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참사 1주기 앞둔 이태원에 이어지는 추모 행렬과 애도
"얼그레이 빵, 다음엔 만들어줄게" 자식 잃은 엄마의 사무친 글
"오는 것 조차 무서웠다"… 살아남은 이의 슬픔
유가족부터 지인, 외국인까지… 여전히 없는 건 대한민국 정부

기억의 힘은 세다. 유가족의 고통이 그들의 것만이 아닐 때,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 사진=백범선 
기억의 힘은 세다. 유가족의 고통이 그들의 것만이 아닐 때,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 사진=백범선 

2022년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저 놀러 나간 이들이었다. 2023년 8월 어느 날, 유가족들은 시청부터 국회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걸었다. 그들의 마음이나 그들을 지켜보는 시민의 마음 모두 무너졌다. 그 무너진 상태로 1년을 왔다.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시간. 책임과 죄스러움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어야 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피렌체의 식탁> 편집팀이 이태원 그 골목을 찾았다. 사고 현장으로부터, 질서 유지를 도울 수 있었던 경찰서는 100m 남짓,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소방서는 200m 거리에 있었다. 사고 이후 세워진 기억과 추모의 벽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먼저 떠나간 이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넘쳤다. 없는 건 여전히, 시민을 지켜야 할 정부였다. [편집자 주]

10월 26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사흘 남기고 이태원을 찾았다. 이태원 1번 출구를 나오면 쭉 뻗은 차도와 비교적 한가한 인도가 한눈에 보인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전경. 도로에는 차들이, 인도에는 사람들이 다닌다. / 사진=백범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전경. 도로에는 차들이, 인도에는 사람들이 다닌다. / 사진=백범선

핼러윈 당일, ‘귀가 시 인근 역 이용’을 바란다는 현수막과 역 옆에 붙은 해밀톤 호텔 건물 상단의 전광판이, 이곳이 1년 전 사고가 일어난 장소임을 상기시킨다.

해밀톤 호텔 전광판에 쓰인 10·29 핼러윈 참사 희생자 애도 문구. / 사진=백범선
해밀톤 호텔 전광판에 쓰인 10·29 핼러윈 참사 희생자 애도 문구. / 사진=백범선

역을 나와 몇 걸음, 오른쪽으로 꺾으면 골목길이 나온다. 3m 남짓의 폭,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다.

작년 10월 29일, 이곳에서 159명이 사망하고 197명이 다쳤다.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골목. 지난해 10월, 이곳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 사진=백범선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골목. 지난해 10월, 이곳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 사진=백범선

골목의 오른편, 해밀톤 호텔 건물 벽에는 먼저 삶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빽빽했다.

포스트잇에 추모글을 남기고 있는 시민. /사진=백범선
포스트잇에 추모글을 남기고 있는 시민. /사진=백범선

포스트잇을 더 이상 밑으로 붙일 수 없는 바닥에는 꽃다발들이 놓였다. 누군가는 벽에 빵을 붙여놓았다.

'내 딸… 좋아하던 얼그레이 가져왔어. 다음엔 엄마가 만들어 줄게.'

추모의 벽에 붙은 빵과 벽 아래 놓인 꽃다발. / 사진=백범선
추모의 벽에 붙은 빵과 벽 아래 놓인 꽃다발. / 사진=백범선

사고를 겪은 이들이나 가족, 친구들은 이곳을 찾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포스트잇. / 사진=백범선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포스트잇. / 사진=백범선

또래의 자식이 있는 어른들은 미안함을 전하고, 그들과 나이가 비슷한 이들은 명복을 빌었다.

시민들이 남긴 애도 문구에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함께 기억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있다. / 사진=백범선
시민들이 남긴 애도 문구에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함께 기억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있다. / 사진=백범선

20대 사망자가 106명. 총사망자 수 159명의 절반이 훌쩍 넘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으며, 누군가의 동료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도 글을 남겼다. 그들 역시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159명의 사망자 중 26명은 외국에서 온 이들이었다.

외국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포스트잇이 곳곳에서 보였다. 이태원 참사의 159명의 사망자 중 26명은 외국에서 온 이들이었다. / 사진=백범선
외국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포스트잇이 곳곳에서 보였다. 이태원 참사의 159명의 사망자 중 26명은 외국에서 온 이들이었다. / 사진=백범선

양옆 빼곡하게 건물이 서 있는 골목을 올랐다. 그곳에서 아직도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이 있었다. 완만한 경사를 지나며 올려다본 하늘은 골목만큼 좁았다.

골목길에서 올려다본 하늘. / 사진=백범선
골목길에서 올려다본 하늘. / 사진=백범선

골목을 조금 더 올라가면 세계음식거리가 나온다. 그날 밤 사람들로 들썩였을, 그러다 고성과 답답함, 공포가 흘렀을 거리는 한산했다.

세계음식거리에서 바라본 골목 모습. / 사진=백범선
세계음식거리에서 바라본 골목 모습. / 사진=백범선

근처엔 ‘질서유지’라고 쓰인 펜스가 빼곡했다. 경찰들의 모습도 보였다.

오가는 방향을 구분했더라면, 차도를 막고 인도를 넓혔더라면, 지하철만 정차하지 않고 통과했어도. / 사진=백범선
오가는 방향을 구분했더라면, 차도를 막고 인도를 넓혔더라면, 지하철만 정차하지 않고 통과했어도. / 사진=백범선

호텔 건물을 끼고 돌아, 다시 역이 있는 큰길로 나왔다.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등지고 2분 정도 걸으면 건너편에 이태원파출소가 있다. 그곳에서 그만큼을 더 가면 이태원119안전센터가 있다.

사고 지점 200m 거리에 있는 이태원소방서. / 사진=백범선
사고 지점 200m 거리에 있는 이태원소방서. / 사진=백범선

서울 시청 앞에는 이태원 참사 사망자들을 위한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지난 2월 4일 설치됐지만, 260여 일을 넘긴 지금까지 존폐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초입에 놓인 노란 꽃. / 사진=백범선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초입에 놓인 노란 꽃. / 사진=백범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