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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칼럼] 거대한 활(long bow)을 들어 문제를 해결할 때다

By | 2022년 1월 4일 | 미분류, 정책, 정치

신년이란 인간이 시간이라는 관념을 도입하며 덤으로 얻은 재출발의 장치다. 새로운 해를 맞아 모두 새로운 각오를 한다. 숫자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봐온 김도훈 필자는 새해를 맞아 ‘왜 무엇을 위해 뛰는지’ 묻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위치감각, 정체성 찾기와 비슷한 듯하지만 좀 더 깊다. 그는 시민에 집중한다.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은 시민인데 엘리트 중심의 사회 지배구조는 여전히 시민을 도구나 객체로 여긴다고 보고 있다. 한국 사회의 장기인 회복 탄력성을 다시 한번 살리려면 지금까지 논의구조에서 사실상 배제돼 온 80%의 시민이 선두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눈앞의 현안 쳐내기식 풍토에서 벗어나 거대한 활(long bow)처럼 멀리, 깊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과 세제 노동의 개편, 지방 공간의 재생, 교육의 혁신에 큰 활을 들어야 할 때라는 그의 생각을 향후 몇 차례에 걸쳐 매월 싣는다. [편집자 주] 

한국인은 언제까지 혹심한 경쟁과 자기착취를 견딜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온전할까?   

세대 간 자산과 임금은 금융·세제·노동 개편을 통해 획기적으로 재배분되어야  

플랫폼 노동자가 수십 만이어도 종사자 숫자로만 따지는 사회는 양심이 죽은 사회다.   

과거 무한경쟁과 능력주의의 신화부터 해체되어야, 인간은 도구가 아니다 

(사진:셔터스톡)

 

글로벌 위상의 변화를 이끈 시민의 발전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변화하고 있다. 마치 오랜 기간 저평가된 블루칩처럼, 견실한 성장세는 위기 국면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2021년)의 「코로나 이후 디지털 전환과 경제·사회 미래전망」 지표 분석(<주1>)에 따르면, 미국, 일본, 영국 등 대표적인 선진국은 정치, 외교, 경제 영역에서 크게 영향력이 훼손되었다. 반면, 한국은 경제 및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주요 지표에서 선방했다. 

2022년에 한국보다 높은 회복 탄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나라는 독일 정도다.

비교 국가 중 독일만이 팬데믹 상황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제고로 인해 시스템 회복 탄력성(systemic resilience) 점수가 한국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그림 1]). 더욱 고무적인 것은, 국가 발전의 모양새다. 한국이 과거 일본의 모델을 답습하면서 ‘외교력이 약한 작은 일본’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최근엔 역동적인 디지털 전환과 민주적 역량을 바탕으로 ‘보다 사회 통합성이 강한 미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그림 2]).

도표를 보면 2019년 한국의 모양은 일본과 비슷한 데 반해, 2022년 예측 모델은 미국과 유사하다. 독일과 영국의 경우 사회와 외교 부문이 강해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모양이 비슷하게 나온다. 한국은 국가 성격상 미국과 유사하여, 유럽 식의 사회-문화 통합성을 가지기는 어렵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많은 한국인이 최근 경험을 통해 자국의 변모를 보다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의 각종 수상과 전 세계적 팬덤을 보면, 한국인의 상상력과 콘텐츠가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만개한 느낌이다. 대중 앞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감독과 배우 등 몇몇 개인이지만, 그 화려한 무대의 배후에는 얼굴과 이름이 덜 알려진 스태프들의 유능한 헌신, 그간 축적된 시스템과 인프라의 탁월함이 작동하고 있다. 코로나 방역에서도 유사한 성공 요인이 발견된다. 세계적인 수준에 접근성마저 좋은 의료 시스템, 고도로 교육받고 똑똑한 인력의 근면함과 헌신, 우수한 ICT 인프라를 활용한 정보의 효율적인 전달 및 통제가 팬데믹 국면에서 한국이 선방한 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 팬데믹은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각 국가의 역량을 시험하는 바로미터로 작용했다. 디지털 전환기에 한국이 달성한 인프라 혁신과 인간 계발의 접목은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했다. 그 효과이기도 한 시민의 문화적 성숙도는 한국과 여타 덜 성공적인 국가 사이의 발흥과 쇠퇴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보인다. 코로나 초기부터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유지 등 방역수칙에 자발적으로 동참한 한국 시민들의 질서 의식은 ‘자유’를 외치면서 마스크 착용과 함께 백신 접종마저 거부한 다수 서구인의 풍경과 아련히 대조된다. 

일부 서구 매체가 동아시아인의 순응적 성향을 ‘전체주의’라고까지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개인 자유의 근간이자 사회적 신뢰의 원천으로 작동했던 과거 서구 사회의 역사를 까맣게 잊은 듯하다. 동아시아인들에게 순응성의 잔재는 남아 있지만, 고통스러운 코로나 상황 속에서 조용하고 똑똑한 대응을 이끈 것은 세련된 시민들이 발현한 배려의 힘이었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공동체의 사회화 기능이 약화하면서 어느덧 서구 사회가 잃어버린, 그 시민성.

글로벌 선도국의 길과 지속가능성의 위기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과 격화되는 국가 간 경쟁은 사회의 존립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새로운 도약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모든 국가가 그 기회를 붙잡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탁월하게 기능했던 집단지도체제가 균열을 드러내고, 민주화 가능성도 당분간은 희미하다.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정치·관료 시스템 개혁, 젠더 의식 변화 등의 사회혁신이 지체되면서 국가 성장이 답보 상태에 있다. 여전히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뚜렷한 미국의 상황은, 고난을 견디고 성취를 이루게 하는 사회적 자본, 균일하게 뛰어난 시민의 역량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간 평균적인 수준에서 인간 계발과 시민 문화 발전의 성과를 이뤄낸 한국은 글로벌 위상을 새롭게 높일  정당성이 있어 보인다. 얼마 전까지 ‘수백만을 먹여 살리는 한 명의 천재’가 칭송을 받아왔지만, 다양한 역량과 자원이 고도로 연결된 복잡계 사회에서 탁월한 성과는 결코 한 명에 의해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어 세련된 시민의 힘은 커다란 사회적 자본이다. 또한, 극소수의 리더들이 다수의 복리를 위해 일하리라 믿고 그대로 내버려두기 어렵다는 점을, 우리는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 그만큼 대중의 집합적 역량 발현, 엘리트 권력과 자본에 대한 감시가 중요한데, 지금까지 한국 시민들은 그간 숱한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립해 왔다. 

그러나 결과에는 양면성이 있고, 지속가능성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에서 인적 자원 양성은 입시 교육에 대한 과잉투자 아니면 IMF 이후 극심해진 경쟁 압력에 대한 개인들의 적응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민주화 과정 역시 지배 엘리트들이 표출한 무능과 정치적 극단성에 대한 대중적 반발을 통해 성숙해 왔다. 무거운 질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언제까지 이런 극심한 경쟁과 자기 착취를 견딜 수 있을까?’ ‘대중의 상황적 반발과 우연으로 점철되어 온 민주주의 체제는 지속가능할까?’ ‘구태의연한 엘리트의 역량과 가치관은 혁신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발전을 견인한, 고도로 훈련되고 똑똑한 이 나라의 보통 사람들은 실제론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들의 삶은 앞으론 어떻게 될까?’ 

가속기 사회의 보이지 않는 해체, 미래는?

한 사람의 고통은 비극이지만, 수십만의 고통은 통계에 불과하다. 택시앱과 배달 앱의 잇따른 성공이 인구에 회자하지만, 현장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실제 겪는 삶은 숫자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연말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플랫폼 종사자의 규모와 근무실태> 보고서(<주2>)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는 전체 취업자의 2.6%인 66만 명으로 집계된다. 이 숫자는 택시를 몰고 택배 배달을 하는 이들의 과거 삶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올림픽 등 각종 세계적인 행사에서 감독을 맡았던 이 아무개(가명) 씨가 코로나 이후 문화행사가 거의 사라진 가운데 택배 일에 나선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는 소식은 그의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만 속삭여진다. 

일시적인 과도기일까? 한국의 10대 대기업에서 30년 넘게 재직하면서 임원으로 일했던 김 아무개(가명) 씨도 50대 후반에 퇴직 후 택배 배달을 한 지 2년이 넘어간다. 한때 사모님 소리를 들었던 그의 아내가 식당 보조 일로 버는 돈을 합쳐 월 350만 원이 통장에 들어온다. 그나마 모아뒀던 저축은, 두 아이 대학원과 유학을 보내느라 사라진 지 오래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말을 어렸을 때부터 듣고 노력해왔던 모 지자체의 오 아무개(가명) 국장은 환갑도 되기 전에 경비원 자리를 알아봤다. 그나마 연줄이 있어 자리를 구했다. 가끔 그를 알아본 주민들이 깜짝 놀라거나 뒤에서 수군거린다. 

현대 한국어에는, 서로 아름답게 늙어가기 위한 겸손과 존중의 문법이 채 준비되지 못했다. 실존의 불안과 욕망의 관성 어느 중간에 서 있는, 2040세대의 갑남을녀들은 직장을 다니면서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열을 올린다. 열심히 일해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 연사로 선 학교의 강단에는, 심드렁한 채 졸고 있는 10대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뼈 빠지게 살아봤자, 코인이든 상속이든 ‘한 방’이 없으면 미래가 없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을 통한 생존을 종용하는 삶은 가속기 속의 입자처럼 빠르게 도는데, 그 바깥의 사람들은 그 무수한 입자들이 부딪쳐 명멸하는 빛과 에너지에 감탄한다. 현장의 비참한 상황을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이 청취하지만, 데스킹을 맡은 선배 기자는 현실의 심각함과 정책적 대안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당파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어떻게든 정치·사회적인 이슈만을 부각해 온라인 클릭을 유도할지에 온통 관심이 쏠린다. 국민들이 전 세계에서 바닥을 기는 한국의 언론 신뢰도(2021년 46개국 가운데 38위)를 비난하지만, 그들 또한 폭주하는 가속기 속에 들어있다. 

새로운 산업의 선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종종 접하는 필자는, 때때로 그들과 함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눈다. 포털 댓글 등에 오피니언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대략 상위 20% 계층의 사람들로 추정되는 반면, 이 나라에서 중간 이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하지도, 들려지지도 못하고 있다고.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다들 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말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종종 무거워지지만, 때론 희희낙락한 조소를 접하기도 한다. “우리가 왜 그런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는 말과 함께.

시민의 지속 발전을 위한 ‘롱보우’(long bow) 전략이 필요하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시스템 회복 탄력성 측면에서 한국이 선방한 것은 아름다운 기적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의 역사를 통해 고도로 조직화한 노동과 민주주의의 에너지가 서로 지나가는 씨줄과 날줄처럼 우연히, 때론 어색하게 엮여 있는 순간에 창발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노동은 해체되고 있고, 민주주의는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데이타에 따르면 유튜브 댓글에서 사람들은 앞으로 혁신의 지속가능성이 기술 투자보다도 개인 삶의 안정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언론 매체는 미래 혁신을 위해 ICT 플랫폼과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기술 투자를 소리 높여 되뇌지만, 가까운 미래의 스마트 팩토리가 2만 명이 다니던 직장을 20명만 있어도 운용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진지하게 언급하는 전문가는 드물다. 정부 및 기성 언론매체와 대비되게, 유튜브 댓글에서 사람들은 앞으로 혁신의 지속가능성이 기술 투자보다도 개인 삶의 안정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그림 3]). 자산과 부의 대물림으로 대표되는 경제 양극화 이상으로, 교육 격차(위계화)를 매개로 한 사회 양극화, 입시에 매몰되어 있는 미래 역량 교육의 답보 상태, 서울-수도권으로 인재와 자원이 쏠리는 지방 균형 발전의 난제가 심각하다고 느낀다([그림 4]). 

두 데이터를 함께 놓고 비교해 보면 코로나 이후(2기) 경제양극화, 사회양극화, 미래역량교육, 지방균형발전 관련 부정감성이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껏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차고 넘쳤지만, 하나의 정책 아이템을 부각시키는 식의 프로파간다가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다. 기껏해야 1인당 월 수십만 원을 지급할 수 있는 기본소득 논의도, 점차 극소수의 인원만 고용할 유니콘 기업을 만들자는 구호도, 대다수 시민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론과는 동떨어져 있다. 해결의 실마리는, 붕괴하는 삶의 현실과 그간 한국이 글로벌 선도국으로 올라서며 누적해 온 문제의 실타래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때 찾을 수 있다. 

대다수 시민이 100살 이상의 인생을 살게 될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한결 더 긴 생애주기의 곡선을 그리며 오래도록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사안과 현상을 긴 호흡에서 바라보는 ‘롱보우(long bow, 거대한 활) 전략’이 절실하다. 필자가 생각하는 롱보우 전략에 포함되야 할 것들은 이런 것이다. 

첫째, 제도적으로 세대 간 자산과 임금이 장기간의 생애주기 속에서 금융·세제·노동 개편을 통해 어떤 식으로 배분되어야 하는가(시간). 

둘째, 전국의 다양한 공간과 조직으로 인재와 자원이 확산하기 위한 경제·문화적 인센티브(공간)는 무엇인가 

셋째, 교육기관이 수행해 온 사회적 기능과 학습 경험은 어떻게 변모(경험)되어야 하는가. 

지속가능한 발전, 성장 또는 시민이 객체나 도구가 아닌 주인이 되는 공동체 건설을 위해서는 이 시간-공간-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와 함께 산업화와 민주화의 불안한 동거 속에서 유지되어 온 과거 무한경쟁과 능력주의의 신화부터 해체돼야 한다. 긴 인생 속에서, 당신과 나는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더 빠르게 도는 가속기 속에서 나 혼자 살아남아 누릴 수 있다는 착각부터 멈춰야 한다.


글쓴이 김도훈은
사회학을 공부한 학자이자 데이터 전문가이다.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그는 숫자와 도표 안에서 시민을 읽는다. 데이터 분석 자체를 사람을 이해하는 실용적인 예술이라는 생각에 회사 이름도 라틴어로 이를 뜻하는 ‘아르스 프락시아’라 지었다.


<주1> 「코로나 이후 디지털 전환과 경제·사회 미래전망」 지표 분석, 경제·인문사회연구회(2021년)
<주2>  <플랫폼 종사자의 규모와 근무실태> 보고서, 한국고용정보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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