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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into 아시아’] 미얀마 사태를 ‘지정학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

by | 2021년 3월 9일 | 국제, 기획 · 연재, 정호재의 'into 아시아'

세 손가락을 펼쳐 하늘로 향하게 하는 ‘손가락 경례’. 영화 ‘헝거게임’에서 유래한 이 행위는 군부독재에 맞서는 저항정신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상징한다. (사진=셔터스톡)

2월 1일 발생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마치 1980년 5월 광주처럼 미얀마의 2021년 민주화운동은 거센 도전과 시련에 부닥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이례적으로 SNS를 통해 ‘미얀마 군부와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한다’는 뜻을 밝혔다. 민간 차원에서도 민주화 지지 성명과 모금 운동이 활발하다.
<피렌체의 식탁>은 오랫동안 미얀마 사회를 관찰해온 정호재 필자의 글을 다시 싣는다. 필자는 자신의 경험과 연구 활동을 통해 ‘미얀마 사태와 중국의 함수관계’를 들여다봤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은 중국 외교관 천하이(陳海)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나라에서 지정학적 변수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정호재 필자는 “아시아 국가들이 이웃나라인 중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제안한다. [편집자]

#한국·미얀마, 지정학적 여건 비슷
  역사적으로 주변 강국 영향 받아
#”한국은 소국”이라 한 中 외교관
  중국-미얀마 군부의 핵심 고리
#중국, 미얀마 폐쇄경제 30년 지원
  쿠데타 배후 증거는 아직 없어
#미국·아세안도 쉽지 않은 군부 견제
  아시아 국제기구의 설립 추진하길

사람의 국적과 기질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라는 게 있을까? 우리는 이런 방식의 근거 없는 일반화에 무척이나 익숙해져 있다. 무엇보다 ‘지리적’ 배경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하곤 한다. 우리가 비좁은 서울에서 강(江)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강남, 강북 사람의 차이를 들먹일 정도인데, 대륙과 섬나라 그리고 반도(半島)의 기질적 차이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일본인에겐 ‘섬나라 특유’의 기질적 해석을 동원하고, 중국인에게는 ‘대륙적 성향’을 기대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미얀마(버마)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필자의 직간접 경험을 종합하면 ‘한국인과 무척이나 닮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데, 미얀마 사람 중에는 조금 급한 다혈질 성격이 많다거나, 체면과 의리를 많이 따지고 자존심을 중시하는 이가 많다. 게다가 다민족 국가라고 해도 압도적으로 불교 신자가 많다. 오랜 쌀농사 문화를 지켜온 것도 흡사하다.

지정학적 여건, 나라의 독립, 지식인의 절개

결정적으로 닮은꼴 요소는 또 있다. 바로 지정학적 여건이다. 북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남쪽으로는 바다와 접하고, 다시 인도와 태국이라는 강자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한반도의 지리·정치적 유사성을 떠올리게 된다. 불행한 근대사를 겪은 것도 비슷해 미얀마 지식인들은 ‘나라의 독립’과 ‘지식인의 절개’에 대해서 유달리 집착하는 편이다.

필자에겐 최근 1년 넘게 월급을 주면서 미얀마어 번역 일을 맡기는 대학생 조수 한 명이 있다. (지난해 6월에 헤어져 얼굴을 못 본지는 꽤 되었다) 그러니까 지난해 초 미얀마의 한 구직사이트에 연구조수를 뽑겠다는 구인공고를 올리자 순식간에 30여 명의 지원서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중 5명 정도를 면접 봐서 2명을 뽑아서 일을 맡겨왔다. 이 가운데 한 여학생이 아주 똑똑했는데 양곤의 한 통신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미얀마에선 대학 4학년이라 해도 21~22세밖에 되지 않는다. 1988년 시위로 과거의 교육체제가 완전히 붕괴했기 때문이다. 당시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대학생들이 거리시위를 쉼 없이 주도하자 시위 근거지인 대학을 아예 무력화시키고 정규교육 시스템을 파괴해 버리는 우민화 정책으로 맞대응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 전 세계 대부분 나라가 12년제를 택하고 있지만 미얀마만이 유독 10년제로 퇴화한 것이다. 7세에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17세에 대학생이 되고 21세면 대졸자가 된다는 얘기다.

미얀마 신세대, 아시아 최전선의 지식인 자부 

이 뿐만이 아니다. 이 친구가 다니는 방통대(통신대) 역시 비극적 현대사의 산물이다. 영국 식민지를 경험한 미얀마에도 ‘양곤대(랑군대)’라는 전통의 국립대학 시스템이 100년도 훨씬 넘게 작동해왔다.(1878년 개교)

그런데 이 대학 역시 1988년 민주화시위의 직격탄을 맞아 1990년대 이후 20년 넘게 정규 신입생을 뽑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기존 명문대학은 신입생을 뽑지 못하고, 군사정부는 ‘통신대학’이라는 약식(?) 교육기관을 다수 만들어 대학졸업자를 배출해온 것이다. 통신대학에선 1년에 2~3주 정도만 학교에 출석하면 졸업장을 발급해준다.

미얀마에서 조금 있는 집 자식들은 싱가포르나 호주 등지로 유학을 떠났고, 중산층 이하 학생들에게는 통신대가 거의 유일한 선택이 됐다. 통신대 학생들은 대개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높을 수가 없다. 아웅산 수찌 NLD(민족민주동맹) 정부는 정규교육을 12년제로 되돌리고 고등교육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해왔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최근 미얀마 쿠데타 후폭풍으로 인터넷 사정이 나빠져 이 친구와 연락이 자주 끊기고, 그 친구도 갑작스러운 정치적 변화 탓에 필자의 조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매주 수십 명의 시위대 사망자 소식이 들려오자 필자 입장에선 걱정이 돼 자주 우려 섞인 조언을 건네곤 했다. “몸조심해라” “시위대 앞에 나서지 마라” “정치현실도 중요하지만 넌 무조건 대학부터 졸업해라” “기왕이면 토플 점수 좀 따놓아라” 등등. 그런데 그가 얼마 전 이런 답을 해왔다.

“군부 정권의 대학 졸업장 따윈 제겐 필요치 않아요. (I won’t attend University under Junta administration.)”

이 메시지를 받고 크게 놀란 필자는 스스로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성세대가 된 것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야 했다. 그리고 가냘프게 보였던 이 친구가 참으로 전형적인 미얀마의 열혈청춘이자 아시아 최전선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영국 식민지, 일제 침략, 반세기에 달하는 군부독재를 거치면서도 미얀마 사회 저변에는 민주주의·인권에 대한 가치관이 면면하게 흘러 왔던 것이다. 실제로 1971년에도, 1988년에도, 2007년에도 미얀마 시민들은 거리에서 수백 수천의 희생자를 내면서도 줄기차게 군부독재에 저항해왔다.

미얀마 양곤에서 가두시위에 나선 시민들. (사진=트위터 katelyn1985)

약소국 국민의 숙명: geopolitics 사고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은 지리적인 위치 관계와 현실 정치와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지정학에 알게 모르게 너무나 익숙한 편이다. 한반도 주위를 둘러싼 4대 강대국에 대한 오랜 담론이 바로 ‘지정학적 사고’의 전형적인 사례다.
구한말 이래 한국의 역대 정치세력은 알게 모르게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과 모종의 역학관계 속에서 행동과 사상이 특정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일본 경제의 쇠퇴, 한일관계 악화와 맞물리며 불거진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토착왜구’ 논쟁도 정확하게 지정학적 논쟁의 일부이다. 국내 극우세력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면서 ‘반중-혐중’으로 치닫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이나 미얀마에서 지정학 담론이 힘을 받는 이유가 있다. 바로 오랜 기간 약소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망국의 인민’이란 처참한 지위를 경험한 양국 국민들은 주변 강대국의 흥망성쇠에 민감해져야 했으며, 기왕이면 가장 센 강자와 끈끈한 인연을 맺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집단무의식이 생겨났을 것이다. 1962년에 발표된 전광용의 단편소설 <꺼삐딴 리>가 그렇게 불행했던 시기의 우리의 자화상이다.

문제는 지정학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무척이나 우울한 일이며 잿빛 결론으로 향하기 쉽다는 점이다. 지정학에 얽매이면 당면한 정치현실을 스스로 타개하고 무언가 원대한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기가 힘들어진다. 쉽게 말해 “강대국만을 잘 추종하면 된다”는 수동적인 정치관이 통용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기회주의적 행동이 ‘국익’이라는 표현으로 미화되고, 외교적인 모종의 뒷거래는 대중에게 쉽게 공개되지 않아 물밑에선 음모론이 횡행하게 된다. 적잖은 이들이 현재 미얀마 사태를 “지정학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라고 주문하는 이유일 것이다. 미얀마 국민의 “인권” “민주주의 회복” 같은 외침에만 집중하자는 취지라고 생각된다.

중국 변수: 한국, 북한 그리고 미얀마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 되겠느냐.”
이 표현이 한국에서 유명해진 시점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2016년 12월 사드 사태 당시 항의 차원에서 한국을 방문한 천하이(陳海)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한국에 던진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당시 45세에 불과(?)했던 이 젊은 외교관은 한국의 정계를 거의 쑥대밭으로 만들고 ‘한한령(限韓令)’이라는 폭탄까지 던지고 유유히 한국을 떠난 바 있다. 중국과 미국, 일본 사이에서 당시 박근혜 정부는 외교참사를 넘어 끝없는 수렁에 빠졌는데, 그러한 국제질서의 냉혹한 현실을 한국인에게 적확하게 인식시킨 인물이 바로 ‘천하이’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을 방문했던 중국 외교관이 친절하거나 우호적인 경우는 수천 년 역사에서 거의 없었을 것 같다. ‘천하이’의 발언은 국가 차원에서 도발을 넘어선 만행이었고,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에 들어섰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신호였다.

여기서 중국 외교관 얘기를 꺼낸 이유는 한국을 발칵 뒤집은 천하이의 다음 행선지가 미얀마였기 때문이다. 북한 김일성대학에서 조선어를 공부한 천하이는 서울에서 주한중국대사관 참사관으로 오래 일했기에 차기 주한대사로의 영전이 점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소국-대국” 발언의 후유증 때문인지, 2019년 첫 대사급 행선지는 한국이나 북한이 아닌 미얀마가 된 것이다.
2019년 미얀마 부임 이후 그의 행보는 역시 거칠 게 없었다. 아주 빈번하게 아웅산 수찌 여사와 회동한 것은 물론 사실상의 야당 지도자인 민아웅 흘라잉 군(軍)총사령관도 자주 만났다. 왕이 외교부장의 핵심참모였던 그는 2020년 1월 있었던 시진핑(習近平)의 미얀마 방문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니까 2019년부터 지금까지 중국-미얀마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에 한국을 ‘소국’으로 지칭한 ‘중화(中華)주의자’ 천하이가 있다는 얘기다. 그의 관점에선 한국도 소국이니 미얀마는 더욱 만만하게 보였을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미얀마를 보는 바라보는 속내를 설명하는 상징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미얀마가 한국에 의미가 있는 이유는, 필자의 견해로는, 민주화운동이나 경제발전보다는 오히려 북한과 무척이나 흡사한 현대사 이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얀마를 통해서 북한의 개혁개방은 물론이고, 중국과 국경을 공유한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과 대응방안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2016년 12월 한국을 방문한 중국 외교관 천하이의 발언 내용. 그는 이후 주미얀마 대사를 지내며 군부 인사들과 적극 교류했다. 아래는 지난해 7월 천하이 대사가 미얀마 군총사령관과 대담하고 있는 모습. (사진=KBS, 중국 외교부)

미얀마·중국의 역사적 관계

2021년 ‘미얀마 유혈사태’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중국의 개입 여부다. 민주화를 둘러싼 현 사태는 지정학적 사고가 작동하기에 최적의 사례다.
미얀마는 중국의 오랜 뒷문에 해당한다. 중국에서 인도로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미얀마를 거쳐야 한다. 인도양으로 나가는 가장 빠른 행로는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에서 출발해 이라와디 강을 따라 미얀마의 항구를 통해 빠지는 길이다. 이미 송유관이 건설되었고 중국 자본으로 여러 개의 연계도로와 공단까지 건설이 끝난 상황이다. 미얀마가 중국에 필요한 이유는 원유 수입량의 80%가 운송되는 남중국해의 대안 노선이기 때문이며, 중국의 또 다른 뒷문인 파키스탄으로 연결되는 위구르 지역을 장악하려는 움직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래서 중국이 자신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얀마 군부에 쿠데타를 사주했거나 혹은 적극 지원해줬을 것이라는 의심이 ‘중국 연계설’의 핵심을 이룬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중국은 애당초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성명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 입장에선 ‘내정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의심으로 가득 차있다. 이 가설은 이미 미얀마인 상당수가 믿고 있으며, 미얀마 내부의 반중(反中) 감정은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단시간에 증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양국 최고위급 관계자의 증언이나 문서로 증명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도 부족할지 모른다. 아니, 밝혀질 가능성은 사실 ‘제로’에 가깝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미얀마 군부 반세기 집권(1962~2015년)의 정당성 자체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미얀마 군부 쪽에서 자신들이 중국의 꼭두각시임을 증명하는 자폭성 증언을 할 리가 없다.

중국 입장에서도 이는 커다란 부담이다. 국제관계에서 타국의 정치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은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조차도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었다. 현재의 미얀마 사태는 1973년 칠레의 민주정부인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쿠데타가 연상될 정도인데, 당시 쿠데타를 기획한 미국 CIA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제국주의적 행태’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13년 건설된 중국-미얀마의 ‘가스관 만리장성’ 노선. 미얀마 서부 해안도시 차우크퓨에서 시작해 중국 윈난·구이저우성을 통과해 광시성 좡족자치구까지 연결된다.

그렇다면 쿠데타 승인·후원 정도의 수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이 미얀마 군부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줬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러니까 두 번째 가설인데, 공통의 교감 정도는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이다.
여기에 대한 정황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지난해 7월 천하이 대사와 민아웅 흘라잉과의 대담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당시 홀라잉 총사령관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93주년을 축하하면서 미얀마-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 및 경제회랑 건설계획(CMEC)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 의사를 밝혔다. 또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비롯해 티베트, 신장위구르, 홍콩에서의 정치 안정화 정책에 대한 지지도 함께 밝혔다.

그런데 이에 대한 천하이 대사의 반응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중국은 미얀마가 외세로부터 간섭을 받을 경우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지정학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가설의 사이 어딘가에서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미얀마 대중과 해외 언론의 심증(心證)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란 이웃, 미얀마에 기회이자 위기

중국은 미얀마를 ‘미엔디엔(緬甸)’이라고 부르는데, ‘실처럼 멀리 보이는 나라’라는 뜻이다. 중국과 미얀마는 무려 22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인 1300km보다 1.7배가량 긴 셈이다. 한중 관계와 역사를 칼로 명쾌하게 자를 수 없듯, 미얀마의 역사 역시 중국과 긴밀하게 맺어져 왔다. 버마 민족 자체가 AD 8~10세기 무렵 남몽골에서 윈난을 거쳐 현재 미얀마 땅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웃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미얀마에게 커다란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했다. 화려한 중국 문명과의 교류를 통해 이득을 얻었지만, 당대 최고의 불교문명인 바간 왕조(AD 849~1297년)가 몽골 침략으로 무너지기도 했다. 이후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할 무렵 남명의 황족이 만주족 팔기군에 쫓겨 당도한 곳이 미얀마 국경이었다. 중국의 뒷문이 미얀마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1950년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밀린 국민당 5만 패잔병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도주로 역시 미얀마였다. 국경을 넘은 국민당 패잔병들은 중국공산당과 미얀마 정부의 갈등을 고조시켰다. 패잔병 중 상당수는 중국 본토가 아닌 대만으로 향했다. 또 다른 일부는 국경 오지에서 양귀비를 키우며 생존을 모색했는데 이후 ‘마약왕 쿤사’ 집단을 낳는 배경이 된다.

국민당 패잔병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과거에 미얀마-중국 관계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미얀마는 역사적 경험으로 이웃나라 인도와 중국의 위협을 알고 있었고,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해 중화제국과 뚜렷한 차별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양국 긴장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한 사건은 바로 1988년 미얀마의 민주화시위, 1989년 중국의 천안문사태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건은 외견상 공통점을 갖는데, 바로 군부가 광장의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를 했다는 점이고 사망자 역시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이다.
1988년 시민봉기를 무력으로 좌절시킨 미얀마의 신군부는 이후 서방세계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면서 동병상련을 느꼈는지 미얀마와 중국의 군부는 서로 긴밀한 협조관계에 돌입한다. 미얀마 군부로서는 중국 외에는 탈출구가 없었던 셈이고,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나 미얀마 같은 핵심 이웃이 미국이나 서방세계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게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아웅산 수찌의 외교실패? 

결국 지난 30여 년간 미얀마가 폐쇄경제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동아줄은 중국이었다. 미얀마는 국경무역을 통해 부족한 생필품을 보충하고 주요 생산품인 천연가스와 목재, 광물 등을 몰래 수출하면서 서방 경제제재를 견뎌냈다. 마치 북한의 행보와 흡사하다.
서방의 제재조치가 풀린 2011년 이후 미얀마와 중국의 국경무역은 되레 날개를 단 셈이 됐고 경제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자연스레 미얀마 북부지역을 오가는 중국인 숫자도 크게 늘고 중국 기업들의 투자도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바로 2015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아웅산 수찌의 행보와 그에 대한 중국의 평가일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이 군부 쿠데타에 적극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수찌의 대외 노선에 불만이 있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 베이징은 야당정치인 수찌를 불러 사실상의 면접을 보았고 이후 매년 베이징으로 초청하며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결실이 바로 2020년 1월 시진핑의 미얀마 방문이었다. 외교부장관을 맡은 수찌로서는 대중국 관계가 대미관계만큼 중요한 사안이었고, 밖에서 볼 때 수찌가 중국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은 분명하다. 서방세계로부터 무수한 비난을 받으면서 수찌가 로힝쟈족 학살을 주도한 군부를 옹호한 것 역시 대중국 관계에서 감점요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5년간 수찌의 NLD 정부에 중국이 불만을 가졌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2016년 집권 후 미국보다 먼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접견했던 아웅산 수찌(왼쪽 사진). 2020년 민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을 만나는 시진핑. (사진=당시 미얀마 관영지)

미얀마 군부를 자제시킬 방법은?

국가의 지리적, 지정학적 요인은 국운을 뒤바꾸는 결정적인 변수다. 미얀마가 외세의 잦은 침입을 받은 것이나, 그것에서 도피하기 위해 50여 년간 군부가 폐쇄적 경제체제를 유지한 것이나 모두 지정학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급부상한 중국의 최근 행보는 이번 쿠데타 사태가 중국과 절대 무관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와의 국경분쟁을 겪었고, 신장 위구르 지역을 비상식적인 수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홍콩 민주화 시위를 난폭하게 진압하고, 남중국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 같은 흐름에 비추면 인도양 진출을 열망하는 중국 입장에서 미얀마를 ‘관리’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미얀마 군부가 그 흐름을 읽고 행동에 돌입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미얀마 유혈사태가 충격적인 이유는 1988년에 벌어진 극심한 반인륜적 행위가 33년이 흘러서도 똑같이 재발했다는 점이고, 국제사회가 미얀마 민주세력을 직접 지원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은 ‘내정간섭 금지’ 원칙을 들먹이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공정한 선거를 통해 집권한 민주정부와 시민들을 군부가 총칼로 진압한다는 것 자체가 21세기에는 비상식적인 일이다. 국제사회가 미얀마 민주세력을 지원하는 명분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란 변수는 이런 흐름을 막는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미얀마 사태를 지정학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족이지만 미국, 일본, 인도라는 지역 강대국이 미얀마 군부를 견제하는 게 쉽지 않고, 유엔 및 아세안 같은 국제기구가 중국의 행보를 막기도 어렵다는 게 다시금 확인됐다. 결국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필자는 ‘유럽연합(EU) 수준에 준하는 새로운 아시아 국제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시아 각국이 민관 차원에서 조속히 그런 논의를 시작하기를 기대해본다.


정호재/ 아시아연구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짧지 않게 기자생활을 했다. 아시아 각국을 두루 답사하며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번역서로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최근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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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열린 2021년 도쿄올림픽은 스포츠 특유의 감동을 선사하며 모처럼 지구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국 사회 역시 국가대표 선수들의 활약에 아낌없는 응원을 펼친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그간 외면해왔던 후진적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막식 당시 공영방송인 MBC가 보여줬던 각국 선수단 소개였다. 타국에 대한 무시와 무지를 여지없이 나타낸 선수단 소개 자막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이후 외신 보도를 통해 망신을 초래했다. 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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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전쟁을 벌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약속이나 한 듯 국내에선 빅테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체제에 관계없이 온갖 데이터를 독과점한 ‘빅 브러더’의 출현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요즘 '네카라쿠배'라는 유행어가 나돈다.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을 말한다. 반독점 전선은 한국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부 인사를 통해 빅테크 규제의지를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 안에서 ‘빅테크 규제 3인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