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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인터뷰] “검찰은 저울, 저는 저울 수리공 중 한명”

By | 2022년 7월 17일 | 미분류, 정치

임은정 검사 인터뷰는 콘트라스트가 강렬하다. 앞부분의 개인사와 성장과정에 관한 설명은 보드랍고 섬세하다. 뒷부분 검찰과 신뢰회복, 판결을 통한 역사 전진 등 공적 인간으로서의 신념은 은빛 강철처럼 단단하다. 그는 역사의 힘을 믿는다고 전제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책의 제작과정을 총괄한 배소라 메디치미디어 실장이 인터뷰어로 나섰다.
임은정 작가는 검찰을 저울에, 전향적 판결을 디딤돌에 비유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법의 정신을 얘기했다. ‘(좋은) 판례가 쌓여야 한다, 그게 역사의 강물에 디딤돌 하나 놓는 것이다’, ‘검찰은 죄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다, 눈금을 속이는 검찰 내외의 많은 손장난이 문제다, 저울 수리공 중에서 하나가 저의 역할’이라는 대목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진실을) 포기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아요. 저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혼자라도 계속 갈 건데, 그런데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거든요, <피렌체의식탁> 독자 여러분도 같은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같이 가봤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작가 임은정이 되어 세상과 만나는 첫인사
검찰 내 부끄러움을 누르고 누르다 터져버린 2012년
역사와 사회에 유익한 사람, 염치 아는 사람 되고파
법의 본질은 인간 향한 신뢰와 연민이라 생각

노벨 문학상을 꿈꾸던 딸 부잣집 막내, 검사가 되다

배소라: <피렌체의 식탁>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임은정: 대구지방검찰청에 근무하고 있는 임은정 검사라고 합니다. 오늘은 저한테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인터뷰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공중파 뉴스나 신문에 검찰 내부 고발자로 알려진 편입니다. 오늘은 작가 임은정으로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노벨 문학상을 꿈꾸는 소녀였는데, 어쩌다 보니 ‘사람을 살해하였다’와 같이 흉악한 내용의 공소장을 쓰는 검사가 되었습니다. 

 검사로서의 삶을 담담하게 쓴 검찰 이야기의 작가이긴 하지만, 오늘 하루는 작가 임은정으로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려 나왔습니다. 반갑습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저자 임은정 작가가 서울 중림동 메디치미디어 사옥에서 배소라 메디치미디어 출판콘텐츠실장과 인터뷰 하는 모습. 영상화면 갈무리. 김이향 피디

배소라: 임은정 검사라 하면 검찰의 불안함을 고발하는 전사 이미지가 강하신데요. 실제로 만나 보니 따뜻하고 소탈하고 오히려 여려 보이셔요. 스스로 생각하는 임은정은 어떤 사람인가요?

임은정: 딸 부잣집의 막내딸이고요. 아무래도 여형제들이 많으면 경쟁 관계가 치열하거든요. 부모님의 한정된 시간과 사랑에 목마른 막내딸이라 생존을 위한 애교라고 할까요. 아버지한테는 막내딸답게 애교를 많이 부렸고요. 사랑이 많이 고팠던 동시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기도 합니다.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요. 글은 딱딱하다거나 세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아마 이런 말을 하게 되면 검찰에 엄청나게 짓밟힐 거라는 걸 알고 떨면서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 관직 내놓을 각오로 상소하는 선비의 마음으로 쓰다 보니 좀 세게 나가는 것처럼 비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애교 많은 막내딸입니다.

배소라: 전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는 얘기를 쓰셨더니 또 그게 기사로 나간 적이 있어요. 특히 아버님과의 정이 각별해 보였는데요. 검사님에게 부모님 그리고 아버지는 어떤 의미를 갖는 분일까요.

▶작가 임은정 인터뷰 짧은 영상 보기

자전거 뒷자리에서 바라본 든든한 아버지의 어깨

임은정: 저희 아버지는 몹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대학, 아니 고등학교 진학도 못 한 처지라 공부에 한이 많으셨어요. 딸이지만 제가 공부를 잘했으니까 제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셨어요. 아버지가 슈퍼를 하셨는데, 중·고등학교 6년 내내 쌀 배달 자전거 뒤에 저를 태우고 등하교를 시켜주셨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자전거를 태워 등교시켜주시고. 자율학습 끝나고 밤 10시인가요. 하굣길에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가 저를 태워주셨는데, 자전거 뒷자리에서 아버지 등을 보며 학창 생활을 보냈으니 아버지가 늘 감사하고 고마운 존재죠. 든든한 어깨입니다. 

배소라: 어릴때 공부를 잘 하면 주변에서 ‘판사나 검사가 되어야겠네,’ 이런 말도 많이 하고, 어른들의 기대가 크지 않습니까. 검사님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시는지요. 검사가 된  계기나 배경이 궁금합니다.

임은정: 아버지도 그렇지만 어머니도 공부에 한이 많으셨어요. 형제 많은 어려운 집의 맏딸이라 갓난 막내 여동생 등에 업고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교실 밖 창문 넘어 칠판 보며 공부하다 결국은 초등학교를 중퇴하셨어요. 공부에 한이 맺혀서 자식들만은 내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대학 보낸다 결심하셨대요.

 저희 딸이 셋인데 ‘첫째 딸은 교수, 둘째 딸은 의사, 막내딸은 법관 시켰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셨다 하고. 기억은 안 나지만 제가 어릴 때 그 말을 듣고 ‘응, 엄마 나 그럼 법관 될게’라고 했대요. 만약 엄마가 딸들의 꿈의 순서를 바꿨으면 제가 의사나 교수를 꿈꿨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 이유로 법대에 진학했고요, 가서 보니 적성에도 딱 맞더라고요. 그래서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르고 누르고 참다 2012년에 터져 버린 내부 고발

배소라: 능력 있는 여성 검사로 탄탄한 출셋길을 걷다가 뜻밖의 내부 고발로 파장을 일으켰고 계속 그 행보를 이어오고 계신데, 내부 고발을 감행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셨나요?

임은정: 물이 끓으려면 100도까지 올라가 비등점을 쳐야 그때부터 끓지 않습니까? 그전에도 검찰 내에서 봉변을 직접 겪기도 했고, 보기도 했고, 동료들이랑 뒤에서 수군거린 적도 많았지요. 그전까지만 해도 이건 개인적 일탈이다, 저기 저 검사장 이상하다, 저 차장 이상하다 같이 뒤에서 험담을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본부라 할 수 있는 법무부에 들어가서 정말 많은 걸 보고 겪었습니다. 저 자신도 거기에서는 침묵의 동조자이기도 했고, 그런 걸 계속 보고 듣고 겪으면서 고민했어요.

선배들 보면 살짝 개기다가 불이익을 받은 경우도 좀 많이 봤는데. 그중 어떤 분은 저항한 걸 후회하더라구요. 저 같은 경우 법무부에 있는 동안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에 ‘일어나서 또 나설 것인가? 가만히 찌그러져 있을 것인가?’ 고민만 하다가 주저앉아 있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 한 거지요. 

 각자의 양심이 그릇이 다르지 않습니까? 부끄러움을 눌러 담는 그릇. 그런데 눌러 담고 또 담다가 넘쳐흐른 게 2012년이라 생각이 들고요. 이제 더 이상 눌러 담을 수가 없으니까 계속 넘치더라고요.

배소라: 임 검사님은 검찰 내부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모르지만, 시민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그 공익 제보자로서 소중한 고마운 분인데요. 그래서 사랑과 응원을 많이 받고 계시는데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임은정: 그러니까 제가 한 것에 비해서는 응원도 많고 성원도 많고 관심도 많아서 늘 감사합니다. 다른 공익 신고자들은 저처럼 관심받는 사람 별로 없어요. 제가 한 것에 비해 너무 관심이 많으셔서 그게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마음 늘 가지고 있고요. 그런 분들의 성원에 제가 덜 미안하도록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사회와 역사에 유익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서 부끄러움과 염치를 아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기억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고요. 일단 부끄러움을 담을 그릇에 지금 더 이상 담을 공간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끓어 넘칠 것 같습니다.

2013 정직처분을 계기로 맹렬해진 글쓰기

배소라: 2019년 1월 <경향신문> ‘아이캔스픽’을 시작으로 계속 연재를 해오셨고, 그전에도 오랫동안 검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셨던 걸로 아는데요. 글은 오래 써오셨지만, 책을 출간하는 것은 처음인데 이번에 결심하고 책을 내시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임은정: 싸이월드 같은 사이트에 도가니 일기 같은 건 좀 써 왔지요. 그러다가 2013년 2월에 4개월 정직 처분을 받고 쉴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나 같은 사람도 책을 내나 싶었지만, 시간이 많으니 출판사에 놀러 가기도 했지요. 그때 들은 이야기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인데, 글이 너무 짧다고 해요. 짧아서 출판하기에는 너무 분량이 적다는 말을 많이들 하셨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전 검사 게시판에 글을 계속 썼지만, 검사 게시판에 계속 써가지고는 반향이 없더라고요. 

 검사들이 별 반응이 없어서 활동하는 공간을 조금 넓혀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사회가 바뀌면 검찰도 바뀌니까, 검찰에 국한할 게 아니라 사회에다가 말해보자.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외부에서 찾겠다는 생각에 칼럼을 쓰게 됐습니다. 내부 투쟁부터 시작해서 10년 이상 쌓이다 보니까 저도 이 정도면 모퉁이에 서서 정리도 하고 새로 시작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스스로에게나 저를 지켜보시는 분들, 저를 오해하시거나 응원하시는 모든 분에게 설명해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책을 내게 됐습니다.

배소라: 이번 책 제목을 SNS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이제 계속 가보겠습니다>로 결정하셨는데요.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임은정: 삶은 곧 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길을 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길을 다지는 사람들이 있고, 길을 넓히는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들의 경우에는 길을 막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저는 제가 역사를 바라보면서, 나름대로는 북극성을 따라 길을 잃지 않고 방향을 잡아서 열심히 길을 열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에다 저한테는 말의 힘이 있잖아요. 말에는 얽매이게 하는, 약속하는 힘도 있고 사람들한테 내뱉는 행위를 통해 ‘저는 이렇게 살겠습니다’라고 약속하는 의미도 있고요. 제가 힘들 때마다 스스로 주문 걸듯이 계속 읊조리는 말인데요. 계속 가보겠다는 저의 결심을 제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 다짐하는 마음으로 정했습니다.

법의 본질은 인간을 향한 신뢰와 연민

배소라: 저는 원고를 처음 받아 읽으면서 좀 놀랐어요. 보통 법원이나 검찰에서 쓰는 공식 문서는 굉장히 딱딱하잖아요. 형식도 중요하고요. 검사님 글은 굉장히 감성적이고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보니까 논고문도 이런 식으로 작성하신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임은정: 제가 대학교 때 응원 서클 가입하고, 놀러 다니느라 공부를 열심히 안 했어요. 우리 대학교 때는 수업에 잘 안 들어갔거든요. 잘 안 들어가다 어느 날 오랜만에 수업에 들어가 형법 총칙 시간에 혼자 멍때리고 다른 생각 하다가 깨달았던 법의 정신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민이더라고요. 형법 총칙의 정당방위, 과잉방위 같은 용어를 보면서 ‘법이 이렇게 따뜻해?’ 하며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그 순간 법조인이 딱딱한 법전에서 인간의 체온을 느낀다는 게 되게 신선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이란 딱딱하다. 법률의 언어나 공식 문서는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이구나, 괜히 무게를 잡는 행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법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거든요. 그러니 법률의 언어 역시 사람에게 하는 말이고 사회에다 하는 말이구나. 

 제가 깨달은 법의 정신을 사람과 사회에게 하는 말 그것이 검사의 언어라고 생각하고, 다른 검사가 아니라 임은정 검사의 언어이니까. 여기에 제가 이 사람한테 하고 싶은 말을 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제 말에 남긴 저의 지문이라 할 수 있지요.

배소라: 많은 검사님들이 좀 그렇게 써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에 등장하는 과거사 재심 사건들의 경우에 백지 구형을 하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무죄 구형을 하셨단 말이죠. 그 이유와 상황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리고 과거사 반성 논고가 가진 의미와 필요성도 짚어주셨으면 합니다.

사건 관계자에게만 엄히 훈계, ‘엄계’하고
   검찰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하면 안된다
부딪쳐서 받아낸 판례가 디딤돌 판례
   지금 안되면 60년 후에는 알아주겠지

백지 구형, 검찰의 과거 허물을 덮기 위한 관행

임은정: 이게 형사소송법 302조의 의견 진술 의무는 법적 의무예요. 검사는 정당한 법령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죄 무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의견을 진술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고요. 백지 구형이란 게 과거사 사건과 검찰이 애초에 무혐의 처분했다가 법원에서 공소제기를 명령한 사건, 이 두 가지 경우에만 적용하는 검찰 관행이에요. 검찰이 스스로 만들어서 이래도 된다고 우리끼리 만든 약속이란 말이죠. 

‘계속 가보겠습니다’ 저자 임은정 작가의 <피렌체의 식탁> 인터뷰 영상 화면 갈무리. 김이향 피디

 관행이라는 게 법이 정한 것이 아니니 그렇다면 검사는 무엇을 말해야 되는가? 법을 말해야 한다면, 정의를 말해야 한다면, 이 사건이 무죄라는 것은 모든 검사가 다 알거든요. 그리고 검찰에서 구형한 직후에 법원에 판결하면 무죄 판결이 날 것이라는 거 다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검찰 선배들이 기소했고 유죄를 주장했던 사건이니까 무죄라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검찰이 누구에게 굳이 얽매인다면 국민에게 얽매이고, 법에 얽매여야지, 검찰 선배들의 체면에, 검찰만의 논리에 얽매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법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의무이기도 하고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우리 검사들이 조사할 때, 특히 가해자들한테 엄히 훈계한다 해서 ‘엄계한다’는 표현을 써요. 아니 검찰이라도 잘못한 게 있으면 피해자한테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해야지, 왜 이리 뻔뻔하게 엄히 훈계해요. 그런데 검찰이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뻔뻔해지더라고요. 그럴 수는 없잖아요. 저는 우리 검찰 내 사건 당사자들에게 하던 말 그대로 우리 스스로에게도 적용하자, 그게 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서 무죄 구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직무 배제가 되었을 때 직무 배제됐다고 해서 그냥 손 털고 있으면 검찰의 직무 유기를 방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엇이 옳은지를 짚고 넘어가기로 했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백지 구형의 위법한 관행은 계속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부딪히기로 결심해서 부딪혔고요, 산산이 조각났고요, 부활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디딤돌 판례가 쌓여 징검다리가 되길

배소라: 어쩌면 누구보다 원칙주의자가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책에서 ‘디딤돌 판례 만들기’를 계속 강조하셨어요. 이제 나는 디딤돌 판례를 하나 만든다, 그래서 또 판결해야 된다 이게 반복돼서 나오는데요. 대략적인 의미가 짐작은 되지만 그게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런 걸 만들어가는 게 검찰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임은정: 제가 최근에 영화 한 편을 보았어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그걸 보면서 제가 깜짝 놀랐던 점이 법대생이라면 다 아는 유명한 판례가 있어요. 가요나 영화 같은 경우에는 사전 심의를 옛날에 다 받았거든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명백한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서 그 사전 심의 검열 제도가 사라졌어요. 법대에서 당연히 배웠어요. 그걸 안 배우고 법대를 졸업할 수가 없거든요. 근데 정태춘 선생님께서 부딪혀서 받아낸 판례라는 사실을 몰랐다가 이번에 영화를 보고 알게 됐습니다.

 당연히 깜짝 놀랐지요. 디딤돌 판례는 그런 거예요. 권력을 상대로 싸워야 할 때 사람들은 당연히 체념하잖아요. 권력은 불편하고, 두렵고. 힘없는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면서 체념하고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군가 있어야지만, ‘이게 아니야’라고 하면서 부딪히고, 또 판례가 쌓여야지요. 국회의원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법을 바꿀 수도 없고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듯이, 소장을 내면 몇 년 뒤에는 판결문이 나와요. 그것을 자꾸 두들겨야지 판례가 나오고.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판례가 쌓여야 역사의 앞을 가로막은 큰 강물에 발 하나 디딜 수 있는 디딤돌을 놓는 거니까요. 그렇게 디딤돌 판결을 여기에 계속 놓다 보면 결국 그것이 돌다리가 될 테고, 굳건한 다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판례 하나 만드는 게 제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인 것 같아서, 법조인이라면 또 그렇게 한 보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배소라: 많은 분이 디딤돌을 하나씩 놓으면 굳건한 돌다리가 되겠죠. 20년 가까이 검찰 개혁에 대한 논의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지난 5년간 뭐 약간은 실현된 부분도 있고 미흡한 점도 많다, 또 반대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어쨌든 여전히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높은 것 같아요. 그런데 국민에게 신뢰받는 검찰이 가능할까요.

임은정: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꿈꾸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순진하게 역사의 발전을 믿냐고 저를 타박하던 선배가 있었는데, 저는 역사의 힘을 믿거든요. 그리고 역사를 1년, 2년 짧게 보면 역사의 역류 앞에서 무력한 개인이 좌절하게 되고, 역사 후퇴가 한 번씩 보이니까 그렇게 되면 체념하게 되는데요. 저는 2012년 12월 무죄 구형할 때 지금 당장은 죽을 거라 생각했어요. 검찰 조직은 항명을 살려두지 않으니까. 나는 죽겠지만 한 60년 뒤에는 내가 옳다고 세상은 알아줄 거야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한 5에서 7년이니까 판례가 나오고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역사가 빨리 바뀐 것에 대해서 되게 감사했고요. 조금만 길게 보면 결국 바뀌어요. 제가 박형규 목사님 무죄 구형할 때, 목사님이 마지막 의견 진술하고 무죄 판결 받고 나가실 때 제가 그랬거든요. ‘어제 당신이 만들려고 했던 내일이 바로 오늘임을 믿습니다.’ 역사의 하루는 정말 길잖아요. 길게 보면 결국 바뀔 거고요. 살아생전에 내가 원하는 그 꿈을 바로 보지 못할 수 있어도, 다음 세대는 볼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으니까. 계속 꿈꿔보려고요.

배소라: ‘어제 당신이 만들려고 했던 내일이 바로 오늘임을 믿습니다.’ 참 멋집니다. 

임은정: 그렇죠. 제가 역사적인 순간에 무죄 구형을 하고 과거사 반성을 할 수 있는 사명이 주어진 것을 그 순간에 느꼈어요. 나한테 엄청난 의미 있는 일이 주어졌구나, 라고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박형규 목사님처럼 시대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부딪혀가면서 고통받은 분들한테 감사할 수 있는 것. 그것도 후배로서 저한테 주어진 역할이잖아요. 감사한 일이죠.

배소라: 책에 보면 계속 검찰에 남아서 난 이 조직을 떠나지 않고 쓴소리를 계속해서 검찰을 변화시키는 게 임 검사님 개인에게 해피엔딩이다, 그렇게 읽다 보니 문득 검사님은 또 다른 의미의 검찰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나쁜 의미가 아니라 진짜 이 조직이 제대로 바로 서야 한다. 시민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 의미의 검찰주의자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동안 계속 변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잖아요. 그러면 임 검사님에게 검찰이라는 조직은 어떤 존재인가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요. 

배소라 메디치미디어 출판콘텐츠실장이 ‘계속 가보겠습니다’의 저자 임은정 작가와 인터뷰 하는 장면. 영상화면 갈무리. 김이향 피디

검찰은 죄의 무게를 다는 저울, 정확한 눈금 위해 노력해야

임은정: 검찰이 지금 사회의 주목을 너무 많이 받고 역사의 디딤돌이 될 때도 있고 걸림돌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는 사회 자체가 어찌 보면 좀 기형적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사회적 분쟁이나 갈등이 검찰로 몰려와 수사로 밝혀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상황 자체가 좀 가슴 아프고, 사회가 병든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검찰은 죄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눈금을 속이는 검찰 내외의 많은 손장난이 있어 현재 문제가 되는 거지요. 죄의 무게를 공정하게 달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이토록 소란스럽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죄의 무게를 공정하게 달 수 있도록 고장 난 저울을 고쳐보려고 하는 많은 수리공 가운데 하나. 제가 생각하는 저의 역할입니다. 

배소라: 애증의 감정을 모두 가진 의미 있는 조직이라 더 바로 서기를 원하시는 것 같고요. 그동안 시련을 많이 겪으셨는데 이번에 또 심층 적격심사 대상자가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또 큰 파도를 넘어야 하는 상황인데요. 검찰이나 검찰의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임은정: 제가 2016년 2월에 적격심사를 어렵게 통과하고 그때도 잘릴 뻔했고요. 어렵게 통과하고 그때 생각은 뭐냐 하면, 그전에 무죄 구형하고 나서는 적격심사로 다음에 오면 바로 잘릴 것 같아서 검사 게시판에 살짝살짝 나름 톤 조절해서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게시판에 썼는데도 불구하고 잘릴 뻔했거든요. 

 2016년 2월에 간신히 통과되고 나서는 다음 적격심사가 7년인데 7년 동안 여한 없이 떠들고 부딪히고 문제 제기한 다음에 내 발로 나가겠다, 아무래도 그다음에 무조건 잘릴 거니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발장도 내고, 공익 신고도 하고, 부패 신고도 하고 별걸 다 했던 건데. 생각보다 무죄 구형하고 나서 징계 취소소송 승소하고 나서 그때 제가 조금 승리감에 도취가 됐는지 빨리 뭘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7년이면 내가 할 수 있는 거 웬만큼 하고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7년이라는 타임 테이블을 잡은 거였는데요. 아직 제가 목이 마르거든요. 갈 길이 조금 더 있어서 잘라보려면 잘라보시라, 나 자르면 다시 퇴직 명령 취소소송 하면서 디딤돌 판례 또 하나 만들지, 이런 마음으로 계속 싸워볼 생각이고요. 포기하면 바뀌지 않아요. 저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외부에서 보시는 국민들은 잘 모르시더라도 검찰 안에서 한때 좀 강직했다 하던 선배들 중에 자리에 연연해서 돌변한 경우를 좀 많이 봤어요. 그런 분들을 보면 역사와 진실의 힘에 대해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게 아닌가. 시대의 역류는 분명 있는데, 역류가 자기 앞에서 거대해 보인다고 착각해 버리는 순간 그 역류에 편승해서 역사의 걸림돌이 되거든요. 시대의 힘과 역사의 힘, 진실의 힘을 믿고 시대의 역류가 있다 하더라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신뢰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함께해줄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힘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한번 들어보셨으면. 함께 저벅저벅 걸어가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함께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거든요. 같이 가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일을 같이 열어보았으면 좋겠어요. <피렌체의 식탁> 독자 여러분도 같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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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사는 단지 축구 클럽만은 아니다. 바르사는 정체성이고, 철학이며, 역사다. 바르사는 팀이며, 조합이고, 연대다. 바르사는 ‘클럽 그 이상’이다. 스위스에 사는 김진경 필자가 바르사의 홈 ‘캄프 너우’를 다녀오면서, 바르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바르사의 탄생에서부터 지역적·정치적 역사성을 갖게 된 배경과 과정, 바르사의 축구 전술과 문화까지 유려하게 풀어냈다. 찬사만 보낸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 체제의 어두운 이면, 정치적 갈등이 빚어낸 부작용에 대한...

[정재권의 사람] 전쟁이 뒤흔든 17명 여성의 삶을 기록하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6개월 사이에 민간인 사망자만 5000명이 넘었고, 우크라이나 바깥으로 피신한 난민은 10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 시각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침공 초기에 비해 우리의 관심은 많이 시들해졌다. 이 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 전쟁에 직간접으로 휘말린 세계 각국의 여성 17명은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로, 일상의 붕괴와 전쟁의 잔혹성을 생생하게...

[정석 칼럼] 도시미인, ‘대·자·보 천국’ 암스테르담을 가다

‘미남’을 자처하는 도시학자 정석 교수(서울시립대)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다녀왔다. 시립대 학부생 4명과 함께 진행한 ‘도시미인 프로젝트’. 교통수단 가운데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 세 가지(대·자·보)가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돼 있는 도시 암스테르담을 두루 돌아다니며 친환경 도시교통 시스템의 현주소를 살폈다. 정 교수는 특히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은 네덜란드에 감탄하며 질문을 던진다. 서울을, 대한민국의 도시들을 ‘자전거 친화도시’ ‘대·자·보 친화도시’로 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