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의 지난 12월 19일자 ‘오피니언&포럼’ 난에는 ‘걸어가며 생각한다’는 타이틀 아래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郞)의 한국 탐방기가 한 면을 채우고 있다. 기사 제목부터 마음에 와 닿는 게 있다.

“이웃 나라의 일을 모르는 우리”, “두 개의 상(像)이 묻는 약자를 향한 시선”

기사 앞부분 일부를 옮겨 보겠다.

전후를 대표하는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의 대표작 ‘나의 감수성 등급’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안 되는 일 모두를/ 시대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간신히 빛나는 존엄의 포기 나의 감수성 등급/ 스스로 지켜라/ 바보야”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그 이바라기 노리코에게 <한글로 가는 여행>이라는 책이 있다. 50세가 된 이바라기는 돌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또, 무슨 이유로?”

메이지유신 이후 눈은 서양을 향했고, 동양은 내버려졌다. 이런 국가 방침을 사람들은 아무 의심도 없이 따라왔다. 바로 그래서 “또, 무슨 이유로?”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탄식하면서 이바라기는 자신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이유를 여럿 들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이웃 나라의 말이니까요.”

책 속에 강한 인상을 남긴 에피소드 하나. 동년배의 한국 여성 시인을 만나 “일본어를 참 잘 하시네요”라고 그 유창함에 감탄을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생 시절은 늘 일본어 교육을 받았어요”

식민지시대 일본어 교육을 강요당한 그는, 전후에 “다시 자신들의 모국어를 배운 세대”였던 것이다.

자신의 무지에 이바라기는 몸을 뒤틀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데, 실은 아무것도 몰랐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필자주: 위의 제목에 나오는 두 개의 상(像)이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그리고 제주 강정마을에 세워진, 베트남 전쟁 때의 희생자를 기리는 ‘베트남 피에타’상이다.)

이바라기 노리코 같은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 일본인 다수의 심성이라면, 다음과 같은 일은 애초에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악’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일본과 한국의 대립”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중국 청두에서 만난 다음날인 지난 12월 25일 <아사히신문>이 하나로 묶은 통단 사설에 붙인 제목이다. 아사히가 이날 이렇게 통단 사설을 쓴 것은 정상회담에서 무슨 성과가 나오고 새로운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전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사히는 한일관계가 1965년의 국교수립 이후 ‘최악’ 상태임을 잘 인식하고 있고, 그것이 2018년에 한국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판결이 나온 일제 강제동원 노동 피해자(‘징용공’) 문제에서 발단이 됐으며, 문제가 커진 것은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소재·부품 수출규제로 대응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보복조치”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아사히 기사나 사설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특히 그 근본원인 찾기와 해법 제시 부분이 그렇다.

이날 사설에서도 아사히는 “서로 대폭적인 양보를 수반하는 정치결단”이 사태 해결의 돌파구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늘 그렇듯이 이 신문이 제시하는 ‘서로 대폭적인 양보’의 내용이 이상야릇하다. “유연성이 결여된 두 지도자”라는 중간제목이 붙은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문 정권은 자국의 보수파를 비판하는 재료로 식민통치하의 일본협력자인 ‘친일파’를 끈질기게 문제 삼아 왔다. 박근혜 전 정권이 체결한 위안부문제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은 자신들이 내건 ‘피해자 중심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대체책(대안)을 제시하고 있진 않다. 징용공 문제에서도 유효한 방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한국의 국회의장은 하나의 제안을 내놨지만 피해자나 지원단체로부터 반발이 있어서 문 정권은 정관하고 있다. 사태의 타개에는 문 정권의 능동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현안을 미뤄놓고 구제를 게을리 하는 것은 ‘피해자 중심’에도 반하며, 해결은 멀어질 뿐이다.”

이건 어딘가 좀 이상하다. 한마디로, 한일 간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아사히는 우선 ‘친일파’라는 용어 자체부터 거부감을 갖고 대하는 듯하다. 한국에서 문제 삼는 ‘친일’은 지금 일본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제 침략·강점기의 반민족적 행위와 관련된 역사적 용어다. 아사히가 이를 모른단 말인가. 한국의 ‘친일파’ 및 과거사 청산을 지금 정권의 정치적 반대파를 비판하는 재료로 활용해 왔다는 지적을 보면, 아사히가 정말로 잘 모르거나 대단히 편협하게 한국의 친일파·과거사 청산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패전 뒤 일본이 미 군정 치하에서 전쟁범죄자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그들을 재기용함으로써 전후 일본을 지배해온 ‘보수 우익’ 세력이 과거 군국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수탈과 학살, 참혹한 인권유린에 대한 제대로 된 죄의식과 성찰 없이 과거사를 정당화했고 결국 일본 사회와 민주주의를 기형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과 유사하게, 한국의 ‘친일파’ 청산 문제는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필수적 과제이지 정파 간의 정치적 흥정거리가 아니다.

아사히의 지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위안부 문제’나 강제동원(징용) 문제의 해법을 문재인 정권이 내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강제동원에다 강제노역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채 사죄나 배상(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원천적으로 문제를 만들어낸 쪽이 해결책을 내 놔야 정상 아닌가.

가해자 쪽이 피해 발생 70여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묵살해 오다가 피해자 쪽이 어렵게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자, 그게 불법이라며 피해자 쪽에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아베 정권을 비롯한 일본 보수정권이 이런 적반하장 식 주장을 하는 나름의 근거는 1965년 한일협정 때 체결한 청구권협정에서 경제협력자금 명목의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일본이 한국에 지불함으로써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명기한 내용이다. 따라서 이미 해결이 끝난 그 문제를 한국 대법원이 다시 꺼냄으로써 한국 쪽이 국제법을 위반(“게임에서 골대를 옮겼다”)했다는 것이고, 그러니 한국 쪽이 해법을 내 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다시 번복하거나 없었던 것으로 정치적 처리를 하라는 내정간섭적 억지주장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것은 양국 간 재산 청구권 문제일 뿐이며 반인권 반인도주의 범죄는 애초에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설사 일부의 주장대로 그것이 청구권 협정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그 경우 해소(포기)된 것은 국가 간 외교보호권, 즉 개인들의 청구권 문제에서 자국민이 불이익을 당할 때 소속 국가가 상대국에 그 해결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외교보호권)이지 개인들이 배상(보상)을 청구할 권리 자체가 아니라는 것은 일본 정부도 인정해 온 것이다.

야나이 슌지 조약국장 등 일본 외무성 고위관료들의 국회 답변에서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포기)된 것은 국가의 외교보호권일 뿐 개인들의 청구권 자체는 살아 있다고 했고, 이는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견지해 오고 있는 기본입장이다. 최근 일본에서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등의 변호사들이 공동집필해 출간한 <징용공 재판과 일한청구권협정>(현대인문사, 2019년 8월)을 보더라도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 쪽이 징용공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적 기반을 지킬 계기를 한국 쪽이 마련해 주기를 요구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천편일률적인 레토릭은 진정성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주로 국내 정치적 지지율 확보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아사히신문도 이번 사설에서 그랬듯이 최근에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문제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 주장하지만 그것을 의문시하는 일본의 법학자도 있다”고 지적한다. 아사히신문 자세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쪽 대응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아베 정권의 주장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것을 의문시하는 일본의 법학자도 있다” 정도로 슬쩍 언급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마땅히 왜 그런지 문제점을 철저하게 파고들어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를 따지고 일본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기묘하게도 최근 일본 언론은 이 가장 원초적인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거의 무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렇게나마 문제를 지적하는 아사히는 그래도 훨씬 나은 편이다.

12월 24일의 한일 정상회담 당시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후쿠시마 원전사고 지역에서 나오는 오염수보다 정상 가동되고 있는 한국 원전 배출수에 들어 있는 방사능 물질의 방사선량이 100배나 더 많다’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했고, 일본 우파 신문들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도 그와 유사한 패턴이다.

무슨 근거로 정상회담에서 그런 내용을 그런 식으로 주장할 수 있는지 그 형식과 내용 모두 중대한 외교상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거의 일회성 보도용으로 소비되고 만 그 주장 내용의 진위를 제대로 들추고 따져 보지도 않았다. 문제는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이런 식의 무리한 일방적 주장들이 아베 정권 주변에서 거의 일상화돼 있고, 언론들은 많은 경우 거기에 동조하거나 묵인한다는 사실이다.

아사히가 이번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늑장 대처’를 비판하고 능동적인 해결책 제시를 촉구하면서 등치시킨 아베 정권에 대한 지적 및 요구는 이런 것이다.

“아베 총리는 조선반도에 남아 있는 역사적인 감정의 응어리에 무신경한 태도에 변함이 없다. 앞선 임시국회의 소신표명에서 100년 전의 파리 강화회의에서 일본이 인종차별 철폐를 제안한 것을 자랑스레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이 조선 식민지지배에 대한 차별을 비판받고 있었던 사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전후 70년을 기해 나온 ‘아베 담화’에서도 조선 지배를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시민이 ‘노 아베’라고 외치는 데 그런 역사관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사히는 이 단락에서 한일 간 현안에 대한 아베 정권의 잘못과 거짓, 은폐 또는 그 의혹을 문제 삼고 있는 게 아니라 막연한, 일반적인 역사관을 문제 삼고 있으며, 그것도 한국이나 한국인들에 대한 동정적 이해를 촉구하는 수준의 좀 더 사려 깊은 대응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은 일본의 동정을 구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고 그것을 근거로 분명하고 합당한 처신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100년 전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 대표가 인종차별 철폐를 제안한 것은 팩트로서는 틀린 것이 아니지만, 그 대표가 요구한 것은 일본도 영국이나 미국 등 구미 백인들(특히 앵글로색슨족)과 동등한 인종적 지위였지 만인 평등의 진정한 인종차별 철폐가 아니었다.

아사히는 당시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차별에 대한 비판’이 일제가 무자비하게 탄압한 3·1운동임을 명시적으로 밝히지도 않았는데,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 그리고 민족·인종 차별에 저항한 3·1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던 그때, 일본 대표가 국제회의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주창했다며 자화자찬한 아베 총리의 굴절된 인종차별주의적 국회 발언 전문을 아사히는 자세히도 전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아베 정권이 주장하고 아사히도 거의 복창하듯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이 국제법을 위반해 놓고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의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는, 아베 정권이 국제법상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1965년의 한일협정 내용 자체가 현행 한국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반인륜, 반인도주의적 범죄에 대한 개인 배상 청구권이 그 청구인이 소속된 국가의 정치적 결탁이나 결정(협정·조약 등)에 의해 해소될 수 없으며(해소될 수 있는 건 국가가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일 뿐), 한일협정의 기본조약에 들어 있는, 근대 이후 일본이 한반도와 체결한 모든 조약들이 “이미 무효(aleady null and void)”라고 한 구절을 을사늑약이나 한일합방조약처럼 그 조약들 체결 당시에 이미 불법이며 무효라고 해석한 것이 그러하다.

일본은 아직도 기본조약 속의 그 구절을 체결 당시에는 합법이었지만 패전에 의해 무효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체결 당시 합법이었으면 일본은 한국에 대해 배상 지불 의무가 없다. 반대로 체결 당시부터 불법이요 비합법이었다면 일본은 경제협력자금이니 독립축하금 등의 ‘보상’이 아니라 배상을 해야 한다.

일본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한일협정)이 1951년 9월에 체결되고 1952년 4월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틀에 토대를 둔 것이라며 당시 미국과의 합의를 지금까지의 자신들 주장의 최종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청산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회의에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조선(남북한), 중국(베이징 및 대만 정부) 등 당사국들을 초청도 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이 작성한 조약 초안에 한국은 일제의 교전국, 즉 연합국으로 서명국 명단에 들어 있었으나 미국은 일본과 영국의 강력한 요구로 마지막에 빼버렸다.

그리고 미국은 그때 일본의 전쟁범죄와 식민지배 문제, ‘위안부’문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은 거의 제대로 다루지도 않았다. 냉전체제를 본격화한 미국은 주일 미군 장기주둔을 보장해 줄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서둘렀다. 그것이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핵심 요소다.

한국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동아시아 질서를 규정해 온 미일동맹 중심의 그 틀과 그것이 유지해 온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 최종 확정된 그 판결이야말로 한국이 제시한 제대로 된 대안이요, 대체책일 수 있다. 대안 제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베 정권이 이미 제시돼 있는 대안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는 것이다. 현행법대로 집행하면 될 일을 아베 정권은 거부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최근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국제법이 강자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지만, 어쨌든 아베의 주장은 옳지 않다.

<징용공 재판과 일한 청구권협정>도, 일본의 적지 않은 지식인들도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을 지지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걸핏하면 다시 터져 나오는 한일 과거사문제의 근원적 해결책일 수 있다. 이는 일본이 해내지 못한 과거사 청산과 미래지향적 재생,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국 민간인 피해자들이 일본 민간 가해기업들을 상대로 벌인 민사소송에 개입해 아베 정권이 그것을 저지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이 제시한 대안에 대한 논의조차 막고 진정한 해결을 막는 행위일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 대법원 최종판결대로 배상금을 지불하거나, 일본 국내법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가해 기업으로부터 화해금을 받는 것으로 결착(結着)한 중국 피해자들의 선례를 따르는 방법도 있다. 아베 정권은 그것조차 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아사히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을 바로 그런 것들이어야 하지 않는가.

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쇼와) 천황이 1975년에 연 첫 기자간담회장에서 전쟁책임에 대해 질문을 받자, 자신은 문학 연구자가 아니어서 ‘그런 말의 무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요상하고 비겁한 말로 답변을 얼버무렸다.

이 충격적인 발언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한 ‘사건’이었으나 일본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의 아무도 그것을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았고 매스컴도 침묵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바로 그것을 정면으로 문제 삼은 매우 드문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때 그녀가 쓴 ‘사해파정(四海波靜)’이란 시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전쟁책임을 묻자
그 사람은 말했다
그런 말의 무늬에 대해
문학방면은 별로 연구하지 않아서
대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치밀어 올라
새까만 웃음 피 토하듯
뿜어내고는 멈췄다가 또 뿜어낸다

세 살 아이도 웃겠다
문학연구 하지 않으면 아바바바바도 할 수 없다면
네 개의 섬
웃고 웃어 울려퍼지게 할까
30년에 한 번 터무니없는 블랙 유머

들판에 내버려진 해골조차
컥컥컥 웃었는데
요리토모(頼朝)급의 야유 하나 날리지 못하고
어디로 가고 없어졌나 낙수광가(落首狂歌)의 정신

※요리토모(頼朝)는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인 듯하고, 낙수광가(落首狂歌)는 풍자와 익살을 주로 한 단가(短歌)를 가리킨다.

한승동 /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