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의 탄산이 빠지면 지난 여행이 떠오른다
✔ 중앙아시아 거리에서 마시는 소비에트 3대 명물
✔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 거친 불상을 바라보며 기도의 효험을 생각하다
✔ 낙산은 질 좋은 화강암 채석장이 수두룩한 곳
✔ 동대문, 어지러운 시공간이 주는 포용성의 중요함

날씨 궂다 해도 5월은 5월. 가족, 지인들과 서울 동대문 일대 문화 기행을 추천한다. SNS에는 해외여행을 하는 친구들의 음식 사진과 성채 사진이 풍성하고, 포털의 뉴스란에는 경기 침체로 고통받는 기업과 시민의 이야기가 양극단으로 넘쳐나지만 이럴수록 마음은 넉넉하게 가질 일이다. 연휴란 게 있고, 다만 얼마를 쉴 수 있는 오늘 내 삶도 얼마나 소중한가. 동대문 언저리 조그만 암자에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만났다. 사자의 지혜와 코끼리의 자비를 기억한다. 봄날에 이왕 길을 나선다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챗GPT까지 부담 없이 이용해 보기를 권한다. 동대문 중앙아시아길의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의 역사까지 물어볼 수 있는 세상이다. [편집자 주]

안양암 대문에 그려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사진: 진용주)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는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아오곤 했다. 거리 한 구석에 몽골타운이라 불리는 빌딩이 하나 있는데 거기 있는 몽골식당 몇 군데가 주 목적지. 2007년 여름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보름 정도 서몽골에 다녀온다. 그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이 되면 이곳 몽골타운의 몽골식당들을 찾아 다따고짜 몽골 맥주를 주문한다. 안주는 양고기를 넣은 튀김 만두인 호쇼르. 손에 양고기 기름이 흥건해지고 맥주의 탄산 맛이 다 빠질 때쯤이면 그제야 천천히 지난번 여행이 떠오르곤 한다. 좋았던 여름!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임페리아 식품점도 주 방문지다. 여기에서 아르메니아 코냑이나 조지아 와인, 또 러시아 보드카를 산다. 몽골 보드카만큼의 거친 매력은 없지만 러시아 보드카도 좋으니까.

어쩌다 중앙아시아에서 동대문으로 온 당근 김치

파르투내는 오랜만이었다. 양꼬치가 유명해서 몇 번 먹으러 왔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영어로 'Fortune'이라 쓰여 있다. 행운이다. 그걸 러시아 키릴 문자로 하면 'фортуне'. 키릴 문자의 표기가 뭔가 행운을 가져다줄 부적 같다. 러시아/우즈베키스탄 부부가 하는 식당이지만 인테리어와 소품들의 기조는 우즈베키스탄이다. 사마르칸트의 도시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 있고, 이슬람 권역에서 사용하는 문양들이 식당 내 가득하다.

파르투내 (사진: 진용주)

앉자마자 나오는 것은 당근 김치, 마르코프차다. 한반도에서 만주를 거쳐 다시 연해주로 가는 노동 이주 행렬, 그리고 거기에서 스탈인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소련의 중앙아시아 각 곳으로 보내진 사람들. 20세기 내내 이어진 고려인의 고난의 역사가 이 당근 김치에 붉게 남았다. 지금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도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김치의 포용성을 생각할 때 꼭 언급되어야 할, 노동과 이주와 식민의 역사가 중첩된 짜고 시고 매운 맛! 붉은 국물의 수프와 볶음밥, 감자가 들어간 만두, 그리고 다진 고기로 만든 햄 꼬치 등을 시켜 일행 넷이 나누어 먹었다. 정작 메인으로 시킨 양꼬치는 주문을 잘못 받아서인지 나오지 않았다. 체험과 맛의 측면에선 아쉬웠고, 앞의 음식으로 이미 배가 불렀다는 측면에서는 다행이었다.

사진: 김도원

보르조미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조지아행 항공권이 아깝지 않네

참, 이쪽 식당이나 슈퍼에 간다면 꼭 보르조미 물을 사서 마셔보기를. 스탈린의 고향인 조지아의 고리, 그 도시에서 멀지 않은 보르조미산 기슭에서 솟아나는 광천수다. 호사가들 말로는 볼가 자동차,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와 함께 구 소련의 3대 보물 중 하나로 꼽힐 정도였단다. 물이 거기서 거기라고? 아니다. 물의 정령이 있다면 일 년의 태반은 보르조미를 마시며 지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서몽골 알타이산맥의 어느 산들을 트래킹하며 돌 틈에서 펑펑 쫄쫄 솟아나는 광천수를 마시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그 물만큼 맛있는 물은 보르조미가 이제껏 유일했다. 이걸로 중앙아시아거리에 올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오늘의 행운은 바로 이것!

한양도성 바깥 바로 옆 창신동에는 골목길과 가내 봉제공장만 있지 않다. '이런 곳에?' 싶게, 작은 절이 하나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꽤 권세를 누리기도 했던 곳인데 지금은 동네에 숨은, 말 그대로 ‘숨어 있기 좋은 곳’이 되었다. 안양암이다. 한때의 권세를 입증할 만큼 큰 건물은 없지만 여러 개의 전각이 잘 남아 있고 그 안에 많은 불상과 불화가 모셔져 있다. 관음전 안에 따로 모신 서울시 유형문화재 마애관음보살좌상이 대표적이다.

사자처럼 용맹하고 코끼리처럼 거침없던 시대를 기억하는가

절 대문에 그려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처음부터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맨 위 사진). 감동적인 시작이다. 오래된 그림이 아니어서 거리감이 덜하다. 두 동자가 각각 사자와 코끼리에 올라타 있다. ‘문사 보코’로 외우는데, 사자를 탄 분이 문수보살, 코끼리에 탄 분이 보현보살이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사자는 지혜를, 코끼리는 자비를 상징한다.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에는 사자와 같은 용맹함이 필요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과정은 초원을 성큼 걸어가는 코끼리처럼 거침이 없어야 한다, 라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게 얼마나 맞는 설명인지를 지금 따질 일은 아니고, 어쨌든 사자는 용맹한 지혜, 코끼리는 거침없는 자비, 라고 생각하자. 마음에 담아둘 만한 상징이지.

두 그림 모두 나무대문의 겉면에 묻은 안료가 조금씩 일어나 있다. 언젠가 바스러질 것 같은 형세다. 수십 년 이상을 견디었을 텐데, 앞으로도 또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을까. 어쨌든 오늘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할 성싶다. 좋은 것은 꼭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얼른 가서 봐야 한다는 게 여행에서 얻는 교훈이다. 푸른 사자의 웃는 듯 경계하는 듯의 표정과 강인하고 단단한 네 발 묘사, 하얀 코끼리의 기운차면서 묘하게 공격적인 포즈 등이 멋진 그림이다. 두 분 보살의 온화하고 단정한 표정이나 옷의 주름과 색깔 등도 제법 솜씨가 좋다. 나무 대문에 슥슥 그린 그림으로는 잘 그린 그림이다. 왜 슥슥, 이라고 생각하냐면 정말 공을 들였으면 안료를 좋은 걸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진용주

‘사랑은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야 한다

두 보살은 친근한 동자상으로 묘사되었지만 가까이 다가가 렌즈를 통해 보면 조금 무서운 느낌도 든다. 단지 각도나 이런 문제가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보았을 때 일순이라도 위압감 같은 걸 느끼도록 구도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믿음이란 한편 두려움이나 경외감 등과 짝패일 테니까. 많은 종교 도상(圖像)이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아야 하는 데 비해, 여기 대문의 두 분 보살은 정말 코를 박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사진으로 찍어서 책에 실린 도상을 보는 것과는 완연 다른 경험. 그렇게 책 속의 이미지를 보는 게 좋을 때가 있지만, 결국은 내 앞에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거다. ‘사랑은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야 한다’. 그래서 이 나무대문 불화를 좋아한다. 가까이 있어서. 만질 듯 가까이 있어서. 대문에 그려진 거라 새벽이나 한밤중에도 볼 수 있다. 한동안 여기를 거쳐 멀리 출퇴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는 종종 시간을 당기거나 늦춰서 이 그림을 보러 오곤 했다. 우열은 전문가들이 따지고,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불교 회화로는 이 그림이 으뜸이다.

안양암에서 생각해 본 기도의 힘

창신동이 터 잡은 낙산은 인왕산, 북악산 등과 함께 서울 도심부의 대표적인 바위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질 좋은 화강암이 지천이어서 일제강점기 당시 낙산 인근에만 네 곳의 채석장이 들어섰다. 여기서 나온 돌로 조선은행 본점(현 한국은행 본점), 경성역(구 서울역), 경성부청(구 서울시청, 현 서울도서관), 조선총독부(철거) 등의 건물을 지었다. 안양암은 바로 그 낙산 자락의 큰 바위 중 하나에 터를 잡았다. 도심부의 마을 복판에 이리 큰 바위가 있다니, 하며 놀랄 만큼 바위가 크고 단단하고 우뚝하다. 심지어 바위 위쪽에는 작지만 동굴도 하나 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한데, 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이 그럴싸한 산중 동굴의 모양새다.

그 동굴 입구에는 앞의 문수 보현 보살과 다른 부처님이 두 분 계신다. 조악한 플라스틱 불상의 모양새다. 누가 이 두 분을 모셨을까. 한 사람이 두 분 불상을 모신 것일까, 다른 두 사람이 각기 한 분씩의 불상을 모신 것일까. 대문에 그려진 ‘문사 보코’를 보고 전각마다 들어가 절을 올린 다음 여기에 올라와 이 플라스틱 싸구려 불상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 내 나름의 순례 코스다.

사진: 진용주

기도는 힘이 있나? 없다. 기도로 세상이 바뀌고 역사가 달리 흐른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다르겠지. 몇 년씩 오체투지로 라싸의 조캉사원을 향해 순례길을 오는 티베트 사람들의 기도가 통했다면 지금 중국은 벌을 받고 있겠지. 흑인 노예들이 하느님을 향해 울고 웃고 노래 부르며 신심을 다져 기도했지만 노예의 역사는 수백 년이 넘어서야 폐지되지 않았던가. 무수히 많은 얘기들을 더 덧붙일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기도를 올리는 것은 그 기도가 결국 나 한 사람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일 테다. 내가 바뀌면 나의 세계가 바뀌고 그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의 연쇄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기도에 큰 의미를 두지도, 그렇다고 냉소나 조롱으로 대할 것도 아닌 일이다.

화내지 말자, 기분은 꽃으로도 풀릴 수 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두 분 부처님 아래 누가 또 빨간 방석을 좌대처럼 놓아두었는데, 어느샌가 그것이 슬그머니 광배처럼 불상 뒤편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는 천 원짜리 몇 장을 불상 아래 받쳐 놓았는데, 이 적나라한 기복심이 너무 투명해서 볼 때마다 웃고 만다. 만 원짜리라면 느낌이 달랐겠지. 오만 원짜리였다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도 탐내지 않는 저 푸른 천 원짜리 몇 장이 내 기도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 조심히 모셔둔 이 외딴 불상들과 푸른 종이돈 앞에서 기도에 대해 거듭 생각한다. 고마워요, 당신들.

안양암 다음은 이음피움봉제역사관이다. 골목과 언덕과 계단이 복잡하게 얽힌 산동네 특유의 지형을 거쳐 도달한다. 일행들은 안양암보다 서울의 이런 풍경을 더 재미있어 한다. 안양암이 나를 위한 히든카드였다면, 동대문시장과 창신숭인동의 봉제산업 역사를 기억/기록하는 봉제역사관은 젊은 동료 일행들을 위해 준비한 히든카드였다. 여기서는 자수를 놓아보거나 손수건에 이름을 새기는 체험도 할 수 있고, 재봉틀과 가위가 켜켜이 쌓인 멋진 장면도 있어 함께 간 사람들이 늘 좋아라 했었다.

그런데 문이 닫혔다. 휴관이 아니라 아예 문을 닫았다. 의문을 잠시 미뤄두고 다음 장소인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로 향했다. 다시 골목과 언덕과 계단들을 거쳐서 도착했다. 어라? 여기도 문을 닫았다. 일행 중 한 친구가 검색해보더니 전임 시장 지우기의 하나라는 글이 있다고 외친다. 착잡한 일이다.

예정보다 일찍 낙산을 넘었다. 낙산공원에서 혜화문으로 가는 길에서는 북한산과 함께 멀리 도봉산을 바라볼 수 있다. 원추형에 가까운 균형 잡힌 모습에 언제나 만족하며 걷는 길이다. 잎도 꽃도 다 좋아서 아까 터져 나온 욕설을 잠시 잊었다. 꽃 사진을 검색해 이름을 익히는 일로도 황홀하다. 산괴불주머니, 황매화, 죽단화. 오늘 꽃 이름을 세 개나 익혔다. 화나던 오후가 스르륵 사라졌다.

우리옛돌박물관에는 옛사람의 미소도 있다

예정한 세 곳 중 두 곳에서 허탕을 친 것이라 시간이 좀 남았다. 성곽길을 따라 혜화문의 맞은편으로 내려와 다음 행선지를 서둘러 만들었다. 성북동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우리옛돌박물관. 불상과 벅수(장승 비슷한 걸 이리 부른다)와 동자석, 문인석과 무인석이 가득하다. 실제로는 같이 있을 수 없는 것들이 태연히 붙어 있으면서 웃음을 주는 곳이다. 평생회원권을 끊어두어서 언제나 1인 동반까지는 무료다. 실내 전시 공간은 5월 말까지 리노베이션에 들어가서 볼 수 없다. 정원의 돌조각들만 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는데, 뭐. 여기는 올 때마다 새로 눈에 뜨이는 게 있어서 좋다. 오늘은 돌기둥에 새겨진 연밥이 좋았다. 미소 좋은 석상도 보았고, 언젠가부터 늘 오늘의 포토제닉 최우수는 여섯 살 심술쟁이 소년처럼 보이는 아기장수 석상이다. 어벙한 미소의 벅수도 좋았지. 여기 정원에서 매화와 벚꽃은 보지 못했네. 놓친 봄은 아쉽지만, 대신 작약과 사과나무꽃과 돌배나무꽃을 보았다.

사진: 이예진

‘어지러운 시공간, 내가 품어야지 어떡하겠노!’

일행 중 한 명이 먼저 돌아가야 해서 5시에 혜화역으로 이동했다. L치킨도 올해 첫 방문. 일행 가운데 벨기에에서 온 친구가 한입 베어 먹더니 짧게 ‘amazing!’을 외친다. 정말 잘 튀긴, 질 좋은 치킨이야 또 많겠지. 그래도 박력 있는 맛으로는 이 집이 으뜸이다. 정교하게 계산된 요즘 치킨들과는 다른, 옛날 맛. 치킨만 먹으면 섭섭하다. L치킨이 자랑하는 비장의 메뉴는 김치쫄면. 떡이 조금만 들어간, 떡볶이 양념 국물에 김치와 쫄면과 오뎅이 가득 들어간, 역시 떡볶이의 포용성을 생각할 때 꼭 언급되어야 할 명물 음식이다. 여기 김치쫄면은 가히 혜화동의 자랑이기도 할 정도라니까! 그렇게 치킨과 '김쫄'에 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짧은 일일 투어를 마쳤다.

사진: 이예진

동대문 특유의 다국적 문화거리에서 시작해 불교 미술의 성(聖)과 속(俗)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안양암, 잠시일지 영원히일지 여하튼 문을 닫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과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 그리고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도봉산과 북한산을 보고, 우리 옛 석조미술 중 보다 사람들의 일상에 가깝게 있던 것들을 많이 모아둔 우리옛돌박물관까지, 아, 치킨과 떡볶이라는 범용성 높은 메뉴의 L치킨까지,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이 어지러운 코스들을 일관하는 열쇳말이 있다면 포용성이겠다. 포용성(包容性), 남을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이는 성질. 사전의 풀이는 이렇지만 나는 ‘품에 안는 것. 품어 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저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과 문화를 품으며 우리 사회에 한결 다채로운 색깔을 더해준 동대문의 한 골목, 또 플라스틱 부처님을 치우지 않고 남겨둔 안양암 스님들의 넉넉한 품, 밀가루와 김치를 한몸에 품고 수많은 이들에게 저녁의 위안을 안겨준 L치킨의 김쫄… 그런 것들에서 품에 안고 또 품어 안는 포용성을 생각한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무시무시한 대결의 시대에 이 어지러운 코스들이 위안이 되거나 혹은 화두가 될 수 있을까. 에잇, 무슨 그런 기대까지.

동대문에서 시작한 길이 성북동에서 끝났고, 코스로는 그렇게 느슨하게 잘 이어지는 행로여서 다음에 또 이 길에 여럿이 같이 가도 좋겠다 생각했다. 포용성에 대한 고민은 그때 또 이어서 해보는 것으로!

그래픽: 조주희
  • 총인원: 4명
  • 총비용: 1인당 2만 8천 원(두 번의 식사, 택시비 등)
  • 총소요 시간: 6시간

글쓴이 진용주는

메디치미디어의 출판기획 4팀장이다. 〈우리교육〉 기자, 디자인하우스 단행본 편집장 등을 거쳐 2021년부터 메디치에 몸담고 있다. 30대에 일본 미술에 매료되어 여지껏 일본 현지답사 여행을 50만 킬로미터 넘게 다녔다. 저서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일본의 지역 미술관 서른여섯 곳에 대한 소감과 평가를 담은 책이다. 2007년 이래 해마다 여름이면 서몽골의 초원과 산악지대를 다니는 것을 취미로 만들었다. 메디치미디어에서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 《공주 도시산책》,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근대도시 공주의 탄생》 같은 책들을 기획하거나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