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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편집 2020. 10-26.16:02

[권석준의 ‘반도체 전쟁’③] 中 기초과학의 도약…美 독주시대는 끝나는가?

by | 2020년 9월 23일 | 국제, 기획 · 연재


미중 반도체 기술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미국 정부가 화웨이(華爲) 제재를 본격화한 이후 전 세계의 관심은 중국의 대응에 쏠리고 있다. 권석준 필자는 중국의 옵션을 ①버티기 게임 ②갈라파고스化 ③백기투항으로 압축한 바 있다.

<피렌체의 식탁>은 미중 반도체 전쟁을 집중 분석하기 위해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는 권석준 박사의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권 박사는 세 번째 칼럼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을 짚어본 뒤 차세대 기술 전쟁의 뿌리인 기초과학 분야에서 주요국의 현 주소를 분석한다.
결론은 우리의 상식과 꽤 다르다. 중국이 10년만 잘 버티면 열세를 뒤집을 잠재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강점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권 박사는 이를 ‘부러움 반, 두려움 반’이라고 표현한다. [편집자]

#中 반도체 올인은 도박이자 모험
  첨단 수준 못 미치면 수십조원 손실
  옛 소련의 무한군비경쟁 전철?
#기초과학 수준은 세계 톱클래스

  화학·재료과학은 이미 세계 최강
  한국, 재료과학 분야 상대적 강세
#차세대 기술 핵심은 신소재 개발
  한중 간 경쟁서 100대1로 불리
  부러움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돼
   

[권석준의 ‘반도체 전쟁’①] 중국이 20년 가꿔 온 꿈, 10년 안에 무너질 수 있다
https://firenzedt.com/?p=10059

[권석준의 ‘반도체 전쟁’②] 중국의 옵션 셋: 버티기 게임, 갈라파고스化, 백기투항
https://firenzedt.com/?p=10179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

반도체 기술의 한 세대는 무척 짧아서 3~5년 정도가 한계이고, 그 세대의 기술을 감당하기 위해 투입된 각종 장비는 다음 세대로 승계되어 재활용이 거의 되지 않는다. 사실상 그대로 매몰비용이 되는데, 그것이 수조 원, 수십조 원이나 된다. 그래서 한 세대 기간 동안에 그 매몰비용보다 적어도 두 배는 벌어야 다음 세대의 투자재원, 다다음 세대의 연구개발(R&D) 비용이 나오는 구조다. 이게 감당 안 되는 업체들은 일찌감치 나가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현금 회전율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자금 회전이나 효율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 차원에서 집중 투자를 강행했다. 그 이유는 거대한 시장 규모(2020년 2600억 달러)에 대한 장밋빛 예측에다 반도체 자급률(2020년 15.6%)을 2025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거대한 국유은행들은 반도체 산업을 집중 지원해줬고, 반도체 관련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그림자 금융(2차 금융시장)을 통해서도 돈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국 경제가 한 자릿수 성장률로 떨어지면서 내부에서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5% 미만의 성장률 기조에서 반도체 분야에 대한 올인은 큰 도박이자 모험이 아닐 수 없다. 20년 넘게 ‘부동산 거품’이 가득 차오르는 마당에, 그 수혜의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인 반도체 산업에 국가 자원을 쏟아 붓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글로벌 경제는 당분간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 다만, 코로나19 조기 종식을 선언한 중국은 지난 1분기에 –6.8%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2분기에는 3.2%로 V자형 반등을 보였다.

옛 소련의 무한군비경쟁 전철을 밟나?

중국의 반도체 올인 전략은 20세기 냉전 시대에 옛 소련이 미국과 무한군비경쟁을 했던 것과 오버랩 된다. 물론 군비경쟁이 아니었더라도, 공산주의 시스템 상,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이 미국과 서구자본주의 국가를 따라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의 기치 아래, 반도체 굴기를 일종의 기술 생태계 자립, 기술 독립의 문제로 보고 막대한 투자를 감당해왔다. 지금 상태로만 보면,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형국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중국 정부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21세기는 데이터의 생산·처리, 그리고 그것을 누가 더 빨리, 더 싸게 고급 정보로 잘 만드느냐 하는 지식경제 싸움이다. 그 과정에서 핵심 기술이 바로 반도체와 IT 서비스 산업이다. G2 강대국으로 올라선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기술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이 분야에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술 굴기에 집착하다 실책 잇따라

여기서 중국 정부가 무리수를 둔 대목이 있다. 정석대로 기술을 개발하고 내부 인재를 키우고 기초원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원칙을 지켰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외국계 기업들의 지적재산권(IP)을 침탈하고, 해외 기업들을 무리하게 인수합병하고, 정부 주도로 해킹 행위를 저질렀다.

기술패권의 도전자인 중국으로선 눈치껏 도광양회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일찍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중국몽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鄧小平)이 후대에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훈요 5조(冷靜觀察, 穩住刻步, 沈着應付, 韜光養晦, 有所作爲) 중 하나로 남긴 것이 이러한 세계정세 변화까지 내다 봤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길게 보면 중국과 미국이 언젠가 치열한 패권 다툼을 하게 되리라고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21세기는 정보와 기술의 싸움을 통해 패권을 다투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패권국가의 다툼은 그 나라의 국력과 기초 체력에 달려 있음은 만고불변의 역사적 교훈이다.
중국은 과거 40년간 연 평균 9%대의 고도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성장률이 5% 안팎으로 떨어지면서 부작용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덩샤오핑이 이야기한 ‘빛(光)’을 제대로 ‘감추지(韜)’ 못했고, ‘어둠(晦)’을 제대로 ‘키우지(養)’ 못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국 정부가 뻔히 보이는 기술 격차 해소의 길을 마다하고, 비정상적인 편법과 불법의 길을 택함으로써 고난의 행군은 시작됐을 것이다.

요즘 상황으로 봐서 중국이 미국의 제재조치에 당장 백기를 들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자신감은 ‘주동작위(主動作爲)’란 구호에서 잘 드러난다. 대국으로서 할 일을 대국의 자격으로 하겠다는 자세를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여차하면 기술 독립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반도체 산업 굴기는 시진핑 체제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되는 대마불사의 아이템이다. 만약 끝없는 군비경쟁 때문에 나라가 피폐해져 갔던 옛 소련의 코스로 중국이 비가역적인 진입을 하게 된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어마어마한 매몰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실패 때문일 것이라고 필자는 조심스럽게 예견해본다.

막다른 골목에 돌파구는 있을까?

물론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이다. 미국 주도의 기술 표준에서 완전히 그 궤를 벗어난 새로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중국이 개발해 이를 주도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그들이 자랑하는 양자통신 기술, 양자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아예 다른 방식, 예를 들어 나노시트 (nanosheet), 나노와이어 (nanowire), 나노튜브 (nanotube) 같은 나노 재료 기반의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field-effect transitor, FET)를 개발하거나, GAA (gate all-around) FET, QCA (quantum cellular automata) 같은 신개념 로직 아키텍처나 메모리 기술, 스핀트로닉스 (spintronics) 차세대 반도체 기술 등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돌파구는 창의적인 문화 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정부 주도 방식으로는 선형(線形)으로 예상되는 궤도에서 기술적 돌연변이가 나오지 못할 것 같다. 기술의 표준을 당(黨)이 정하고 기술의 범위를 정부가 정하는 체제에서는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설사 출현한다 해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전까지 무사히 성장해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된다.

2020년대, 나아가 2030년대의 중국은 과연 미국에 필적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앞 다퉈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그 전선의 한가운데 있는 반도체 기술 전쟁, 차세대 통신 기술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통일된 의견이 없다. 그만큼 이 분야에는 불확실한 변수가 많고, 일부는 정치적인 요소에 속하는 것이라 중장기 전망을 내놓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깝고 먼 역사의 교훈을 참고할 수는 있다. 특히 냉전 시대에 옛 소련의 군비경쟁에 대한 올인은 가장 직접적인 교훈이 될 수 있다. 아마 중국공산당 정부도 옛 소련의 몰락 케이스를 많이 공부했을 것이니, 이를 참고해 자체적으로 위험 회피 전략을 공들여 세워 놨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위험 회피 전략은 미국이 예상하고 있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 정부에 아직 스마트한 전략가들이 남아 있다면, 오히려 지금의 반도체 전쟁은 그들이 바라는 (혹은 설계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언제까지나 유일패권국가(G1)로 군림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조금씩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증상을 보이지만),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가는 것처럼, 적어도 앞으로 한두 세대는 기술 헤게모니를 유지할 것이라 본다. 이런 차원에서 중국의 전략가들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반도체 대마’를 죽일 수도 있다는 옵션을 내놓는 수순까지 가야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본다. 거꾸로 미국 입장에서는 G1 헤게모니를 더 굳세게 지키기 위해서라도 G2 중국을 더욱 철저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초과학에서 세계 톱클래스

앞서 살펴보았듯, 2020년대의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기술 전쟁에서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다. 제재조치가 지속되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자력갱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각국의 기술 경쟁은 표면적으로는 첨단 기술의 쟁패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첨단 기술의 뿌리 단계부터 격심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뿌리는 어디인가? 바로 기초과학 연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전 세계의 선진국들은 자국의 기술력 강화와 독립성 쟁취를 위해, 기초과학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결국 첨단 기술 개발로 이어지기 때문에,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의 국가 경쟁력을 위해 더욱더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조사결과가 최근 일본에서 발표했다. 지난 2016~2018년 사이 3년간 과학기술 각 분야의 학술 저널에 발표된 연구논문에 대한 주요국의 점유율을 상세하게 비교 분석한 보고서다.


#한국의 최강 무기는 재료과학

먼저 한국과 관련된 데이터를 보자.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기초과학 분야에서 한국이 가진 최강의 무기는 역시 재료과학이다. 그 다음으로 화학, 물리학, 공학이 평균 대비, 꽤 강세를 보인다. 상대적으로 지구환경, 임상의학, 기초생명과학 분야가 약세다.
재료과학은 전체 점유율과 비등할 정도로 상위 논문 점유율이 유지되는데, 이는 한국에서 나온 논문들이 양과 질 모두 세계 톱클래스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근 20년 넘게 지속된 나노과학 분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집중 투자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화학 분야 역시 비슷한 기조이지만 점유율 자체는 재료과학보다는 다소 낮다. 그래도 화학 역시 논문의 양과 질 모두 준수한 편이다.

다만 생명과학 쪽의 괴리가 조금 아쉬운데, 이는 한국의 생명·의료분야 기초연구가 아직 세계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물론 이 역시 20년 전에 비하면 일취월장이기는 하다. 만약 정부의 집중 투자가 지금처럼 지속되고,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 벤처기업들의 성공 사례가 꾸준히 나와 선순환 투자가 이루어지면, 생명과학 및 임상의학 분야의 연구력도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눈에 띄게 영향력 약화

흥미로운 부분은 일본이다. 일본은 예상과 다르게 학문 전 분야에서 그 영향력이 점점 줄고 있는 모양새다. 즉, 1990년대 후반부터 거의 매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온 영광을 앞으로도 재현할 가능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게 여실히 보인다. 물론 화학과 물리학은 여전히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강세지만, 논문의 점유율 대비, 그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대략 20~3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과학 분야의 원천 연구 결과가 노벨상으로 연결됐음을 감안할 때, 일본은 2030년대까지 간혹 노벨상을 배출하겠지만, 2040년대 이후부터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공학, 재료과학, 수학 같은 분야에서 오히려 그 영향력이 한국에 약간 못 미친다. 물론 논문 점유율, 영향력 논문 점유율만 가지고 이를 논한다는 게 무리이지만, 정말 의외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독일·프랑스, 생각보다 연구력 취약

이번에는 다른 나라의 데이터를 살펴보자. 전반적으로 고른 논문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전통의 독일은 확실히 화학, 물리학 점유율이 높은 편인데, 수학은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노벨상을 다수 수상한 과학기술 분야의 오랜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 중, 제일 고른 편에 속하는 연구력을 보인다. 생각보다 생명과학, 임상의료 분야의 연구 역량이 타 분야보다 우수하며, 공학은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 독일의 제조업 경쟁력이 향후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기초과학 강국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던 프랑스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대부분 분야의 논문 점유율이 2~3% 수준이며 그나마 물리학이 상대적으로 강세이다. 나머지 분야는 프랑스의 위상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론 기초과학 전 분야에 걸쳐 논문 점유율과 상위 논문 점유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고 있다. 프랑스 학계가 고르게 알찬 연구를 해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화학, 물리학, 수학의 상위 논문 점유율은 한국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임상의학, 기초생물학 분야 역시 대동소이하다.


#중국, 화학-재료과학 세계 최강

그런데 가장 충격적인 데이터는 중국에서 나타난다. 미국을 뺀 독일, 프랑스, 일본 등과 눈금 단위가 다를 정도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중국의 기초과학 분야는 지난 20년간 논문의 편수뿐만 아니라 그 질까지 급성장했다고 알려져 왔는데, 이번 분석 결과에서 그 성과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화학, 재료과학은 가히 세계 최강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고, 공학, 수학 역시 어느새 세계 톱클래스가 됐다. 물리학, 지구환경 쪽 역시 최고 수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임상의학, 기초생물학 분야가 약해 보이지만, 이마저도 톱클래스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특히 재료과학. 화학 분야의 논문 영향력은 미국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더 크게 경각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이들의 영향력 상승 속도가 전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는 점이다.

#미국, 임상의학-기초생명과학 우세

미국 역시 임상의학, 기초생명과학, 환경지구과학 분야가 강세이고, 물리학, 재료과학, 화학도 강세를 보이는데, 공학은 특별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 (즉, 기본 논문 점유율과 상위 영향력 논문 점유율이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추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그래픽에서 미국과 중국의 축 눈금은 같은 단위임)

이 글에 앞서 필자는 ①②편에서 중국의 현재 기술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두세 세대 정도 차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기 모드로 ‘기술 자립’을 밀고 나가게 된다면, 장차 기초과학 분야의 성과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기초과학, 특히 반도체 첨단 기술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물리학, 재료과학, 공학, 화학 분야의 연구 성과들이 곧바로 시차 없이 반도체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연구 성과의 상당 부분은 차세대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잠재력은 미국을 앞선다고 말할 수 있다.

차세대 기술의 핵심은 신소재 개발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리소그래피 이후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 성립은 신소재 개발이 핵심이다. 아예 기존 개념과 전혀 다른 소재나 소자의 아키텍처가 점점 더 필요해지는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분야다.

TMDC (transition metal dichalcogenide) 같은 2D 화합물 반도체, 그래핀 (graphene) 같은 탄소 신소재, 반도체 나노와이어 (nanowire), 나노시트 (nanosheet), 나노막대 (nanorod), 나노리본 (nanoribbon), 양자 셀룰러 오토마타 (quantum cellular automata), gate all around (GAA) FET, 3진수 로직 구조, 4진수 로직 구조, 스핀트로닉스 (spintronics), 光 컴퓨터 (optical computer), 실리콘 포토닉스 (silicon photonics), 스커미온 자성재료 (Skyrmion magnetic materials), 뉴로모픽 기술 (neuromorphic technology), 인공신경망이 물리적으로 구현 가능한 소재 (physical system for artificial neural network) 등등.

중국, 부러움 넘어 두려움 느낄 수준

차세대 첨단 기술 개발은 당장 써먹을 실용기술을 찾는 민간 기업보다 연구 영역 제약이 크게 없는 국가 연구소나 연구중심 대학에서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거액의 연구비가 필요한 특수 장비·소재를 많이 써야 돼 웬만한 나라에선 기초과학 분야 투자를 전방위로 확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0년간 중앙·지방 정부, 공기업 차원에서 각 연구소·대학의 기초과학 연구들을 경쟁적으로 지원해 왔고, 이제 그 성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인해전술’이라고 비웃음 받던 수준을 벗어나, 이제는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세계 최정상급 저널에서도 중국 저자들의 연구를 많이 찾아볼 수 있을 만큼 그 역량이 눈부시게 약진해왔다.

이대로 10년만 더 지나면 아마 우리에게 알려진 각 분야의 저명 학술지 논문의 저자 절반을 중국인이 차지하고, 편집진의 대다수가 중국인, 심지어는 일부 저널 퍼블리셔(publisher)의 절반가량도 중국 자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이미 그러고 있는 중이다)

학문의 주도권과 기술의 주도권의 차이를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체감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결국 이 둘이 시차를 두고 첨단 기술 개발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반도체 선진국들이 결코 현재의 기술 격차에 안심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반도체 굴기의 맥락에서, 중국의 재료과학, 물리학, 화학 분야의 눈부신 약진을 보면 한편으로는 부러움을,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한중 신소재 개발경쟁, 100대1로 불리

재료과학, 물리학, 화학 분야의 연구, 특히 신소재 개발을 위한 실험과학 분야의 연구는 신물질 특허, 신공정 특허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중국에서 반도체 소재/공정/소자 관련 기업은 수천, 수만 개에 이르는데, 이들 기업이 인력과 자본을 쏟아넣어 100개 중에 1개, 1000개 중에 1개를 골라낸다는 각오로 R&D 투자에 매진한다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100개의 후보 소재 가운데 간신히 1개의 신소재를 찾고 있을 때, 중국 연구진은 같은 시간 동안 10,000개의 후보 소재 가운데 100개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100개의 물질에 모조리 특허를 걸어서 원천 기술을 독점할 수 있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돌파구(breakthrough)가 과연 어디에서부터 터질 것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지만, 결국 100대1의 경쟁 여건을 기반으로 중국이 R&D를 위해 돈과 인력을 쏟아 넣으면서 내수시장이란 성(城) 안에서 버티기 모드로 기술 독립을 도모할 법도 하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앞으로 더욱더 거센 견제와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자국의 기술력으로 해결이 안 되는 초격차 공정 기술과 설계기술 측면에서는 점점 더 불리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중국 정부는 공격적인 R&D 투자와 함께 외국 기업들을 겨냥해 노골적인 인재 유치, 기술 탈취 시도를 할 것이다. 특히 신소재 관련 분야에서 반전의 계기를 찾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이다.
중국은 반도체 기술 굴기의 중국몽을 아직 포기할 마음이 없다.


권석준 KIST 책임연구원/ 공학박사

서울대 공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공부한 뒤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광(光)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의 차세대 IT소자 원천 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으며 올 하반기에 교양 과학서 <빛의 과학>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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