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남북 관계 못지않게 新남방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아세안 10개국과 인도를 하나로 묶어 ‘4강 수준’으로 외교·통상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에서다.

오는 25일부터 사흘간 열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는 신남방 외교의 중간결산이자 새 출발을 다짐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이들 11개국을 모두 방문하는 한편 각국 정상과의 우의를 다져왔다. 하지만 국내에선 대중적 지지와 관심이 아직 낮은 편이다.

신남방 외교의 사령탑은 주형철 경제보좌관이다. 그는 신남방정책특위 위원장을 겸임하며 ‘신남방 전도사’로 뛰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외교의 진정성을 강조해왔다고 한다.

주 보좌관은 신남방 전략의 핵심을 몇 개의 키워드로 축약했다. 자유무역협정(FTA), 플랫폼 경제, 제조업 현지투자, 문화적 친밀감, 시스템화 등이다. 또한 “한국에 온 신남방 지역 사람들이 행복해야 신남방 외교가 성공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신남방은 과연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아세안·인도, 4强만큼 중요한 상대

주형철 보좌관과의 인터뷰는 책 이야기로 시작됐다. 기자가 홍성국의 ≪수축사회≫와 두 권의 책을 선물하자 “사실은 나도 책을 쓴 작가”라고 말문을 열었다. 젊은 층에게 정보기술(IT)과 벤처 비즈니스 등을 교육하기 위해 2014년에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이란 픽션을 출간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공대를 나온 그는 네이트·싸이월드를 운영하던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기관인 ‘NHN NEXT’ 교수, 한국벤처투자 대표 등을 지냈다.

13일 오후 진행된 인터뷰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답 형식으로 진행됐다.

아세안 10개국과 인도를 묶어 신남방 외교정책을 만들었다. 그 비전과 전략을 설명해 달라.

“한국 경제는 지난 30년 가까이 중국과 협력하면서 성장했다. 아세안·인도는 ‘포스트 차이나’라고 본다. 우리가 어떻게 협력을 가속화하느냐에 따라 4만 달러 시대까지 갈 수 있다. 아세안 쪽이 외교적으로 크게 중요해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4강과 동등한 수준’으로 협력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신남방의 전략적 입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께서는 ‘공동체’라는 용어를 쓰신다. 사람(People), 상생번영(Prosperity), 평화(Peace)의 ‘3P 공동체’를 뜻한다. 최근 15개국 정상들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사실상 합의했다.(인도는 합의 보류) 나중에 EU 수준까지 못 가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경제공동체로 갈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갈 협력 관계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말레이시아, 일본이 앞장서서 동아시아공동체(EAC)를 추진한 적이 있다. EU가 모델이었는데 미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중국의 세력 확장을 의식해 미국이 견제한 것이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펼치고 있는 마당에 중·일 주도의 지역 블록화가 가능할까.

“미국의 중국 견제는 이미 현실이 됐다. 우리는 미국과 협력하는 구도로 가려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과거 ‘동아시아비전그룹’을 만들면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계속 열려왔다. ‘동남아+동북아’ 협력 구도다. 하지만 얼마나 강고한 협력 모델로 갈지 모르겠다. 중국 영향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을 겁낸다. 그런데 한국을 겁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아세안과 호혜 협력할 수 있는 상대라고 인정받는다.”

한국은 산업화·민주화의 경험을 축적했고 종교·이념에 편향되지 않았으며 침략의 역사도 없기 때문 아닌가.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은 식민지 아픔을 딛고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했다. 아세안 국가 중에는 우리와 같은 빈곤을 겪거나 아픈 역사를 공유한 나라가 많다.”

2030년 중산층이 5억 명으로 증가

한국 외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한미동맹, 북방외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남방 외교는 어떻게 평가받을 것 같은가. 정권 차원의 슬로건에 그치는 것 아닐까. 북방외교 당시 옛소련,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한국 경제의 도약에 큰 역할을 했다.

“북방 외교에 버금가거나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 ‘아세안+인도’의 인구는 20억 명, 평균 연령은 20대 후반이다. 중산층 규모가 2030년 5억 명(2018년 90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 성장률이 매년 5~7%나 된다. 한국과의 지난해 교역은 전년보다 7.2% 늘어난 1599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들과 잘 협력하면 우리 경제의 도약은 물론 외교 역량을 확장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역점을 둘 사안은 뭔가.

“첫째, 미·중·일·러 수준으로 협력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 한·아세안 수교 30년을 정리하고, 미래 30년의 비전을 준비할 것이다. 정상회의를 하면 양쪽에서 뭔가 성과를 내려 한다. 그동안 묵은 과제를 풀어낼 모멘텀이 생긴다. 이번에도 대표적인 게 FTA, 항공, 비자 분야다. 신남방특위가 57개 중점 사업을 관리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을 타결시켰다.”

미래 개척의 항목을 꼽아본다면.

“FTA는 현재이자 미래의 항목이다. 신남방 나라들도 첨단산업 분야를 키우고 싶어 한다. 경공업→중화학공업의 순으로 개발하는 것은 옛날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산업화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가 있지 않았나. 그래서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바이오산업, 5G 협력의 기틀을 마련하려 한다. 미래 산업의 주역은 스타트업인데, 그걸 육성하기 위한 협력방안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요즘 협력이 가속화되는 스마트시티 항목도 그렇다.”

플랫폼 경제, 시장 한계를 벗어나야

신남방특위가 추진하는 57개 중점 과제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의욕 과잉’이 아닌가 걱정되는 측면도 있다. 57개 사업이란 게 말이 쉽지 ‘도깨비 방망이’처럼 현실을 뚝딱 바꾸기 힘든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인도를 방문했을 때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더불어 잘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를 함께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일본은 1970년대 후반 후쿠다 야스오 총리 시절에 아세안 5개 프로젝트에 10억 달러의 엔 차관을 제공하는 등 남방 진출 의욕을 불태웠다. 90년대에는 일·아세안 특별 정상회의를 통해 아세안 지역과의 협력을 모색했다. 아세안 국가들의 경계심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된 이유다. 중국은 90년대 후반부터 화교(華僑)와 경제지원을 앞세워 아세안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요컨대 후발 주자인 한국의 신남방 전략에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 보좌관의 전공이 ICT 분야인데 앞으로 정책 의지를 갖고 추진할 분야 중 한두 개를 골라 본다면.

“대부분 다 중요하다. 신남방 국가들은 인프라, 신도시, 주택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개발 욕구가 강하다. 아직 진척이 많이 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소프트웨어, 인터넷서비스 쪽도 생각한다. 이 분야는 국내 시장이 좁아 자체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네이버 라인 같은 경우를 빼곤 뚜렷한 성공모델이 없다. 우리의 역량을 발휘해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가 신남방으로 뻗어나간다면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다. 요즘 플랫폼 경제가 화두이지 않나. 공유경제도 플랫폼과 연결된다. 최근 타결된 RCEP 항목 중에는 디지털경제 영역,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이 포함돼있다. 우리의 플랫폼 관련 산업이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플랫폼, 5G와 관련된 산업이 중요하다.”

주 보좌관의 전문성이 묻어나는 거 같다. 중국 같은 경우는 VCR 없이 DVD, 유선전화 없이 이동통신으로 진화했다. 중국이 최근 플랫폼 경제 분야에서 우리를 훨씬 앞섰다. 신남방 국가와의 언어·문화·제도의 장벽을 극복할 방안은 뭔가.

“중국의 IT 산업이 빠르게 발전한 배경에는 국내 시장을 막고 외국 대기업, 예컨대 구글을 못 들어오게 하는 방식으로 바이두, 알리바바 같은 벤처를 키웠다. 신남방 지역에 여러 장벽이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제도의 장벽은 FTA이나 양자 협상을 통해 계속 낮출 것이다. 아세안 국가 사이에도 차이는 크다. 예컨대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선진적이지만, 베트남은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단계다. 신남방 지역에 우리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며 협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ODA(공적개발원조),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KSP(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를 통해 추진할 생각이다. 신남방 지역에 한류가 확산되고, 유교·불교 문화권이 많은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언어는 여전히 장벽이다. 현지인 상대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우리도 현지어를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국가에선 우리보다 영어·프랑스어를 더 잘한다. 분발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에 온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

인도·아세안 지역은 한반도보다 200년 이상 빨리 서구 문명을 접한 지역이다. 서구 열강의 침탈과 식민지 역사 때문에 경제 발전이 더뎠지만 그들의 문화와 전통, 자부심은 한국에 뒤지지 않는다. 주 보좌관은 “그런 점에서 인도는 독특하다. 최근 인도를 다녀왔는데 한국 위상이 많이 올라가고 있다. 한류를 바탕으로 인적 교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15년 전 홍콩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아세안 국가를 많이 취재했다. 아세안 사람들이 한국을 보는 눈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국내에선 우리와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 다민족’으로 가기 위해 아세안을 상대로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나.

“신남방특위에서 제일 중요한 정책을 꼽는다면 다문화 정책이다. 한국에 오신 분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 이주 노동자, 유학생들이 차별 없이 잘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프로그램이 있는데, 예컨대 다문화가정 지원센터가 260여 개 설치돼 있고, 힘든 일을 겪는 이들을 돕는 응급지원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그쪽을 많이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세안 관련 전공학자는 150여 명에 불과하다. 더 많은 학자·전문가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부, 문화부가 할 일인데 신남방특위 차원에서 유학생, 학자, 전문가 그룹을 초청해 교육하고 양성하는 기회를 확대할 생각은 없는가.

“그럴 생각이다. 유학생은 최근 5년간 4.3배 늘었다. 장학생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난해 300명이던 숫자를 2022년에 700명 이상으로 늘린다. 공무원 연수프로그램도, 장학·연수 사업도 크게 확대할 계획이다.”

2010년께 아프리카 취재를 갔을 때 현지 관료와 중국어로 대화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젊은 시절 중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베이징에 가서 공부했다더라. 국비 유학생 사업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제3세계 유학생 초청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한다. 다문화가정 지원, 장학사업 확대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께서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가 국내에서 잘해 줘야 그 나라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한국의 위상이나 기업 진출에도 도움이 된다.”

베트남 모델, 메콩강 국가로 확대

우리는 중·일보다 신남방 지역에 진출한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었고 투자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다. 어떻게 핸디캡을 극복할 건가.

“그들이 우리를 상생 파트너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많다. 중·일은 서로 견제하고 아세안을 일방적으로 활용하려는 자세가 강하다. 반면 우리는 경쟁보다 협력 쪽에 중점을 둔다. 일종의 코피티션(Coopetition)의 관계를 맺으려 한다, 아세안 국가 중 메콩강 5개국의 경우 태국을 빼곤 경제개발이 막 시작되는 단계다. 우리가 진출할 공간이 많다. 그래서 우리의 베트남 성공 모델이 중요하다. 태국에선 일본의 진출 시기도 빨랐고 시장 점유율도 높다. 하지만 이 나라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한·중·일 3국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서로 협력할 공간이 많다. ‘비즈니스는 경쟁자와의 전쟁이 아니라, 소비자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상대방이 무얼 원하는지 중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건설·플랜트 분야의 경우 한국 업체들이 수주 1위를 차지했지만, 일본 기업들과도 많이 협력한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파이낸싱을 제공하는 협력 구도다.”

신남방 정책을 보면서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왜 메콩 유역 5개국을 아세안에서 따로 떼어내 정상회담을 추진하나, 왜 인도를 신남방정책에 포함시켰나, 하는 것이다.

“메콩 지역은 아세안 차원에서도 고민거리다. 아세안 10개 회원국 중에는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 같은 선발국이 있고,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같은 나라도 있다. 개발 격차가 크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메콩 유역에 적극 진출하는 게 아세안 전체 차원에서 지향하는 균형 발전 목표와 맥락을 같이 한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요즘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로 많이 진출하는 추세다.”

인도는 잠재력이 큰 시장이고 아세안과는 이질적인 문화권이다. 신남방으로 한데 묶어서 어떻게 정책을 추진해나갈 생각인가.

“고민되는 부분이다. 아세안 국가끼리는 동질성이 있지만 인도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인도가 워낙 빠르게 발전하니까 ‘신남방’이란 용어가 아니라 ‘신아세안’, ‘신인도’ 정책으로 할 수 있겠지만 두 개 모두 중요하니까 병행 추진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장차 인도의 잠재력이 아세안보다 클 수 있다. 신남방특위 차원에선 인도를 따로 떼어내 특화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 역시 아세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모디 총리는 동방정책을 펼치고 있고. 인도-아세안 교역도 매우 활발하다. 그래서 정책적으로 한데 묶어서 시너지를 낼 부분이 많다.”

요약하자면 아세안 국가들은 인도의 동방정책, 한국의 신남방 정책이 만나는 접점이란 얘기인가.

“얼마 전에 인도를 다녀왔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가 커져 인도 정부 차원에서 FTA 추진을 꺼리고 RCEP 합의도 보류했다. 그래서 한국과는 첨단산업 위주로 협력하자고 강조했다. 인도는 소프트웨어산업이 강하니까 5G나 AI, 핀테크, 콘텐츠 쪽에서 먼저 물꼬를 트기로 했다. 인도 역시 중국처럼 압축 성장을 하려 하는데 우리가 그런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도 경제와 관련해 깜짝 놀란 게 중국이 전 세계 자동차 생산 1위, 인도가 4위라는 사실이었다. 인도가 자동차·전기전자를 집중 육성하는데 우리가 협력할 분야를 꼽자면.

“모디 총리가 여러 가지 정책 슬로건을 만들었는데 메이크 인디아, 디지털 인디아, 스타트업 인디아 등이 있다. 그 핵심은 메이크 인디아다. 인도 역시 제조업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이 많더라. 인도 자동차업체로는 타타, 마힌드라가 있다. 그런데 현대차가 현지 공장을 세워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전에 앞뒤 양면이 있지만 우리 기업들이 인도에 과감하게 현지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안하면 일본·중국 기업들이 들어가고 우리는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인도 현지투자가 국내 일자리 위협

이 대목에서 기자는 묘한 모순이 느껴졌다. 주형철 보좌관은 신남방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경제보좌관이 본업이다. 실물 현장에 밝은 경제 전문가로서 거시경제 운용 방향과 함께 혁신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인도·아세안 현지투자를 늘릴 경우 국내 일자리가 위축되는 효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된다. 기업의 글로벌 전략과 국내 일자리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돼 있는 것이다. 주 보좌관의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진출해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 공장을 지었으면 일자리 창출효과가 컸을 것이다. 현대차가 인도 시장을 겨냥해 현지투자를 늘릴 경우 관련 업체들의 동반 진출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그럴 경우 국내 일자리 감소, 제조업 공동화 현상 등이 우려된다.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이 안 나가면 다른 나라가 진출할 것이고, 기업으로선 시장 확보가 생존의 관건이다. 조립공장과 부품업체들이 함께 나가는 걸 피하기는 어렵다. 기업들은 현지화를 해야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세계화·현지화 측면에서 연구개발(R&D) 분야까지 모두 나간다면 참 두려운 일이다. 우리 정부로선 R&D 분야를 중심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건비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스마트공장, 설비 자동화가 본격 추진되면 수제 구두처럼 개인 맞춤형 생산을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기업들은 생산하게 된다. 선진국에서 해외에 나갔던 공장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현상이 생기는 이유다.”

우리가 협력을 강화할 주요 산업 분야를 꼽아 보자면.

“지금은 전방위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IT와 관련한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 서비스, 콘텐츠, 5G가 특히 중요하다. 4대 소비재 영역인 식품·화장품과 우리가 강점을 갖는 의료기기, 제약 이런 부분을 많이 생각한다. 우리 기업들도 이미 그렇게 진출하는 양상이다.”

인니 수도 이전, 세종시 3배 규모

지난해부터 건설·플랜트 주력 시장이 중동에서 아세안으로 옮겨가고 있다.

“역점을 두고 있는 영역이다. 아세안 국가들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굉장히 많아졌다. 국가 및 도시 간 연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도로·철도 같은 인프라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것을 요약해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라고 묶었다. 이들 국가가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26개 도시에 이른다. 인도네시아에선 행정수도를 다른 섬으로 이전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칼리만탄으로 수도를 옮기는데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2022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공사 규모를 보면 세종 행복도시 22조5000억 원(인구 50만 명)을 훨씬 웃도는 40조 원(150만 명)이다. 아세안에는 그런 프로젝트들이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게 금융 지원이다. 현지 정부의 재정이 취약해 공사를 수주하면 파이낸싱까지 함께 넣어줘야 한다. 자카르타에 금융협력센터를 세웠는데 설립 목적 중 하나가 개발금융을 현지에서 기획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국내 업체끼리 벌이는 과당 경쟁, 저가 출혈 수주를 막을 방안은 없나. 중동에선 공사를 수주하고도 적자를 보는 공사가 많았다.

“민간 기업들의 경쟁이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발주처는 그걸 이용해 공사 금액을 낮추려 한다. 제가 국내 건설업체 경영진을 만났을 때 애로사항을 들어봤다. 그분들도 ‘중동에서 너무 뜨겁게 데었기 때문에 요즘은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말하더라.”

‘문재인 효과’로 인니 FTA 타결

문재인 대통령께서 짧은 시간에 11개국을 모두 방문하는 등 신남방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소개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신남방 정책의 90%는 문 대통령께서 끌고나가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정상외교다. 정상 간에 우의나 신뢰가 없으면 힘들다. 아세안 국가의 정상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힘이 세다. 문 대통령께서 그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어서 그 나라들이 호응하는 것 같다. 모디 총리 같은 경우엔 ‘우리는 한국 모델로 가야 된다’고 말한다.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형제애처럼) 엄청난 친밀감을 갖고 있다. 한·인도네시아 FTA가 오랫동안 질질 끌다가 어렵사리 타결된 것도 그 덕분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었나.

“인도네시아는 ‘일본 세상’이다. 일본과의 협력 관계가 엄청나게 밀접하다. 자동차 시장 같은 경우 점유율이 80~90%이고 관련 규제·규정이 다 일본에 유리하게 돼 있다. 문 대통령은 ‘(외교를 하려면)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상끼리도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신뢰다. 문 대통령은 ‘한국에 와있는 (신남방)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할 때 신남방 정책의 기반이 마련된다’고 늘 강조해왔다. 이런 진정성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 아닐까.”

대통령께서 아세안 출신 커뮤니티를 따로 만나거나 행사를 한 적은 있는가.

“꽤 하신 걸로 안다. 아세안 순방 중에도 그렇고. 대통령께서 바쁘시니까 여사님께서 그런 행사에 많이 참석하고 사람들을 챙긴다. 문 대통령께서 이번 행사를 앞두고 ‘한국에 와있는 아세안 출신, 다문화 가정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몇 번씩 당부했다. 예컨대 전야제 행사인 아세안 판타지아가 창원에서 열리는데, 다문화 가정 3000명(총 1만4000명 참석)을 초청한다. 한류 스타뿐만 아니라 아세안 스타들도 많이 출연한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꼽기 힘들 만큼 많다. 여태까지는 성과·사업 위주로 홍보했는데 앞으로는 행사나 스토리를 갖고 홍보해 나가겠다.”

중국, 베트남 중부 개발에 눈독

1990년대만 해도 ODA 예산이 별로 없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베트남에 집중 지원을 해왔다. 그 결과 한.베트남의 경협 확대 성과를 거두었다. 메콩강 유역에도 이런 경험을 전파하면 좋을 것 같다.

“베트남과의 경협 규모는 더 커져야 한다. 베트남은 다낭을 중심으로 중부 지역에 첨단 산업을 육성하려 한다. 그래선지 중국 기업들이 많이 들어온다. 미·중 무역 갈등 때문에 베트남을 중간 경유지로 삼아 대미 수출을 확대하려 한다. 베트남에서 한·중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우리가 성공시킨 베트남 모델을 미얀마·캄보디아로 확산시켜야 한다. 메콩강 국가들도 이 모델을 원한다. 미얀마에 LH가 산업단지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가 ODA를 주고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방식이다. 새마을운동 모델도 적극 전파 중이다. 그런 점에서 한·베트남 FTA는 큰 효과를 냈다. 베트남의 시장 개방 폭이 넓어져 우리 기업들의 진출 공간이 확대됐다. 캄보디아와도 FTA를 추진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와의 FTA 타결 상황은 어떤가.

“인도네시아와는 9월에 사실상 타결됐다. 말레이시아는 좀 어려운 편이고 필리핀은 낙관하고 싶다. 신남방특위 차원에서 우리 협상 팀에 요청한 게 있다. ‘이번 정상회의 때문에 꼭 사인을 하려고 국익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협상을 하다 보면 가장 무서운 게 ‘난 안해도 돼’ 하고 버티는 상대다. 우리 협상 팀도 약하지 않다. FTA 커버리지 범위로 보면 세계 3위(55개국과 16개 FTA 체결)다. 인도와는 2010년 체결된 CEPA를 개정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협력관계를 시스템化, 내재化해야

주 보좌관께서는 신남방 국가들을 많이 방문한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한국에 느끼는 불만이나 희망사항을 전해달라.

“얼마 전에 베트남에 가서 부총리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한국인과 연 3천 쌍이 결혼하는 데 그 사람들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 다문화 가정이 그런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에 불행한 사건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분위기가 정말 좋다. 아세안 국가들은 한국을 좋아한다. 최빈국에서 여기까지 온 경이로운 나라, 자기들과 닮은 식민지 역사,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나라. 그래서인지 한국을 닮고 싶어 하고 협력하고 싶어 한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이후엔 어떤 구상이 있나. 문 대통령께서 아세안 순방을 계속할 건가. 각국 정상들을 개별적으로 초청할 것인가.

“일단 한·메콩 정상회의를 매년 열게 된다. 지금까지는 외교장관 차원에서 만났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보통 10년 주기인데 한국만 특별히 5년 주기로 열기로 했다.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담이 있을 때 따로 외교 행사를 하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께선 아세안 방문을 최대한 늘리겠다는 자세이지만 워낙 일정이 빡빡하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신남방 정책이 지속가능해야 한다. 일반 국민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기업·학계에선 대환영이다. 그러면서 ‘이것도 정권 바뀌면 유야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이제는 한·아세안 관계를 시스템화 하는 게 중요하다. 7개 분야별 장관회의를 정례화하고, 주(駐)아세안대표부를 차관급으로 격상시켰다. 내년엔 각종 협력 체계를 정부 공식 기능으로 내재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이양수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