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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칼럼] 문재인 정부의 유산, 지킬 것과 청산해야 할 것

By | 2022년 4월 13일 | 미분류, 정치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날짜로 따지면 1% 남짓 남았다. 김도훈 필자는 새 정부, 새 시대의 탄생을 앞두고 그간 3회의 칼럼을 통해 ‘거대한 활을 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 즉 집권초 잠깐의 틈을 살려 거대 과제 해결에 나설 것, 신흥 모범 선진국을 추구하는데 있어 K-Culture를 적극 활용할 것 등을 촉구했다. 대선 이후 한국이 선거제 전제주의(electoral autocracy)와 선거제 민주주의 (electoral democracy) 중 어느 쪽을 걸을지도 질문을 던져왔다. 이번 네 번째 칼럼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방역, 경제 등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전반적으로 이념에 아니라 관념에 빠져 있던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무엇보다 국가가 잘 굴러가기 위한 오퍼레이션 시스템(작동방식, 운영체계)에 대한 실천적 고민을 새 정부에 당부했다. 글을 관통하는 것은 정책과 관계되는 사람 모두를 이성과 감성,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이해 관계자’로 보고 작동법을 궁리하라는 얘기다. 또한 대선 전후로 한국에 드리운 메가리더십 혹은 선거제 전제주의의 구조에 대해서도 진단했다. [편집자 주]    

국가안전 위한 리더십·민주사회 글로벌화 평가

대북 긴장 없었고 코로나 19 방역 세계적 선방

관념 빠져 오퍼레이션 변화·인적 그물망 실패

부동산 정책은 여러 영역 실패 메커니즘 농축

1월4일자 김도훈 칼럼, 거대한 활(long bow)을 들어 문제를 해결할 때다
2월 8일자 김도훈 칼럼, 차세대의 거인으로 도약할 것인가, 경제 동물로 전락할 것인가?
3월 14일자 김도훈 칼럼, 중년의 나라에서 노인의 나라로, 무한루프 벗어나려면

통치주체 유연한 사고와 변화주도 인력 수용

망각은 어리석은 반복을 예비한다. 때를 놓친 복기는 책임을 피하려는 이들이 왜곡하는 기억을 에너지 삼아 관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부추긴다. 마치 영화 <라쇼몽>처럼, 각자가 진술하는 기억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하나의 진실 앞에 다양한 사실과 해석이 등장한다. 그 다름은, 화자에 대해서도 많은 면모를 드러낸다. 때론, 그 한계 앞에 솔직해질 필요도 있다.

그래서 ‘나’의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5년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정부 고위층이 아닌 민간의 실무자 컨설턴트로서, 데이터 분석가이자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평범한 시민으로서 겪었던 경험을 거울삼아 문재인 정부의 유산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길 필요성을 느낀다. 예견되는 폭풍우 앞에서 모든 것이 사라져서도 안 되지만, 명백히 잘못된 일과 시스템,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영웅 마냥 돌아오길 바라지도 않는다.

성공-실패 관통하는 원인 진단과 처방

지난 10여 년 동안 데이터 분석과 컨설팅을 하며 다양한 일들을 수행했다. VIP들의 PI(Personal Image),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 사회 트렌드 및 현상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교육, 과학기술, 외교 정책, 젠더 연구 등은 정부 일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런  작업들의 대부분은 공공에 보고서 등으로 공개되지만, 때론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촛불 정국 직후 수립된 문 정부가 짧은 기간 안에 적폐 청산을 마무리한 후 경제와 사회 정책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결집해 통치역량을 증명하고, 지도자로서의 역량과 유산을 축적해 나가기를 바랬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능하거나 안이했던 주변인 무리의 무책임한 언행은 사회적 분노와 퇴행의 물결을 가속화했다.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개개의 영역이나 이벤트로 나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 성공과 실패를 관통하는 원인을 성찰하고 앞으로 국가와 사회가 지향할 핵심 가치를 조망하는 일이 보다 중요하다.

‘진보 진영 안보 무능’ 통설 뒤집어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문재인 정부 5년 기간 동안 북한과 긴장국면이 조성되지 않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이다. 혹자는 그 평화가 북한에 대해 ‘굴종적인’ 태도로 얻은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문 정부는 변화하는 국면에 따라 때론 유화적이고 때론 단호하게 북한,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외교 관계를 정립했다. 일부 민족주의 성향의 보좌진들이 북한과의 협력에 과도한 기대를 하거나 일본에 대해 감정적인 태도를 견지했을지 모르겠으나, 국가 차원에선 상대국의 태도 혹은 도발에 따라 합리적인 범위에서 대응했다.

문재인 정부 동안 북한은 결과적으로 더욱 고립되었고, 일본의 무역 보복은 실패했으며, 중국과는 미-중 대결 구도 속에서도 관계악화를 피했다. 이른바 진보정권이 안보 기조에 역행하거나 무능하다는 통설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2018년~2021년 4년 동안 국방예산 평균증가율은 7.0%, 방위력 개선비 평균증가율은 8.7%로 이전 정부보다 3.9%포인트 더 높았다. 국방 연구·개발(R&D) 예산 평균증가율은 11.9%로, 이전 정부 3.3% 대비 8.6%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로 평가(Global Fire Power, 2021)되며, 각종 첨단무기의 개발 및 수출 역시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기념식에 FA-50 경공격기를 타고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토대 마련했지만 지속 가능할지는 시험대

코로나 방역 역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방역의 성과는 상당 부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에 빚진 면이 있다. 그런 희생의 결과는 한국 특유의 노동 규율에서도 기인한 것으로, 온전히 문재인 정부 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런데도,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지도자의 진정성 있는 관심과 투자가 동물 전염병 확산, 메르스, 세월호 참사 등 이전 정부들이 노출했던 안전관리 실패와 차별화되는 결과를 낳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문 정부는 가시적이지 않아 방기하기 쉬운 ‘국가 안전’을 위한 투자와 리더십 확립 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줬다.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하는 주체가 시민 개인일 때, 자유롭고 자율적인 표현을 통해 사회에서 어떤 창의성과 성찰성이 창발할 수 있는지를 우린 문재인 정부 기간 충분히 경험했다. 어느 개인이 정부 비판을 해도 불이익을 받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그런 자유의 토대 위에서 다양한 생각의 표현과 실천이 가능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보이지만, 이전 정부에서 봉준호, 황동혁 감독 등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았던 기억을 상기한다면 민주사회에서 우리가 누린 자유가 당연한 것도, 오래된 것도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이제 한국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선호되는 국가 중 하나로 올라섰는데, 이러한 위상 변화는 경제 발전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민주화를 이룬 국가라는 존경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앞으로도 그것이 지속 가능할지, 우리는 새로운 시험대 위에 섰다.

과학·기술도 관료 관성 이끌려 모호한 구호만

자율적 표현 자유로 창의성과 성찰성 꽃 피워

실패 되풀이 안 하려면 오퍼레이션 역량 축적

국가와 사회의 지속가능성 위한 문제 재정의

비전문가가 부처장이 됐을 때의 참사

문재인 정부 실패의 상징이 된 부동산정책은 여러 영역에서 벌어졌던 비슷한 실패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창이 된다. 일단 비전문가가 행정 부처의 장이 되어 업무를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관료조직이 그저 자애롭게 군림하는 장관을 진심으로 존중하거나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조언할 인센티브는 없다. 필드 전문가의 체화된 경험과 민간의 지적 역량을 활용해 상호 견제를 위한 네트워크를 기민하게 운용했어야 하는데, 등용된 사적 동아리의 정치인 후배나 교수들은 그런 역할을 해낼 역량이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문 정부가 이념에 경도되어 시장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평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이해는 해당 정치 세력이 내포한 깊은 무능, 그 무능을 배태한 사고와 태도, 인적 네트워크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문 정부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재야나 시민단체, 학계 출신들이었다. 이들의 담론과 활동은 기존 정부에서 추진해온 정책들에 대한 반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지향하는 메타가치인 민주주의, 시민참여, 친환경, 평등, 양극화 해소 등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에 반대해야 하는지는 알았지만, 권력과 자원을 가졌을 때 어떻게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사회 메커니즘을 조율하면서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했거나 본원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오랜 기간 ‘안티테제’가 본인들의 정체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상징적, 경제적 이득을 얻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안티테제’에 안주하다 보니 지향 가치와 정책적 목표 역시 추상적이거나 모호했다. 예컨대 ‘교육의 공공성’이 무엇인지, 엄밀한 조작적 정의가 부재했다. 그저 자사고 폐지를 하면 교육 수요자들이 필요로 하는 공공성의 가치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하는 경우가 없었다. 자라나는 시민들이 장차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지적, 윤리적 토대를 함양하는데 현재의 구조적 장해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천착하기보단 사적 교육 기회를 박탈하고 획일화하는 것으로 ‘공공성’을 주장했다.

기실 현 집권 세력을 함몰시킨 ‘일베 문화’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교육 시스템 속에서 배태된 순응적 능력주의,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우생학적 태도의 귀결이기도 한데, 대안적 시민성 함양을 위한 교육학적 성찰이나 정치적 실천 역시 발견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관념

사회의 인식론적 토대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다 보니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관료적 관성에 이끌려갔다. 4차 산업혁명 등 모호한 구호를 설파하거나 소소한 정책 아이템, 이벤트 마케팅에 의존하면서 국가 재원을 여러 이해당사자들에게 배분했는데, 행위자들의 ‘체리 피킹’ 행태를 견제하면서 탁월성을 위한 원칙과 행동 변화를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수립하지 못했다.

데이터 댐 등 새로운 ICT 산업 활동의 기반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은 있었지만, 지식-산업 활동에서 탁월한 역량을 축적하기 위한 제도적, 문화적 기반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이를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는 무엇인지, 문제해결을 위해 오퍼레이션을 어떻게 혁신해야 할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역량 결집의 노력이 미진했다. 젠더 갈등 등 사회문제 대응에서도 미시적으로 변화하는 사회 트렌드의 기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단, ‘젠더 이슈=여권 수호’라는 기존 진영의 규범적 관성에 머물렀다.

이렇게 봤을 때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영역과 실패한 영역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통치자의 선의가 전제될 때 모호한 가치와 자원 배분만으로도 성과가 날 수 있는 영역은 비교적 선방했지만, 분명한 목표 개념과 오퍼레이션의 탁월성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실패 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관념이었다. 목표 개념의 엄밀한 수립, 문제의 정의, 문제 해결을 위한 오퍼레이션 변화와 관료주의적 행태 극복, 변화를 수행할 인적 네트워크의 동원에 실패했다.

글로벌 선도국가 가치 선순환 받침돌

정권 재창출과 국가 역량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지난 정부들은 실패를 거듭해 왔다. 철 지난 진영 논리와 이에 기생한 대립 조장이 정권 탈환을 위한 도구는 될지언정, 통치의 탁월성을 가능케 하는 매개가 될 수는 없다. 상대 진영 혹은 반대 세력에 대한 견제 담론을 넘어서, 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메타 가치를 수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공과 민간의 인적 역량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오퍼레이션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역대 정권들의 연이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공공과 민간의 행위자들에 힘입어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궤적을 되돌아보면, 세계적으로 존중 받을 수 있는 국가의 정체성과 독립성 확립은 거스를 수 없는 지향 가치로 드러난다. 기후 및 생태계 변화 대응, 안보 정의 수호, 사회적 약자 보호 등 글로벌 어젠다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동일한 원칙이 국내에서도 관철될 수 있는 성찰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경제성장-기술혁신-민주사회 공고화-외교역량 강화는 이러한 글로벌 선도국가의 가치를 발전시키는 선순환의 토대가 될 것이다. 자원의 누수를 막고 사회 갈등을 해소해 나가기 위해서는 통치 주체의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인적 역량들에 대한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국민 안전 보장과 민주사회 확립의 유산을 계승하면서, 실천적 철학을 새롭게 정립하고 실무에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이들을 통치 조직에 포섭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문제의 재정의, 변화를 위한 오퍼레이션 혁신을 가능케 할 새로운 네트워크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후의 어느 정부든, 실패의 반복을 피하려면.


글쓴이 김도훈은
사회학을 공부한 학자이자 데이터 전문가이다.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그는 숫자와 도표 안에서 시민을 읽는다. 데이터 분석 자체를 사람을 이해하는 실용적인 예술이라는 생각에 회사 이름도 라틴어로 이를 뜻하는 ‘아르스 프락시아’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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