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132명 늘어나 누적 5만5902명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한 해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으로 각국의 혼란과 갈등은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 상반기 다른 선진국에 비해 방역에 성공했던 한국은 최근 코로나19 백신의 개발-확보 과정에서 구멍이 뚫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검찰개혁은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논란에 발목이 잡혀 정치적 파열음이 증폭되고 있다.<피렌체의 식탁> 발행인 김현종 필자는 연말연시 정국에서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백신 확보와 방역 쇄신을 통해 국민들에게 민주정부 존재의 이유와 민주정부가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둘째로는 검찰개혁은 이제 입법부의 시간인 만큼 정치의 효능감을 유권자들에게 선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다음 선거에서 여당은 퇴출될 수 밖에 없다. 셋째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 책임자들의 인적 개편이 불가피하며 대통령 역시 현 상황에 대해 총체적 사과를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성패는 결국 '타이밍'에 달려 있고 그 시간은 연말과 연초 열흘 남짓 남았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편집자]

#코로나19, 3차 대유행 상황  국민 안전이 최우선 순위#백신 확보에 총력 기울여야  3단계 거리두기 격상 결단 시점#검찰개혁 본래 취지 퇴색  민주주의 효능감 강화로 돌파#국민에게 ‘소통’ 신호 주려면  책임 묻는 인적 쇄신 단행해야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지난 1월부터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가장 큰 요구는 ‘안전’ 일 것이다. 안전을 제공할 수 있을 때 유능한 정부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완벽한 방역과 백신 수급을 다시 한번 국정의 제1 목표로 천명하고 힘을 기울일 때다. 코로나바이러스에는 국민 누구나, 언제든, 어디서든 감염될 수 있다. 그렇기에 감염 위험이 아무리 낮아도 그것은 감염 자체보다 더 큰 공포를 낳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말한 것처럼 ‘공포’야말로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위축을 가져온다. 우리 국민은 이미 전례 없이 올라버린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 사법부와 검찰권의 남용에도 분노하고 대책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슈는 최악의 경우 생명을 위협할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다.

민주주의는 유능함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위기와 공포를 잠재울 백신 확보와 치료제 개발을 얼마나 유능하게 추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특히 백신 확보와 관련해 정부는 국민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누군가는 코로나19 치료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확진 판정을 받는 1% 이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할 뿐이다. 반면 백신은 불특정 다수의 우발적 감염까지 예방하고 집단면역을 이뤄낼 수 있기에 그 효과가 훨씬 크다.

코로나19 백신의 물량 확보 못지않게 안전성, 효과, 경제성도 마땅히 검증되어야 한다. 미국 FDA가 인정한 백신의 안전성 정도는 최소한 확보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 클린턴, 부시, 오바마처럼 백신을 먼저 맞겠다는 지도자들의 솔선수범도 필요하고, 초기에 한정된 물량 앞에서 ‘질서 있는 접종’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K방역의 성공보다 수십 배 어렵고도 중요한 국정과제라 할 수 있다. 나랏돈을 수조 원 더 쓰더라도 집단면역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백신을 조기에 대량 확보해야 할 때다. 그래서 정파 간 진영논리, 부처 간 책임 공방을 뛰어넘을 국가적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백신 확보와 함께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완벽한 방역체계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의 3단계 기준은 전국 지역 발생 기준으로 ‘하루 800~1000명’이다. 최근 일주일 평균치를 보면 이미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3단계 기준의 하한선은 물론 상한선도 넘어선 상태다. 이제는 더 이상 질질 끌지 말고 3단계 실행을 검토할 때다. 여기에 민생과의 역함수 관계를 고려한 세밀한 사회안전망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도 전국의 찜질방, 사우나에는 하룻밤 잠자리를 8000원 정도에 해결하는 1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있다. 임시 주거지로 여관이나 원룸텔을 이용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 밑에는 노숙자도 있다. 3단계 거리두기로 간다면 이런 사람들도 소외되지 않을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주거부정자’도 국민이다.

여기에 보태 이미 많이 지적돼온 부분이지만 벼랑끝에 몰린 자영업자 수백만 명도 잊어선 안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의 숙박 및 음식점은 76만 곳을 넘고, 종사자는 210만 명에 달한다. 식음료 제조업체의 종사자는 410만 명이다. 이들은 매출의 감소와 적자 행진을 면치 못해 빚더미에 시달리며,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코로나19가 천재지변에 맞먹는 사태이고 요즘처럼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임대료 비용을 내리고 금융·세제상 지원을 마련하기 위한 행정력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20세기 세계사에서 몇몇 공산주의 정권은 수백만 명의 자국 국민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 그 정도 숫자의 자기 국민을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으로 학살한 정권도 있었다. 한국의 민주주의 정부는 그 반대의 모범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독재 정권이나 특권층 정부가 아니라 공화정의 나라, 민주주의 정부는 더 많은 국민에게 더 유능해야 한다. 우리에겐 이미 세계사에 보기 드물게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뤄낸 실적이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6일 0시 기준으로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천132명 늘어 누적 5만5천902명이라고 밝혔다.[그래픽=연합뉴스]

민주주의는 효능감이다

지난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조치가 행정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그 전날인 23일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4년형과 함께 법정 구속됐다. 윤 총장과 대립각을 형성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잠시 침묵에 들어갔다. 이 시점에서 검찰개혁, 나아가 사법개혁을 원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디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가.

국민들이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지지한 이유는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에 어느 정도 동의해서다. 부자들과 기득권 계층, 돈이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그 때문에 판검사 사위·며느리를 얻고자 했다. 우리 집안에 설령 비리가 있더라도 그들이 지켜줄 힘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그런 심리의 근거도 충분하다. 지금 울분에 찬 상당수 국민들이 인용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또는 ‘유검(檢) 무죄 무검유죄’의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검사 중 상당수는 이에 대해 권력의 입맛에 봉사해온 선배들을 비판하며 문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게 검찰의 일'이라는 윤 총장의 발언은 그러한 인식의 상징이다. 국민들은 검찰을 살아있는 권력으로 보고 ‘법조 신성가족’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윤 총장 류(類)의 검사들은 자신들을 살아있는 권력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다른 생각이 최근 윤석열, 정경심 등 몇몇 사람에 대한 처분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처음의 취지로 되돌아가야 한다. 검찰개혁이 왜 대두됐는가. 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선출된 권력자와 그 임명권 아래 있는 공복들은 국민의 위임을 받아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절대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고, 학력과 시험제도에 입각한 특권계급의 창출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있을 수 없다. 많은 나라에서 검사 또는 검찰의 대표자는 심지어(!) 선출직이다.

이 원칙을 구현하는데 우리는 시대적 진통을 겪고 있다. 검찰개혁의 본질을 작게 하고 개인 간의 감정 다툼을 크게 부각하는 언론도 있고, 시대의 대의보다 눈앞의 조문에 적힌 절차를 중시하는 판사도 있다. 그렇다 하나 이것도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현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윤석열 총장 징계 건에서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한 것은 사법적, 절차적 현실과 그로부터 파생된 결정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검언(檢言) 복합체’ 같은 면모를 보이는 언론에 대해서는 기자들만큼 정보와 판단력을 가진 국민이 알아서 대응할 것이다. 법 조문에 명시된 절차를 중시하는 판사에게는 새로운 법 조문을 건네주면 된다.

행정부의 결정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데 대해서는 삼권분립의 원칙상 입법부가 해결해야 한다. 삼권분립의 원칙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제각각 독자적 판단을 하라는 뜻이지 3인 3색의 의견 대립이나 일체화를 권장하는 건 아니다. 사안에 따라 행정부와 입법부가 방향이 같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순열 조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행정법원의 검찰총장 징계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 인용에 따라 업무에 복귀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권력기관 개혁은 이제 입법부의 시간이다. 누구도 자신이 쥐고 있는 힘을 순순히 내놓지 않는다. 국회 특히 다수당은 검찰개혁이 시대의 과제로 떠오른 배경과 그 해결 수순을 잘 따져서 실행해야 할 때다. 이 부분에서 민주주의의 효능감이 등장한다. 입법부 구성원들은 사법부와 달리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볼 때 선거라는 선택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모아줘도 현실이 도통 개선되는 것 같지 않다면 그다음엔 투표장에 나갈 의욕이 줄어들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출직 공무원들이 선거의 효능감을 만족시켜 줄 때 향상된다. 국민의 투표 참여, 현실 참여율이 높아진다. 최근 10년의 경험치가 그렇다. 반면 당장의 효능감에만 주목해 결과를 서두른다면 졸속입법, 결과적 퇴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효능감을 잃지 않으면서 성숙한 입법을 해내는 것이 정치이고 입법부 공직자들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책임감이다

정부는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이 백신의 조기 마련을 지시했다면 그로부터 다시 권능을 위임받은 행정부 공무원들은 이를 이행해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으나 청와대와 총리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간에 기관끼리, 부처끼리 핑퐁게임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다소 부풀려진 내용이 있더라도 상호 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은 부인하기 어렵다.

상급기관일수록 책임이 크다. 청와대 보좌진과 내각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일련의 문책 인사를 통해 전열을 정비하고 난 뒤 다시 한 번 총체적으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하는 국민은, 적어도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의 지지자들 중에서는 아직 많지 않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그동안 국정 쇄신을 위한 책임 있는 인사를 미뤄온 데 있다. 비서실과 내각 개편은 여러 차례 적기를 놓쳤다. 임기가 16개월 남은 대통령으로서 그는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정부를 책임 있게 이끌고 갈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인책과 개편은 그 첫걸음이고 이 문제는 준비가 된다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컨트롤 타워를 다시 세운다는 각오 못지않게 대통령이 국정의 최선봉에 서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그 조치가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면 국민은 갈수록 혼미해지는 작금의 사태를 달리 볼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과 여론주도층에서 제기하는 레임덕 현상은 역대 정권의 사례에 기계적으로 대입한 해석으로 보인다. 지금은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감염병 비상사태다. 레임덕이란 국정 현안을 둘러싼 행정-입법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태를 말한다. 감염병 비상사태에서 레임덕은 ‘나’와 ‘우리’의 건강이 지속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인책과 전열의 재정비, 명확한 목표의 제시·점검 등 적절한 조치는 코로나19 백신처럼 문재인 정부의 항체와 저항력을 높일 수 있다. 지금은 ‘레임덕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할 만큼 여유 있는 때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심기일전의 로드맵을 마련해 신속히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코로나19 위기의 후반부에 대처해 나가야 한다. 돌이켜 보면 K방역은 우리가 그간 쌓아온 역량, 정부의 긴장, 국민의 적극 참여라는 삼위일체의 결과다. 이제 정부가 한 번 더 떨치고 나갈 때다.

문재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그러려면 정부와 국민 사이에 금 가고 있는 신뢰 관계를 복원하는 게 필수불가결하다. 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국민 위에서 가르치려 하거나 호도하려 해선 안 된다. 잘한 일은 설명하되 잘못한 일은 스스로 고백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주의 역사는 지도자의 용기 있는 사과와도 맞닿아있다.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민주당이 배출했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해야 할 때 이를 피하지 않았다. 반면 스탈린과 마오쩌둥 같은 독재자들은 정책의 오류나 과오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특히 코로나19 방역과 백신 확보 과정에서, 또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실망감을 안겨준 장차관급 인사의 거취를 다시 생각해볼 때다. 초대 공수처장 인선 직후 검찰개혁 쟁점의 선두에 섰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거취 결정에도 타이밍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인적 갈등의 한 축이 사라지면 원래의 출발점인 검찰개혁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넓게 열릴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결정도 때를 놓치면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묵은해를 닫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오늘로부터의 1~2주일이 중대 고비가 아닐 수 없다.

김현종 <피렌체의 식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