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최근 편집 2021. 12.07, 00:00

두 개의 전선, 제국의 진로 그리고 우리

By | 2019년 5월 17일 | 한반도

  • 미국, 이란(군사)-중국(경제) “두 개의 전선”
  • 조지 W. 부시 때 제시됐으나 이라크 실패로 포기한 전략
  • 부활한 존 볼턴이 다시 들고 나와
  • 곤란한 상황의 미국: 무역과 원유 통제 패권 흔들
  • “친구인 척 미소 짓는 파시즘”
  • 대자본 트럼프와 군사주의 볼턴이 만나면
  • 위기 조성→국가안보 강조→민주주의 약화
  • “평등에 기초하는 민주주의, 불평등에 기초하는 자본주의”
  • ‘두 개 전선’ 진로에 한반도의 운명은
  • 미국, 타협적 지배체제 모색하게 될 것

호르무즈해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조선과 송유관이 정체 불명의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며 진실공방이 벌어지자 ‘제2의 통킹만’, ‘제2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한 중국에 대해 관세 폭탄과 화웨이 금지라는 경제 폭격을 개시하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제국의 역사에서 ‘두 개의 전선’은 실패의 지름길로 통했으나, 미국 네오콘은 ‘두 개의 전선’ 전략을 거리낌없이 전매특허로 삼고 있다. 중국, 이란에 이어 베네수엘라, 북한까지 세 개, 네 개의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도 높다. 김민웅 경희대 교수가 미국의 전략을 시대적 관점에서 조망하며 우리의 길을 제안한다. [편집자]

“긴급조처”,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 두 개의 뉴욕 타임즈지 보도 기사를 우선 보자. 하나는 2019년 5월 15일, 다른 하나는 그 다음날인 5월 16일자 내용이다.

“지난 주 목요일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의 고위 안보관련 보좌관과 국방장관 후보자 패트릭 샤나한의 회합에서 이란의 핵무기 체제에 대응하는 지상군 최대 1만2000명 파병 계획이 제시, 논의되었다. 이 계획은 강경파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는데 그의 이 같은 대 이란 공격 전략은 십년 전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좌절된 바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문제에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이 계획을 승인할 지는 아직 불분명하나 이 규모는 2013년 이라크 파병 규모에 맞먹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수요일 (5월 15일)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외국산 장치(equipment)를 미국 통신사업체가 장착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국의 화웨이 (Huawei) 판매시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싸움이 본격화되었다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금지대상이 되는 특정 회사를 지목해서 지칭하지 않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의 기술 분야에서 가장 극단적인 조처가 취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악관 대변인 사라 허크비는 ‘이 조처는 미국의 안전을 도모하고 외국의 적대세력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는 중동에서 군사전선이,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에서 경제전선의 전면배치라는 “두 개의 전선전략(Two Fronts’ Strategy)”이 작동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이미 예견되어온 긴장국면의 절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이나, 그 형식과 내용은 “긴급조처(emergency measure)”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그만큼 미국의 세계체제 관리에 중대한 위기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방식이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상황전개를 다급하게 보고 있는 것이거나 또는 지금 이 때 제동을 걸지 않으면 향후의 헤게모니 유지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 어느 쪽이든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으로 말미암은 위기감이 깊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개의 전선전략”은 2003년 아들 부시 때 이라크를 침략했던 시기 미국이 결국 포기해버린 전략이다. 이라크 전선 외에도 다른 지역에서 분쟁상황이 발생할 경우 미국의 군사력 배치가 가능하다는 이 논리는 대북 공격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당시 이라크 사담 후세인 군대의 대미 항전 전선의 강도가 예상보다 높았기 때문에 “두 개의 전선전략”은 시행되기 어려웠으며, 이러한 맥락 속에서 존 볼턴의 이란 공격 계획은 당시 부시에게 승인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와 같은 “두 개의 전선전략”이 다른 유형으로 복원되려고 하는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이란의 핵무기에 대한 정보의 정밀성에 대해 백악관 내부에서 이미 논란이 일고 있고 폼페이 미 국무장관을 만난 유럽 동맹 국가 관계자들이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상황에서 대 이란 전쟁 선포는 쉽지 않다. 이란 역시도 미국의 전쟁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이는 단지 이란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노리는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에 불과하다며 미국 자신에게도 이란과의 전쟁이 득이 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무역 전쟁의 강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공화당 지도부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의해 지역구에까지 그 영향이 파급되어 곤란한 지경에 처하고 있다며 보다 유연한 외교해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미 2017년에 비해 미국과 중국의 무역량은 4퍼센트나 줄어들었고, 사태가 이렇게 되면, 미국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 되지 못하게 되어갈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트는 미국의 실업율이 지난 50년 이래 최저인 3.6 퍼센트이며 2019년 상반기 경제력은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 퍼센트나 확장되어 강력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어 중국에 대한 압박의 여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이란이 미국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불행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강수를 두는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 강화 전략이 그대로 먹혀들어갈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중동과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전략은 낯설지 않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신자유주의 세계체제 관리의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을 꾸준히 해왔으며, 2000년대 초는 네오콘의 전면 배치를 통해 중동에 대한 군사주의적 관리체제를 강화해왔다. 하나는 급성장해가는 중국의 경제력에 대한 견제이고, 다른 하나는 중동 원유에 대한 장악력 강화가 걸려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21세기 초반에 미국은 이 두 가지 사안은 한꺼번에 해결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상황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전선 전략”의 새로운 방식을 통한 복원과 이에 따른 긴급조처가 절박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미국 자본주의 정치의 한계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겹쳐 있다. 2008년 미국의 이른바 “서브 프라임(sub-prime)” 사태로 발단이 된 금융위기는 “리만 브러더즈(Lehman Brothers)”의 파산으로 그 위기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은 미 연방정부의 기능을 급격하게 강화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고강도로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대해 아담 투즈(Adam Tooze)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 자본주의 체제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의 옷을 입은 파시스트 체제의 본질과 맞닿아가는 양상을 보였다고 진단하고 있다.1) 오래 전 버트램 그로스(Bertram Gross)가 말했던 “친구인 척 미소 짓는 파시즘(Friendly Fascism)”인 셈이다.2) 그 핵심은 “부자들을 위한 권력, 전쟁을 부추기는 권력”이다. 이러면서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 되고, 민주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대 중국, 대 이란 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국가안보”이며 이로써 “국가안보와 기업의 동맹체제/National Securty State Corporate Complex: NSSCC)”3)가 만들어져 움직이는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헤게모니 동요에 대한 대응이 파시즘적 구조를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사실 오래 된 일이다. 1930년대에 뛰어난 진보 경제학자 루이스 코리(Lewis Corey)가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분석하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동시에 주목했으며4) 최근에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역사학 교수를 지낸 마이클 로베르토가 그 대표적 이론가이다.5) 그는 1920년대와 1940년대의 미국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면서 금융자본의 독점체제가 위기에 몰릴 때 연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해 파시즘 구조를 만들어 비상조처를 취해나간다고 말했다. 이때 파시즘은 독일이나 이태리에서 보았던 것과는 유형이 다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금융자본의 독점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방식이며, “국가안보”를 내세워 이를 정당화하고 이를 규제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를 약화, 내지는 해체시키게 된다고 보았다.

사실 미국을 파시즘 체제라고 규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파시즘 이해와 어긋나고 명확한 이미지가 쉽사리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분석이 무리한 느낌을 주고 과도하다고 여겨지게 한다. 하지만 파시즘의 본질이 “대자본과 군사력의 대동맹 체제”라고 본다면, 이러한 분석이 미국의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현재 미국이 전개하려는 “두 개의 전선전략”은 바로 이 대동맹체제의 가동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통령 트럼프 + 군사주의자 네오콘 존 볼턴 = 미국의 군사 경제적 헤게모니”의 등식은 그 이름을 어떻게 부르던지 본질적으로 파시즘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현재 그 가동 방식도 “비상조처”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미국의 언론은 그 실체를 포장하고 은폐하고 그 작동의 내부에서 어떤 힘들이 오가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으며, 단지 정책논쟁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이들 언론에서는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헤게모니 동요 또는 위기를 미국의 어떻게 풀어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관점에서의 분석이나 논평, 또는 접근을 기대할 수 없다.

미국 자본주의 정치는 종국적으로 대자본이 지휘하는 계급정치이며, 이의 확장이 제국주의이고 그 작동방식은 파시즘이다. 연방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이 비대해지고 있고 멕시코 장벽 쌓기, 연방정부 가동 임시 중단 등 양산되는 긴급조처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중대한 훼손이자 세계적 차원에서도 일종의 ‘깡패국가'(rogue state)6)의 일방주의가 관철되는 사태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미국의 자본주의 정치의 한계이자 본질이다.

그렇지 않아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거두인 철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파시즘에 대해서도 침묵하게 되고 말 것”이라고 갈파했다. “민주주의는 평등에 기초하지만 자본주의는 불평등에 기초한다”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질적 대립을 설명하고 미국의 독점자본 등장을 규명한 브랜즈(Brands)의 저작은 그러한 의미에서 주목된다.7) 1860년대 미국의 남북전쟁부터 시작된 미국의 독점자본체제가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안다면, 국가와 대자본의 대동맹체제로 가동되는 미국판 파시즘의 역사와 세계적 확장운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심화될 것이다.

제국의 진로와 우리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미국이라는 제국의 진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의 미래와도 그대로 직결되는 사안이다. 미국의 대 이란 정책과 조처로 인해 당장에 이란 산 원유 수입 금지조처로 우리는 타격을 받고 있는 중이며, 중국과 미국의 충돌과정에서 양쪽 시장 모두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권이 필요한 미국, 생산과 무역시장으로서의 중국이 긴장관계에 있게 되면서 우리의 경제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양쪽 모두에게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매우 좁아지고 있다.

미국이 강경조처를 취하고 있는 지역 모두가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곳이며.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우리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다. 북한에 대한 고강도의 군사적 접근은 언제 발화할지 모를 잠재된 조건이며, 현재로서는 대 중국 전략을 위해 미국에게 친화력을 갖게 하는 동시에 일정한 긴장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매우 애매모호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의 유동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이 문제의 해결방식과 지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두 개의 전선전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군사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로, 경제문제는 민족내부의 경제력 공동강화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현재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이 답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 진로가 달려 있다.

통신 분야의 기술은 미래전략의 핵심부분이다. 이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대치는 당분간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며 그 판도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술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전 속도가 빨라 지속적인 헤게모니 장악은 어렵다. 결국 금융과 생산 분야에서 어떤 세계적 위치를 차지하는가가 경제문제를 판가름 낼 것이다. 이미 달러 경제권에 대응하는 대안결제체제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달러 체제 이후의 미래까지 담고 있는 구상이며 중국과의 군사적 차원의 전쟁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 가서는 미국과 중국의 타협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도 그 부담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결정할 수 없다. 물론 중동지역에서의 전쟁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 미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이란이 세계적 위협이라는 인식은 조성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 또한 자칫 부메랑이 되어 미국에게 불리해진다.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 패배,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로 인한 달러의 투기 자본화 이후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트럼프가 그 해법으로 선택되었지만, 독점 금융자본의 지배체제를 미국 혼자서 관리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아니게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세계지배(Pax Americana)는 그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고 있고, 자신의 역량을 더는 폭력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지면 미국은 제국의 마지막 존속을 위해서라도 마침내는 타협적 지배체제를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비로 이 지점에 우리의 여지가 남아 있다. 현재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상수로 둘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다자간 외교의 축을 조성해 남과 북의 힘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작업이 절실하다. 제국의 황혼에 우리의 운명을 말길 일이 결코 아니다.

1) Adam Tooze,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 Viking, New York, 2018
2) Bertram Gross, Friendly Fascism: The New Face of Power in America, South End Press, New York, 1980
3) “Globalization and the National Security State Corporate Complex (NSSCC) in the Long Twentieth Century” Thomas Ehrlich Reifer, The Modern/Colonial Capitalist World-System in the Twentieth Century, ed. by Ramon Grosfoguel, Praeger, London, 2002
4) Lewis Corey, The Decline of American Capitalism, Covici, New York, 1934
5) Michael Joseph Roberto, The Coming of the American Behemoth: The Origins of Fascism in the United States, 1920-1940. Monthly Review, New York, 2018
6) William Blum, Rogue State: A Guide to the World’s Only Superpower, Common Courage Press, Monroe, 2002
7) H.W. Brands, American Colossus: The Trimph of Capitalism 1865-1900, Anchor Books, New York, 2011

김민웅 / 경희대 교수

최신기사 링크

[정호재의 into 아시아] ‘뉴스주권’을 잃은 나라의 비극

종군 기자로 2차 대전에 참전한 소설가 헤밍웨이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최초의 노벨상은 아니다. 하지만 국적 불문 언론인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언론인 최초로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 레싸가 그 영예를 안았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미디어 시장이 어떤 상황이며 그 속에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언론은 어떤 사명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독립 언론인 마리아 레싸의 전장은 부정 부패와 인권 유린이 만연한 모국 필리핀이다....

[이광수 칼럼] 부동산세, 현행 과세 원칙을 지켜야 가격 잡힌다

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세금으로 잡으려 했다. 취득(세), 보유(종합부동산세), 매각(양도세)의 각 단계마다 세율이 올라갔다. 특히 다주택자 대상의 세율과 가격상승폭이 큰 주택에 대한 보유세인 종부세의 세율이 많이 올라갔다. 이광수 필자는 여기서 멈추거나 늦추면 안된다는 쪽이다. 요즘 보기 드문 목소리다. 땅으로, 집으로 이익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과세의 고삐를 늦추면 안된다는 원칙론을 고수한다. 경제신문과 보수 미디어를 중심으로 온건론이 많이...

[위민복 칼럼] 청년국가에서 성인국가로, 독일 신 연정의 각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외교와 국방에서 성인국가의 길을 대체로 회피해왔다. 나치의 악몽 때문이다. EU나 NATO에서 군비확충을 요구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독일의 역사적 과오는 독일 국민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경제와 문화 분야에서나 유럽 선도국가의 길을 걷던 독일이 이번 사민당 중심의 연정 수립에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타결된 연정 협상안에는 덩치에 비교하면 미흡하지만 ‘세계적 책임’이 주요 항목으로 명기돼 있다. 탄소 중립이나 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