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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베를린은 ‘집의 정의’ 논쟁 중

by | 2019년 5월 3일 | 정책

  • 유학생도, 예술인도, 연예인도 베를린으로
  • 괜찮은 일자리는 독일에, 몰려드는 ‘유럽시민’들
  • 독일, 난민 100만 명 수용… 9만 명이 베를린에
  • 분단 시절 낙후된 도시에서 통일 후 가장 ‘힙’한 도시로
  • 베를린 매력: 다양성, 관용적 태도, 분단 양식
  • 인구 수축기 매각한 공공임대주택, ‘재공유화’ 주장
  • 동베를린 젠트리피케이션 시작
  • ‘에어비앤비’도 주택 공급 부족 원인
  • ‘몰수’(Enteignung) 운동까지 벌어져
  • 베를린은 ‘집에 대한 정의’ 논쟁 중

낙후된 동네에 가난한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이들의 창의적인 활동으로 유명세를 타면 임대료가 오르고, 창의적인 젊은이들은 떠날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대 전세계에서 가장 ‘힙’한 도시가 된 베를린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현재 베를린에서는 어떤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까. 독일 유학생 출신으로 베를린에 방문학자로 머물고 있는 공진성 교수에게 베를린의 모습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편집자]

[공진성 /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방문학자]

가난하지만 매력적이었던 도시 베를린에 대한 단상

베를린은 확실히 매력적인 도시이다. 사람이 이렇게 북적거리는 것을 보면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정확한 수치상의 증거 없이도 몸으로 그런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나는 20년 전인 1999년 처음 베를린 땅에 도착해 7년 가까이 살다가 귀국한 후, 작년 여름 다시 베를린에 와서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사이의 변화를 한번 되짚어 보려고 한다.

서울과 베를린을 잇는 직항 노선이 여전히 없는데도 최근 들어 한국인들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연예인들도 이제 파리는 식상해서인지 베를린으로 화보와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많이들 온다. 유학(지망)생도 여전히 많다. 그래서인지 원래 많던 한인 교회의 수가 그 사이에 더 늘었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한국학 연구소 초청으로 그 동안 한국의 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이 다녀갔고 앞으로 다녀갈 예정이다.

한국인 클래식 연주자들도 마치 서로 의논이라도 한 듯이 베를린으로 모여들고 있다. 하노버에 있던 손열음도, 파리에 있던 조성진도 베를린으로 왔다. 특정 학교나 악단에 소속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런 소속이 없는 경우도 많다. 모두 기꺼이 베를린에 머무르려고 한다. 예술가들에게 우호적인 비자정책이 그런 흐름을 돕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자치단체장들과 공무원들도 최근 들어 베를린을 많이 찾고 있다. 베를린이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도시재생의 선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유럽인들도 베를린을 전보다 더 많이 찾고 있다. 1993년 유럽연합이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회원국 수를 늘려왔고 통합의 정도를 높여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유럽의 실질적인 수도로 부상하고 있는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도, 유럽의 현대사를 배우기에 더없이 좋은 베를린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식상한 파리, 뜨는 베를린

유럽연합 내에서 비교적 경제적 사정이 좋은 독일로 일자리를 찾으러 오는 사람도 많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른바 ‘힙’한 도시 베를린으로 오고 싶어 한다. 유럽연합 회원국 시민이면 별다른 허가 없이도 얼마든지 독일에서 살 수 있고 일할 수 있지만,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독일어 능력과 전문 지식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게다가 독일 (국립)대학은 여전히 수업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려는 유럽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독일인 학생들도 대도시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것을 전보다 더 많이 선호한다. 그래서 과거에 몇몇 인기 학과에 국한되어 있던 지원등급제한(NC)이 거의 모든 학과로 확대되었고, 베를린의 대학들은 교육 여건이나 수준과 무관하게 입학하기 매우 어려운 대학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 대규모로 베를린에 온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피난민이다. 2015년, 시리아 내전과 피난민의 참상을 충격적으로 알린 한 장의 사진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후 독일은 한편으로는 인도주의적인 이유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유럽 몇몇 국가에 집중되는 피난민 수용의 부담을 줄여 유럽연합 자체를 건사하려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많은 수의 피난민을 받아들였다. 2015년 한 해에만 100만 명이 넘는 수의 피난민이 독일에 수용되었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베를린에 수용되었다. 현재 베를린에는 약 9만 명의 피난민이 머물고 있다.

베를린에는 어떤 매력이?

도대체 베를린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일까? 베를린은 지난 두 세기 동안 독일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베를린은 경제적 중심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독일의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중심이었다. 바로 이런 위상 때문에 베를린은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분단되었다. 분단 후에도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였지만, 서베를린은 동독이라는 바다 속의 작은 섬처럼 고립되었다. 서베를린은 냉전의 중심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서독 정치의 중심은 아니었다. 문화적으로 중요한 재산과 건물도 거의 모두 동베를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서베를린은 독일 전통 문화의 중심지가 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런 결핍이 오히려 서베를린을 독특한 성격의 도시로 만들었다.

분단 시절 서베를린은 그리 살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냉전 시대에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동독 지역 안에 섬과 같이 고립되어 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중요한 산업시설도 있을 수 없었고, 그러니까 당연히 좋은 일자리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에도 서독 사람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아서 위험수당을 별도로 더 주었다고 한다. 이런 도시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를 원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병역 면제를 바라는 급진적ㆍ평화주의적 성향의 젊은이들, 그리고 동성애자들이었다. 오늘날 베를린의 인구 구성과 여기에서 비롯한 도시의 다문화적 성격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베를린에는 공원과 녹지, 호수도 많지만, 문화시설도 참으로 풍부하다. 그런데 그것이 또 어찌 보면 분단과 통일 덕분이다. 베를린이 분단되었을 때 주요 시설이 동베를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서베를린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새로 지어야 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도 새로 지어야 했고, 종합대학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국립도서관도, 박물관도, 미술관도 모두 새로 짓고 채워야 했다. 덕분에 지금 베를린에는 문화시설이 양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다중심적이고, 외형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공존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구 구성의 다양성과 거기에서 비롯한 문화적 다양성과 관용적 태도, 그리고 분단 덕에 얻게 된 상이한 양식의 많은 문화적 기반시설 외에 오늘날 베를린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결정적 요소는 바로 베를린이 수도라는 사실이다. 통일 후 이듬 해, 본에 있던 연방의회는 오랜 토론 끝에 수도를 다시 베를린으로 옮기기로 했다. 베를린으로의 천도는 1999년에야 마무리 되었다. 장벽이 놓여 있던 자리 주변에 온갖 새 건물이 들어섰다. 연방의회와 정부청사가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주위에 강대국들의 대사관이 들어섰다. 그리고 다시 그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세워졌고 기업들이 입주했다. 그러자 다시 그 주위에 고급 호텔들과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통일 후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베를린의 중심지는 늘 공사 중이다. 선진국의 수도 가운데 시내 중심지에 이런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 있을까? 덕분에 베를린은 유명 건축가들의 경연장이 되었고,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반드시 견학해야 할 도시가 되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기회, 그리고 문화적 매력이라면 확실히 베를린은 이제 이 세 가지를 다 갖춘 곳이 되었다. 전통적 산업시설은 없지만, 정치적 권력과 문화적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경제적 기회도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택 문제이다.

도시의 매력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낳고

내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1999년부터 2005년까지의 시기는 독일 경제가 가장 안 좋은 때였다. 이른바 ‘통일후유증’이 거론되던 때였다. 정부의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슈뢰더 정부는 일명 ‘하르츠 개혁’을 추진했다. 베를린의 인구가 가장 많이 줄어든 때가 바로 이 시기이다. 그나마 경제적 사정이 나은 독일 다른 지역으로 특히 동베를린 주민들이 떠나갔다. 그들이 살던 동네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과 예술가들이 들어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은 점차 ‘가난하지만 섹시한’ 곳이 되었다.

이 시기에 베를린 시는 인구는 줄고 채무는 늘고 있었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을 매각했다.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공공임대주택을 사들인 민간회사들은 수리한 후 되팔거나 임대했고, 당연히 임대료는 전보다 비싸졌다. 이것이 인구가 다시 늘어난 오늘날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한 임대주택이 부족한 이유이며, 대형 임대주택 회사가 보유한 집들을 정부가 다시 사들여 재공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이민정책과 수도 이전의 효과 덕분에 2000년대 후반부터 베를린의 인구는 다시 늘어났고, 그와 함께 시내 중심에 위치한 구 동베를린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도 시작됐다. 지불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도시에 신규 유입되자 시내 중심과 가까운 곳부터 도시가 점점 세련되게 변해갔다. 빈 땅에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고, 주변의 건물 주인들도 더 많은 임대료를 받기 위해 기존의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한때 학생들과 예술가들이 많이 살던 가난하지만 개성 있는 동네는 차츰 세련된 동네로 바뀌었고, 학생들과 예술가들은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른 동네로 떠나갔다.

독일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한때 340만 명 미만으로 줄었던 베를린의 인구가 350만 명을 넘어 360만 명에 이르자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던 전세계의 자산가들이 베를린의 주택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베를린의 주택들을 사들이고 수리한 후 다시 임대하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가구만을 갖춰놓고 에어비앤비와 같은 인터넷 기반의 중개업체를 통해 여행자들에게 임대하기도 했다. 교통편이 좋은 도심 주택가의 많은 집들이 이렇게 상업적으로 전용되면서 정작 주민들이 들어가 살 집이 부족하게 되었다.

어떤 이는 베를린 주택 문제의 해결책이 대규모 주택 공급과 도시 외곽으로의 교통망 확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문제는, 적어도 베를린의 경우, 주택 공급의 부족 자체에 있지 않고, 돈벌이가 더 되는 수요에 맞춰 주택의 공급 형태가 변한 데에 있다. 그리고 돈벌이가 더 되는 수요가 필수적인 수요의 충족을 가로막는 데에 있다. 바로 이 필수적인 수요의 충족을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베를린에서 벌어진 시위의 자극적인 구호, ‘몰수’(Enteignung)가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정부가 보장해야 할 그 필수적 수요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곳이 있다면, 과연 그곳을 지불 능력과 상관없이 선착순으로 살게 해야 하는지,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순으로 살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정의로운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베를린은 논쟁 중

한 사회 안에서 재화가 어떻게 분배되어야 정의로운지를 우리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다.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재화를 이해하는 방식에 의존하며, 그 이해 방식은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지는 재화의 성격에 대한 해석 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변한다.

베를린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다. 외국인의 비율도 20% 가까이 되고, 이주 배경을 가진 독일인의 수도 많고, 사회주의 시스템을 경험한 사람도 여전히 많다. 부유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으며, 집을 소유한 사람도 있고 집을 빌려서 사는 사람도 있다. 잠시 머물다가 갈 사람도 있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정착하려는 사람도 있다. 가난하지만 정신적 여유와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히피도 있고, 유럽의 중심 도시 베를린에서 바쁘면서도 세련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댄디도 있으며, 내 집같이 안락한 곳에서 한두 달씩 머무르며 역동적인 도시 베를린을 느껴보고 싶어 하는 플라뇌르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과 배경, 능력과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집’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이용할 권리가 어떻게 분배되는 것이 정의로운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논쟁은 결코 끝나지 않겠지만, 그 잠정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하다.

확실히 베를린의 중심에 사는 사람들은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도시에 새로운 색깔을 입히고 있다. 그러나 베를린은 충분히 넓고 다중심적이어서 그것이 다양성의 공존과 조화라는 베를린의 근본적 정체성과 매력을 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공진성 /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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