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08-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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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과 함께 한반도를 주전장으로 삼는 열강들 간의 패권경쟁인 신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됐다. ‘신냉전이라고도 불리는 미중 간 패권다툼의 분단선은 한반도 중앙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로 옮겨간다. 미중 무역전쟁이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닌 것은 그 경제적인 파급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안보와 남북 재통합 등 국가 장기 생존전략까지 그것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서로 경원하던 중국과 일본이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그만큼 게임의 판돈이 엄청나기 때문일까. 트럼프 정부의 노림수는 무엇이며, 미국은 일본의 중국 접근을 용인할까. 유럽에선 해체된 지 오래인 냉전이 동북아에선 이제야 비로소 해체길로 접어드는가 했더니 다시 시작된다는 새로운 냉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어쩐지 불길한 신 그레이트 게임

“요컨대 지금의 북핵 문제는 세계 차원의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의 서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본장의 주역은 누구냐. 미국과 중국일 수밖에 없지요.”

“나는 한반도에서 일정한 거래(흥정)가 이뤄진 뒤 미국이 착수하는 것은 ‘신 애치슨 라인’이라고나 해야 할 방위선 구축이라고 생각합니다.”(<중앙공론(中央公論)> 2018년 11월호)

일본 외무성 주임분석관을 지낸 사토 마사루가 <NHK> 워싱턴 지국장을 지낸 데시마 류이치와 나눈 대담의 일부다. ‘애치슨 라인’은 1950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미국의 서태평양(동북아시아) 방위선이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선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설정된 대공산권 방위선, 즉 냉전의 경계면이었다. 한반도와 대만이 그 미국 방위선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한국전쟁(6·25전쟁)을 유발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애치슨 라인 때문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설이지만, 사토는 “그것이 조선(한국)전쟁을 유발했다는 게 내 견해”라고 확언했다. 사토는 말했다.

“애치슨 라인에서는 조선(한)반도와 대만이 방위선 바깥이었던 데에 비해 신 애치슨 라인은 한반도는 바깥이지만 대만은 방위선 안에 들어 있습니다.”

트럼프 정권의 서태평양 새 방위선에서 한국은 빠질 것이라는 얘기다.

1997년부터 8년간 워싱턴 지국장을 지낸 데시마는 ‘북미 화해’가 진전되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사라져버린 애치슨 라인이 미국의 새로운 방위선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맞장구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런 사태가 되면 일본은 배후에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반도와 충돌하는 ‘서쪽 끝’에 놓이는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걸 각오해야 합니다.”

데시마는 동북아 세력권이 한반도와 일본을 경계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 나뉘어 대치하는 ‘신냉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토는 버락 오바마 정부 초기 국방부 자문위원 등을 지낸 국제관계(지정학) 분석가 로버트 캐플런의 말을 인용해, 장차 한반도가 대중화권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 이유로 남북이 중국보다는 한반도를 36년간 점령한 일본에 대한 증오가 훨씬 더 강하고, 경제적 견인력도 일본보다는 중국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캐플런의 말이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인한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것 때문에 꼬인 현실을 잘 알고 있을 사토와 데시마는 캐플런의 그런 분석에 동의했고, 데시마는 “날카로운 전략안(戰略眼, 전략적 시각)이 빛난다”는 칭찬까지 했다.

그들은 러일전쟁의 주전장이 한반도였듯이 신 그레이트 게임에서도 주전장은 한반도일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그레이트 게임이란 통상적으로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지배권을 놓고 다툰 전략적 경쟁이자 냉전을 지칭한 말이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도운 영국과 일본 간의 영일동맹(1902)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일본의 한반도 병탄 논리가 한반도는 일본을 겨눈 비수이며 그 비수를 러시아가 쥐게 되면 일본이 위험해진다는 것이었으니 그레이트 게임은 한반도의 굴욕적인 근대사와도 깊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셈이다.

일본의 ‘북방영토’(홋카이도 북쪽,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4개의 작은 섬)문제 처리 방향을 둘러싼 일본 지배세력 내부의 분파싸움에 휘말려 외무성에서 쫓겨나고 수감생활까지 한 적 있는 우파 성향의 논객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사토 얘기의 신뢰성 및 그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런 얘기들이 일본 식자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일본인들이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 얘기를 하는 게 어쩐지 불길해 보인다.

 

 

새로운 분단선과 일본의 걱정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동북아에 새로운 냉전체제가 들어설 때 대립하는 양 진영의 경계면, 즉 분단선이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그어진다는 것이고, 일본이 그 대립의 최전선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뒤에 버티고 있는 한반도와 맞서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그 최전선은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분단선이었으며, 남쪽이 해양세력의 ‘서쪽 끝’으로서 대륙세력의 ‘동쪽 끝’ 노릇을 해 온 북과 동족상잔의 소모전을 계속해 왔다. 이제 그 ‘서쪽 끝’ 역할을 일본이 떠맡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아닌 게 아니라 걱정스러울 것이다. 사토가 “일본의 안전보장을 둘러싼 환경의 격변”이라고 표현한 이런 상황 전개는 한반도 남북 간의 대결상태 해소가 전제돼 있다. 그것이 어느 한 쪽의 붕괴와 다른 쪽의 흡수에 의한 것이든, 지금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지향하는 1국2체제의 느슨한 국가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체제든 상관없이 남북은 어떤 형태로든 대립이 해소된 비적대적 공동체로 공존하든지 하나로 통합돼 있어야 한다.

사토는 그럴 경우 분단 이후 이제까지 죽 ‘섬나라’인 남쪽 즉 한국은 금방 대륙국가로 변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쪽이 막혀 있는 분단 한국은 반도국가가 아니라 오직 바다로만 길이 열려 있는 사실상 섬나라로 해양세력인 미일동맹의 일원이었지만, “남북통일까지 가지 않더라도 군사경계선을 지금처럼 신경 쓰지 않고 오갈 수 있게 되면 상황은 일거에 변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륙에서 파이프라인이 연장되고 물류(수송)도 직접 연결되면 급속히 대륙국가 색깔이 강화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데시마는 그럼에도 미국은 한반도 남쪽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지만, 사토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라면 거래를 통해 한반도에서 손을 뗄 수도 있다고 봤다. 신 애치슨 라인이란 그럴 경우 미국의 방위선이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인데, 그것이 어떤 믿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는 추론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럴 경우 동아시아 해양세력은 미일동맹을 근간으로 알류샨 열도와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등 모두 섬으로 구성된다.

냉전시절 소련과 서유럽간 완충지대로서의 동유럽 설정과 이집트 낫세르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던 사례를 들며 양 진영 중심부끼리 대결과 동시에 상대영역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는 일종의 신사협정(열강들 간의 흥정) 같은 것이 작동했다는 사토의 얘기로 미뤄 보건대, 신 냉전체제에서는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대륙국가로 존재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과도 배치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트럼프 정권이라면 할 수 있다고 그는 보는 걸까.

 

 

신냉전, 한국 보수 친미 주류의 선택은?

어쨌든 한반도 분단 해소야말로 유럽에서는 20년도 훨씬 더 전에 해체된 냉전이 마침내 동아시아에서도 해체된다는 얘긴데, 또 새로운 냉전이라니. 미국-소련을 축으로 한 동서냉전이 미국-중국이라는 새로운 축을 중심으로 부활한다는 얘기. 이 ‘본장’ 전에 북과 미국이 관계를 재정립하는 ‘서장’이 있다고 사토는 얘기했지만, 미중관계에 초점을 맞출 경우 지금의 무역전쟁을 서장,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작동할 본격적인 패권경쟁을 본장으로 볼 수도 있겠다.

궁금한 것은 그럴 경우 이 땅의 주류로 군림해 온 골수 보수 친미주의 세력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과 떨어지느니 차라리 동족과의 영구분단을 그들은 바랄까. 강대해진 중국이, 자국과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북이 미일동맹 체제하에 들어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북진통일’도 ‘흡수통일’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적어도 지금의 보수야당 행태를 보건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자체를 종북 내지 북에의 투항 정도로만 보는 듯한 그들의 인식 수준이 진심인지 과도한, 빗나간 권력투쟁의 부산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안전보장을 둘러싼 환경의 격변이기도 할 신냉전의 서장과 본장에 온전한 주체로 대처하리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그런데, 새로운 냉전시대가 정말 도래하긴 하는 걸까.

지난 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보수적인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에서 중국의 미국 정치 개입 등을 주장하며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가한 연설을 두고 미국이 ‘신냉전 선언’을 했다는 보도들(Pence’s China Speech Seen as Portent of ‘New Cold War’)이 쏟아졌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주주간>(TIME사가 발행한 <AsiaWeek> 중국어판)은 미중관계가 국교정상화 40년 만에, 경쟁하고 싸우되 탄환을 장전해서 쏘는 열전까진 가지 않는 ‘투이불파(鬥而不破)’ 원칙이라는 마지노선을 넘어서고 있다고 전했다. 그날 펜스 부통령은 콩 등 농산물을 중국에 대량 수출하고 있는 아이오와주 신문에 트럼프 정부의 무역전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현지 농민들이라는 광고를 중국 정부가 실은 것을 두고 미국 정치에 대한 간섭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중국의 지적재산권 절취(도둑질), 남중국해 분쟁, 대만 압박, 억압적 국내 통제, 기독교와 이슬람교 박해, 일대일로 등에 관한 험악한 비판을 쏟아냈다. 바야흐로 무역전쟁이 전면대결로 확대되고 있다고 잡지는 썼다.

 

 

트럼프는 왜? 무역전쟁의 미 국내적 요인

트럼프 정권이 무역전쟁을 시작한 것은 그의 대통령 당선 배경과 동전의 양면처럼 엮여 있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을 비롯한 중하층 유권자들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권 이후의 신자유주의·세계화 정책 아래서, 그 이전 한때 ‘아메리칸 드림’의 주역이었던 제조업 노동자들의 소득은 늘지 않았고 공장의 도산과 해외이전으로 일자리는 사라졌다. 미국 중산층의 근간이었던 그들의 몰락과 불만이 트럼프 지지 연료가 됐다. 중간선거뿐만 아니라 다음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했고, 그것이 보호무역주의와 무역전쟁으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그들의 불만을 국내 소득 재분배정책이라는 근본 처방을 통해 해소한 게 아니라 대규모 무역적자, 나아가 그 적자의 최대 ‘원흉’이라 지목한 중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손쉬운 포퓰리즘으로 얼버무렸다.(하라 마코토, ‘트럼프 푸역전쟁-포퓰리즘과 안전보장’ <아사히신문> 2018년 10월 16일)

11월 6일 중간선거에서 전체가 교체되는 2년 임기의 하원은 지금의 공화당 우세가 민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쪽으로 역전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하원이 대통령 탄핵을 발의할 수 있다. 하지만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탄핵은 공화당 우세인 지금 상황에선 거의 불가능하며, 공화당 우세의 이런 상원 의석 분포는 약 3분의 1을 교체하는 중간선거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만일 상원에서마저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잃게 될 경우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만일 민주당이 하원뿐만 아니라 상원에서도 과반수를 얻는 대승을 거둘 경우 공화당 의원들도 지금까지의 (트럼프 지지) ‘전략’을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즉 트럼프 편들기가 자신들에게 득인지 실인지 계산하게 될 것이고, 만일 트럼프 지지가 개인적으로 불이익이 된다는 판단이 서면 트럼프를 버리고 탄핵에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작가 소다 가즈히로(Soda Kazuhiro), <중앙공론> 2018년 11월호)

원래 공화당 내에도 트럼프 반대세력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 거의 모두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그의 지지 쪽으로 태도를 표변했다. 그런 그들이 상황이 바뀌면 다시 일거에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악재들이 많은 트럼프로서는 어떻게든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대승’만은 막아야 할 처지다. 북미 제2차 정상회담을 중간선거 이후로 미룬 것도 그것이 그에게 확실히 득점 포인트가 될만한 조건을 북이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고, 그 사안 자체가 미국 국내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한, 대세와 무관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더 결정적인 건 예상을 넘은 중국의 대두

무역전쟁을 야기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인은 중국의 경제적 성공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방세계는 서방 모방에 급급한 채 기술혁신도 지적소유권 보호도 불가능한 중국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기껏해야 ‘중간소득국가의 덫’에 빠질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중국은 공산당 지도하의 국가자본주의체제로 자본, 기술, 정보를 집중해 드론과 모바일 결제, 고속철도 등의 최첨단 기술 개발과 실용화까지 선도하는 등 놀라운 속도로 그 덫을 보기 좋게 돌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에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그런 방향으로 계속 질주하겠다는 청사진 제시였고, 느긋했던 경쟁국들은 최근의 중국 실적에 비춰 현실감이 있다고 봤는지 경악했다. 그들 주장대로 중국이 기술을 훔쳐내든 자체 개발하든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황화론’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중국에 대한 서방의 시선에는 중국의 흥기에 대한 두려움과 멸시가 뒤섞여 있다. 그런 만큼 중국의 성취가 그들에겐 경계심과 함께 더 큰 놀라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2020년대 말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는 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하여 만일 최대시장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면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우선할 것이고, 기업은 중국과의 거래에 힘을 쏟게 될 것이다. 인민폐(위안)가 결제통화로 널리 통용되면 달러는 기축통화 지위조차 위협받게 될지도 모른다. 때를 놓치기 전에 중국의 기술진보 속도를 늦춰야 한다. 패권 상실의 위기감에 사로잡힌 미국 정부가 필사적으로 중국으로의 기술수출 제한조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하라 마코토가 요약 정리한 미중무역 전쟁의 배경이다.

도쿄대학 부총장을 지낸 다나카 아키히코 정책연구대학원대학 학장도 냉전 붕괴 이후 20년간 급속도로 진행된 중국 자신의 변화에 주목했다.

“냉전이 끝났을 때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일본의 4분의 1 정도였다. 그것이 2010년에 일본을 추월했다. 중국이 공표한 군사비도 1990년 무렵에는 일본 방위비보다 훨씬 적었으나 지금은 일본의 3배가 넘는다.”(<중앙공론> 2018년 11월호) 이를 공식환율이 아니라 실질구매력 지수(PPP)로 환산하면 그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진다.

중국의 약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를 몇 가지만 더 열거해 보자.

‘2006년에 미국 경제규모는 중국의 경제규모보다 5배나 더 컸다.(달러 환산) 2017년에 그것은 1.6배로 좁혀졌다.’(<이코노미스트> 2018년 10월 20-26일)

“40년 전 일본이 훨씬 더 컸던 경제규모는 역전돼 지금은 중국이 일본의 2.5배가 됐다.”(<아사히신문> 사설 ‘일중 평화우호 40년-주체적 외교를 연마하는 계기로’, 2018년 10월 22일) 이 사설은 바로 이렇게 이어진다. “중국이 나아가 미국에도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냉전이라고나 해야 할 만큼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찰을 빚고 있다.” 사설은 이런 변화에 일본 외교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주체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미 일변도의 몰주체적 외교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이고, 좀 더 급진적인 일부 논자들 눈에는 지금 상황이 일본이 미국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될 호기로 보일 것이다.

 

 

미국이 이길 수 없는 싸움?

다니구치 아키타케 주오(중앙)대 교수는 미중 무역전쟁을 바라볼 때 파격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 ‘트럼프 현상’에만 너무 눈을 빼앗기지 말고 본질을 보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첫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1980년대의 미일 무역마찰 때처럼 미국이 산업경쟁력을 잃게 될 때 종종 발동돼 상대국에 양보를 끌어냄(일본의 경우 1985년의 ‘플라자 합의’)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되는데, 이번 미중 무역전쟁은 과거의 것과는 다르단다. 이번엔 미국이 양보를 얻어내더라도 트럼프가 집착하는 낡은 제조업 중심의 이른바 ‘올드 이코노미’의 경쟁력을 회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둘째, 이번 무역전쟁은 무역수지에 초점을 맞춘 올드 이코노미 싸움이 아니라 지적재산권이 초점인 뉴 이코노미 싸움이다. 셋째, 이번 싸움은 무역마찰과 같은 산업경쟁력, 관세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이며, 안보문제가 전면에 드러나 있는 패권다툼과 얽혀 있다. 다니구치 교수는 따라서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한 중하층의 분노와 절망이 보상을 받기보다는 패권다툼에 동원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중앙공론> 2018년 11월호)

이런 변화를 신냉전이라는 틀로 읽어낼 수 있을까.

 

 

중국 일본의 급속한 접근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일본과 중국이 급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지난 25일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이 일본 총리로서는 7년 만의 방중이라는 사실로도 그동안의 냉랭했던 양국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냉랭의 해소를 위해 먼저 움직인 것은 일본 쪽이라고 <아사히>는 전하고 있다. 다분히 트럼프의 보호무역으로 피할 수 없게 된 일본의 타격을 의식한 전략적 접근이다. 트럼프는 당선되자마자 일본이 공들여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를 걷어 차버렸을 뿐만 아니라 주일미군 주둔비용을 일본이 전액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 철수까지 불사하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자동차에 대한 관세장벽, 새로운 통상교섭 얘기도 꺼냈다. 새로운 통상교섭은 곧 일본이 농산물 수입개방에 반발하는 농민 표를 의식해서 거부해 온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논의를 시작한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시작하기로 이미 합의했다. 3기 연임에 성공해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갈아치우고 최고목표인 개헌까지 감행하겠다는 아베 총리로서는 트럼프 정권과의 관계를 잘못 풀면 그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중국 접근이 그에겐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이 접근해 오는 일본에 문을 열기로 확정한 것은 이달 초의 펜스 부통령이 허드슨연구소에서 공표한 미국의 대중정책의 골격, 이른바 ‘신냉전 선언’ 직후였다.

“(미국이) 2000억 달러(약 220조 원)분의 수출에 높은 관세를 매겨도 누계 성장률 하락은 0.3%포인트”라고 시진핑 주석의 경제 브레인은 얘기했다지만, 그런 그도 “걱정되는 것은 마인드”라고 했다는데, 실제 실적이 좋지 않다. 올해 7~9월 중국 국내총생산(GDP)는 실질 6.5% 증가로 4~6월보다 0.2%포인트 감속했고, 세계금융위기에 시달렸던 2009년 1~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란다. 지난 9월 말 시 주석이 동북부 헤이룽장성 시찰 때 “지금만큼 많은 시련과 곤란을 만난 적이 없다. 보호주의가 격화되면 자력갱생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을 만큼 중국도 매우 긴장하고 있다. 마오쩌둥의 ‘자력갱생’을 다시 끄집어낼 정도로.

중국 외교 소식통을 인용한 일본 쪽 분석에 따르면, 중국이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것은 그것이 가져다줄 직접적인 효과보다는 “세계 1위와 3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압력을 가해 올 사태는 절대로 피해야만 할 사정” 때문이었다. 특히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연구소 연설 뒤 일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졌고 아베 총리의 방중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외교과제로 격상됐다는 것이다.

 

 

단기 전술 구사역량이나마 있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일의 접근이 미중 패권경쟁 구도를 흔들 정도로 장기 전략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중일 접근에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올 경우(일본에 간섭할 경우) 아베 총리가 어떻게 처신할지에 대해 중국 쪽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중국의 한 외교연구자는 ‘중일관계 개선은 단기적인 전술’이라고 지적했다.”(<아사히> 10월 22일) 일본에서도 자주외교에 대한 요구가 강하지만, 아베 정권이 미일동맹의 틀을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걸 중국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아베는 ‘친중’이 곧 미국에서 멀어진다는 건 아니라고 아예 명시적으로 못을 박아놨다.

단기 전술로서의 중일 접근. 한반도를 주전장으로 삼는 그레이트 게임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는 지금의 정세 급변 속에서 우리 외교도 우리 국익을 위해 이런 류의 단기 전술이라도 구사할 수 있을 정도의 자주역량은 지니고 있는 걸까.

한승동/ 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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