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도시들이 통제, 폐쇄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대의 구호가 된 시절에 사람들은 고립되고 있다. 역사가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도는 가운데,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장기적 혼돈과 불안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얼마 전에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이런 시절에 읽을 만한 책들을 자사(自社) 편집자들과 기고자, 작가들의 추천 형식으로 실어 관심을 끌었다. 다시 들여다 본 고전에서부터 위안과 도피, 정신의 고양감을 안겨 주는 책, 영감을 주는 러브 스토리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다양한 추천서들.

고립 속의 개인들은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위로받을 기회를 만나고 삶의 새로운 좌표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FT는 다수의 추천자들이 지목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Life and Fate)을 따로 거론하면서, 히틀러의 나치즘과 스탈린의 전체주의 격돌 속을 헤쳐나간 사람들의 ‘삶과 운명’을 돌아봄으로써 지금의 혼돈을 더 큰 구도와 전망 속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나타냈다.

FT의 ‘시의적절’한 기획에 자극받은 메디치미디어의 온라인매체 <피렌체의 식탁>이 소박하게나마 ‘책세상으로 초대’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피렌체의 식탁> 및 메디치미디어의 기고자, 독자, 편집자들이 자유롭게 추천한 책들을 각자의 간단한 추천사와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
 

 

 

식물의 책-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
이소영 지음, 책읽는수요일

신원제/ 메디치미디어 편집자

새벽에 카톡 소리에 잠이 깨니 아침잠 없는 아버지가 보낸 사진이 도착해 있다. ‘미스김 라일락’이 베란다에 만발하니 이번 주말엔 본가에 와 꽃구경이나 실컷 하고 가라신다. 새벽 댓바람부터 정면과 측면, 접사부터 원경까지 참 골고루도 찍어서 보내셨다. 해마다 이맘때면 라일락을 핑계로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하신다.
그러고 보니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성질 급한 벚나무 몇 그루는 벌써 만개했다. 코로나 확산 속도가 주춤하는 사이 봄기운이 성큼 다가왔다. 그런데 올해는 꽃들이 푸대접을 받을 모양새다. 진해 로망스 다리는 폐쇄되고, 여의도도 제발 오지 말라 한다. 꽃이 방역의 최대 적이 됐다.
봄볕에 마음이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고, 한 달 가까이 계속된 반(半)격리 생활에 지친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꽃구경 대신 세밀화가 이소영이 쓰고 그린 <식물의 책>을 권한다. 가까이 있지만 도시 생활자의 눈으로는 포착하지 못할 다양한 도시 식물의 이름과 사연이 아름다운 세밀화와 함께 수록돼 있다. 이 책을 만지고, 넘기고, 읽으면서 종이책이 가진 표현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감탄했다.
세상에 눈에 담아야 할 건 꽃 말고도 많다. 참, 이 책 덕분에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에 대한 오해도 조금 풀렸다. 궁금한 분은 사보시도록.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에 본 영화의 대사다. 꽃은 다시 돌아오니, 사람들이여 책 좀 읽자.(나부터…)
 

 

녹색평론선집 1, 2, 3
김종철 지음, 녹색평론사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전대미문의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교도 친교도 당분간은 단념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 이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할 문제라고 하더라도, 우리 각자가 이 비상상황을 어떻게 보내거나 혹은 버텨낼 것인가는 지금 당장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고립’의 시간을 ‘고독’의 시간으로 변환시키는 일일 것이다. 독서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깊고 느린’ 독서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과 인생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비상상황이 끝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를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전의 생활이 과연 ‘정상적인’ 삶이었는지 근본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녹색평론선집>들을 한번 차분히 읽어보자고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나 자신이 편집을 하고, 내가 관여하는 출판사가 내놓은 책을 언급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굳이 이 책들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의 좁은 견문으로는, 코로나19 사태를 포함한 지금 인류사회가 닥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닥칠 미증유의 재난(들)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생각해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저작물로서 이만큼 균형 있게 정리된 것이 드물지 않을까 하는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 때문이다. <녹색평론선집>은 원래 격월간 <녹색평론>의 초창기에 게재된 글들을 선별, 정리한 것이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낡지 않는 문제의식을 가진 저술들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3권이 나와 있다.
 

 

 

 

그레이트 컨버전스
리처드 볼드윈 지음, 엄창호 옮김, 세종연구원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서정아 옮김, 21세기북스

최병천/ 경제 평론가

리처드 볼드윈의 <그레이트 컨버전스>는 인류 역사를 ‘세계화의 역사’로 분석한다. 인류 역사에서 세계화는 3단계로 진행된다. ①물품의 이동 ②생각(지식)의 이동 ③사람의 이동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진행된 ‘1차 세계화’는 물품의 이동이었다. 1차 세계화 때, 유럽/비유럽은 ‘거대한 분기’가 일어났다.
반면, 생각(지식)의 이동이 이뤄지는 2차 세계화는 유럽/비유럽의 ‘거대한 수렴’이 발생하고 있다. 2차 세계화는 1990년대 본격화된다. ‘거대한 수렴’이라는 테제는 전 세계가 더 평등해지기 때문에, 선진국이 더 불평등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세계은행 수석연구원이었던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코끼리 곡선’으로 유명한 연구자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는 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이 ‘일국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의 변화 때문임을 보여준다.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이 불평등해지는 이유는 후진국이 압축산업화를 통해 선진국의 ‘중숙련/중임금 노동시장’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볼드윈이 ‘기술의 변화’와 세계화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면,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불평등’과 세계화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두 책은 씨줄/날줄처럼 직교해서 보면,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두 권 모두 강추한다!!
 

 

혼밥 자작감행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시공사

이주현/ 한겨레 정치부장

위기를 맞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다. 문제를 직시하고 탐구하는 것, 치유와 위로를 모색하는 것, 그리고 일상에 깨알처럼 박혀 있는 소소한 재미를 찾아보는 것. 첫 번째와 두 번째 목적에 맞는 위대한 책들은 차고 넘칠 테니, 나는 집에 콕 박혀 깔깔댈 수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할배 만화가 쇼지 사다오(83)의 <혼밥 자작감행>(정영희 옮김, 시공사). 부제가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라니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에 이처럼 조화로운 책도 없지 않을까. 그는 슈퍼에 널려 있는 ‘분홍 소시지’ 같은 인스턴트 먹거리부터 배달된 돈카츠 덮밥에 장식용으로 뿌려진 초록색 완두콩까지 이 세상의 모든 식재료를 대할 때마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임한다.
단, 중독성이 강하니 조심. 당신도 카레호빵 개복수술에 도전하게 될지 모른다.
 

 

메시-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 지음, 윤영삼 옮김, 위즈덤하우스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

장대하거나 문명사적인 접근은 다른 분에게 미루고 탐 하포드의 <메시(Messy)>를 골랐다. FT의 명 칼럼니스트이지만 ‘한낱’ 경제학자인 그의 책을 고른 이유는 무질서에 대한 인정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창궐 이후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정돈된, 예측 가능한 삶을 살다가 페스트 시기 베네치아의 주민이나 1915년 독불 전선에 억지로 끌려 나온 병사 같은 느낌을 갖는다. 더러운 병균과 인정사정없는 총탄이 춤추는……
이 책을 고른 사유는 ‘들어가는 말’ 말미에 담겨 있다. “우리가 꿈꾸는 성공은 대개 혼란과 무질서라는 토대에서 세워진다… 내가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혼란과 무질서가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혼란과 무질서의 유용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오늘날의 전염병 혼돈이 또 다른 안정과 질서를 낳는 출발점이라고 바라본다. 물론 그 안정과 질서도 다시 위협받을 것이다. 우리는 만들고 허물고를 반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지구 또는 호모사피엔스 소멸론? 예수도 아직 재림하지 않았는데 나는 종말론을 믿지 않는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에 지젝 지음, 이운경 옮김, 한문화

배소라/ 메디치미디어 편집자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는 17명의 철학자가 영화 <매트릭스>에 담긴 다양한 철학적 메시지들을 명쾌하게 해석한 것을 모아 엮은 책이다. 서문에 나왔듯이 철학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내 마음속의 가시’를 지녀본 사람들을 위한 책. 주인공 네오는 진실을 알고픈 갈망에 이끌려 통제된 행복이 가득 한 매트릭스 안의 세상 대신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자유로운 세상을 선택한다.
이 책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없는 완벽한 세상에서 인간은 아무런 발전도 할 수 없고 진정한 자유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 아픈 진실이 왠지 위로가 된다. 인간이 고통과 혼란 속에서 성장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현재 내가 겪는 고통과 혼란은 자유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뜻이니까.
또한 모든 것을 해결할 사람은 주인공 네오(Neo), 바로 나(One)임을 알려준다. 영화에서 놓친 철학적 함의를 찾으면서 나의 내면을 직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인간의 조건
고미카와 준페이 지음, 김대환 옮김, 잇북

김민웅/ 경희대 교수

‘인간의 조건’을 검색해 보면 앙드레 말로, 한나 아렌트와 같은 이름이 먼저 나온다. 아렌트 책은 정치철학서이고 말로의 책은 중국혁명기에 대한 소설이다. 모두 인간의 역사가 저지르는 야만과의 싸움을 기록하고 있다. 고미카와 준페이 역시 야만의 시대와 맞선 ‘가지’라는 한 일본 청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쓰메 소세키나 시바 료타로와는 달리 고미카와 준페이는 오늘날 일본에서조차 망각된 작가다.
그러나 그의 <인간의 조건>은 사뭇 치열하다. 그리고 그의 이름과 작품을 기억하는 이들은 일본에서 반전평화운동 세대들이다. 관동군이 지배하고 있던 만주, 그곳에서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르는 학살과 만행, 애타는 사랑, 위태로운 선택, 그리고 비장한 소멸에 이르는 전쟁서사는 여섯 권의 전작에 온통 빠져들게 한다.
무엇보다도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줄거리와 그 숨 막히는 문장력, 그리고 압축된 사고의 깊이는 독자들을 압도하고 전율케 한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지구적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대응하기에 따라 문명의 교정자가 되기도 할 질병 앞에서 ‘인간의 조건’을 새롭게 궁리해야 하는 처지 아닌가? 그의 또 다른 강렬한 저작 <어전회의(御前會議)>가 속히 번역되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오늘날 형태가 다르지만 역시 전쟁을 치루고 있기에.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

이양수/ 피렌체의 식탁 편집인

어려운 현실에 부닥치면 옛 친구처럼 떠오르는 책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책장에서 <총 균 쇠>를 꺼내든 이유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 이 책은 국내에서 1998년 초판(문학과 지성사)이 나왔다. 저자는 최근 <어제까지의 세계(김영사)>를 출간했는데, 그래서인지 20여 년 전에 출간된 <총 균 쇠>가 다시 인기를 끄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이 책은 1만3000년 동안 인류가 지구 곳곳에서 어떻게 다른 문명을 만들며 개인 및 집단의 운명을 개척해 왔는지 잘 말해준다.
우리가 허둥지둥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 상황도 그렇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보면 정말 스쳐 지나가는 잔기침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눈앞의 사소한 위기를 소홀히 하다가 한 집단이 몰살당하거나 한 제국이 사라지는 사례들을 보면 인류 역사란 끝없는 도전과 응전의 실험대가 아닐까.
인류 문명은 과도한 탐욕 때문에 생사존망의 기로에 서있다. 지난해 10월 방한했던 제러미 리프킨의 경고가 생각난다. “인류가 15년 안에 변화하지 않으면 80년 안에 환경적 재앙을 맞이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총 균 쇠>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이제 ‘문명 교체’의 순간에 서있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역시 똑같이 던진 화두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삶을 좀 더 길게, 좀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래야만 새로운 절제의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민음사

성일권/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전염병 습격 탓에 사회적 거리 두기의 긴 휴일(?)에 수년 전에 읽은 <레미제라블> 완역본 5권을 다시 들춰본다. 한 권에 500쪽씩, 총 3000쪽 분량에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다. 무식하고 가난한 시골 일꾼 출신인 장 발장이 굶어 죽을 지경인 누이의 어린 아이들에게 줄 빵 한 조각을 훔치다가 붙잡혀, 무려 19년의 긴 감옥살이를 하다가 석방되었으나 사회적응에 늘 좌절하여 인간사회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절도와 살인의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은신처를 찾아 성당에 숨어든 그는 은촛대를 훔치려던 자신을 용서해 준 미리엘 주교의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 후 그는 팡탄이라는 가엾은 여성과 그녀의 딸 코제트를 비롯해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베풀며 오로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한 저주받은 비천한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어떻게 예수가 되고,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지를 그려낸 이 장편소설을 내려놓으며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어 본다. 공동묘지에 묻힌 그의 무덤에 적힌 싯귀다.
“그는 자고 있네. 그의 운명은 아주 기구했건만, 그는 살고 있었네. 거의 천사가 없어지자 그는 죽었네. 그것이 그저 올 것이 저절로 온 것. 마치 해가 지면 밤이 되듯이.”
매일 뉴스로 접하는 코로나 19의 역습에서 새삼 장 발장의 숭고한 삶이 더욱 고결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비록 소설 속의 창작 인물이지만.
 

 

세계대전Z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황금가지

한진우/ 메디치미디어 편집자

대공포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이윽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국은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발견된 도시와 인근 도시들을 차례로 폐쇄했지만 결국 확산을 막지 못했다.
유럽 각국은 확산 초기에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대수롭지 않게 봤지만 결국 왕족들까지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이러스의 대규모 유행을 숨겼던 일본은 결국 한국보다 더욱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 WHO는 무책임했고, ‘백신 개발’을 광고하며 투자금을 챙기고 ‘먹튀’하는 제약회사들은 부도덕했다.
가장 절망적인 국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초강대국 미국이었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며 시작된 ‘대공포(Great Terror)’가 동부 도시들을 휩쓸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배했다. 가장 기묘한 것은 북한이었다. 원래 베일에 싸인 독재국가로 악명 높았지만 유독 피해 상황이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는 바이러스와 싸워 간신히 승리했다. 하지만 책 말미는 한반도 이북은 ‘2300만 감염자로 가득할지 모른다’는 국가정보원 간부의 말로 마무리된다.
만약 위의 이야기를 어디서 본 듯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착각이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박정훈 지음, 내인생의책

이경민/ 메디치미디어 편집자

코로나19가 사회의 모든 이슈를 덮어버리는 와중에도 ‘n번방 사건’ 같은, 결코 눈을 돌려서는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으로서 자괴감과 분노를 느끼지만 이럴 때일수록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은 한국 사회의 남성문화를 고찰한다.
저자는 “나는 아니라고, 나는 그러지 않았다”며 방관하는 남자들이 사실 여성혐오와 남성문화를 더 공고하게 하는 가해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성들이 페미니즘 운동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남성이 얘기하는 페미니즘에는 한계가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오히려 남성들에게는 같은 남성의 일갈이라 더 아프다.
온 사회가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는 때 굳이 마음이 불편한 책을 읽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남성이 여성을 도구가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너무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가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이 더 간절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가운데 이 책이 인간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게 해준다면,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이, 특히 모든 한국 남성들이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징용공 재판과 일한 청구권협정-한국 대법원판결 독해
야마모토 세이타, 은용기 외 지음, 현대인문사

Life and Fate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펭귄랜덤하우스

한승동/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

FT가 주목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Life and Fate>를 읽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니까 아직 읽어보지도 못했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스탈린의 전체주의가 맞부딪친, 인간의 전쟁역사에서도 가장 처참했다는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삶과 운명’.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배경에 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비견되지만 그보다 더 방대하고 심오하며(박홍규), 체호프와 도스토옙스키와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을 계승했다는 평가들에 홀려 900쪽에 가까운 펭귄랜덤하우스 판 페이퍼백을 덜컥 샀다.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이리저리 탐색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번역본을 찾을 수 없다. 읽어보기도 전에 추천부터 하다니.
최근에 읽어본 책 중에서는 <징용공 재판과 한일청구권협정>을 권하겠다. 사상 최악이라는 지금의 한일관계 파탄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징용공) 손해배상 청구소송 승소 확정판결. 이를 계기로 징용공 문제를 정권안보에 악용한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억지 논리를 조목조목 파헤친 책이다.
틀려먹은 건 아베다! 한국 쪽이 국제법을 어기고 이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일본 쪽 주장이 오히려 왜 적반하장인지, 아베 정권 주장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법리적으로 치밀하게 따진다. 한일청구권협정과 일본 고위관료들의 국회답변 등 근거 자료들 원문도 제시한다.
일본인 변호사와 재일조선인 변호사 6명의 공동 집필. 피해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그들의 기구한 인생사와 각 사건들에 대한 간결하고 친절한 설명까지 담아낸, 징용공 문제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종합 완성판이라고 할까. 이 책 번역자가 필자인데, 이런 식으로 소개하는 게 염치없는 짓인 줄 알지만 이 또한 무릅썼다. 조만간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양심적인 일본 변호사들의 징용공을 위한 변론>이라는 제목으로 메디치미디어에서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