적 특성 또는 변화가 빠른 사회의 특성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50대는 사회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20대 시절의 세계관을 가진 채 사회의 주류로서 영향을 미친다. 20대가 보기에는 이미 구닥다리가 된 이유·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억누른다고 느낀다.
1980년대에 사회 주류가 된 50대들은 자신들이 20대에 겪은 전쟁과 반공이념을 전 사회에 강요하였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변해버렸고 80년대에 스무 살이 되었던 젊은이들이 보기에 이들의 경험과 이념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필자 세대가 젊었을 적에 ‘6·25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하는 구(舊)세대는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우리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인 3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이제 우리 세대가 50대가 된 2010년대에 20대를 향해 ‘광주항쟁은 말이야~’라고 말하면, 지금의 20대는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세상의 가치가 요즘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50대를 똑같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건 그냥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고 그 역사적 의미는 인정하지만, 지금은 다른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이는 사회의 주류인 50대에겐 자신들의 가치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기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섯째, 30년대생과 60년대생은 20대 시절에 강렬한 저항과 극복, 경제적 성공의 경험을 대규모로 공유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성공 경험이 없으며 이 세대의 시대적 방향성에 동의하는 그 이후 20년간 태어난 세대, 즉 50년대생과 80년대생은 이들의 추종자 내지는 지지자가 된다.
게다가 대개는 그 저항과 극복의 경험이 공동체 전체 즉 정치적인 것이어서 이들 세대 중에는 공동체 및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경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다른 세대에 비해서 훨씬 더 많다.
이 말은 ‘정치 예비군’이 다른 세대들보다 훨씬 더 많아서 기존 현역 정치인이 퇴장하더라도 그 자리를 다음 세대의 정치지망생들이 채우는 게 아니라 그동안 참여 기회를 기다리던 주도 세대의 ‘정치 예비군’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장기적인 30년대생의 시대가 있었다면 다시 장기적인 60년대생의 시대가 펼쳐지는 이유다. 그 결과로 이들은 자신들의 50대인 10년 동안만 정치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60대까지 20년간, 즉 2030년대까지 주도할 것이다.
그런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바다에 굽실대는 파도 아래에 흐르는 해류처럼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가설이 맞다면 아마도 20대에 촛불항쟁을 경험한 90년대생들이 지금의 50대에 대한 저항을 조직화해가면서 2040년부터 장기적으로 30년간 정치를 주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60년대생이 정치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2. ‘케즘 이론’과 장기 진보정권 시대의 도래

정치에 적용될 수 있는 또 다른 모델은 케즘(chasm, 골짜기) 이론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제품 및 기술의 수명주기에 관한 모델과 관련된 것이다.

기존의 시장에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초기에는 언론의 조명과 함께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벤처 기업들도 갑자기 많아지게 된다. 하지만 이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소위 얼리어답터(early-adaptor)로서 일반 대중보다는 새 제품에 민감한 계층이다. 아직 기술과 제품이 미성숙한 상태라서 결함도 많고 일반 대중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 참여했던 벤처 기업들 중 상당수는 소위 거품이 꺼지면서 매출은 적은데 더 이상 투자를 못 받게 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이를 업계에서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일부 벤처기업은 충분한 경험을 쌓아가면서 기술과 제품도 성숙해진다. 소비자 대중들이 점차 해당 기술에 익숙해지고 기능을 인정하게 되면 벤처 기업들은 폭발적 성장기를 거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다. 그러다가 매출 증가 폭이 둔화 내지 정체되는 성숙기를 거쳐서 결국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시대를 대변하는 정치세력도 이와 유사한 수명주기를 겪는다. 노무현 참여정부 지지자들은 일종의 얼리어답터였다. 민주화 세력은 ‘DJP 연합’을 통해 보수 세력과 공동 집권한 이후 2002년 처음으로 단독 집권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국정운영의 미숙함에다 검찰, 관료, 언론 등 기득권집단의 반발로 인해서 지지율이 급락하였고 10년간 골짜기(chasm) 밑바닥을 헤맸다. 하지만 친노·친문 세력은 국정운영의 경험 축적과 함께 관료들 중에서도 우군을 획득함으로써 정책 역량을 강화하였고 다시 집권하는데 성공하였다.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집권 중반기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탄탄한 지지기반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패턴은 사실 한국에만 유일한 게 아니다. 필자는 대만과 몽골을 자주 방문하면서 한국정치와 유사한 패턴을 발견하였다.

대만에서는 1949년 이후 장기 집권했던 국민당 독재정권에 맞서서 80년대에 강력한 민주화 투쟁을 벌인 끝에 민진당 세력이 2000년 대선 및 총선에서 승리하였다. 하지만 집권 초기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곧 식어버리고 ‘국정운영 미숙’ 등으로 기득권세력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됐다. 2008년 대선 때 정권은 다시 국민당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국민당은 주로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얻었고 청년·중년층에서는 민진당 지지가 확고하였기에 민주세력은 결국 2016년 대선 및 총선에서 다시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민진당은 2020년 1월 총선·대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몽골은 1920년 독립 이후 좌파인 인민혁명당이 일당독재를 70년간 유지했다. 1989년부터 몽골민주연합을 중심으로 민주화 투쟁이 일어나 1990년에 평화적 개헌으로 다당제 자유선거와 시장경제를 도입하게 됐다. 1993년 대선에서 민주정파의 오치르바트가 승리하였고 1996년 총선에서는 엘벡도르지가 이끄는 민주동맹이 승리함으로써 정권을 쟁취하였다.
하지만 집권 후 인민혁명당의 정책과 세계관에 오래도록 익숙해있던 관료들은 현직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몽골민주당은 ‘데모와 말만 할 줄 알고 국가운영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았다. 그리하여 1997년 대선에서는 기득권세력인 인민혁명당이 다시 승리하였고, 얼마 안 가서 2000년 총선에서도 연이어 승리했다. 그러나 절치부심의 10년이 지난 후 2009년 대선에서 몽골민주당 후보 엘벡도르지가 당선되었고 2012년 총선도 민주당이 압승하였다. 비록 2016년 총선에서 인민당(2011년 개명)이 승리하였지만 2017년 대선 역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2009년 이후 세 번 연속으로 정권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오랜 세월 권위주의 정권이 통치하던 나라에서 민주화를 쟁취한 정당은 거의 필연적으로 최초 집권 후 국정운영 미숙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기존 여당에게 다시 정권을 뺏기는 패턴을 보인다. 하지만 기존 여당이 대표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의 적폐이다. 그래서 민주진영 정당이 자신을 잘 혁신하면 결국엔 정권을 되찾아오게 되며 오히려 그 이후엔 장기간 국정을 운영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3. 중간평가 선거에선 야당이 유리하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오래 전부터 4·15 총선이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있어서 여당에 불리할 것이라 점쳤다. 하지만 중간평가 선거에서 야당이 유리하다는 것은 대개 미국 선거에 기반을 둔 이론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한국에서는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중간평가 성격을 띤 역대 총선의 결과를 보면 여당이 반드시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 (2007년 대선 직후 4개월 만에 치러진 2008년 총선을 제외하면) 1992년 집권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치른 1996년 총선, 참여정부에서 치른 2004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총선에서는 당시 여당이 모두 승리하였다. 물론 2000년 총선, 2016년 총선에서는 당시 여당이 패배했다.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있어서 야당이 유리하다’는 가설과는 반대로 5번의 총선 중 3번은 당시 집권여당이 승리했다.

4. 10년 주기 정당혁신 및 정권교체 가설

필자의 다음 가설은 10년 주기의 정당혁신과 정권교체이다. 한번 대선에서 패배한 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정당은 처음에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패배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보다는 상대방의 정치공작, 비우호적인 언론, 비협조적인 당내의 타 계파, 탈당 뒤 출마한 제3당 후보 같은 외부요인 탓으로 돌리면서 혁신 노력을 게을리한다. 그러다가 두 번째 대선에서까지 패배하게 되면 그제서야 근본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깨닫는다. 당을 주도하던 기존 주류세력이 후퇴한 뒤 신진세력으로 공천혁신을 이루고 바닥민심을 얻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눈앞의 선거마다 작은 승리를 쌓아가게 된다.

정당은 대선에서 승리한 뒤 여당이 되면 그 기세를 몰아서 그 후 이어지는 몇 차례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만에 빠지고 민심은 변화해 각종 선거에서 작은 패배를 당하게 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결국 자기를 혁신한 야당이 무사안일에 빠진 기존 여당을 대선에서 이기면서 10년 만에 집권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과거의 선거결과나 여야 정당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흐름과 패턴은 계속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번 4·15 총선에서는 누가 승리할 것인가?
필자가 위에서 소개한 모델에 따르자면 보수야당은 아직 승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참패를 당한다면 혁신의 몸부림이 일어날 수 있고 황교안 대표를 대신해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젊은 오세훈이 부상하거나 당 바깥에서 안철수를 영입해 2022년 대선을 치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미래통합당 내 기득권 세력의 지지로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많이 당선될 것이다. 그 때문에 혁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보수야당은 한국전쟁, 유신개발 시대를 거치는 동안 ‘안보보수+시장보수’의 결합이 이루어져 왔는데, 당내에선 여전히 안보보수의 헤게모니가 유지되고 시장보수가 이를 받쳐주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만 약간 시장보수가 우위를 점했으나 박근혜 대통령 시절엔 다시 안보보수가 우위를 회복했다. 그러다가 탄핵정국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시장보수는 더 이상 안보보수의 헤게모니를 인정하지 않고 분당(分黨) 끝에 바른미래당으로 분리되어 나왔다. 비록 이번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이 하나로 통합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미래통합당의 지지율은 합당 이전과 변한 게 없거나 오히려 하락하기조차 했다.

이것은 한국의 시장보수 지지층이 더 이상 안보보수 중심의 보수정당엔 표를 찍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보수에 가까운 오세훈이나 안철수의 입지가 강화되기는 하겠지만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력은 아직 유권자 눈높이에 못 미치는 상태이다. 반대로 이들이 당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자 할 때 기존의 안보보수가 그것을 흔쾌히 승복해줄 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2022년 대선에서도 보수야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만약 다음 대선까지 패배하고 나면, 보수정당은 1997년, 2002년, 2004년 선거에서 연거푸 졌던 경험과 함께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던 기억을 되살려낼 것이다. 당연하게도 보수정당은 내부 혁신을 도모할 것이고 그 결과로써 2024년 총선에 이르러서야 안보보수가 뒤로 물러나고 경제를 중시하는 시장보수 중심으로 공천혁신을 단행할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아마도 연속 두 번의 대선 승리, 연속 두 번의 총선 승리에 자만하여 혁신을 게을리 하다가 2027년 대선 때 정권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5. 10년 단위 시대적 과제 가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희한하게도 진보·보수정당 출신이 엇갈리면서 10년씩 집권하며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왔다. 마치 쌍둥이처럼 비슷한 성격의 대통령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가설에 대해서 양측 지지자들은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과 저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서로 비슷하다니 말도 안 돼”라며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독자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필자는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호오(好惡)를 떠나서 그냥 대통령 개인의 성격과 스타일, 추진했던 과제들을 드라이하게 논하는 것일 뿐이다.

진보·보수정당은 왜 10년씩 집권했을까? 왜 5년씩 같은 과제를 추구했을까? 아마도 5년만으로는 하나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에 시간이 짧아서였을까.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여야는 한 번씩 자신의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연속 집권하는 기회를 가져왔다. 그리고 마지막 10년은 어쩌면 20세기적 과제를 미련 없이 떨쳐내는 총정리 시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가올 2022년 대선의 핵심 주제는 더 이상 20세기적 과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21세기적 도전과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환경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좌표를 놓고 일대 결전을 벌일 것이다.

이제 필자가 제시한 위의 가설들을 종합해보겠다. 당분간은 60년대생들이 주도하는 진보정권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말하듯 ‘승리 속 자만’, ‘패배 속 혁신’을 통해서 정권은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엔 또 어떤 세대가 정국을 주도하게 될까? 2022년 대선에서 무슨 이슈가 핵심 어젠더로 떠오를지, 2024년 총선에서 어떤 이들이 부상하게 될지는 어쩌면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불어대지만 파도 아래의 해류는 소리 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

고한석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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