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밀월로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생명 연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 중국이다. 그 과정에서 IT혁명이라는 시대에 ‘실리콘밸리 비즈니스 모델’을 학습하고 중국판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를 육성한 구도도 ‘미중 상호의존’의 심화 속에서 추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 정책 브레인이었던 일본의 전략가 데라시마 지쓰로는 “미국 중국은 모두 대국주의적 어프로치를 좋아하고, 대립의 극한에서 ‘흥정’을 통해 미중 양극체제로 아시아태평양을 이끌어가기로 합의할 경향을 내재하고 있다.”며 아베 정권의 과도한 미국 경사를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고 본다. [편집자]

[한승동 / 피렌체의 식탁 편집인]

“트럼프 노벨상 추천, 아베가 부끄럽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은 일본 내에서도 비웃음을 사고 조롱거리가 됐다. 일본 내 여론도 한 가지는 아니어서 한 목소리라곤 할 수 없겠지만, <아사히 신문>이나 <마이니치 신문> 등이 사설까지 써서 비판한 걸 보면 부정적 여론이 많은 모양이다. <아사히>의 비판 논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떠벌인, 아베 총리가 썼다는 추천 이유다. “일본 영토 위를 (북의) 미사일이 날아다녔으나 지금은 (발사가 중단돼) 일본인들이 안심한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사히는 북 비핵화를 다짐한 북미 회담의 성과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안심할 정도로 긴장이 완화됐다면 아베 총리는 왜 그 엄청난 규모의 미제 무기를 추가로 도입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걸 자랑하느냐고 힐난했다. 사설은 아베 정부가 미제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시스템 ‘이지스 어쇼어’를 도입하고 F-35 전투기도 105기나 추가 도입하기로 한 점을 지적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2019년도 일본의 미제무기 구입은 6917억 엔(약 6조7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도의 4804억 엔보다 70%나 증가한 것이다. 아베 2기 집권이 시작되기 전 해인 2011년도의 일본 미제무기 도입액이 589억 엔이었다니, 그의 2기 집권기간에만 미제무기 도입액이 10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트럼프 노벨평화상 추천을 할 정도로 일본이 안심하게 됐다는 지난해 6월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일본의 미제무기 도입이 질·양 모두 급증세라면 이건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야말로 자가당착이다.

일본 식자들의 반발이 거센 데는 아베 총리의 굴욕적인 대미 추종자세도 한 몫 한 듯하다. 트럼프 노벨평화상 추천 얘기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뒤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때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추천 좀 해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했고, 아베 정부는 장문의 추천사를 썼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이 모양새 자체도 굴욕적인데, 트럼프가 과연 그런 장황한 추천사를 올릴만한 인물이냐는 데에 대한 회의와 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볼 안팎의 시선을 일본 식자들은 더 굴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야당 국회의원들도 “부끄럽다”고 했다니까.

편협한 ‘미국 제일주의’로 치달으며 지구온난화 방지 파리협정과 이란과의 다국간 핵협정을 막무가내로 파기하더니 러시아와의 중거리 핵전력조약(INF)도 일방적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지구평화를 중대하게 위협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노벨평화상 추천이냐는 것이다. 이게 비판의 두 번째 논점이다.

게다가 아베 총리가 “일본을 대표해 경의를 담아 추천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떠벌인 것도 화를 돋우었다. 정말로 일본 국민을 대표해서 그렇게 했다면 당당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지 왜 얼버무리느냐고 아사히는 힐난했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정말 추천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노벨위원회가 50년간 추천자와 피추천자를 공표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답변으로 사실 여부 확인을 피해갔지만, 부인하지 않는 걸로 사실상 시인했다. 신문은 노벨위원회가 추천자 스스로 그 사실을 밝히는 것까지 금하고 있는 건 아니라며, 사실을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지만, 기대하는 것 같진 않다.

중국봉쇄 전략은 자충수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뇌력(腦力) 레슨’이라는 장기 연재물에 기고하고 있는 데라시마 지쓰로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장기적·구조적 시야를 갖고 세계를 인식하면서 과제를 제어하는 새로운 질서 형성을 리드하는 구상, 그리고 그 속에서 일본이 수행할 역할을 강하게 자각한 구상이 요구된다. 중국 위협론에 겁먹고 ‘일미(일본-미국) 제휴로 중국의 위협을 봉쇄하자’는 차원의 구상으로는 다시 국권주의와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유혹에 말려들어갈 것이다.”(<세카이> 2019년 2월호)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가 과중한 관세폭탄을 날리고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아베 정권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전술적 변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 데라시마는 아베 정권이 집권 이래 견지해 온 친미반중이라는 기본전략은 요지부동인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는 이를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다마대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고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 때 그의 브레인 역할을 한 데라시마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볼 것이다. 하토야마는 집권 당시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공군부대 기지(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오키나와 본도 내의 새 기지(헤노코) 조성으로 결론지은 미일 정부간 합의에 반대하면서 오키나와 바깥으로 이전하려 했고, 중국·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동아시아 중시 구상을 추진했다가 미국의 눈 밖에 났다. 하토야마 정권이 단명한 것이 그때 화가 난 미국의 압력 및 그런 미국과 손잡은 일본 국내 보수우파들의 반격 때문이라는 얘기들이 널리 퍼져 있다.

예상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노벨상 후보 추천에 팔 걷고 나선 아베 총리를 조소하는 일본 신문들 보도가 시사하는 것도 아베 정권의 친미 행보 강화, 미일동맹 강화, 그리고 중국봉쇄 강화 시도다.

일본의 친미행보, 미일동맹 집착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근대 이래 일본은 늘 지구 최강의 패권국과의 동맹을 통한 부국강병을 꾀해 왔다. 문제는 그때와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기존 패권국과의 동맹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1902년에 일본은 당대의 패권국 영국과 손을 잡았고(영일동맹), 그로써 후방의 안전을 보장받아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을 기화로 군대를 파견한 중국에서 이권을 다투던 러시아를 1904년에 과감하게 기습 공격했다.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도발한 그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데에는 이런 영국과 같은 앵글로색슨 국가로 새로운 패권국으로 성장해 가던 미국의 지원 덕이 컸다. 그리고 2차대전 패전 뒤에 일본이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도 세계최강 미국과의 동맹 덕이었다. 따라서 아베 정권이 노벨평화상 추천의 굴욕을 감수하고 미제무기 구입비를 엄청 늘리기까지 하면서 미일동맹 강화에 집착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 영광 재건’을 위한 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데라시마의 생각은 좀 다르다. 최근의 미중 무역전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경위를 냉정하게 뒤돌아보면 미국 자신의 책임이 무겁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의 리먼 쇼크 때 위기의 심화를 막기 위해 중국이 투자와 시장을 확대해 미국을 지원했다고도 할 수 있다. 미중 밀월로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생명 연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 중국이다. 그 과정에서 IT혁명이라는 시대에 ‘실리콘밸리 비즈니스 모델’을 학습하고 중국판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를 육성한 구도도 ‘미중 상호의존’의 심화 속에서 추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중 신냉전 시대’ 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일본으로선 신중하게 사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의 교훈에서 배운 바로는, 미국 중국은 모두 대국주의적 어프로치를 좋아하고, 대립의 극한에서 ‘흥정’을 통해 미중 양극체제로 아시아태평양을 이끌어가기로 합의할 경향을 내재하고 있다.”

미국은 언제든 일본을 내버릴 수 있다

재단법인 일본총합연구소 회장,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 회장도 역임한 전략가 데라시마는 미중이 예전의 미소간 동서냉전식의 대립, 즉 신냉전 방식이 아니라 협력적 양극체제로 동아시아를 공동지배하는 쪽으로 거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럴 경우 “미일 제휴로 중국의 위협을 봉쇄한다는 생각은 단견”이라며, “미국 자신이 아시아 질서의 중심을 중국이라 인식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한 무역적자 문제로 인한 갈등이 아니라 ‘디지털 이코노미’ 시대의 정보기술패권을 둘러싼 격돌이라고 보는 데라시마는, 실리콘밸리의 GAFA 모델을 학습해 화웨이 등 중국판 GAFA를 이미 만들어낸 중국이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시대로의 격변을 과거 동서냉전기나 미국 일극체제에서나 통한 미국 밀착, 즉 미일동맹에만 의존하려 해서는 일본의 앞날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이 때가 되면(필요하면) 중국과 손잡고 일본을 언제든 내팽개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베 정권이 그리고 있는 21세기 일본의 전략은 데라시마도 걱정하듯 미일동맹 강화를 근간으로 하고 한국이 그 하부종속체제로 붙는 미-일-한 삼각동맹의 재확립을 지향하는 듯하다. 이 20세기적 신냉전적 동맹체제가 상정한 상대는 이른바 북방 삼각동맹이다. 예전엔 그 중심이 소련이었지만 이젠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기본구도는 같다. 근대 이후 일본은 늘 이런 대국과의 동맹관계를 통한 대립구도를 국가전략으로 채택해 왔다. 일본은 그런 전략으로 20세기에 패배도 있었지만 대체로 크게 성공했다. 일본의 성공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희생자들을 대거 양산했다. 한반도와 중국이 대표적 희생자들이다. 그런 대립구도는 메이지 이후의 일본 역사가 보여주듯이, 일본 내셔널리즘의 이상비대와 대외팽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 “일미 제휴로 중국의 위협을 봉쇄하자’는 차원의 구상으로는 다시 국권주의와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유혹에 말려들어갈 것”이라고 데라시마가 경고하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패권이 저물어가고 거대 중국이 등장한 21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세동점의 글로벌 세력균형이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뒤바뀔 가능성이 짙은 21세기에도 아베 정권이 20세기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라시마 등이 걱정하는 게 바로 그 점이다.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현재 세계 GDP에서 점하는 아시아의 비중은 약 3분의 1이지만, 2050년까지는 50%가 넘을 것이고, 이번 세기 말에는 3분의 2를 넘길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일본의 비중은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데라시마 등이 우려하는 것은 비중이 커진 대국들이 흥정을 벌이면서, 과거 일본과 미국, 소련이 조선과 중국을 희생시켰듯이 일본을 거래 대상으로 삼아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걸 피하려면 일본은 분명한 자기 재정립과 새로운 자기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일본의 자기 재정립 출발점은 제대로 된 과거청산이다. 그 과거청산을 통한 동아시아와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 일본의 21세기 전략은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아베 정권은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과거사 문제로 인한 중국 및 남북한과의 상존하는 불화와 긴장이 거기서 비롯되고 있다. 데라시마는 동아시아에서 서로 이익이 되는 협력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일본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본의 21세기 역할이며, 미국의 핵억지력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지 말고 유엔 핵무기금지조약에 앞장서서 아시아 비핵화 구상을 앞당기는 것(북 비핵화만 주장하지 말고) 또한 “21세기 세계사 속의 일본 역할”이며, 그것이 일본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아베 정권과 일본 우파는 일본이 배타적으로 누려온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징용공 판결 공방이 드러낸 일본 우파정권 본질

그런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이 바로 징용공 판결을 둘러싼 한일간 공방이다. 과거청산을 통한 동아시아와의 진정한 화해를 거부함으로써 일본의 21세기 출구전략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일본 우파의 우행을 상징하는 이 사건의 요점 정리를 끝으로 덧붙인다.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공 출신자들의 대일 소송에서 희생자들 편에 서 온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는 최근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손해배상 판결을 두고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아베 총리)이라거나 “양국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무너뜨리는 폭거”라는 등의 일본 쪽 한국 비난이 사실은폐나 자가당착에 가까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한일협정 체결 이후의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일본 쪽 주장은 2000년 전후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 자신이 부인해 온 논리다.

예컨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나 시베리아 억류 일본인들이 보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을 때 미국이나 소련은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나 1956년의 일소(일본-소련) 공동선언에 들어 있는 “그 국민의 모든 청구권을 포기하고…”라는 조항을 근거로 보상 청구권은 소멸됐으며, 보상하려면 일본정부가 하라는 논리를 폈다. 그때 일본 정부가 내세운 논리가 “조약으로 포기한 것은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기초로 해서 외국과 교섭할 국가의 권리(외교 보호권)일 뿐”, “국민 자신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에서도 양국과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 및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또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고 규정했지만 일본 정부는 그 당시부터 그것은 외교 보호권 포기일 뿐 개인의 배상청구 권리가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렇게 한 이유는 만일 일본 정부의 협정 체결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했다면 식민지 조선에 재산을 갖고 있던 일본 귀환자들이 배상을 청구할 경우 일본 정부가 배상해야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개인에게 청구권이 살아 있다고 한 것이다. 1990년 전후 한국이 민주화되기 전까지는 한국인 피해자들이 개인적으로 일본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에 일본 정부는 그것으로 책임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개인들이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1990년대 초 시베리아 억류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을 때 야나이 슌지 당시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양국간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해결됐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 보호권을 서로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개인 청구권 자체가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했고, 외무성이 간행한 <외무성 조사월보>도 그런 해석을 “일본 정부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고 명기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한국인 피해자들이 수십 건의 전후보상재판을 제기했다. 그리하여 일본 기업이나 국가가 불리한 상황에 처하자 2000년께 일본 정부는 조약 조항의 해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외국인의 보상문제는 조약 체결로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일본인 피해자들의 보상청구에 대해서는 “조약으로 포기한 것은 외교 보호권에 지나지 않으므로 피해자는 가해국의 국내절차에 따라 청구할 길이 남아 있으므로 일본국가에겐 보상책임이 없다”는 기존 논리를 견지했다.(<세카이> 2019년 1월호 참조) 일본인 피해자들이 개인적으로 배상이나 보상을 청구할 순 있지만 소송은 일본이 아니라 관련 당사국에 가서 하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오로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궤변이다.

2007년 중국인 피해자들의 소송 판결을 계기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은 여전히 유효했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에 관한 소송에서 “(일본)국가는 최고재판소 판결 논리를 원용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한 것은 아니지만 청구권협정에 따라 (배상을) 소송을 통해 청구할 순 없다”는 또 하나의 해석을 추가했다. 말하자면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있긴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것을 재판을 통해 실현할 길은 막아버린 것이다. 그러자 한국인 피해자들은 한국 재판소를 통해 청구권을 행사했고, 마침내 승소해 그것을 인정받았다. 그것이 지난해 10월의 대법원 판결이었다. 따라서 일본 재판소의 이상한 해석으로 일본에선 불가능한 청구소송을 한국에서 제기하고 판결에 따라 해당기업에 배상을 강제하는 것은 완전히 합법적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해당기업이 배상하는 것 자체를 위력으로 방해하고 있고, 일본 조야는 한국을 향해 온갖 비난과 협박조의 거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아베 총리와 고노 외상의 비난을 그대로 되돌려 얘기하면 그들이야말로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을 하고 “양국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무너뜨리는 폭거”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승동 / 피렌체의 식탁 편집인, 전 <한겨레>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