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과천으로 이사했다. 이사는 평생 동안 몇 번 없는 큰일 중 하나다. 이삿짐을 싸고 나르는 일은 힘들지 않다. 손 하나 까딱할 필요 없다. 이삿짐센터에서 알아서 다 해준다.
문제는 의사결정이다. 이삿짐센터를 어디로 할지부터 어떤 가구를 버리고 갈지, 새로 사야 할 가전제품이나 소파는 어디에서 구입할지 등등. 소파나 책장만 해도 왜 그렇게 종류가 많은지. 다 거기서 거기고, 고만고만한데 아내는 쉬지 않고 묻는다.
그렇다고 짜증내면 어떻게 될까. “나 혼자 이사해?”로 시작해,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그러고도 당신이 가장이야?”로 끝난다. 가장이라고 결정권을 주지도 않으면서, 결국 결정은 본인이 다하면서 왜 그렇게 묻는지. 나라고 처음부터 의견이 없었겠는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리 되지 않았겠는가.

나는 왜 의사결정에 둔감했나

나는 아내와 만나기 전부터 의사결정을 삼가며 살았다. 아니 그래도 됐다. 고민하지 않고 가장 좋은 걸 선택하면 됐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땐 전주고가 가장 좋았다. 고민 없이 결정했다. 떨어졌다. 대학에 들어갈 땐 서울대가 가장 좋았다. 고민이 필요 없었다. 학과를 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시험 점수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 나는 이를 충실히 따랐다.

직장 다닐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과 밥 먹으러 갈 때도 나의 선호와 선택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 같이 우유부단한 스타일이 잘 살았다.
우선 나는 대세를 따라간다. 분위기를 파악해서 주류에 올라탄다. 그러면 판을 잘 읽는다고 한다. 심지어 고수란 소리도 듣는다.
또한 나는 묻어간다. 있는 듯 없는 듯 분명한 의사 표명을 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과묵하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듯 보이고, 모든 사안을 고려하는 사람으로 비처진다. 좋은 사람, 신중한 사람이 된다. 가수 안치환의 노래 제목처럼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 같은 팔로어는 의사결정력이 없어야 안전하다. 대신 리더에게 계속 물어봐야 한다. “내 판단이 맞나요?” “이렇게 해도 되나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결정을 내릴 실력도 권한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겠다면, 좀 더 인정받고 싶다면 “이런 방법이 있다.” “이러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선택지만 많이 제시하면 된다. 그걸로 족하다.
그렇지 않고 여기서 더 나가면 “네가 뭔데 그런 결정을 해?” “왜 네 맘대로야.” “네가 사장이야?” 이런 소릴 듣는다. 그리고 모든 공은 리더에게 돌려야 한다. 내가 판단한 것도 잘 되면 상사가 지시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의사결정 방식의 차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없는 것을 더 갈구한다고 하지 않나. 의사결정에 관해 학창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다. 의사결정론이야말로 명색이 나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국제정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결정의 본질》은 이 분야에서 고전으로 불리는 책이다. 누가 썼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는 건 또렷이 기억난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이 책이 제목 그대로 의사결정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책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세 가지 모델을 통해 바라본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과 조직행태 모델, 그리고 정부정치 모델이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에선 리더의 역할이 크고 개인의 경험과 신념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에 반해 조직행태 모델은 조직 시스템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향이 강하며, 정부정치 모델은 관련 부처가 이해관계를 놓고 벌이는 경합과 조정에 의해 의사결정이 되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의사결정이 이 세 가지 중 하나의 모델을 따르지는 않는다. 통상 세 가지가 섞이거나 중첩되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전혀 다른 요소가 개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정책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은 여론 수렴과 공청회, 당정 협의 등 시스템 상의 절차를 밟고,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 간 의견 조정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나 주무 장관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세 가지 모델 중 어느 유형에 가까운 지에 따라 리더십 스타일이 형성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합리적 행위자 모델의 비중이 크다. 의사결정 회의 참석자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고 난 뒤 마지막 ‘마무리말씀’ 순서에 자신의 판단을 얘기한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정치 모델에 가깝다. 자신이 이해당사자들의 토론에 직접 참여해 그들을 설득하고 결론을 내는 스타일이다.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도 마찬가지다. 부서장이나 본부장, 혹은 사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관례와 매뉴얼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기도 하고, 해당 부서장이나 본부장이 모여 갑론을박하는 회의나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깡패’나 ‘외골수’ 방식은 통하지 않아

회사에 들어가 기업문화에 심취했던 것도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나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회사생활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직급의 높고낮음을 떠나 그렇다. 조직 구성원 모두는 오늘 몇 시에 출근해서 누구와 만나고 무슨 일을 처리할지 의사 결정한다.
리더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의사결정은 리더가 하는 일의 거의 전부다. 리더는 의사결정을 위해 보고를 받고 회의를 한다. 의사결정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런 의사결정 방식은 조직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서로 다른 5개 기업에서 일하면서 기업문화에 따라 의사결정 방식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의사결정 방식을 좌우하는 기업문화 유형은 크게 보면 두 종류이다.
그중 하나는 윗사람 판단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조직에서 가장 일반적인, 상명하복 방식이다. 직급이 실력이고 ‘깡패’다. 이런 문화에서는 직급이 높을수록 힘이 세다. 권한도 많다. 또 이런 조직에서는 의중을 잘 읽는 사람이 잘나간다. 윗사람 마음에 쏙 드는 의견을 내놓거나, 윗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잘 뒷받침해주는 사람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가축’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물 간 방식이다. 내가 회사 생활하던 때는 대부분 기업이 여기에 해당했다. 나도 이런 문화에서 성공적인, 아니 기회주의적인 직장생활을 했다.

다른 하나는, 더 나은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 그런 전문가를 대접한다. 앞의 방식보다 합리적이다. 문제는 이런 전문가일수록 소통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소통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실력이 있으면 됐지, 알아먹고 말고는 듣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골수’, 또는 제 잘난 맛에 산다는 소리를 듣는다. 조직 안에 이른바 핵심 지지층이 있지만 대세를 형성하진 못한다.

의사결정을 위한 다섯 가지 기준

네덜란드 조직심리학자이자 IBM에서 일했던 홉스테드는 다섯 가지 기준에 따라 문화가 달라진다고 봤다.
첫째, 권력에 얼마나 민감한지. 둘째, 개인 중심인지, 집단 중심인지, 셋째, 단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는지, 미래지향적으로 판단하는지, 넷째, 불확실성, 즉 위험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 다섯째, 여성 중심성이 얼마나 강한지.

나는 회사생활을 17년간 했다. 10년은 사원, 대리, 과장으로 지냈고, 나머지 7년은 임원을 했다. 차장, 부장을 경험하지 못하고 과장에서 곧장 임원이 됐다. 그 사이 8년이란 청와대 시절이 있었다. 청와대 8년이 차장, 부장 직급을 대신했다.
그래서 나는 아래 직급과 위 직급 간의 온도 차를 잘 안다. 순차적으로 직급이 올라간 분들은 조금씩 덥혀지는 물의 온도를 감지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홉스테드가 말한 조직문화 유형 가운데 아래 직원들이 선호하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에 덜 민감하고, 개인 중심과 미래지향이기를, 그리고 실패에 더 관대하기를 원한다. 여성 중심적 문화라는 것도 경쟁보다는 협력을, 독단과 강압보다는 세심한 배려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구성원들이 선호하는 유형이다.

리더의 말은 이런 다섯 가지 기준을 따르면 된다. 그러면 그런 조직문화가 만들어지고 의사결정 기준도 분명해진다. 구성원들은 좋아할 것이고 조직은 잘 돌아갈 것이다. 조직이 잘 돌아가는 만큼 성과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의사결정권자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원칙, 기준, 경청이란 세 가지 역량

의사결정을 잘하기 위해는 세 가지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할지 말지 결정하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할지 말지의 의사결정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잣대가 중요하다. 안정과 현상유지를 원하는가, 변화와 발전을 꾀하려 하는가. 이대로 좋으면 새롭게 하지 않아도 되고, 이대로가 불만이면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둘째, 어느 것을 선택할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 복잡한 문제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단순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선택 기준은 많다. ‘명분’과 ‘실리’가 선택 기준일 수도 있고, ‘이상’과 ‘현실’이 그것일 수도 있다. 자녀의 대학 진학을 두고 ‘사회적 출세’와 ‘개인적 행복’이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 기업은 인력 구조조정을 놓고 고용 창출이라는 ‘사회적 책무’와 ‘이윤 증대’라는 기업 본연의 목적 앞에서 갈등할 수 있다. 이런 선택 앞에서 자기만의 기준과 평가 척도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수월해진다.

셋째, 조합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의사결정은 혼자서만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나아가 반영해야 한다. 경영자라면 내부 직원뿐 아니라 고객, 주주, 정부로부터 나오는 이런저런 말을 듣고 조정과 절충, 합의, 승복을 이끌어내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거시환경이나 경쟁사, 이슈,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역량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실력이 필요하다.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자세

어느 전자회사 광고 중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정말 그렇다. 사소한 결정 하나가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 의사결정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조건은 많지만 적어도 다음 세 가지는 반드시 지켜야 하지 않을까.

첫째, 경중을 가리자. 회사 다닐 적에 이런 상사를 만났다. 당시만 해도 여성 직원들에게 회사 유니폼을 입혔는데, 색상과 스타일을 어떻게 할지 몇 시간씩 회의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경영 사안에 관해서는 너무 쉽게 의사결정을 했다. 자기가 관심 있고 자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골치 아프고 잘 모르는 분야는 얼렁뚱땅 넘어가는 상사였다.

둘째,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역사적으로 잘못된 의사결정보다 제때 결정하지 못함으로써 초래하는 부작용이 더 컸다.”고 말했다.
리더라면 결정사안의 마감시한을 정해놓고 그것을 반드시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가장 나쁜 결정은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모신 어느 회장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지 않았다. 그런 결과로 크게 잘못 되지도 않았지만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실패와 위험이 두려워 의사결정을 남에게, 또는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은 리더 자격이 없다.

셋째, 혼자 결정하려고 하지 말자. 모든 걸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조바심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스스로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한다. 결정을 과감하게 위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떻게든 협업 방식을 살려야 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란 얘기는 아니다. 혹여 직원들이 놓치고 있는 정보는 없는지 챙겨야 한다. 경쟁기업은 어떻게 하고 있고, 세계적 트렌드는 어떤지. 그리고 직원들이 제시한 선택지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하는 것도 리더의 몫이다.
아울러 선택받지 못한 안과 그걸 제안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나아가 제안된 안에 갇히지 않고 그것들을 종합해서 나올 수 있는 제3의 창의적인 안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채택한 안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점검하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리더의 일이다.

나는 지금 무주택자다. 몇 년 전 부동산가격이 급등하기 직전에 20여 년간 보유하고 있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팔았다.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다. 무능한 남편이 돼 버렸다. 의사결정 장애의 말로다. 남는 건 후회와 미련뿐이다.


강원국 필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는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말과 글보다 미소 짓는 표정이 더 인상적이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각종 강연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