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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into 아시아’] ‘아시아 시대’의 한국 파트너는 아세안…왜 미·중·일이 아닐까?

by | 2020년 10월 7일 | 국제, 기획 · 연재, 정호재의 'into 아시아'

동아시아를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동남아시아를 얼마나 경험하셨나요? 나라 밖에 많이 나가본 오피니언 리더들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주제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는 요즘 미국, 중국, 일본의 세력이 교차하고 주요 선진국들이 앞 다퉈 경쟁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우리 정부나 민간 기업들도 10여 년 전부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에 러브콜을 보내며 다양한 협력관계를 확대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과 인도를 겨냥한 신(新)남방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해 11월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는 신남방 외교의 분수령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시각이나 경험, 역량은 아직 짧고 얕은 편이다.
<피렌체의 식탁>은 아시아를 보는 사고(思考)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정호재의 ‘INTO 아시아’]를 연재한다. 언론사 기자 출신인 정호재 필자는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답사하며 태국의 탁신, 말레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각국의 리더를 만났다. 요즘엔 싱가포르와 미얀마 등을 오가며 연구 활동 중이다. 정호재 필자는 학문적 탐구와 현장 탐사·체험을 바탕으로 여러분들을 아시아의 깊숙한 세상으로 안내할 것이다. [편집자]

#21세기엔 미국→아시아 패권 이동?
  아시아란 지역 개념 여전히 모호
#미·일이 주도하는 ‘아시아 시대’
  냉전구도 지속, 미·중 선택 딜레마  
#한국, 韓流로 아시아 지역에 역동성
  아시아의 미래비전 과제 찾을 운명  

#중화사상의 ‘동아시아’ 개념 벗어나
  동남아로 지리적 사고를 확장해야  
  서로 공통점과 동지적 관계 느끼자

대개 특정 분야를 전공한 사람은 그 프레임(frame)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믿으며, 그것을 제대로 몰라주는 타인에게 짜증과 함께 각성을 독려하기 마련이다. “거봐, 이게 정말 중요한데 당신은 이걸 모른다고….”
이번 연재의 첫걸음부터, 비겁하고 유감스럽지만 필자도 어쩔 수 없이 동일한 추태를 반복해야 할 듯싶다. 이른바 ‘아시아 시대’를 맞이해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를 제대로 보는 일이 한국인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숙제가 되었다는 얘기부터 강조하고 싶다. 하필이면, 전통의 유럽도, 요즘 잘 나가는 미·중·일도 아닌, 세계체제 속의 약한 고리인 동남아를 들먹이는 것일까? 이것은 섣부른 호들갑일까 혹은 늘 벌어지는 편협한 전문가의 함정일까?

1. ‘아시아의 시대’는 과연 도래하나?

미국의 패권이 한창 왕성한 21세기 초, ‘팍스 아메리카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동시에 ‘아시아의 시대’(Age of Asia)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분명히 모두가 변화의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나란히 세계 2, 3위 경제대국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성장 속도, 인구 집중도, 생산력 비중, 문화 융성, 갈등의 폭발성 등의 측면에서 요즘 동아시아 지역을 빼고는 국제정세를 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동시에 모순적인 상황도 된다. 어찌 미국의 시대와 아시아의 시대가 동일한 시공 속에 함께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당연히 당대의 지식인은 이런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시키는 여러 장치와 기법을 개발하기 마련이다. 현재 대중에게 가장 널리 퍼진 시각은, 미국이 꽉 찬 ‘보름달’이라면 아시아는 차오르기 시작한 ‘반달’이라는 해석이다. 달이 차면 기울기 마련이니, 조만간 미국은 가고 아시아의 때가 찾아오리라는 기대다. 영국이 미국에게 패권을 물려주었듯, 글로벌 패권이동의 방향과 결론까지 담은 무척이나 명쾌한 시각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낙관론이다. 미국은 건국한지 불과 250여 년에 불과한 젊은 국가다. 미국의 시대라는 건 아주 후하게 쳐줘도 대공황을 극복한 1940년대 이후다. 기껏해야 8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건데, 로마제국의 400년 치세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역사상 대제국의 흥망성쇠의 타임라인을 고려하면 미국의 시대는 이제야 시작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오늘날 첨단무기체제, 선진금융,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기술(BT) 등 전 세계 주요 산업과 그 혁신을 주도하는 세력이 미국을 정점으로 한 서구세계라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여전히 많은 이들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안함을 느낀다. 국제정치는 학문의 속성상 원래 세계평화의 지속을 위해 패권국의 존재를 긍정하는 편이다. 나아가 LGBT 등의 성소수자 인권문제나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한 선제적 문제의식 등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빛이 바랬지만) 글로벌 담론을 주도하는 미국에 대해 대응 논리를 작동할만한 세력은 지구상에 별로 없다.

여기에 미국이 있는 북미 대륙이 태평양을 껴안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1990년대 초 냉전질서의 해체를 전후해 태평양 주위의 모든 이슈에 마치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진실을 말하자면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그 이전부터 미국은 태평양을 자기네 안방으로 삼고, 동시에 인도양을 제2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기면서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해왔다.
그래서 등장한 두 번째 해석이 “미국 역시도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서사 구조다. 아시아 시대와 미국의 시대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해석은 그러니까,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 시대를 말한다.


2. 아시아란 개념의 모호성

‘아시아 시대론’이 결정적으로 내적인 모순에 직면하는 지점은 아시아라는 지역개념이 그다지 균질하거나 중앙집권적인 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화(中華) 질서라고 했다면 오히려 한국인에게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미국의 시대가 저물어간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그 패권을 인수받을 주체가 과연 ‘아시아’라고 확신할 수 있냐는 것이다. ‘아시아 시대’란 아시아인들의, 낭만적인 헛바람이 잔뜩 들어간 일종의 추상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다는 얘기다. 아시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일본과 중국은 과연 아시아의 일원인가?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도 아시아인가? 그럼 한국은? 이같은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만다.

때문에 ‘아시아 시대’에 대한 낙관적인 비전과 계획을 세우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이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무척이나 현실감각이 둔한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는 21세기 일본의 자민당체제가 아시아 전체에 들이미는 질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시대인가? 혹은 중화의 시대인가?” 일본은 명확하게 전자에 배팅하고 있는 형국이고, 지난 10년 넘게 고집스레 한국정부에 그 길에 동참하라고 주문하는 게 국제정치의 논리다. 야만에 가까운 중화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얘기고, 그 대신 세계적 문명의 길에 동참하라는 강권이다.

3. 한국의 딜레마, 미중의 선택 요구

추상적으로나마 ‘아시아의 시대’를 준비해 온 한국으로선 쉽게 형용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특히나 한국이 처한 정치경제적 고민은 1945년 분단 이후 냉전구도의 확산, 반공주의,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민주주의라는 대립구조로 무척이나 복잡하게 계승되어온 측면이 있다. 20세기 냉전시대를 한참 지난 오늘날에, 중국이냐 미국이냐, 그런 질문은 한국인에게 너무도 잔인한 선택이나 다름없다. 1953년 한국전쟁의 비참한 휴전은 물론이고 1000년 넘게 이어온 한국의 지정학적인 불편함을 일깨우는 공세적인 프레임인 탓이다.

당연히 문제 자체가 스스로 정답을 내포한다. 그 어떤 조사기법을 적용하더라도 중국과 미국이라는 양자택일에 중국을 선택할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1945년 이후의 한국은 미국 친화적으로 설계가 되어있고 그렇게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중국보다는 홍콩·대만에 훨씬 더 편안함을 느끼고 일본의 선진 문물을 베끼려고 노력했던 세대가 여전히 조직의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지성계는 또 어떤가? 한국의 학계를 좌지우지하는 핵심 지식인들의 유학코스는 압도적으로 미국이 많다. 미국에서 공부한 지성인에게 우리는 사사(師事) 받았고 자연스레 미국적 질서를 동경해온 것이다.


4. 아시아란 새로운 정체성의 확산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이 질문을 딜레마라고 여기는가. 우리가 답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 대목이 된다. 우리는 왜 이 시점에 미·일이 주도하는 아시아 시대에 왠지 미덥지 못한 느낌이나 불안감을 갖게 된 것일까. 이 질문은 앞으로 필자는 물론이고 우리 세대, 나아가 한국인 모두가 응당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답해야 할 시대적 숙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필자의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는, 냉전체제 이후 미·일이 주도한 구(舊)체제의 연속선상에서 한국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현실인식이다. 이같은 태도는 뚜렷하게 일본을 겨냥한다. 아시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번영을 위한 선결조건은 무엇보다 한반도의 냉전구조 탈피다.
그런데 유독 일본만은 그 역사적 흐름에 매번 딴지를 걸고 새로운 조건을 덧붙여왔다. 일·미가 주도하는 구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특히 2019년엔 임계치를 넘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제는 지식인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을 통해 그 현실을 알아차린 꼴이 됐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가 ‘메이지(明治)유신 따라 하기’만으로 선진문명이 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뚜렷이 감퇴했다.

둘째는, 중국 대륙의 빠른 변화다. 이는 필자가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많은 한국인이 중국으로의 여행이나 비즈니스 혹은 혈연적 관계로 지난 20여 년간 꾸준하게 쌓아온 객관적 현실 인식이다. 중국의 플랫폼 위에서 한국이 플레이어로 뛰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2016년 사드 배치 후 중국의 가차 없는 한한령(限韓令)을 계기로 이같은 환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서 중국의 존재감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에 있어 중국이란 존재는, 칼로 무 자르듯 냉큼 분리할 수 없는 상대라고 재인식하게 된 것이다.

셋째는, 아시아라는 새로운 정체성의 빠른 확산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동아시아’라는 틀로 표출돼 왔지만, 인종/문화/정치경제적으로 아시아와 서구의 존재기반이 다르다는 인식이 그동안 뚜렷하게 자리매김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는 서구와의 교류가 늘면 늘수록 아시아인에게 부메랑처럼 다가온 인식의 대전환이기도 하다. 아시아문명과 서구문명이 꽤나 다르다는 깨달음, 우리가 서구를 따라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근원적 일체화는 어려울 것이란 비관, 그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고 해도 두 세계는 동일한 플랫폼 위에서 공정경쟁을 펼치기 쉽지 않다는 현실인식 말이다.

5. 한국, 아시아人에 미래 비전을 선사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아시아’라는 지역개념에 힘을 더한 국가가 바로 21세기 한국이다. 한국인들은 이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고 있는데, 실제로 수많은 아시아 인민들이 한국의 근대화 성과와 현대화 비전에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흐름을 뭉뚱그려 ‘한류(Korean wave, 韓流)’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패배감을 지닌 아시아인에게 근대화의 영감을 준 것이 일본이라면, 중국은 아시아의 저력을 확신시켜 주었고, 한국은 나아가 미래 비전을 동(同)시대에 선사하는 셈이다. 이는 한국인이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에게 다가온 새로운 현실이자 시대적 과제가 되어버렸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쌓아온 지역은 바로 아세안(Asean) 지역, 즉 동남아시아다. 바스코 다가마 이후 500년이 넘는 서구와의 교역 및 침탈을 거치며 유럽중심주의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어떻게든 동아시아와 더불어 지역의 자주권(sovereignty)과 진정성(authenticity)을 찾으려 노력해 왔다. 이같은 인식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1960년대의 비동맹운동이고, 1970년대의 아세안이라는 지역기구의 창설로 드러난 것이다.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은 한국인에게 무척이나 낯선 현실이다. 과거 봉건왕조 시대는 물론이고 70년 전 시작된 냉전질서의 틀로도 쉽사리 포용하기 어려운 지역임과 동시에 21세기 세계체제의 관점으로도 그 중요성을 간단히 파악하기 어렵다. 너무도 다양한 민족과 종교와 문화가 뒤섞여 정체성을 알기 힘들고, 정치경제적인 위상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동남아는 ‘저임금의 생산기지’이거나 ‘천연자원의 보고’, ‘해외관광의 명소’라는 일본제국의 인식 수준에 그쳐왔던 게 사실이다.

6. 아세안, ‘동아시아’ 낡은 개념 깰 존재

아세안이 한국에 중요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동아시아라는 낡은 개념을 깨뜨릴 거의 유일한 지렛대의 받침점이 될 수 있어서다. 한·중·일이라는 케케묵은 아시아의 개념에는 절대적으로 중화사상에 빨려들어 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시원섭섭할지는 몰라도 한국의 지성계가 극복해야 할 ‘제1의 사고(思考)’는 바로 한·중·일 중심의 동아시아 역사관이다. 사상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중국의 왕도(王道)정치 철학과 조공무역을 두 축으로 삼는 동아시아 사관으로는 우리가 지정학적인 한계를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 미·일 중심의 서구지향적인 탈아입구(脫亞入歐) 사관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이 뭔가 큰 그림을 갖고 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주어진 낡은 프레임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미 서구가 18~19세기에 열풍처럼 경험했던 지정학적, 지리적 사고의 확대다. 그 첫걸음은 바로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면서 변방으로 치부돼온 동남아시아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일반 대중에게 거의 무제한으로 확대된 항공서비스 및 정보통신기술이 낳은 새로운 현실이다. 동남아를 인식하고 우리의 활동반경이 동북아 중심, 미국 중심에서 벗어날 때 한국인의 세계관 역시 인도-중동을 넘어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래야 한국인이 세계인으로 진화될 수 있다. 필자는, 감히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

동남아는 기존의 인식 틀로 퍼뜩 이해하기 쉽지 않는 시공간이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와의 교류 역사가 짧기 때문이고, 한국의 지식세계가 일·중 및 서구 식민주의에 오래 매몰된 탓이다. 또 하나의 작은 이유가 있다면, 이제까지의 동남아 전문가들이 아시아의 공통점에 주목하기보다는 동남아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탓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과는 무척이나 다르고 기괴한, 특수성이 보편성을 압도하는 지역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를 내려왔다. 그러나 어느새 동남아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매년 1000만 명을 웃도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정도는 시나브로 동아시아 범주에 포함되는 새로운 현실 앞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한국으로선 ‘아시아주의’라는 공통의 지역비전을 함께 주창할 동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중국과 일본은 여전히 동지로서의 아시아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있다. 단지 천연자원의 생산지이자 패권확대를 위한 징검다리로 여기는 수준에 그친다. 아시아라는 거대한 지역공동체를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지역은 한반도와 아세안만 남게 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비전을 일구는데 아세안의 협조 또한 필수적이다. 아시아, 특히 동남아는 우리가 절대 놓칠 수 없는 로컬주의와 세계화주의를 포함하는 미래 비전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살짝은 거창하지만 이 정도로 [정호재의 ‘INTO 아시아’] 연재의 변을 시작해도 무례가 되지 않을 듯싶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아시아를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아시아가 한국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비하면 훨씬 품이 덜 들고 간명하다. 서로의 차이만을 강조하다간 우리는 아시아를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만 달리게 된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서로 공통점을 구하고 눈앞의 당면과제를 함께 풀 수 있는 동지적 관계만 느끼면 된다. 넘어야 할 낯선 봉우리이지만 동시에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정호재 필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짧지 않게 기자생활을 했다.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를 두루 답사하며 태국의 탁신, 말레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각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번역서로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2020년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펴냈다. 싱가포르와 미얀마 양곤 등을 오가며 연구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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