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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인터뷰] “김정은 위원장, 유엔 총회 연설을…”

by | 2019년 5월 3일 | 한반도

  • 구한말, 독러프vs영일미… 러시아가 대한제국 군사 지원했다면
  • 푸틴의 철학, 유럽의 변방에서 유라시아 중심으로
  • 러시아, 극동 개발에 북한 노동력 필수
  • 유엔 제제로 러시아 극동 개발도 타격
  • 북한, ‘군사 응징’ 대상에서 ‘외교 협상’ 대상으로 전환
  • 김정은 위원장, 유엔 총회 연설해야
  • 미국, 복합적 집합체. ‘일체’로 봐서는 안 돼
  • 미국은 헌법가치동맹. ‘반미’, ‘친미’ 이분법적으로만 봐서야
  • 미국 정치 지형 변하는데 손 놓고 있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가 삐걱대고 있다. 그 사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여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국회에서 대표적인 러시아통이자 중국, 미국 등 외교가에 두루 발이 넓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편집자]

김정은-푸틴 회담을 계기로 다시금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데, 솔직히 제한적이다. 그렇다 하나 4강의 하나로서 러시아는 앞으로도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변수인데, 얘기를 좀 멀리 가져가 보자. 근현대 러시아에게 있어서 동아시아, 특히 한국은 어떤 공간이고 어떤 존재인가. 역사적 맥락을 먼저 살펴봤으면 좋겠다.

“지리적으로 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대립점이라는 운명을 갖고 있다. 우리의 운명이다. 19세기 말 대륙 세력의 핵심인 러시아와 해양 세력의 핵심인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코카서스 산맥 주변, 크림 반도 등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을 벌였다. 그러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생기면서 대륙의 힘이 극동으로까지 확장됐다. 이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힘이 중국까지 변화시켰지만, 그 전 까지 러시아는 우리에게 제국주의 힘 중 하나였다. 당시 대한제국이 취한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입장에서 원교의 대상은 미국과 러시아였다. 그러나 미국은 기본적으로 일본 쪽에 기울어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미국은 일본을 뒷받침하며 멘토 역할을 했다. 영국과 함께 같은 해양세력인 일본을 편든 것이다. 대한제국 입장에서 미국을 동원해 일본을 견제하는 건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고종 황제가 유일하게 의지한 곳이 러시아였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면서 대륙과 해양 세력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물거품 됐다. 러시아도 대한제국에 대한 정보와 평가가 부족했다. 고종 황제가 요청한 대로 러시아가 아관파천을 즈음해 조선에 군비와 군사 교관을 지원해 사실상 동맹 관계로 발전시켰다면 얼마간이라도 일본을 저지해 대한제국이 발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벌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일본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郎) 같은 인물을 통해 러시아 혁명 세력에 자금 지원을 하고 정보도 빼내는 등 러일전쟁 승리를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면서 러일전쟁에 대비했다. 결국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대한제국과 일본의 연합군이 러시아와 전쟁하는 꼴이 됐다.

만약 러시아가 하다못해 기관총 부대를 만들어 주는 등 대한제국 군대의 군사적 주권을 강화시켜줘 고종 황제가 일본군을 저지할 수 있는 왕궁 경비력만이라고 갖췄다면 불합리한 협정에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고, 러일전쟁 패전의 원인이 된 일본군의 러시아 극동함대 봉쇄를 뚫는데 대한제국 군대가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한반도에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전력 등에서 러시아가 질 전쟁이 아니었다.”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인 니얼 퍼거슨의 신작 <광장과 타워>에 따르면 19세기에 3대 이민 행렬이 있었다고 한다. 이 중 유럽인들의 신대륙 이주는 잘 알려져 있는데, 중국인들의 북미 이주와 러시아인의 동아시아 이주는 덜 알려져 있다. 당시 150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동아시아 쪽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동진 정책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러시아는 동진 정책으로 비로소 엄청난 제국이 됐다. 1860년 블라디보스톡 항을 확보하는 등 태평양으로 나가는 통로가 확보됐다. 쿠릴 열도를 장악하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당시 독일-러시아-프랑스의 대륙 세력은 해양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 이에 좌절한 일본이 혼자 힘으로 안 되니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해양 세력을 조직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면서 대한제국은 완전 일본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게 됐는데, 10년만 시간을 벌었어도 대한제국이 자체 군대를 정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러시아가 아관파천부터 대한제국을 적극 지원했으면 일본이 쉽게 합병하지 못했을 거라는, 10년만 합병을 늦췄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는 얘기인가? 역사에 if는 없지만 흥미로운 견해다.

“그렇게 본다. 러시아가 한국사에 기여할 기회는 한 번 더 있었다. 중국에서 1920년대부터 국공내전이 벌어졌을 때 러시아가 주도하는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마오쩌뚱과는 노선 갈등이 생겨 오히려 쑨원과 장제스 손을 잡아줬다. 당시 코민테른은 이처럼 공산혁명 수출보다는 민족해방 투쟁을 우선적으로 지원했다. 레닌이 우리에게도 지원을 했지만 이 지원의 과실을 놓고 임시정부는 좌우가 갈라져 다퉜다. 우리 임시정부가 임정판 국공합작을 하고 소련이나 중국의 지원을 적극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렇게 힘을 키웠다면 종전 당시 전승국은 못 되더라도 준전승국의 지위로라도 종전협정에 참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당시 대일 전쟁에 참여한 교전국 지위를 부여받은 나라는 무려 48개국에 달한다. 임시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북조선도 그런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 아쉬움을 담은 단합실패, 외교실패에 대한 지적으로 들린다. 지금 푸틴 대통령에게 있어 동아시아,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푸틴은 이전의 지도자와 달리 용모부터 아시아적 요소가 있는 인물이다. 푸틴을 이해하려면 푸틴이 존경하는 구밀료프(Gumilyov)를 봐야 한다. 구밀료프가 주장한 게 ‘유라시아 철학’이다. 러시아는 유럽의 변두리이지만 유라시아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푸틴은 극동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은 지도자다. 블라디보스톡에 아펙 총회도 유치하고 동방경제포럼도 창설했다. 일본이 반환을 주장하는 북방 영토도 쉽게 포기 안 할 것이다. 북극 항로를 개척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려 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했던 한반도 철도 연결도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푸틴의 신동방 정책을 우리가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중앙정부 차원에서 보면 극동 러시아 지역은 예산만 잡아먹는 블랙홀이다.

“극동에 풍부한 자원들이 있으니 이를 현금화 해 재투자하고 있다. 중국, 일본, 한국에게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극동 지방 러시아 인구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면적은 640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의 30배 되는 땅에 인구가 630만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북한의 노동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개발할 수 없는 상태다. 중국인은 극동 러시아의 중국화 위험성 때문에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다. 극동 지역에는 북한 노동자들처럼 우수한 인력이 없다. 시베리아 벌목장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일하는 게 북한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러시아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유엔 대북 제제 때문에 다 돌려보내야 할 상황이다. 한때 4만 명에 이르렀다가 현재 1만 명 수준이며 이도 연내에 돌려보내야 한다. 북한도 타격이 크겠지만 러시아도 큰 타격이라고 한다. 러시아로서는 대북 제제가 빨리 풀려야 할 자국의 긴박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셈이다.”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이번 러시아와의 회담을 통해 북한이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전략적 인내’를 택한 것 같다. 어쨌든 북미관계를 풀어야 북한의 경제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과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이는 중‧러와의 관계를 풀어야 생긴다. 연장선상에서 곧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유엔 안보리에서 제제 완화 필요성을 적극 제기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분위기가 조성되면 김정은 위원장이 쿠바의 카스트로처럼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두 번, 문재인 대통령과 세 번, 시진핑 주석과 네 번, 베트남 주석과 러시아 대통령도 만났다.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이 국제사회에 노출됐고 외교를 배웠을 것이다. 나는 북한에도 김정은 위원장의 유엔 총회 연설을 권유했다. 국제사회와 호흡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큰 성과가 북한에 대한 국제 사회의 태도를 군사적‧사법적 응징과 처벌의 대상에서 정치적‧외교적 대상으로 전환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군사적 대응 옵션을 테이블에서 내리고 외교적 옵션을 올렸다. 러시아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만났을 때 대북 외교 전략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쌍중단’, ‘쌍궤’, ‘다자간 안보협정’ 3단계인데, 중국과 러시아가 합의한 전략이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쌍중단’ 단계에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우리 정부와 미국과의 관계인 것 같다. 사실 우리 외교에 역할이나 공간이 있을까. 독일도 통일 후 10년이 지나서야 다소 독자적인 외교행보에 나설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따라갔고, 영국은 그 시점에서도 푸들이란 말을 들으면서까지 미국을 따라갔다.

“미국을 ‘일체’로 보면 안 된다. 미국은 하나가 아니다. 의회와 각 정당,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등 아주 복합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같다. 일본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때부터 장학금부터 생일선물까지 챙겨주면서 미국 쪽 인사들을 관리한다. 1905년 포츠머스 회담 때도 루즈벨트 동기생인 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郞)를 보내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얻어냈다. 일본은 종전 후 패전국인 상황에서도 로비를 해서 이익을 챙겼다. 이런 게 외교력이다. 이라크전 때 내가 파병을 반대하니까 주변에서 ‘어떻게 미국에 반대를 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미국 인사들도 많았다. 트럼프도 그 때 이라크전에 반대했다.

대미 외교 역량을 중첩적이고 복합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 조 바이든이 출마를 선언하니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불투명해졌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는 미국 민주당을 상대로 외교가 거의 안 되고 있다. 바이든, 샌더스 등이 차기 집권 세력이 될 수 있는데 누구 하나 제대로 접촉해 관계를 쌓는 사람이 없다. 이런 분야에서 우리 당에서 기금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민간 분야에서 더 많은 외교 관계를 쌓아야 한다는 것인데, 조금 더 구체적인 방안이 있을까.

“예를 들어, 미국 내에도 친러파 의원 그룹이 있다. 그들은 중국을 경계한다. 내가 미국에 가면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닉슨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 했는데, 왜 지금은 러시아를 중국과 나누지 않고 똑같이 밀어 붙이냐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여전히 우주 과학기술과 최첨단 군사 기술이 살아 있다. 중국은 세계 2대 이코노미 파워를 갖추고 있는데, 이런 중국과 러시아 둘이 동해는 물론 지중해에 까지 가서 합동 해군 훈련을 하는 등 밀월관계를 맺고 합동 해군 훈련을 하면 미국에게 심각한 전략적 위협이다. 트럼프는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있었지만 민주당이 ‘러시아 커넥션’을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거리를 두고 있다. 이 문제가 정리되면 미국-러시아와의 관계가 풀릴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미국의 문제를 ‘반미’냐 ‘친미’냐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국이 추구하는 헌법적 가치에 동의하는 ‘가치 동맹’으로 봐야 한다.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의 독재 체제를 좋아할 리는 없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동맹국이지만 아무도 ‘성공적인 동맹’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패한 왕정과 부도덕한 이익 관계 결합을 누가 성공적인 동맹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처럼 훌륭하게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가 없다. 미국과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다. 이런 긍정적 요소를 강화해 부정적 요소와 싸워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디스 맨”이라고 자신을 무시하던 부시 대통령을 달래서 도라산역까지 와서 사인하게 만들었다. 그런 역량이 필요한 때다.

개인적으로는 한미FTA를 추진할 때 웬디 커틀러를 만나서 개성공단 역외가공 지역 인정이 왜 필요한지 설득했던 일이 기억난다. “한미FTA를 우리 진보세력이 수용하려면. 북한 봉쇄가 아니라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내는 통로가 되는 한미FTA여야 한다.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근거 조항을 넣어야 내가 진보세력을 설득할 수 있다”고 해서 개성공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북미 관계가 험악했을 때 ‘전쟁불사론’을 주장하는 미국 의원들에게 서한도 보내는 등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 / 김현종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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