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는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선진 방역시스템과 공동체 의식, 보건의료 역량을 바탕으로 어느 때보다 공공외교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서방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공부하는 외교관, 할 말은 하는 외교관으로 손꼽힌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는 강 장관을 보좌하면서 실무를 지휘해왔다. <피렌체의 식탁>은 지난 10일 오후 조세영 차관을 만나 해외교민 지원활동, 코로나19의 제2차 확산 방지, 미일과의 외교 현안들을 들어봤다.
조 차관은 “유럽 국가들이 외국인 입국 제한을 풀고 있지만 해외여행을 갈 경우 현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해외에서 한국인이 그동안 겪은 인종차별범죄는 30~40건이지만 그때마다 각국에 사전 예방, 사후 조치를 강력히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특히 코로나19와 관련해 한중일 공조가 중요하나, 한중 기업인들에 대한 ‘신속통로’의 경우 일본과 의견이 달라 한중일 3국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 지소미아 연장 종료(8월 말 예정)와 관련해선 “우리가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종료시킬 수 있는 상태”라며 “다만 8월에 종료된다, 10월에 종료된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편집자]

#인종차별범죄엔 신속·엄중 대응
  각국에 사과, 처벌, 재발방지 요구
#말聯 오지여행 갔던 여행객 위해
  현지 영사가 봉쇄 뚫고 즉각 출동
#유럽서 경제 살리려 입국금지 해제
  2차 확산 막으려면 해외여행 삼가야
#非대면 방식의 공공외교 활성화
  민관 네트워크, 외교타운 가동 준비
#한일 지소미아 종료 언제든 가능하나
  시한을 8월, 10월 式으로 얘기 못해

◇K-방역 외교 활동

-코로나19 위기 이후 한국이 방역·의료 분야에서 ‘리딩 국가’로 부상했다. 지난 6개월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난 2월에 코로나19 위기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고 나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발족했다. 중대본 본부장이 국무총리다. 2월 말부터 매일 아침 총리가 회의를 주재한다. 일부 각료들은 직접 참석하고, 나머지 각료들과 광역 시‧도지사는 화상으로 연결된다. 오늘(10일) 나온 자료가 109페이지인데, 이걸 토대로 일을 한다. 예를 들면 요즘 해외입국자들이 늘어나서 방역이 문제라거나, 어떤 지역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식으로 발표한다. 각 부처마다 내용을 발표하고 협조 요청을 한다. 중앙부처와 시·도에서 하루 동안 내린 조치와 현황들을 정리해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매일 돌아갈 수 있는 건 일차적으로 의료 인력과 보건방역 당국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해준 덕분이다.
외교부에선 강경화 장관께서 참석하지만 다른 일정이 겹치면 내가 대리 참석을 한다. 어깨너머로 회의에 참석하면서, 한국의 놀라운 행정시스템을 밑바탕으로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거구나, 이런 걸 6개월 동안 피부로 많이 느꼈다.
우리 정부는 투명성, 개방성, 민주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방역활동을 펼쳐왔다. 요즘 해외에서도 이런 노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지난 4개월 동안 문재인 대통령께서 외국 정상들과 전화 또는 화상으로 통화한 게 40회를 넘는다. 외교장관이 통화한 건 50개국을 넘는다. 이런 통화를 하는 건 거의 다 상대방이 먼저 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저도 차관 직을 수행하면서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우리한테 뭐 물어볼게 있다, 통화를 하자 이렇게 집중적으로 요청받기는 정말 처음인 거 같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뿌듯함을 느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G7 정상회의에 한국과 몇몇 나라를 초청했다. 가능하다면 G7의 틀을 확대하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인 거 같다. G7 탄생 이후 수십 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국제사회가 엄청나게 변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청와대와 외교부를 중심으로 100여 개 국가에 사는 교민들의 귀국을 지원했다. 정기 항공편이 끊겨서 전세기, 특별기는 물론 군용기까지 동원한 걸로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말 못할 우여곡절도 많았을 거 같다. 해외에 사는 어느 교민은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에서 이렇게 나라 덕을 본 사례는 처음일 것"이라고 말하더라. 

▲지난 9일 현재 4만3000여 명의 교민들이 안전하게 귀국하도록 도와 드렸다. 또 기업인 1만4000여 명의 출입국을 지원해 드렸다. 외교부로선 나름대로 본분을 다하고 있는데, 다행히 국민 여러분께서 좋게 평가를 해주는 것 같다.
정말로 여러 가지 훌륭한 사례들이 많다. 외교부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분들이 보내준 사연들을 모아 책자를 제작 중이다. 그중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많다. 우리나라 젊은이가 말레이시아 오지여행을 갔다가 강도를 당했다. 지갑과 소지품은 물론 신발까지 다 뺏겼다고 한다. 정글과 시골길을 200km가량 맨발로 헤매다 어느 마을에 겨우 도착해, 현지인이 빌려준 PC에 접속해서 현지 대사관에 ‘나 좀 도와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곤 답이 오려면 한참 걸리겠지 싶었는데, 금방 답이 왔다는 거다. “거기서 딱 기다리세요. 한 시간 반 뒤에 그곳으로 갈 테니!”
코로나19 상황에서 말레이시아 도시들이 봉쇄된 상태였다. 현지 대사관의 영사가 봉쇄를 뚫고 현지로 가서 그분을 도와드리고 여권도 새로 만들어줬다. 옷도 더러워지고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한 상태에서, 너무나 감사했다는 글을 직접 올리셨다.  뭐, 이런 케이스들이 수없이 많다.
코로나19가 우한에서 시작됐을 때, 우리가 특별기를 파견해서 이틀에 걸쳐 교민 귀국을 도와드렸다. 그 때 항공기 승무원들과 외교부 신속대응팀 직원들이 타고 갔다. 그때는 코로나19 공포심리가 강했다. 전신방호복 ‘레벨D'를 입고 가서 우리 교민들을 비행기에 태워서 다시 왔는데 이틀간 잠을 못 잔 건 물론이다. 대기하던 교민들의 체온을 체크하고 인원을 정리해서 태우고 왔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승무원과 신속대응팀 모두 전신방호복 '레벨D’를 입고, 교민 분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다 끼고 꼼짝도 못한 채 지정 좌석에 앉아있어야 했다. 그렇게 3~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귀국한 일도 있다. 너무 긴장해서 화장실에 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들었다.
우리 정부가 전용기를 파견한 건 일본의 크루즈 승객을 귀국시킬 때였다. 그때는 사람이 7명밖에 안 되는데 굳이 비행기를 파견해야 되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숫자가 적을망정 최선을 다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귀국을 희망할 경우 외교부는 어떤 지원을 해왔나?

▲해외에서 확진자로 판명된 분이 지난 9일 현재 44개국, 352명이다. 사실은 더 많을 거다. 왜냐하면 확진자 모두가 우리 공관에 신고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보건규칙상 감염병은 외국인이라도 현지 치료가 원칙이다. 비행기를 타고 여러 곳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추가 전파가 될 수 있어서 나라 간에는 확진자를 이동시키지 않는다.

-그럼 어느 나라 정부가 치료비를 지원해주나.

▲국제 보건규칙상 확진이 되면 국적에 관계없이 치료해주는 게 원칙이다. 현지 정부가 비용 부담을 한다. 우리도 법률상 외국인이 감염병에 걸렸을 경우 우리 국비로 치료해주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일부 국가에서는 확진자 숫자도 많고 형편이 좋지 않으니까 자가 부담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해외에서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 각국의 의료수준이 다양하기 때문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선 우리 공관을 통해 마스크나 최소한의 의료 물품을 보내 드린다. 국군의무사령부의 지원도 있다. 현지 의료시설이 열악하거나 의료진과의 언어장벽이 있을 경우 군의관들이 화상으로 접속해서 원격 상담을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23개국, 70여 명이 이용했다. 또 질병관리본부에 콜센터가 있다. 콜센터도 외국에서 우리 국민들이 전화하면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달 하순 재외국민의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를 규제샌드박스로 정하고 규제를 일시적으로 철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한 가지 더 풀어야 될 문제는 각국의 법규상 외국인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법적 제약이 있는 거다. 우리 정부에서는 화상 조언부터 시작해 좀 더 본격적인 의료서비스 제공까지 다양한 대책을 추진해왔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의 방역을 지원하고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과시하는 공공외교를 펼쳐왔다. 향후 추진할 공공외교 업그레이드 방안을 소개해 달라.

▲아무래도 코로나19 상황에서 각광을 받는 건 비대면 활동이다. 세미나도 웨비나(Webinar, 웹+세미나 합성어)로 대신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생기고 있다. 그것이 공공외교를 하는데 있어서 제약이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한다. 옛날처럼 사람을 많이 모으고 어디를 방문하는 공공외교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대표적인 공공외교 활동이 스테이 스트롱(Stay Strong) 캠페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렇게 푯말을 들고 사진을 찍은 후 다른 사람을 지정해서 캠페인 참여를 부탁하는 거다. SNS에 이걸 올리면 그 사람이 또 같은 방식으로 화답을 한다. 이런 식으로 릴레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각국 대사들이 많이들 호응해주고 있다.
또 ‘트러스트 캠페인’을 통해 카드뉴스를 영문으로 제작하고 있다. 한국의 여러 가지 방역 성과라든지, 국제적으로 힘을 합쳐서 코로나19를 빨리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카드뉴스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종래와는 다른 형태의 공공외교라고 말할 수 있다. 또 5월 26일에 유네스코에서 '연대와 포용을 위한 세계시민교육 우호국 그룹'이라는 국제적인 그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14일에는 민관 정례협의체가 출범한다. 민관이 힘을 모아서 공공외교를 전개하기 위한 네트워크다. 정부‧지자체, 시민사회단체, 학계, 언론계, 기업에서 20명 안팎의 멤버들이 참여해 정례적으로 공공외교 지원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타운도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양재역 사거리에 가면 국립외교원이 있는데, 그 옆에 12층짜리 건물이 있다. 이번에 외교부로 소유권이 넘어온다. 여기를 외교센터로 만들어서 국립외교원, 외교센터, 외교사료관을 한데 묶어 올해 10월에 외교타운을 오픈한다. 해외인사 초청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공공외교에 관한 모든 걸 담으려고 한다.

◇2차 확산 방지, 인종차별범죄 대응

-코로나19의 제2차 확산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외교부와 방역당국은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나?

▲아까 말씀드린 대로 중대본에서 계속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관련 기관들이 2주마다 국가별 위험도 평가를 해오고 있다. 조금 더 방역을 강화해야 되는 나라, 상황이 좋아져서 조금 더 완화해도 될 나라, 이런 걸 보건복지부, 질본, 외교부, 법무부 이런 부처들이 논의하며 해외 유입을 최대한 막으려 노력한다.
요즘 하루에 50명 전후로 확진자가 나오는 추세다. 그 중 해외 유입이 절반, 지역사회가 절반 정도다. 해외에선 중동지역이 좀 많고, 유럽 국가에서도 발생한다. 코로나19가 번져가는 추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아무래도 미주 쪽하고 인적 교류가 많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는다.
최근 유럽 국가들이 외국인 입국제한을 풀기 시작했다. 국가별로 세부 방침은 다 다르지만 어쨌거나 일부 국가에서 관광을 허용했으니 우리 국민들도 가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좋아져서 푸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은 한국과 비교해봤을 때 아직도 안 좋은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나라가 있다. 왜냐하면 한쪽으로 방역도 해야 되고, 다른 한쪽으로 경제도 살려야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국민들도 해외여행을 나갈 수 없게 되자 제주도나 바닷가 관광지에 많이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제2차 확산 위험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외 입국 시 국적에 관계없이 자가 격리를 2주 동안 해야 한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더라도 아직은 현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신중하게 판단해 조금 더 안전이 확보되는 단계에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외교부로선 계속해서 해외여행을 자제해 주십사 하는 그런 홍보를 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 주시면 좋겠다.

-미국과 유럽에서 인종차별적인 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선 온라인 수업만 진행하는 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발급된 비자를 취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해외 교민과 유학생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강화하고 있나?

▲아까 강경화 장관께서 4개월 동안 50여 나라와 화상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어디에서든 인종차별, 인종혐오 현상이 생기는 건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가 같이 주의하고 그런 일이 없도록 협조하되, 불행하게도 그런 일이 생겼을 땐 즉각 시정하려는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 강 장관께서 화상 통화와 해외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사건들이 생기고 있다. 모든 해외공관에서 항상 주시하면서 그런 일을 확인하고 있다. 인종혐오범죄 피해를 받는 경우가 생기면 즉각 도움을 제공하고, 또 현지 경찰당국과 정부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최근에도 몇 가지 케이스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한 공원에서 한국 청소년이 폭행을 당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도 나왔다. 저희가 즉시 네덜란드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네덜란드 정부가 공식 사과하고, 가해자를 곧바로 체포했다. 또 중동 지역에서는 호주인에 의해 인종혐오 사건이 생겼을 때 문제 제기를 했더니 가해자 측이 서면으로 사과한 적도 있다. 최근 독일 외교부도 다른 사건과 관련해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해외에서 인종차별적 피해 사건이 몇 건이나 발생했는지 말해 달라.

▲우리 공관에 신고가 접수돼 인지한 건수는 대략 30~40건이다. 지금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도 있어서 정확한 수치를 말할 순 없다. 어쨌거나 이 부분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사전 예방, 사후 조치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아세안을 컨트롤타워로 공동전선을 구축한 동남아 10개국의 협력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향후 동아시아 방역·보건의료·환경 공조의 틀을 만들자는 의견이 많다. 외교부는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가?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모두가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안전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만 잘 한다고 해서 안전해지는 게 절대 아니다. 외국과 교류하지 않을 수 없고, 서로 오가며 다 같이 살아야 한다. 국제적 연대가 없이는 극복할 수 없다. 작게는 남북한, 크게 보면 동북아, 동아시아, 더 나아가 전 세계의 협력 틀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사회 현실이 세계정부랄까 그런 것을 만들지 못하고 주권국가가 병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자면, 모든 나라가 하나의 테이블에 앉아서 팬데믹 대책을 허심탄회하게 조율하고 협력하면 하루빨리 극복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한‧중‧일 3국이 ‘우리 한번 해 봅시다’ 말해도 생각만큼 진도가 안 나간다. 또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안타깝게도 아무 반응이 없다.

-한중일 사이에 뭔가 대화를 진행했는데 잘 안 된 거 같다.

▲올해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은 우리가 의장국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여름쯤에 고위 관계자 회의, 가을쯤에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연말께 정상회담을 하는 순서로 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코로나19 때문에 전부 중단됐다. 그래도 우리가 의장국으로서 화상 통화라든지 여러 가지 제안을 한다.
그런데 세 나라 의견이 일치돼야 추진이 가능한데, 합의가 잘 안 된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초 ‘한‧중 신속통로’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방역도 중요하지만 양국 기업인들이 예외적으로 오고갈 수 있도록 만든 거다. 양국 합의 아래 시범적으로 운영 중이다. 지난 7일 현재 4900여 명이 이용했다. 이걸 한‧중‧일 협력으로 확대하려면 일본과도 해야 하지만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다. 아직은 동아시아의 공조 틀을 만들어 협력한다는 게 쉽지 않다. 구상은 있고 제안도 하지만 각국 입장이 다 달라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은 틀림없이 그렇게 가야 한다.

-코로나19 초기 중국과 일본에 대해 다소 이중적인 대처가 나타난 거 같다. 예를 들면 중국에 대해선 입국 제한 결정을 오래 끌었고, 일본에 대해선 빠르게 시행했던 거 같다. 국가 차원에서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외교 원칙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부분에 대해선 오해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국, 일본에 대해 다르지 않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의 원칙에 따라 노력해왔다. 중국에 대해선 입국을 막지 않았지만 후베이 지역은 막았다. 중국 중앙정부도 다른 지역 사람의 출입을 막았던 지역이다. 나머지 지역에 대해선 전면 입국금지가 아니라 입국 비자를 통제했다. 특별입국절차를 통해서 들어올 땐 체온을 재거나 최대한 방역 원칙을 지키려 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입국금지를 한 게 없다. 통일된 기준을 적용하려 노력했을 뿐 국가에 따라 고무줄 잣대를 들이민 적은 없다.
거꾸로 말하고 싶은 건 일본이 우리한테 입국제한 조치를 취한 것 자체가 굉장히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일본 상황이 우리보다 더 좋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저희로선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한반도 정세

-얼마 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했다. 방한 목적은 아무래도 북미 핵협상 재개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이 두 가지인 거 같다. 이 부분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나?

▲비건 부장관이 방한을 끝내고 공식 입장문을 발표한 게 있다. 거기엔 “최선희 부상이나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가능한 것에 대해서 창의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옛날 사고방식에 갇혀 있고, 부정적인 것과 불가능한 곳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나와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비건 본인은 ‘창의적인 걸 생각해 내고 싶다’는 뜻을 말한 거다. 그걸 입장문으로 냈다는 게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대화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행동은 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있다. 이건 대화를 하자는 얘기다. 북한은 자꾸 행동을 먼저 하라고 한다. 그러나 대화 없이 행동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특히 한미워킹그룹에 대해 대북 정책의 여러 가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한국 사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대북 협력 사업이 마음처럼 진전이 안 돼 국민 여러분께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미워킹그룹이 조금 더 개선되면 분명히 유용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스톱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유엔 제재라는 틀이 있고, 북한과 뭔가를 하려면 그 제재에 저촉이 되지 않는지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미국 국무부, 상무부에 관계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얽혀 복잡한 경우가 많다. 관계 요소들을 하나하나 찾아 각각 정리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다. 한미워킹그룹은 이런 사안들을 한군데 몰아서 다 얘기를 해보자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저희가 미국 측에 많은 얘기를 했다. 워킹그룹이 이렇게 비춰져선 안 된다, 원래 목적이 있지 않느냐, 원활하게 해보자는 게 더 부각되어야 하고,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랬더니 비건이 입장문에서 ‘미국은 남북협력을 강력히 지지한다. 그리고 미국이 걸림돌이 되거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금강산 관광이 곧 재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협의를 잘 해봐야 된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코로나19에 관한 협력, 인도주의적 협력에 대해서는 적극 협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금강산 개별 관광 관련해서도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하는데 대해 열린 입장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점검해보고 추진하는 걸 검토해야 되는데,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일이 되는 방향으로 협의를 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 무엇보다 북측이 호응을 해줘야 하는데 난관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G7 정상회의 참여에 대해 지난달 29일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존 볼턴 회고록에서 드러났듯 북핵 협상을 둘러싸고 부정적 역할을 한 것도 뒤늦게 알려졌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벌써 1년쯤 됐고, 8월에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 종료 문제도 있다. 결국 8월 말쯤 지소미아 종료 선언을 하는 게 불가피하나?

▲수출규제조치는 일본이 풀어야 하는 문제다. 그들이 지적했던 문제는 한국의 수출통제제도가 미비하다는 것이었다. 그 후 우리가 법도 만들었고, 해당 부처 조직도 다 개편했다. 그들이 걱정했던 부분에 대해 우리가 다 이행을 했으면 보복조치를 풀어야 마땅한데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규제를 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산자부 쪽에서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다가 그동안 중단시켜 놨던 절차를 다시 가동했다. 지소미아가 금년 8월이 되면 종료된다? 이건 사실관계가 다르다. 지금 우리는 지소미아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걸 잠시 중단시켜 놓은 상황이다. 효력이 살아있지만 임시적이다. 그렇다고 정해진 시한이 있는 건 아니고 임시적으로 살아있되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종료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소미아가 8월에 종료된다, 혹은 10월에 종료된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지금부터 언제든지 우리가 마음먹으면 종료시킬 수 있는 상태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중단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계속 갈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 시한을 대체로 언제까지 염두에 두고 있나?

▲어떻게 보면 임시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보복조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보복조치가 해제되지 않으면 당연히 지소미아도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갈 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이것 역시 특별히 시한이 있는 건 아니다. 원래 정상적인 상태라면 8월 24일을 기준으로 계속 1년씩 연장되는 것이다. 작년에 우리가 중단시켜야겠다고 한 것이고, 이를 잠시 보류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종료할 수 있다. 1년 연장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심정적인 문제다. 8월이 되면 일 년째인데, 보복조치도 해결되지 않고, 이런 상태라면 생각을 다시 해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법적으로 8월에 종료되니까 빨리 결정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아니다.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협상 시한을 6개월이나 넘기고도 협상 타결을 못하고 있다. 양측 실무협상을 통해 지난해 1조389억 원보다 13%쯤 늘어난 잠정 타결안을 마련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당초 50억 달러를 요구하다가 13억 달러(약 1조5000억 원) 이상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협상 전망은?

▲이번에 서울에 온 비건 부장관과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원만하게 합의가 잘 되도록 노력하자, 이에 대한 의견 일치가 있었다. 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지만, 합리적이고 공평한 분담이라는 결과로 타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다. 국민 여러분께서 납득을 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략 어느 수준에서 최종 타결될 것으로 봐야 할 것인가? 13% 증액 수준이 될 것인가, 아니면 훨씬 더 증액될 것인가?

▲여러 가지 숫자가 많이 보도되고 했지만 ‘모든 게 타결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타결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이러저러한 숫자들을 거론하는 건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홍콩판 보안법’ 강행 이후 홍콩의 특수지위를 박탈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또한 대만의 WHO 옵서버 지위 회복에 대해 우리는 어떤 외교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나?

▲정확히 말하자면 WHO라는 국제기구에 옵서버 자격으로 대만이 복귀한다는 게 아니다. WHO가 1년에 한 번씩 총회를 하는데 올해 열릴 WHA(세계보건총회) 옵서버로 들어가려는 희망이 있었던 거다. 과거에도 몇 번 희망한 적이 있지만 최근 몇 년은 안 됐다. 그런데 2020년 WHA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모이는 게 아닌가. 모두가 안전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 WHA 모임에서 누구도 배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 차관께선 최근 ‘제5차 한·미 전략포럼’ 기조연설에서 한미동맹 진화의 상징으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우주·위성 개발규제 해제를 주장한 바 있다. 한미동맹 70년 역사에서 동맹의 균형을 찾기 위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난 70년 동안 한미동맹은 한국의 국력 신장과 안보여건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성공적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안보협력은 물론 경제, 지역 및 글로벌 협력을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새로운 균형 포인트는 한국의 국력 신장에 걸맞게 대등한 동맹 파트너로서 주도적 역할과 기여를 확대해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는 국방예산 증액을 바탕으로 독자적 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전작권 전환의 조기 실현을 추진하는 한편, 우주개발 사업의 추진과 관련한 제약 사항을 완화하는 등 미래지향적 협력 분야를 확대해나갈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담=이양수 편집주간
정리·사진=한은지 기자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18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 중국, 예멘 주재 대사관과 샌프란시스코 주재 총영사관에서 근무했다. 동북아시아국장을 끝으로 2013년 외교통상부를 퇴직한 뒤 동서대 국제학부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으로 활동했다. 2018년 국립외교원장을 거쳐 2019년 외교부 제1차관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