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대통령 임명하는 행정실 인력만 평균 2000명
  • 미국 국회의원 마다 참모 20~70명, 행정부 견제
  • 한국, '늘공' 통제할 정보-예산-인력 부족
  • 정치에 유능한 인재 끌어들일 인센티브 부족해 질적 하락
  • '캠코더' 인사 날이 갈수록 심화
  • '부자' 고위공직자 싫어하는 풍토에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 권력 투쟁에만 익숙하고 실력 없는 정치인들, 국민들 다 알아
  • 조직 이끈 경험 부족한 법조인, 교수에 너무 의존
  • 정책 정당 아닌 선거철 임시 정당 체제부터 바꿔야
  • 인사에 '메시지'가 안 보인다
  • 사법고시 없앴지만 행정고시 여전한 이유는 뭔가
  • '모피아' 전성시대: 엘리트 다양성 상실이 또 다른 양극화 생산
  • 훈련 안 된 중앙 의사결정자들 많아. 능력개발코스 세밀하게 다듬어야

<금요집담회> 이번 주제는 ‘인사 시스템’이다. 권력자가 누굴 임명하는지 잘 알지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던 시절에는 인사가 국민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인사는 국가의 운영 방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됐고, 인사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며 단 한 번도 평탄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게 됐다. 행정부 내에서는 정치인과 행정관료의 긴장이 부각되기도 하고, 정치권에서는 더 이상 좋은 인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이 없으면 소모적 논쟁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해외 선진국의 인사시스템을 짚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우리나라 인사 시스템 난맥상의 근본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기획위원들의 토론을 전한다. [편집자]

세일러
선출직 공무원의 비선출직 공무원 통제에 관한 서구 역사의 흐름을 먼저 되짚어 보자. 미국은 원래 대통령이 모든 관직을 임명하는 엽관제(獵官制, spoil system)를 했다. 그러다 정실주의, 매관매직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자 1800년대 중반부터 금지됐다. 특히 루즈벨트 시대에 연방 정부가 대폭 확장되면서 대통령이 행정부를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공무원의 우선순위와 대통령의 우선순위가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연방정부가 비대화, 전문화, 위계화 되니 전문성과 정보 능력이 뛰어난 집단이 됐다. 대통령은 임기가 4년, 길어야 8년이다. 관료들은 대통령이 선거 기간에 내놨던 공약들이 집행 불가능이라는 판단 하에 공무원은 대통령의 공약보다 자기의 예산과 프로그램을 우선순위에 두게 됐다. 특히 공무원이 소위 ‘클라이언트’라 불리는 집단과의 이해관계에 더 충실하게 됐다. ‘철의 삼각동맹’이라고 부르는데, 행정부처와 의회, 기업이나 노조 또는 환경단체와 같은 이익집단을 말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39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EOP(The Executive Office of the President)라고 대통령 행정실을 별도로 만들었다. 우리는 보통 백악관 직원이 400명이고 우리나라 청와대 직원도 400명이니까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는 비서실‧경호실‧총무실 등에 한정된 것이고 사실 EOP는 백악관 옆에 거대한 건물 2개를 쓰면서 직원도 적게는 1500명, 많을 때는 4000명까지 평균 2000명 정도가 근무를 한다. EOP에서 예산국장, 경제자문위원회 회장,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등 극히 일부만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나머지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EOP가 대통령이 행정부처를 장악하는 수단이다. EOP 조직 중 대표적인 것이 미국 예산관리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OMB)이고, 미국 무역대표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미국 국가안보부 등이 여기 소속이다. 대통령실에 이런 기능이 있어야 행정부처 관료와의 정보 우위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의회도 전문성과 정보 능력을 강화하는 개편을 해왔다. 처음에는 OMB에서 넘어 오는 안건을 대충 추인해주는 스타일이었으나, 의회가 행정부에 비해 전문성과 정보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스텝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CRS(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의회조사국), CBO(Congressional Budget Office. 의회예산처), GAO(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회계감사원) 등의 행정부 견제 조직을 만들었으며, 개별 의원들은 20-70명의 의원실 참모를 둘 수 있게 했다. 선출직인 대통령과 의회에 비선출직인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인적 보강 장치를 만든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행정고시 비슷한 공무원 선발 제도가 있지만 1/3 가까운 인력은 부처별로 일반 회사처럼 채용하는 개방직이 많다. 우리에 비해 관료의 자기 이익 보호 성향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은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120~130명의 의원이 내각의 장관, 차관, 대변인, 비서실장, 기획조정실장 등으로 들어가 행정부를 장악한다. 독일 같은 경우 ‘늘공’(직업 공무원)을 고위공무원단으로 받아들이는데, 정권이 바뀌면 고공단 물갈이가 가능하게 만들어 고위공직자와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일치시킨다. 소위 ‘늘공’이 ‘어공’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는 우리처럼 ‘늘공’이 강한데, 대신 장관이 장관실에 30~40명을 인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청와대 정책실 기능이 장관실에 설치돼 있어서 장관이 책임정치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행정국가’ 경로의존성 때문인지 유독 행정부 관료를 통제할만한 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와 예산, 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기관장 인사가 지금 같은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소위 ‘여의도 건달’이라는 사람들은 차라리 부처로 가는 게 낫다. 행정부처 기조실 같은 데 가서 책임정치와 전문기관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막혀 있으니 기관장으로 가는 것이다.

문제는 당이나 캠프 등 정치권에서 오는 인사의 능력을 뭘로 보장하느냐이다. 정당의 역량 강화와 동시적으로 가야 한다. 정당 역량 강화는 정당 부설 연구원은 사실 의미가 없고 원내 상임위원회별 전문위원회를 강화해야 한다. 상임위 전문위원을 의석 당 1~2명을 배정하면 전체 300~600명의 규모가 된다. 여당을 예로 들면 현재 130석이니까 130~260명의 전문위원들이 부처별로 10~20명씩 모니터링하면서 관련 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 부처에서 승진을 원하는 국장급 이상의 공무원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정책방향과 일치하는 정당으로 가서 자기 출신 부처 상임위 전문위원 역할을 할 수 있다. 정권 교체나 개각 때 이들을 차관 등으로 인사를 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해당 부처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당 입장에서 정책을 내니 정당 역량이 보강되고, 정무직으로 정부에 들어갔을 때도 전문성을 갖춘 정무직이 될 수 있다.

전문성을 갖춘 민간에게 정무직을 개방하는 것도 필요하다. 당에 공식인사추천위원회를 살시적으로 운영해서 자리가 났을 때 인사추천위가 심의해 민간 전문가도 정무직에 임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책임 정치 영역과 전문 행정 영역의 가교를 만드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가오리
행정부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은 중앙정부는 대통령 한 명, 지방자치단체는 단체장 한 명이다. 한 명의 선출직이 수천 명의 임명직 인사를 하는 지금까지의 행정부 구성과 운영 방식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 선발의 문제, 즉 인사 검증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직선제 대통령 선거의 부활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의 모자란 점을 채우기 위해 보수 진영의 베스트 플레이어들을 기용했다. 조순, 김종인 등이 그 때 기용됐다. 김영삼 정권 때는 민주화운동 출신들이 인사에 포함됐고, 김대중 정권 때는 자민련과의 연대로 인해 인재 풀을 넓게 썼다. 사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인사 폭이 좁아졌다. 이창동 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인사도 있었지만 민주 진영 내부에서도 세력 교체가 일어나면서 동교동계가 배제됐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에서는 보수든 진보든 그 안에서도 대표성을 인정 받지 못한 사람들이 코드 인사를 통해 기용되면서 인사폭이 1/2, 1/4, 1/8로 계속 좁아지고 있다. 요즘은 ‘캠코더’라고 해서 캠프 출신이 우대받는다. 박근혜 정권 때 특히 심했다. 당시 인사 코드는 ‘성균관대, 군, 검찰 출신’이었는데 시키는대로 말 잘 듣는 사람들만 썼다.

둘째, 인사청문회 검증 시스템 문제도 짚어야 한다.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데, 청문회가 갈수록 한심해지고 있다. 후보자의 정책 역량이나 비전보다는 자질구레한 하자를 추궁하면서 창피 주고 길들이는데 여념이 없다. 김영삼 정권 때 공직자 재산공개를 실시한 이후 기득권 층의 큰 비리는 많이 줄어들었다. 이번에도 문제가 됐듯이 부동산이나 주식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하자가 있는 정도이다. 다만, 국민의 눈높이를 생각해봐야 한다. 청문회가 언론에 중계되면서 국민들은 후보자의 현실을 자기의 현실에 대입한다. 고위 공직자로 부자를 싫어하는 풍토가 확실히 있다. 이건 진보 정권에 당연히 걸 수 있는 기대이다. 영국 노동당은 계급정당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낼 생각은 안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 진보 기득권층은 다 ‘개룡남’, ‘개룡녀’(개천의 용)들이다. 자기는 가난했지만 학력 엘리트로 출세해 기반을 잡았고, 진보적 가치를 갖고 정당에 들어왔지만 자기 자식들은 기회 되면 비싼 학교 보내는데 거부감이 없다. 주택이나 주식보유도 마찬가지다. 진보 정권이 인재 기용에 있어 이런 점에 둔감하니까 국민들은 ‘나 같이 못 사는 사람들이 고위 공직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지금과 같은 문제는 정권교체가 일어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느 당이 양보하겠나. 지금 집권당도 야당이 되면 개인적 하자를 보지 않고 정책 역량과 비전을 볼까? 아니다. 언론도 안 바뀐다. 이번 강원도 화재에 국회의원들이 고작 성금 10만 원씩 냈다고 언론들은 비웃지만 사실 언론사들이 이 부분에서 내놓고 지적질할 자격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행정부 역할이 커지면서 이제 ‘제네럴리스트’만으로는 안 되고, ‘제네럴한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현실은 주로 그 분야 전문성 떨어지는 선거조직 인사나 사적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교수나 연구원 등은 전문성만 있지 조직이나 사회에 대한 일반적 감수성이 떨어진다. 청와대에도 자기 학문을 지키고 구현하기 위해 공직에 간 것처럼 비판 받는 학자들이 있지 않나. 공직에는 점점 일반적 상식을 지닌 전문가가 요구되고 있다. 제네럴한 스페셜리스트를 잘 양성하고 요직에 충원하는 것이 앞으로 인사 제도 개혁의 관건이다.

조율사
정치 자체가 권력 쟁취 행위이기 때문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어느 나라나 다 있는 행태다. 역대 정권의 취임 때 지지율과 퇴임 때 지지율을 보면 하나같이 우하향이다. 결국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도 ‘배신 안 할 사람’이 필요하다 보니 ‘캠코더’ 인사를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전문직을 기용해도 학연‧지연 인맥 내에서의 전문가들이라는 점이다. 조선시대부터 당파성 전통이 이어져 오는 것 같다. 중앙 부처 국장 쯤 되면 여야에 줄을 다 대고 있고, 공기업 부장만 되도 다 줄이 있다. 부처도 심하지만 공기업 가면 더 하다. 자기들끼리 의전하고 자기들끼리 납품회사 하고 갑질을 한다.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다. 시대가 바뀌면서 학연‧지연 행태가 고쳐질까 했는데, 요즘은 카카오톡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해서 그런지 학연‧지연으로 뭉치는 일이 더 심해졌다. 베이비부머들이 빨리 은퇴해야 개선되지 않을까.

공공 관료 조직에 대한 민간의 불신이 심각하다. 국민들은 그 사람들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다 안다. 세상이 매우 투명해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KCGI 논란이 있었는데, 그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투명하지 않게 경영되는 한진그룹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경영하게 해서 회사의 이익을 늘려 수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요즘은 상장기업 이사회 녹취록까지 다 공개되는 세상이다. 녹음기 틀어 놓고 회의를 하니 헛소리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아직도 국회에서는 비리 나온다고 상임위원들을 2년에 한 번씩 간다. 회의 내용까지 투명하게 공개되는 세상에서 과거식의 비리 걱정보다는 전문성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나라 정당들은 전문가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권력 투쟁에만 익숙하고 실력은 없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일반 대중이 보기에도 ‘별 것 아니네’, ‘나보다 나을 것도 없네’, ‘내가 해도 더 잘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며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다. 자리에 B급을 앉히면 정권 자체가 B급이 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인사를 할 때 조직의 장은 제네럴리스트를 앉혀야 하지만, 실무진은 스페셜리스트로 짜야 한다. ‘제네럴’하다는 것은 사회와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다른 부처와의 협업 등을 잘 할 수 있고 정치적 식견을 가졌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방향성을 정하면 실무는 큰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많은 실무 인사들이 해야 한다. 모 공사의 경우 포병사령관 출신이 사장으로 와서 논란이 있었는데, 실제 업무는 잘 했다. 군대에서 인사, 군수, 정보, 작전 참모들을 활용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직 운영에 능했기 때문이다. 반면 과거 진대제, 황창규 같은 실무형 인재들을 조직의 장에 앉혀 실패한 경우도 있다. 이들은 실무에서는 훌륭한 분들이지만 부처의 장으로서는 외압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정치권 인사들이다. 진보건 보수건 큰 조직을 이끌어 본 사람이 별로 없다. 방향을 정해주는 정치는 할 수 있지만 몇 천 명에서 몇 만 명의 조직을 이끌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 특히 법조인이나 교수 출신들은 대부분 혼자 일한 경험 때문에 조직의 장으로써는 매우 부적합하지만 실제는 가장 많이 기용된다.

가오리
행정부처든 공기업이든 관료들이 조직의 장을 목표로 뛰는 풍토에서 많은 폐단이 발생한다. 행정고시 출신이 차관 정도 하려면 정치에 줄을 잡아야 하고,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 하다 보면 정책이 왜곡된다. 이런 사람들이 내부는 잘 알지만 외부와의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판을 키우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역량도 떨어지고 닳고 닳아 마모된 상태에서 조직의 장이 된다. 이런 폐단을 줄이기 위해 국가 중요조직의 인재양성 코스를 검토해볼만하다. 새로운 엘리트 코스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인재를 별도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됐지만 정실인사에 그치다 보니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장들의 실력이 떨어진다. 써 준 거는 잘 읽는데 토론이나 질문답변을 보면 아직도 많이 약하다.

세일러
‘정치가 잘 해야 한다’는 말은 ‘학생은 공부 잘 해야 한다’는 말처럼 의미 없다. 잘 할 수 있는 인센티브 메카니즘을 설계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정당에 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판에는 선거 때 ‘캠프’ 외에는 좋은 사람들을 끌어 들일만한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 과거에 사람들이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봤던 이유 중 하나는 권력이었다. 권력욕이라기 보다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가 있었고,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는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 고시 권력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 사회를 변화 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정당에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당이 인센티브로 돈을 쓸 수는 없다. 정당이 전문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풀을 갖게 해 이들의 전문성이 의회와 정부의 관계 속에 발휘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책 참여가 개별적인 연줄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통해 현실화 되는 것이다. 전문가 선발 공정성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인사추천위 심사위원을 늘리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정부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당이 제대로 틀이 잡혀 있어야 하고, 정당의 틀이 제대로 잡히려면 정당이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수단을 줘야 한다.

양자
정당이 인재를 모으고 경쟁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제도는 바람직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당은 정책 정당이 아니라 정권 쟁취를 위한 임시 조직 같은 상태다. 정당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없이 이런 논의는 공허할 수 있다.

허생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FED) 이사 후보로 스티븐 무어를 지명해 논란이 됐다. 스티븐 무어는 오바마 정부 때 금리인상 등 긴축개정을 주장하다가 트럼프 정부에서는 오히려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등 말을 바꿔 경제 전문가로서의 소신 없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를 하는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혼한 전처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아 법원에서 경찰을 동원해 가압류까지 했던 인물이라 도덕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스티븐 무어를 지명한 이유는 ‘금리인하’라는 정책적 메시지를 연준에 명확히 하기 위한 의도적인 정치행위라는 분석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최근 이미선 헌법재판관 논란을 보면 아쉽다. 주식 등 논란이 불거졌는데, 청와대에서 내놓은 것은 ‘40대, 여성, 지방대 출신’이라는 키워드다. 이건 그냥 ‘안배’이지 정치적‧정책적 메시지로 보기에는 약한 것 같다. 메시지가 약하니 개인적 흠결을 뛰어 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양자
인사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 체제의 문제가 큰 것 같다. 야당은 흠을 잡아 정치적 이익을 보려 할 뿐이기 때문에 인사권자가 아무리 인사를 잘 해도 이런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일러
이미선 후보 건은 논쟁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인사 대상이 될 전문성을 가진 86세대 대부분이 어느 정도 부의 축적이 있을 텐데, 위법하지 않은 부의 축적일 경우에도 국민정서 때문에 물러냐야 하느냐 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선 후보를 임명해야 한다고 본다.

허생
인사권자의 적극적인 인사 외에 행정고시로 대표되는 공무원 선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 한다. 조선시대 까지 강력한 신분제 사회에서 사실 ‘개천룡’은 불가능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조선총독부가 고시를 통해 식민지배 관료를 선발하면서 ‘개천룡’ 시대가 열렸다. 사법고시, 행정고시가 해방 후에도 통치 수단으로 강력하게 유지돼 오다가 노무현 정부 때 사법고시는 ‘고시 낭인만 양성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법조인만 낳는다’는 이유로 개혁이 됐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행정고시는 그대로를 넘어서 강화되고 있지 않은가.

가오리
주한 미대사를 했던 크리스토퍼 힐의 자서전에 보면 미국 국무부 외교관 양성코스가 소개돼 있다. 시험에 합격하면 우리로 치면 8급 공무원 정도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려‧조선 시대 때부터 과거에 합격하면 고위직으로 임용이 됐고, 현대에 와서도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5급으로 시작한다. 첫 시험합격의 소득이 너무 크다. 이게 문제다. 경험과 능력이 아니라 시험 통과가 고위직 기용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이렇게 시작한 공무원들은 모두 톱을 향해 달려가면서 병폐가 생긴다. 이게 끊어야 할 가장 큰 문제의 고리다.

조율사
정권 쟁취가 거의 생계수단화 된 것도 큰 문제다. 건강하고 오래 살게 되니까 생계 유지라는 불손한 의도로 권력을 놓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한편, IT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정치에 부는 변화의 바람도 유심히 봐야 한다. 정보의 전달 속도가 무지하게 빨라지면서 전세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고 행정부의 역할은 약화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계는 새로운 모피아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 이유는 기존 정치권의 인재 풀이 대부분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이념적 성향이 강한 계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경제계에 보낼 사람도 없고 능력 있는 사람도 부족하니 결국 모피아가 위탁 경영하는 꼴이다. 기존 기득권 계층인 모피아가 핵심에 위치하게 되나 경제계가 대전환의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형국이다. 국가 엘리트의 다양성 상실이 구조전환을 지연시키고 또 다른 양극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는 지금 대통령을 중심으로 외교‧경제 전쟁 중인데, 우리 국민들은 경제 문제에 있어 방치돼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가오리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과거에는 전쟁에 나서는 대장군은 거의 혼자서 모든 걸 결정했고, 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본국에 있는 왕과 연락을 주고받는데 시간이 걸리니 게 외교든 전투든 혼자 다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펜타곤 상황실에 앉아서 비디오 게임하듯 여기 폭격하고 저기 폭격하고를 중앙에서 모두 통제하는 시대다. 문제는 중심에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인사들 중에 훈련 안 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국가 운영 주도그룹을 좀더 다양하고 충원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능력개발코스를 세밀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청와대의 역할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세밀하게 다뤄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