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후보’를 거론할 때 조장희 박사는 항상 1순위로 거론되곤 한다. 조 박사(83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국비유학생에 선발돼 스웨덴 웁살라대학으로 건너가 핵물리학을 공부했다. 1972년 미국으로 가선 CT(컴퓨터 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촬영), PET(양전자 단층촬영)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가 됐다. 특히 PET는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조장희 박사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UCLA 등 굴지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한편 1978년부터는 카이스트 초빙교수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국내 MRI 독자 개발을 주도했다. 1981년 카이스트에서 0.1T(테슬라) MRI를 최초로 개발한데 이어 1985년에는 2.0T MRI 개발에 성공했다. 이 MRI는 LG에서 상업용으로 제작해 1988년 서울대병원에 설치됐다. 조 박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천대에서 7.0T MRI 개발을 주도했다.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고려대로 옮겨 14T MRI 개발을 시작했다.

‘T’는 ‘테슬라’, 즉 자기장의 세기인데, 촬영의 정밀도를 가늠한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3.0T MRI와 새로 개발한 7.0T MRI는 마치 구형 핸드폰의 폰 카메라와 초고해상도 DSLR 카메라 간의 격차와 같다. 만약 14T MRI가 개발되면 “2019년의 의사들은 눈을 감고 수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미래의 의학 역사서에 묘사될 수 있다.

자신이 만든 MRI로 사람의 뇌를 들여다 보다 급기야 뇌과학자로 변신한 조장희 박사는 “많이 쓰면 퇴행성 질환을 얻는 관절과 달리, 뇌는 쓰지 않으면 오히려 빨리 노화된다”며 8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026년 14T MRI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조장희 박사를 16일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편집자]

MRI촬영 뇌영상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 조장희 박사. 왼쪽이 3T 촬영 영상, 오른쪽이 7T 촬영 영상이다.

-MRI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제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에 국비장학생으로 스웨덴 웁살라대학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 때 원자력 장학생이어서 스웨덴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지요. 그러던 중 1972년에 미국에 가 있는 친구가 건너오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는 겁니다. 저는 사실 미국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스웨덴 유학 중 가끔 미국에 가보면 빈부격차도 심하고,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익숙해져 있던 제게는 별로 안 좋아 보였죠. (웃음) 그런데 그 당시 반핵 운동이 크게 일고 있었어요. 그 반작용으로 ‘핵도 평화적으로 이용하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가 활발하게 시작될 때였죠. 그래서 저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CT가 처음 나왔어요. CT의 기계적 원리가 대단한 건 아니고, 수학적 알고리즘이 관건이거든요. 호기심을 느껴서 CT 관련 연구를 하다가 1975년 최초로 PET(양전자 단층촬영)를 개발했습니다. 제가 핵물리학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MRI도 본격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처음으로 MRI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UCLA 어바인 캠퍼스 등에 있던 시기인데 1978년부터 카이스트에 초빙교수로 왔다갔다 했습니다. 당시 급여는 미국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됐죠. 그래도 제가 한국 사람이어서 그런지 한국에 와서 연구를 진행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학생들도 열정적이었어요. 미국 대학원생들은 금요일 저녁만 되면 다 떠나서 자기 할 일을 합니다. 그런데 카이스트 학생들은 밤낮, 주말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연구에 매진했어요. 덕분에 1981년에 MRI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외국에 나가 유학했던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많이 귀국해 한국 산업 발전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자동차나 전자산업 같은 경우에는 기업들이 투자를 해서 좋은 성과를 냈지요. 그런데 기초과학 분야는 사실상 거의 투자가 없었습니다. 제가 2.0T MRI를 개발할 때 예산이 6억 원이 필요했어요. 제 연봉이 1500만 원이던 때니까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0.1T MRI보다 20배 큰 거니까 그 정도가 들어가죠. 그래서 선도금 2억과 중도금 2억을 받아 한창 개발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주무 부처 과장이 바뀌니까 ‘조 박사 혼자 연구비를 다 쓰냐’며 나머지 연구비 2억을 안 주는 겁니다. 그 때 과학기술원 원장님이 연구비를 조달해 간신히 개발을 마치기는 했죠. 이후 LG에서 상용화해 서울대병원으로 20억 원에 들어갔습니다. 투입 비용에 대비하면 얼마나 큰 성과입니까. 기초과학에는 시간과 예산 투자가 필요한데, (한국에선) 이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아요.”

-요즘엔 인식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CT를 개발한 앨런 코맥(Alan Cormack) 교수는 16년 만에, MRI를 개발한 폴 로터버(Paul Lauterbur) 교수는 30년 만에, NMR(핵자기공명분광법)을 개발한 리하르트 에른스트(Richard Ernst) 교수는 28년 만에 각각 노벨상을 받았어요. 기초과학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연구 과제가 2~3년 단위로 나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노벨상이 그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본만 해도 노벨상 수상자가 20명을 넘습니다. 일본은 100년 전부터 독일에서 과학을 배워와 끊임없이 투자를 했어요. 특히 일본은 1970년대부터 세계 경제를 리드하기 시작하게 되자 기초과학에 많이 투자했고, 20~30년이 지나 성과가 나오는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뒤쳐졌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안 나오는 게 당연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도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부터라도 기초과학에 투자를 해야 20~30년 뒤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에는 제약‧바이오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유수의 선진국들이 모두 고령화 사회로 전환되면서 의료‧건강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의료기기 분야만 해도 세계 톱3가 독일의 지멘스, 네덜란드의 필립스, 미국의 GE입니다. 의료기기는 구매층이 병원 등으로 한정돼 있고, 워낙 값이 고가인데다 복잡한 제품이라 상대적으로 (정부나 학계의) 관심이 떨어졌는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분야입니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현명하게 투자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약이든 의료기기든 기술이나 특허를 사오는 데 1억 달러를 쓴다면, 연구자는 100만 달러만 투자를 하면 됩니다. 기술이나 특허는 한 번 (돈을) 쓰면 사라지지만 사람에게 투자를 하면 평생 갑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서울대가 세계 대학 순위 50위권에도 못 드는 사이, 중국의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등이 앞질러 갔습니다. 서울대는 싱가포르·홍콩의 대학보다도 뒤집니다. 이래서는 국제적으로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 대학이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곳의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 정부의 책임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300개가 넘는 대학에 비슷하게 투자를 하고 있으니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대학 등록금도 못 올리게 해 놓으니 우수한 교수나 학생들에 대한 투자도 어렵습니다. 중국에서는 연봉을 10억 넘게 주면서 교수들을 데려가고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 한국 대학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기업들의 책임도 큽니다. 삼성이나 LG,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이 이렇게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데에는 대학 졸업생들이 밤낮 없이 피땀 흘리며 고생했기 때문 아닙니까. 저와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들이 미국·일본 제품 뜯어서 부품을 분석하고 베끼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잖습니까.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한계에 달했어요. 제2의 도약을 해야 할 때인데, 기업들이 대학 투자에 인색합니다. 수십조 원씩 버는 돈의 10%만 대학에 투자를 해도 세계 10등 안에 드는 대학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대학 투자를 외면하니까 우수한 학생들이 MIT나 하버드 같은 곳으로 다 떠납니다. 정말 안타까워요.”

-우리 대학의 기능이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첫째, 우리도 중국과 같이 몇 개의 연구 중심 대학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둘째, 연구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각 대학 최고의 연구 인력을 전 세계에서 골라 와야죠. 싱가포르의 대학에선 외국인 교수가 75%입니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계 최고의 연구원과 교수들을 모셔 오기 때문이죠. 셋째,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대학원생’입니다. 제대로 된 연구를 하는 교수가 없다면 우수한 대학원생들은 모두 최신 연구를 하는 선진국으로 떠납니다. 대학원생들은 ‘연구의 꽃’입니다. 선진국에 우수한 대학원생들을 다 빼앗기고는 제대로 된 연구가 나올 수 없어요. 넷째, 연구는 세계 최고여야 하고 최초여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20조 원이 넘는 돈을 (연구개발비로) 쓰지만 세계 제일이라 할 만한 연구를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제 과학기술에도 우리 경제력에 걸 맞는 투자를 해야겠죠. 우리도 연구 스케일을 키워야 합니다. 요즘 과학계에서 말하는 ‘빅 사이언스’(Big Science)가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연구를 해야죠. 연구자들은 남들이 이미 한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주면 그 곳에 남게 돼 있습니다. 대학은 기업보다 10~20년 앞서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관료화된 대학은 기업보다 오히려 10년 뒤쳐져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혁명적인 대학 정책을 내놔야 합니다.”

-요즘은 ‘4차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인공지능(AI)이 4차산업혁명의 총아가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인공지능은 컴퓨팅 속도가 빨라진 것일 뿐, 아직 인간 뇌를 대체한다고 볼 순 없습니다. 제가 처음 연구하던 시절에 16킬로바이트니까 100년 걸리던 계산이 지금은 1초도 안 걸리는 거죠. 속도가 빨라지니 자동화·효율화 수준이 높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독일 같은 데서는 십수 년 전부터 강조하던 겁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뇌가 하는 생각, 직관, 의식 등은 AI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인간의 뇌는 30%의 세포와 70%의 신경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뇌의 실핏줄의 10분의 1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14T MRI를 개발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뇌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의 경우 증상이 비슷하면 그렇게 진단하는데 10% 정도만 실제 (의사가 진단한) 그 질환이고, 나머지는 원인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뇌과학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남들이 앞서 시작한 것을 따라가지만 말고, 새로운 걸 끊임없이 시도해야 합니다.”

-2020년이면 21세기의 세 번째 10년을 맞이합니다. 한국 과학계에 놓인 과제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는 유럽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과학자들이 모여서 CERN(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이라는 공동 연구조직을 만들었어요. 유럽에선 각 나라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수시로 교류를 하며 공동으로 연구하고 결과를 공유합니다. 유럽 과학의 기초와 힘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는데 한·중·일 3국은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저의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제주도에 동북아시아 3국 공동연구소를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서로 만나서 공동 연구를 하면 평화에도 기여를 하지 않겠습니까.”

-한·중·일 사이에 과학기술 추격전이 상당한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과학자들은 바보 같은 면이 있습니다. 연구 활동을 지원해주면 아는 것 모르는 것, 다 쏟아 냅니다. 감추질 못 해요. 논문을 통해 자기 연구 결과를 세상에 발표하는 게 본업이지 않습니까. 기업은 기술을 보호해야겠지만 과학자들은 인류 공동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컬럼비아대학에 있을 때도 ‘한국에 가서 MRI를 개발한다’고 하니, ‘가서 잘하고 오라’고 합니다. 그 덕분에 저는 MRI만 40년 동안 연구할 수 있었고 남다른 성과를 내는 겁니다. 과학은 문화이기도 합니다. 문화적 토대가 만들어져야 성과도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정책 당국자들이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국가 산업 경쟁력의 기초는 과학 경쟁력이고, 과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84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현역에 계시는 비결은 뭡니까?

“미국 대학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1985년에 없어졌어요. 미국도 처음에는 늙은이들이 학계에 남아서 젊은 학자들의 길을 가로 막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후로 40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나이가 들면 몸이 아플 확률이 높아집니다. 늙어보지 않으면 늙음이 뭔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의 뇌는 안 쓰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지, 많이 쓴다고 기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일을 해야 건강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안타까운 점이 많아요. 제가 가르쳤던 카이스트 졸업생들이 얼마 전 다 은퇴를 했더라고요. 기초과학에는 어느 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갑자기 새로 만들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도 예측할 수 없는 겁니다.”

인터뷰/정리: 김하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