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스카 주일미군 기지를 방문해 미 해병대 항공기에 탑승해 둘러 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U.S. Marine Corps.

한일간 파고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등장 자체를 몹시 불편해 하던 일본 주류 보수우파 세력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판결에 발끈하며 ‘적극 대응’을 공언하더니 일본 초계기에 대한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 조준 시비를 기화로 그야말로 요란한 공개적인 ‘선제공격’에 나섰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일본과의 외교적 단절이나 소통부재를 불안해 하거나 복원에 초조해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뭔가의 성과에 안달해야 할 쪽은 한국이 아니라 먼저 시작한 일본이다. 일본은 스스로 뿌린 씨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도 더는 ‘재팬 핸즈’의 주장대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족인 북, 근대사의 경험을 공유하는 중국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1.일본은 독일과 어떻게 다른가

“예컨대 (통일 전) 서독은, 독일의 2차 대전 패전 뒤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점령국(연합국)들의 재판·처벌과 별도로 자체적으로 그들을 처벌했다. 그리고 2000년에 독일 정부와 나치체제하에서 강제노역을 시킨 티센크루프와 같은 기업들이 공동기금(재단)을 만들어 개별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했다. 2007년 활동마감 때까지 기금은 모두 44억 유로(당시 환율로 58억 달러. 지금 환율로 약 6조5000억 원)를 170만 명에게 지불했다. 일본은 그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이코노미스트> 2018년 12월 22일~2019년 1월 4일)

최근 이상기류를 보이는 한일관계가 국제적인 관심사로도 떠오르고 있다. ‘과거의 족쇄-일본의 전쟁시기 학대’라는 제목의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그런 사정을 반영한다. 이 잡지는 최근의 한일간 이상기류의 뿌리가 결국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임을 제목에서부터 못을 박았다. 연초에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싱크탱크 주최 외교안보회의의 중심의제 중 하나도 ‘한일관계의 급속한 악화’였다고 <아사히신문>(2019. 1. 14)은 전했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든 미일 외교안보 전문가들 회의든, 이 문제를 바라보는 외부세계는 일본 내부의 여론과는 좀 다른 것 같다. 별로 아베 정권에 호의적인 것 같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독일 정부가 절반을 댄 그 기금에 참가한 기업들 중에는 폴크스바겐과 다임러크라이슬러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1992년과 그 뒤 몇 년간 일본 관리들도 한일협정과는 관계없이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미일 강화조약 때 일본은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피해 보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일본 관리들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청구소송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는 사실도 이 잡지는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가 얘기한 1992년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년, 사회주의체제 중심국 소련이 무너진 그 다음해다. 하지만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전 해인 1991년 12월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피해 당사자임을 밝히면서 그 야만적 범죄행위를 세상에 공개한 사실이다. 그 ‘사건’으로 쉬쉬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그 충격 속에 1993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 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바로 그해에 처음으로 자민당 정부가 무너졌으며, 1995년에 사회-자민 연립정부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전후 50년을 맞아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됐다. 잡지가 1992년 이후 ‘몇 년간’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 시기까지를 가리킨다. 그때까지 몇 년간 일본관리들 조차 한일협정과는 상관없이 개별 피해자들은 따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무라야마 담화 발표 이후 1995~1997년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위한 모임’(새역모) 등의 극우단체들이 일본 조야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일본 보수 우파의 반격이 본격화했고 일본은 다시 과거를 덮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내가 청와대에 있을 때 그 문제(징용공 배상문제)는 대법원 판결 전에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해결안의 하나가, 정부와 기업이 재단을 만들어 강제노동 피해자들에게 보상(배상)하고 있던 독일 방식이었다. 실은 한일간에도 징용공 강제노역을 시킨 일본기업, 국교 정상화 때 일본으로부터 경제협력자금을 받은 한국기업, 그리고 한국 정부가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를 지원하는 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2013년 12월에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더는 진척되지 못했다.”(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아사히> 2018. 11. 24)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가 서명한 한일 ‘공동선언’으로 일본 우파의 반격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던 한일관계는 오부치 총리의 과로사 뒤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초기까지는 양국 정상이 수시로 만나 협의하는 이른바 ‘셔틀 외교’까지 가동됐다. 하지만 그것도 2005년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선포하면서 끝났다고 박 전 수석은 말했다. 흔히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의 정치적 의도를 문제 삼지만, 그런 행동마저도 나름의 전사(前史)가 있는 것이다.

 

2. 한국은 더는 우호국이 아니다

어쨌든 한일간 파고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등장 자체를 몹시 불편해 하던 일본 주류 보수우파 세력은 지난해 10월, 11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판결 때 발끈하며 ‘적극 대응’을 공언한 이후 계속 불을 지피더니 지난달 저공비행하던 일본 초계기에 대한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 조준 시비를 계기로 그야말로 공개적인 ‘선제공격’에 나섰다. 징용공 판결과 거의 때를 같이 해서 ‘위안부’ 문제 한일 정부간 합의(2015년 12·28)의 사실상 해체, 대법원 판결 직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잉지원’을 문제 삼은 일본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뒤이어 방탄소년단(BTS) 일본 유력 민간방송 출연 취소 등의 사건들 중첩에 이은 이번 선제공격은 상당기간 공을 들인 나름 잘 준비된 공세로 보인다.

싸움의 총지휘자는 아베 신조 총리, 총리 관저가 ‘대본영’격이다. “초계기 레이더 조준 문제를 공개하도록 한 것은 관저의 판단. 우호국과 이런 사안이 일어날 때는 정부간 담당자들끼리 물밑에서 사실확인과 재발방지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은 ‘정부관계자’의 말을 인용했지만,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가 아니라 통상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일본 총리관저가 한국을 이미 ‘우호국’으로 여기지 않거나, 사전 조정 없는 일방적 공개는 한국을 중국과 같은 준적대국 반열에 놓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일본 방위성은 지난해 말에 개정한 방위대강(중장기 방위정책)에서 일본이 안보와 관련해 중시해야 할 국가 중에 한국을 기존 2위 자리에서 5위 자리 바깥으로 이미 내쳤다. 5년마다 갱신하는 방위대강의 그 전기 대강에선 미국 다음 자리에 “한국과의 밀접한 제휴”가 올라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 호주, 인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다음 자리. 그래도 그것은 ‘우호국’의 범주 내에 있었는데 지금의 강경대응 자세를 보면 아베 정권은 그마저 버려도 좋다는 듯한 태도다. 정말 그럴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과 한국 정부를 ‘거짓말만 하는 나라’, ‘믿을 수 없는 나라’ 등의 ‘혐오 프레임’으로 몰고 가려는(<한겨레> 2019년 1월 8일. 노지원 기자) 일본 우파와 아베 정권의 공세가 전례 없이 거칠다.

 

3. 한국은 불법 테러국가?

대다수 일본 언론들도 아베 정권에 동조하고 있는 듯하다. <아사히>조차 지난 1일의 신년 시정연설에서 징용공 문제에 대처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우파 보수지 <요미우리신문>은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고통을 동반하는 대항 조치만이 문 정권을 움직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 중국이 한 것처럼 강하게 해서 한국이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하고, “한국이 깜짝 놀라게 하지 않으면 건전한 일·한 관계는 없다”고 했다는 마쓰가와 루이 자민당 참의원 얘기도 보도됐다.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청구소송 판결에 대한 일본쪽 반응이 한국 정부를 향하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데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폭거”라는 말까지 쓴 고노 다로 외상 등이 주장하듯, 1965년 한일협정 때의 유무상 5억 달러로 모든 과거사는 일괄 타결됐으므로 배상판결이 나와도 그건 그때 돈을 받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얘기도 어떻게 해서든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데서 오는 불만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타결(유착)로 한일간 문제해결(?)이 가능했던 정권과 전혀 다른 정권의 등장에 대한 좀 더 근원적인 불편과 혐오, 당혹감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초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책을 낸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문재인 정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 전형일 수 있다.

대사직(2010~2012년)을 포함해서 한국에서 12년을 일한 70살의 고위관료 출신인 그가 그 책에서 한 얘기의 일부를 다시 옮겨 보자.

“박근혜는 뭐니뭐니 해도 5000만 한국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었다. 그게 고작 100만 명의, 그것도 북조선(북한)의 공작원이 관여했을지도 모르는 데모(대)에 의해 탄핵결의로 내몰렸다. 이것이 민주화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문재인 정권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 김정은의 북조선을 어떤 나라보다 지지하는 정책을 내걸고 있다.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정말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가?”

극우 <산케이신문>과 더불어 일본 보수우파의 대변지라 할 수 있는 <요미우리> 등이 촛불시위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미숙 탓이라는 논평을 내며 경계한 그들이다. 대법원의 징용공 재판도 그런 시선으로 본다면, 지금 일본 아베 정권의 ‘소동’의 연원을 짐작 못할 바도 아니다.

심지어 무토 전 대사는 이런 말까지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퇴진을 “친북정권”에게 정권을 넘기기 위한 시나리오에 머리(생각)보다 감정(하트)이 앞서는 한국 유권자들이 넘어간 탓으로 돌렸다.

“‘촛불 데모’를 친북세력인 노조와 시민단체가 분위기를 띄우고 국내 대립을 부채질해 북에 대해 면역이 없는 일반인, 특히 젊은 국민이 이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감정(하트)에 불이 붙었다. 박 전 대통령 파면(소식)을 불과 2시간 뒤라는 이례적인 신속성으로 북 미디어가 보도한 것도 일련의 활동에 적지 않은 북의 관여가 있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대사까지 지낸 고위 외교관 출신자의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무책임한 생각이 그나 그 주변의 좁은 세계에만 통용되는 건 아니다. 아베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공개 발언은 참으로 놀라운 세계 인식이었다. 하얼빈에 안 의사 기념관이 들어서는 것을 비난하며 한 그 발언은 일본제국의 침략에 저항한 한국과 중국의 근대 항일운동과 그것을 토대로 한 건국 자체를 테러리스트 집단의 불법행위로 보는 거나 진배없다. 그건 또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군국일본의 연장임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었다.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과거 그들과 유착했던, 민주화 이전의 군사정권들이 그들에겐 ‘정상’으로 비칠 것이다. 지금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은 그때처럼 사법부든 입법부든 개입해서 일본 또는 미일동맹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라는 협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고통을 동반하는 대항조치”니 “깜짝 놀랄” 일로 정신을 차리게 해 주겠다는 저들의 얘기는 그런 ‘정상체제’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른바 내정간섭적인 ‘레짐 체인지’라도 하겠다는 선언인가.

그러나 일본의 그런 공격은 제 얼굴에 침뱉기다.

 

4. 아베가 노리는 것

언론의 호위까지 받고 있는 아베 정권의 대외적 발신력(發信力)은 몰라도 대내 발신력은 분명 강한 듯하다. 그들의 의도가 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가케 학원 등과 관련한 부정 및 거짓에 폭로와 실정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는데도 반대 목소리는 약하고, 특히 한국 때리기에 대해서는 과거 ‘북조선 때리기’만큼이나 지지율이 높은 것 같다. 이는 아베 정권 전체 지지율도 끌어올릴 것이다.

이번 공세가 대내 정치적 포석이라는 말이 도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4월에는 지자체 단체장과 의원들을 뽑는 통일지방선거, 7월에는 참의원 선거가 열린다. 아베 정권이 최대의 정치과제로 삼고 있는 개헌을 위해서는 참의원 의석의 3분의 2를 넘겨야 한다. 2016년 참의원선거에서 자민·공명 양당에 유신회까지 가세해서 3분의 2의석을 넘는 압승을 거두었는데, 이번엔 오히려 그 압승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단다. 3분의 2선 유지에 실패하게 되면 개헌뿐만 아니라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12년 전인 2007년 참의원 선거 참패로 집권 1년 만에 총리직을 사퇴해야 했던 1차 집권 때의 악몽도 통일지방선거 패배로부터 시작됐다. 결국 정권을 민주당에 넘겨주기까지 했는데, 그때도 바로 돼지해였고 올해도 돼지해다.

아베의 정치적 성공에는 북이라는 ‘악당’ 설정이 늘 큰 역할을 했다. 최근의 남북관계 호전 조짐은 그런 면에서 그들에겐 불안요소일지 모르겠다. 무토 대사가 얘기했듯이 그럴수록 맹목적 반북전선에 동조하지 않는 한국 정부가 위험하고 원망스러울 수 있겠다.

지금 상황은 언론마저 친아베가 대세인 상황에서 대내 발신력이 강한 아베가 분명 유리할 것이다.

일본 민간 싱크탱크인 ‘언론 NPO(비정부기구)’가 지난해 전국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정당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6.3%, 국회를 믿지 않는다는 응답도 61.9%나 됐다. 정당에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응답자는 20%도 되지 않았다. 정부, 총리,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일본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아베 정권이 장기집권하는 이유가 뭘까. 알 것도 같은데, 하지만 대외적으로도 그러할지. 그리고 단기적 승리가 장기적 일본 국익에도 부합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5. 미국은 어떻게 볼까?

<아사히>에 따르면, 연초에 미국·일본 싱크탱크 주최 외교안보 관계자들 모이는 비공개회의에서도 “한일관계의 급속한 악화”가 중심의제의 하나로 부각됐다. 일본쪽 참가자들 중에는 “‘한국 피로’를 넘어 우리는 ‘한국 불신’”라고 발언한 인사도 있었지만. 미국쪽은 대체로 냉정한 대응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역사문제의 ‘해결’과 ‘화해’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치적 해결은 화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하는 걸로 봐서, 아베 정권의 위험한 단기처방식 대한국 정책을 못마땅해 하는 시각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이사장 마이클 그린이 한일관계의 악화는 미국 국익도 해친다며 “한일 양국 모두 양식이 있고 전략적 비전을 지닌 사람들이 모든 레벨에서 (화해)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는 얘기가 눈에 띄었다.

그린은 일본어도 잘 하고, 문부성 초청으로 일본에서 영어교사도 했으며,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도쿄대에 유학도 한 이른바 ‘지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냉전시절부터 일관되게 미일 안보와 동맹 강화를 제창해 왔고, 빌 클린턴 정권 때는 에즈라 보걸 국가정보회의 동아시아담당분석관(<재팬 애즈 넘버원>의 저자), 조지프 나이 국제안보담당 국방차관보 등과 함께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핵심 브레인으로 활약했다. 냉전 붕괴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방향을 제시한 지일파의 초당파적 미일동맹강화 정책제언인 ‘아미티지 보고’ 1차(2000), 2차(2007) 집필에도 참가했다. 조지 부시 정권 때는 국가안보회의(NSC) 일본·한반도 담당부장, 아시아 수석부장을 지내면서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국무차관보와 나란히 지일파(Japan Hands)의 핵심을 구성했다. 아베와도 빈번히 연락하면서 양국 정부간 파이프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일본 내의 극우파적 행태에는 반대했다. 아베가 주도한 ‘고노 담화 바로잡기’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공무원 상주시설 건설 등이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는 반대했다.

‘고노 담화 바로잡기’란 지금의 고노 외상 부친인 고노 요헤이 당시 중의원 의장이 주도한 ‘고노 담화’, 즉 위안부 강제연행 시인과 반성 및 사죄를 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며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수정하자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바로잡기’란 그런 것이다. 그린은 이에 대해 한일관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입장을 악화시키고 주변 국가들간의 분단을 바라는 중국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위키피디아> 참조) 그는 한일관계를 푸는 방법으로 일본이 국회에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반성을 통합해서 국회 차원의 전원일치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또 한일이 싸우면 미국 이익이 타격을 받기 때문에 워싱턴에서 한일 두 나라에 싸우지 말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의 한일관계와 남북관계가 이들 ‘재팬 핸즈’의 지침대로 그 궤적을 그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한 사람의 재팬 핸즈. 그린, 아미티지와 함께 ‘재팬 핸즈’ 핵심인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2002년 10월 부시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그때 그와 강석주 당시 북 외무성 제1부상과 고농축 우라늄 공방을 벌였고, 그것이 동북아 정세를 바꿨다. 그 한 달 전인 2002년 9월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일본인 납치’ 고백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고 구체적인 대북 배상(보상)도 약속한 뒤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한 ‘평양선언’까지 발표했다. 켈리의 방북이 몰고 온 ‘북핵 소동’으로 북일간 화해 진전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렸다. 미국은 북일의 접근을 원치 않았다. 그 당시 일본인 납치 문제에 가장 강경한 자세를 보이면서 북한 ‘악당 만들기’에 앞장섰고 그걸 토대로 정치적으로 출세한 이가 당시 관방부장관으로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했던 아베 신조 지금 총리였다.

아베 정권은 대외적 발신력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국제적 네트워크를 지닌 강력한 일본 지지세력인 이른바 ‘재팬 핸즈’, ‘재팬 스쿨’에 들이는 일본의 정성과 에너지는 한국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전이 무너진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방을 비롯한 세계의 주류는 여전히 그런 네트워크를 통해 완강하게 구축된 일본의 시선으로 동아시아를 바라본다. 독도문제 등이 불거질 때마다 일본이 걸핏하면 ‘국제법’을 얘기하고 국제사법재판소를 거론하는 것도 그런 경험에 따른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헤이그 평화회의에 파견된 이준 열사 등이 발언권조차 얻지 못한 것도 국제법이란 게 ‘그들만의 리그’의 소산이기 십상인, 힘이 지배하는 현실세계의 구조적 결함 탓이다.

아베 정권과 일본 우파는 이번에도 국제법과 국제사법재판소를 들먹이고 있지만 그쪽은 해결 전망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내심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래봤자 그들의 피로 얼룩진 과거만 들춰질 것이므로. 그들이 믿는 것은 역시 자신들이 훨씬 더 우월하다고 믿는 대외 발신력일 것이다. 초계기 레이더 조준 시비를 자신들의 입장만 담아 각국어로 번역해서 세계에 전파한 것도, 한국 역시 유사한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자신들의 메시지가 훨씬 더 강력하고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까지 세상은 그렇게 굴러왔으니까.

미국이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세계 최빈국 한국을 압박해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하도록 종용한 것, 그럼에도 타결을 보지 못하던 한일협정이 박정희 군사쿠데타 뒤 급진전돼 미일동맹이 원하던 대로 된 것, 1951~1952년 일본을 미국의 영구 종속국가로 만든 샌프란시스코 미일 강화조약 때 미국이 만든 독도문제를 1965년 한일협정 때도 풀지 못한 이유가 그런 현저한 힘의 불균형 속에서 가능했다.

하지만 마이클 그린 등 지일파, ‘재팬 핸즈’들도 일본 우파의 그런 식 대처에는 반대하고 있다. <아사히>의 전언대로 무엇보다 그것이 미국의 국가이익을 손상시킬 수 있을 테니까. 미국은 한일간의 역사적 정의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한일관계 파탄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중국 등 경쟁국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관점에서 극도로 경계한다. 미국은 중국도 의식해야 하지만 한국도 과거처럼 미일동맹의 하부 종속멤버로 마음대로 다루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 교두보는 여전히 일본이지만, 한일간의 불화는 그 교두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시대로 세상은 진입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을 일본 우파세력은 모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보수우파가 그런 그들의 주장에 티끌만큼 의심도 없이 적극 동조하는 지구상 유일한 세력일지 모른다. 그것이 이번 사태의 알파요 오메가일지도 모르겠다.

 

6. 한일관계, 내버려 두라

따라서 한국은 일본과의 외교적 단절이나 소통부재를 불안해 하거나 복원에 초조해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뭔가의 성과에 안달해야 할 쪽은 한국이 아니라 먼저 시작한 일본이다. 그냥 손 놓고 있자는 얘기가 아니라 부당한 요구나 주장에는 강력하게 대응해야겠지만, 먼저 손을 내밀거나 타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스스로 뿌린 씨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도 더는 ‘재팬 핸즈’의 주장대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남북관계를 더 진전시켜 북, 그리고 근대사의 경험을 공유하는 중국과 부분적일지라도 공동전선을 적극적으로 펼 필요도 있다. 말하자면 너무 눈치 볼 것 없이 북·중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기존 구조는 허물어지고 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군도의 역사사회학> 저자인 이시하라 슌 메이지가쿠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일본을 되찾자’는 표어를 썼습니다. 이 표어의 되찾을 대상은 과거 동아시아에서 빠른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1950~70년대 일본의 자존심입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아베 정권은 다시 한 번 일본이 냉전시대에 동아시아에서 누린 특권적 지위를 되찾자는 일부 일본 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환상에 호소했던 겁니다. 제 책에서는 이런 환상을 ‘냉전 갈라파고스’라며 비판했고, 군도사회로서의 일본 근현대사를 근거로 아시아 태평양 세계에서 일본사회의 진로를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가을호로 통권 100호를 발간한 계간지 <황해문화>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 얘기다.  “통일과 평화 사이, ‘황해’”를 주제로 내건 그 심포지엄에서 또 한 사람의 주제 발표자인 개번 매코맥 호주 국립대 명예교수는 말했다.

“60년 전에 형성된 미국의 속국(일본)이라는 제도적 틀은 오늘날의 지정학·경제 현실과 점점 더 잘 맞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에 가장 큰 장애물은 북한도, 러시아도, 중국도 아닌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가해국이었음에도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누려왔다. 1965년 현일협정 때 던져 준 경제협력 자금도 협상이 시작된 1951년, 그 비참했던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특수’가 없었다면 일본은 지불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이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라는 일본 근대의 유산이라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승동 / 본지 편집인, 전 <한겨레> 국제부 부장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