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12-02. 08:00

5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문재인 정부가 맞닥뜨린 과제가 만만치 않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김현종 <피렌체의 식탁> 발행인의 조언을 싣는다. [편집자]

문재인 대통령에게 리스닝 투어를 권한다. 대통령의 성격상 ‘경청’이 더 어울리니 경청 투어라고 해도 좋다. 이번 ‘듣기’는 연쇄적으로, 비공식으로, 여러 층위를 대상으로 실시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문대통령은 11월초 임기 후반전을 맞이한다. 전후반 45분씩 90분을 뛰는 축구선수도 전반전이 끝나면 휴식시간을 갖는다. 열을 식히고, 첫 번째 절반을 돌아보고, 두 번째 절반을 준비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런 시간이 더 필요하다.

대통령과 비서실 모두 부지런하니 이미 많은 공식 일정을 준비했을 것이다. 조정이 가능한 것은 줄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은 예정대로 치르는, 워킹 홀리데이 식의 시간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은 일단 들어야 한다. 내 사람들, 즉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과 당의 주요 인사들로부터 시작해 듣기에 집중하고, 점차 멀리, 마음은 있어도 평소 못 보던 사람들, 나아가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 골고루 만나고, 다시 역순으로 대통령의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이 좋겠다. 집을 떠나 반환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종의 여정(journey)이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은 그의 특기인 인내심을 보여줘야 한다. 평생 연구에만 몰두해온 생물학자 최재천은 신설되는 국립생태원장이라는 공직을 맡고 나서 ‘이를 악물고 들었다’고 회고한다. (최재천 저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 관찰학자 최재천의 경영 십계명>)

듣기는 이 시대 리더의 의무이자 기본 노동이다. 국민에게 무한 책임을 지는 공복으로서 그의 일과는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서 출발한다. 아마 대통령이 ‘당신 얘기를 좀 듣자’고 하면 처음에는, 그리고 상당수는 평소 자신이 팔던 ‘약’을 팔 것이다. 뻔한 얘기들. 그래도 들어야 한다. 기탄없이 얘기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대통령의 능력이다. 기탄없이 들으면 된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제대로 얘기해보라고 해도 하지 않는 말, 이면의 말, 진정한 이해관계의 의중을 유추하고 연상해야 한다. 이 부분이 위대한 경청자(great listener)의 능력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들어주면 조금씩 단서를 흘린다.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듣기를 통해 후반부에 할 일을 정리해야 한다. 우선 시간개념의 정의. 이런 말 하는 사람을 조심하시라. “이제 하산길에 접어들었으니 이미 시작한 일들을 잘 추스르는데 주력하시라.” 이런 류의 말을 하는 사람은 국민과의 ‘5년 임대계약’에 의해 뽑힌 대통령에게 근무 태만을 권유하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퇴임 전날에도 취임 첫날처럼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고 유익을 추구해주기 바란다.

솔직히 국민은 대통령이 전반전 동안 뭘 시작하고 추구했는지 잘 모른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광주에 가서 피해자 유족을 껴안아주고, 학자 출신 참모들이 제창한 소득주도성장을 허락한 것 말고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전후반전 사이의 휴식을 이용해 듣고 정리해 후반전의 어젠더를 내세운다면 그날이 제2의 취임 첫날이다. 시간은 아직 많다. 토트넘이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아약스에 2대0으로 지다가 2대3으로 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저리 타임 마지막까지도 모우라와 손흥민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후의 1분도 골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인데 9백일이 넘는 임기 후반전은 요즘같은 세상에 집을 백채는 짓고 허물기에 충분하다.

제2의 취임을 맞아 무엇을 할지는 대통령의 몫이다. 굳이 방향을 언급한다면 지금은 아래의 국민을 위한 확고한 정책들이 필요해보인다. 대통령은 시지프스이고 프로메테우스다. 다시 굴러 떨어질 가능성이 높더라도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공을 안고 끌고 올라가야 한다. 무엇을 끌고 올라갈 것인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 발언처럼 자신이 판단하기에 당위가 있으면 지지층을 아랑곳하지 않고 공을 끌고 올라가는 유형이었다면, 문 대통령은 지지층을 늘 배려하고 중시하는 미덕을 가졌다. 이제 그 지지층을 좀 넓힐 필요가 있다. 10%의 조직화된 국민이 아니라 90%의 비조직화된 국민을 말한다. 전문직 종사자와 공무원, 대기업 집단이나 민노총에 소속된 10%의 국민 외에 오늘도 정책적으로 정치적으로 제도적으로 덜 배려받는 90%의 국민이 있다. 이들을 위한 국가를 생각해볼 때다.

대통령에게는 그러나 숨만 한번 크게 쉬어도 의혹을 제기하며 심장을 쪼아대는 독수리떼들이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 심지어 그들 가족의 심장까지 쪼아대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심장을 날마다 새롭고 튼튼한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이건 의지력의 싸움이고,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는 방법은 호랑이보다 더 탄탄하게 몸의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길 밖에 없다.

방향, 노선보다 중요한 게 행정부 인사권의 재확립이다. 대통령은 전체 100만 명이 넘는 행정부 공무원 중에서 유일하게 국민이 뽑은 선출직 공직자다. 모든 임명직 공무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과 권리, 의무와 필요가 있다. 인사권을 적극 구사하는 게 대통령의 일이다. 혼자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으니까. 기용의 범위를 넓히고 맡긴 일에 가급적 전권을 주고, 잘하는 사람은 격려하고 못하는 사람은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 만일 국회 인사 청문회가 우려돼 인사에 속도와 과감함을 못 준다면 공석인 장관대신 차관을 데리고 일을 해도 된다. 차관이 독수리에게 뜯어 먹히면 차관보나 실장을 데리고 일하면 된다. 그런 각오로 임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하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진심을 들려주면 동의한다. 단 메모를 읽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멘탈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임명직 공직자가 있는데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고, 대통령이 위임한 사무를 관장하는 공복으로서 합당치 않은 생각이다. 임명직 공직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하고, 구체적으로는 임명권자가 자신을 임명한 취지를 살려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다.

그가 충성한다는 조직은 무엇인가. 그는 그 조직을 국가 내 국가(國中國)로 만들길 원하는가. 그 조직의 기능이란 이름아래 숨어 있는 권리와 이익, 권세와 우대에 충성하는 것은 아닌가?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구호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은 검사 사위, 판사 아들이 없어도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일반 국민들의 오래된 염원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이 검찰을 보전해 정치적 이익을 추구할 생각이 없다면 국민의 그 염원을 받들어 실행하면 된다.

이를 실현하는데 혹 또 다른 임명직 공직자의 거취가 문제된다면 그 또한 한날한시에 교체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분야별로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해나가는 것이다. 국민에게 대통령이 도구이듯 임명직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도구이다. 이 기본아래 내남이 있고 비서실 선임행정관을 비서관으로 승진시키는 류의 온정과 육성이 있는 것이다.

리스닝 투어 중에 시간이 되면 역경을 극복한 대 정치가들의 전기나 평전을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특히 처칠, 브란트, 슈뢰더에 관한 책들은 한 국가와 몇 천만 명이 넘는 그 구성원의 역사적 운명을 책임진 한 약소한 인간의 투쟁의 기록이다.

처칠은 ‘제각기 질투심에 불타면서 제 목숨만을 부지하던 (육해공) 3개 군대를 하나로 기능하는 통일체로 만들었다’(제바스티안 하프너 저 <처칠 끝없는 투쟁>)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유명하지만 ‘연방 수상으로서 자신의 자기 시간의 보다 많은 부분을 국내정치 문제에 소진했다… 자신이 사임하던 해 <하루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중간결산을 내놓았고 여기서는 550페이지 이상이 국내정책을 다루고 있다.’ (그레고어 쇨겐 저 <빌리 브란트>)

슈뢰더는 자신의 재선 직전부터 직후까지에 걸쳐, 즉 임기 전반전의 말미와 후반전의 초반에 하르츠 개혁을 성안하고 당내외를 설득해나갔다. ‘어쨌든 시대의 과제를 피하지 않았고,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이 있었고, 한번 발표한 정책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설명한 결과 어젠더 2010은 법으로 채택되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시대 흐름에 맞고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협상에 드는 시간과 노력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저 <자서전, 문명국가로의 귀환>)

마지막으로 한 마디. 독수리떼도 생태계의 일부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가 있어 프로메테우스다. 고난은 운명이다.

김현종 / 발행인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