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20. 04-03. 18:32

[김현성 칼럼] 남유럽 코로나19 위기, 의료시스템 개혁의 길을 묻다

by | 2020년 3월 25일 | 국제, 정책

#이탈리아 ‘의료 붕괴’는 시스템 문제
  보건예산 따라 공공의료 質 좌우돼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예산 감축
  인력‧병상 부족, 치사율 급등 초래
#EU 출범 후 ‘의료진 엑소더스’ 심각
  소득 더 높은 영국, 독일, 스웨덴으로
#한국도 저임금구조 바로잡는 과정 
  공공서비스 제값 시스템을 고민해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지난해 12월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3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동아시아, 유럽, 중동, 미국 등지로 퍼져나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플루(2009년) 이후 11년 만에 팬데믹(Pandemic)으로 지정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글로벌 경기침체와 함께 각국의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지역·국가별로 전파 양상, 대응 방식, 위기 수준이 제각각이다. 그 중 가장 심각한 양상을 보이는 지역은 남유럽의 핵심 국가인 이탈리아다. 이웃나라인 스페인·스위스로도 불길이 번지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3월 24일 현재 확진자 7만여 명, 사망자 7000여 명에 이른다. 사망자 수와 치사율 모두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탈리아가 원래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규모(GDP 기준)로는 세계 8위이자, 서방선진국 모임인 G7의 명실상부한 멤버다. 역사로나 문화로나 국가시스템으로나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저력을 자랑한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홍역을 앓았지만 이탈리아나 스페인 모두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누려왔다.

그러나 남유럽의 주류인 두 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국가 차원의 의료시스템에 뭔가 고장이 났음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두 나라 상황은 ‘위기는 또 다른 위기를 부른다’는 경고를 떠올리게 만든다. 새로운 위기가 왔을 때 미봉책으로 상황을 넘기다간 훗날 부메랑처럼 더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겨 준다. 한국 사회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써 이탈리아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의료 붕괴’는 어디에서부터 왔나

이탈리아의 경제체제와 의료체계에는 어떤 취약점이 있을까?
많은 유럽 국가들이 그러하듯,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무상공공의료와 사설의료체계라는 두 축으로 보건의료체계를 운영해왔다. 그 중 이탈리아만의 특이점도 발견된다. 공공의료체계를 유지하지만 의사들이 사인(私人) 신분인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 의사들은 일종의 ‘공무원’과 비슷한 공인(公人)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공공의료체계 내 의사들이 공무원으로 간주되다 보니 의사 수 자체가 국가 보건예산의 전체 금액에 의해 결정된다. 의료진 급여 등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보건예산이 제때 증액되지 않으면 의사, 간호사, 병상 등의 의료 관련 서비스가 모두 타격을 받게 된다.

문제는 이탈리아의 보건예산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체 내지 감소하는 추세였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의 1인당 보건예산은 2008년에 3490달러(약 490만원)를 기록한 이후 2016년엔 1인당 2739달러로 내려왔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에는 환자 1000명당 병상이 고작 3.18개에 불과하다. 독일(8개), 프랑스(6개)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병상 부족 사태가 코로나19 위기에서 치사율이 폭등한 직접 원인으로 꼽힌다.

둘째, 이탈리아식 공공의료체계는 고급 의료인력의 해외 유출을 초래해 보건의료의 미래 역량까지 잠식시켰다. 내과의사 기준으로 이탈리아 의사 연봉은 평균 10만8000달러(약 1억3000만원)인데, 이는 영국의 13만8000달러, 독일의 16만3000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이탈리아 의사의 평균연봉 수치엔 사설의료체계의 의사 연봉도 포함돼 있어서 의사 집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공의료인력의 소득은 이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이 출범하고 난 2000년대 초반부터 의사·간호사·기술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을 빚어 왔다. 실제로 폴리티코(Politico)의 2017년 조사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루마니아·그리스에 이어 의료인력 순유출이 유럽 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출처
https://www.politico.eu/article/doctors-nurses-migration-health-care-crisis-workers-follow-the-money-european-commission-data/

물론 이탈리아로 유입되는 의료 인력들도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각 의과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어 프로그램을 마친 동유럽 출신 의료진이다. 이탈리아 의사들이 영국·독일로 떠난 자리를 채우면서 이들의 점유율은 조금씩 높아졌다. 간호사 숫자를 살펴보면 같은 조사에서 이탈리아로부터 영국으로 이동한 만큼 루마니아 출신 간호사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요컨대 국가예산에 모든 의료환경이 좌우되는, 경직된 공공의료 시스템과 함께 의료예산 감축, 의료 인력 유출이 계속되면서 이탈리아의 종합적인 보건의료 역량이 악화돼 온 것이다. 물론 동유럽 출신 의료진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같은 대규모 팬데믹 상황에서는 국가적 대응을 하는데 취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의료 엑소더스’ 원인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사례처럼 자국을 떠난 의료 인력들은 모두 어디로 이동하는가? 대개의 목적지는 영국, 독일, 스웨덴이다. EU 역내에서 이동하는 의료 인력 중 약 45%가 이들 3개국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 정도를 영국이 차지한다. 그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영국은 이탈리아와 같은 무상 의료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의사 소득수준이 높고,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 장벽 또한 낮아서다. 이는 유럽으로 입국하는 불법이민자들이 대부분 영국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EU 역내에서 벌어지는 의료 인력의 대이동은 결국 ‘솅겐 조약’으로 대표되는 이동의 자유와 거대한 단일시장으로서 인력과 물자와 자본의 교류를 모두 자유화한 EU 체제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

무상의료체계를 운용하는 영국을 향해 유럽 각지의 의사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은 1인당 보건복지 예산 규모 자체가 3084유로(약 410만원)로 이탈리아보다 28%나 더 많다. 여기에다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 예컨대 최저소득세율 20% 로 정한 현실적인 세정(稅政)을 통해 의료보험의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의사들의 소득 향상에도 기여하고 해외 고급인력들을 끌어당기는 요인 중 하나다.

유럽에서 가장 크게 걱정되는 상황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동유럽 국가로 확산되는 것이다. 동유럽은 EU의 일부분이지만 1인당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데다 이미 의료·기술 분야의 고급인력 유출이 심각한 수준까지 진행돼 왔다. 예컨대 루마니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5년까지 7년간 의사 수가 50%가량 감소했다. 슬로바키아 역시 내과 의사 중 27%인 3800명이 다른 나라를 찾아 이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에서까지 펜데믹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것은 유럽 전체의 치명적인 위기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물론 EU 차원에서 동유럽의 이런 상황을 묵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EU는 2000년대 중반 적극적인 동진(東進) 정책을 펼쳐 동유럽 국가 상당수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나라의 경제 부흥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금융 지원도 실시해왔다.

그러나 2012년 남유럽 재정 위기가 닥치며 상황이 달라졌다. 대책 없는 경제난에 시달리던 남유럽 국가의 의료 인력들이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은 서유럽으로 탈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 자리를 동유럽의 의료 인력들이 메우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의사 소득이 높은 나라에서 낮은 나라로 연쇄적 이동이 일어난 셈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들

이탈리아가 직면한 문제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 태동한 이래 그것의 공공성과 복지성을 늘리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의료보험 혜택을 적절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결국 의료수가의 상향 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건강보험료 인상 또는 증세가 불가피한데, 이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부분이다. 물론 우리나라 공공의료체계는 의료인을 공인 신분으로 예속시킬 정도의 경직성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공성’만 강조하다 보면 한국형 의료체계도 결국 약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의료수가를 인상하는 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다. 의료수가 인상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사실상의 증세로 받아들여지는데다, 결국에는 건강보험체계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작용 또한 존재한다.

때문에 보건예산이 넉넉하고 의료수가가 높은 일부 선진국의 경우엔 진료비 총액의 상한을 두기 위해 ‘총액계약제’ 라는 시스템을 활용한다. 현재 총액계약제는 독일, 대만, 프랑스의 공공병원 등지에서 활용하고 있는 진료비 지불 시스템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전 국민의 의료서비스 진료비 총액을 매년 추계한 뒤, 이를 행위별 수가기준 등에 의거하여 개별 의사들에게 배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위별 수가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총액계약제 역시 선진국에서 활용한다고 해서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 체계는 아니다. 독일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한국(소득의 6.12%)의 두 배가 넘는 15.5%나 부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이 역시 한국(7.7%)보다 훨씬 높은 11.3% 수준이다.
※출처: https://m.medigatenews.com/news/2862568893

또한 총액계약제는 전체 의료예산의 수준을 매년 계획적으로 정하고 그 한도 내에서 모든 의료행위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 전반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 의료시스템을 창출해 나가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의 우수한 방역·역학조사 능력 중에선 당연하게도 시스템으로 설명되는 부분도 있으나, 고급 인력의 상당한 희생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체제는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남유럽의 사례를 볼 때 의료 분야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게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의료 시스템 개혁 역시 ‘제 값을 받는 방향’을 모색되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급격한 노령화 및 만성질환자가 증가하게 되면 향후 국가 의료시스템에 상당히 많은 재정 부담을 안길 것이다.

이 글의 요지는 이렇다. 우리나라도 의료수가의 현실화와 함께 급격한 고령화와 만성 기저질환자의 증가에 대비한 예방·치료 시스템을 고민할 때가 됐다. 이것 말고도 우리나라에선 제값을 받아야 하는 공공서비스들이 아직도 많다. 대중교통, 수도·전기 같은 공공인프라 가격이 낮게 유지된 덕에 기업들은 상대적인 저임금 체제를 유지해 올 수 있었고 이는 21세기 초까지 유효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공공재 가격을 한없이 누르는 시대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최저임금이 오르고 주52시간 노동이 확산되면서 고질적인 저임금 구조가 혁파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억눌려왔던 가격체계도 차례차례 정비할 필요가 있다. 남유럽 사례에서 힌트를 얻게 되는 의료시스템 문제는 그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성 필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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