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재무), 데브 할런드(내무), 지나 레이먼도(상무), 마르시아 퍼지(주택도시개발), 제니퍼 그랜홀름(에너지). 곧 이 리스트에 줄리 수(노동)의 이름이 더해진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부에서 장관을 맡고 있는 여성들이다. 재무, 상무, 노동 등 행정부 내 비중도 막강한 자리들이다. 그러고 보니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도 여성이다.바이든 대통령의 여성 각료 임명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신은철 필자는 바이든의 '여성 장관' 정치가 ‘다양성’의 가치는 물론이고, 차기 대선을 겨냥한 득표 전략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편집자 주]

✔ 완화된 의결정족수 적극 활용하는 민주당✔ 사법부 다양성 강화하려 노력하는 바이든✔ 경합주에서 정치적 영향력 모으는 APPI✔ 소수 인종 지지층 확보를 위한 포석 깔아✔ 여성 기용, PC·워키즘 편승만은 아닐 듯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나 레이먼도(상무), 데브 할런드(내무), 재닛 옐런(재무), 제니퍼 그랜홀름(에너지), 줄리 수(노동), 마르시아 퍼지(주택도시개발).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공화당은 2016년 상원 선거에서 승리해 총 52석을 차지했다. 60석을 확보하지는 못해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저지할 수 없었다. 이에 공화당은 ‘핵옵션’(nuclear option)이라 부르는 의결정족수 완화 안건을 2017년 4월에 통과시켜서, 사법부 임명안 의결정족수를 단순 과반(51석 이상)으로 낮추고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인준안을 같은 달에 가결했다. 그 덕분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에 재선에 실패하고도, 연방대법관 세 명을 포함해 연방 판사 234명을 임명하고 퇴임했다. 역시 단임이었던 지미 카터(263명)보다 적었으나 같은 공화당 소속인 조지 H. W. 부시(193명)보다는 많다.

이제는 민주당이 완화된 의결정족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민주당은 조지아 상원 결선(2021년)에서 승리해서 50석을 획득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모든 의석을 지켜내고 펜실베이니아의 공화당 의석을 빼앗아 총 51석을 확보했다. 민주당은 사법부 후보자들을 똘똘 뭉쳐서 지지하며, 때때로 공화당 의원 소수를 포섭하기도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3년 차를 수행 중인데 118번째 연방 판사를 3월 23일에 임명하게 됐을 정도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캐스팅 보트(tie-breaking vote)를 딱 두 번 행사했다. 트럼프와 다른 바이든 사법부의 근간, 다양성(diversity)

 

바이든은 특히 사법부의 다양성을 강화하려고 노력한다. 임기 1~2년 차 임명 실적을 보면, 트럼프의 임명자 83명 중에서 71%가 백인 남성이었다. 소수인종 출신 여성은 두 명뿐이었다. 바이든은 그에 반해서 97명을 임명했는데, 그들 중에서 47%가 커탄지 브라운 잭슨 연방대법관 등 소수인종 출신 여성이다. 다른 판사 53% 중에서 20%는 소수인종 출신 남성이니, 바이든 임명자 3분의 2가 소수인종인 것이다. 그 수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43%보다도 훨씬 높다.

다양성 차원에서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는 대상은 아시아계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이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다가 연방대법관에 입성하게 되자, 바이든은 공석을 채우기 위해서 플로렌스 판(Florence Pan)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그녀는 1966년에 뉴욕시에서 대만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으며 지난해 9월에 찬성 52표를 받아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다. 판은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의 첫 아시아계 여성 판사이다. 표결 결과를 보면 공화당 의원 중에서 수전 콜린스(메인·5선),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4선), 롭 포트먼(오하이오·재선), 마이크 라운즈(사우스다코타·재선)가 판을 지지했다.
플로렌스 Y. 판(왼쪽, 사진: APABA-DC 트위터)과 신디 K. 정(오른쪽, 사진: 위키피디아)

 

 

올해 3월에는 최초의 한국계 여성 판사가 델라웨어,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버진아일랜드를 관할하는 제3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다. 신디 K. 정(한국명 정경자) 인준안이 찬성 50에 반대 44로 가결된 것이다. 표결 결과를 보면 민주당 의원 네 명과 공화당 의원 두 명이 불참했으며, 표결에 참여한 공화당 의원 47명 중에서 세 명이 신디 K. 정을 지지했다. 콜린스, 머코스키,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4선)이다. 신디 K. 정은 컬럼비아대학교 법학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제2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였던 소니아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 판사의 인턴으로 일한 바 있다. 증오범죄 관련 유죄판결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재판으로 여긴다.

이제는 아시아계 노동장관, 정치적 포석?

 

바이든은 이제는 두 번째 아시아계 여성 노동장관까지 임명하고자 한다. 마티 월시 노동장관이 지난달에 만장일치로 하키선수노조(National Hockey League Players' Association)의 상무이사로 지명되자, 줄리 수(Julie Su) 노동차관을 같은 달에 노동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줄리 수의 이력을 보면 바이든의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녀는 위스콘신에서 대만계 부친과 중국계 모친 사이에 태어났다. 줄리 수의 회고에 따르면, 어머니는 화물선을 타고 미국까지 갔다고 한다. 줄리 수는 스탠퍼드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법학대학을 졸업한 후에, 비영리 민권단체에서 일하며 노동 사건을 전담했다. 예를 들어서 26세에 태국계 노동자 72명을 변호해서 재판에서 승리했다. 그들은 당국에 의해서 자유를 얻고 보상금도 받기 전에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하루에 18시간을 일했으면서도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했다.

줄리 수는 이어 노동 관련 요직을 맡는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민주당·재선)는 2018년 선거에서 승리한 후에 그녀를 노동근로개발부(LWDA)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녀는 음식점, 봉제공장, 세차장, 운송기업 등의 임금 후려치기를 엄하게 단속했다. 일자리 수습 프로그램 혜택을 고졸 노동자에게 확대했다. 줄리 수는 2021년 7월에 노동차관이 된 후에도 친노동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거나 구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그녀는 인센티브 제도를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넣었다. 기업가들이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보조금 등 혜택을 받는 만큼, 노조의 방침과 맞먹는 임금을 노동자에게 보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초단기 노동자(gig workers)를 피고용자(employees)로 규정해서 최저임금과 실업급여 지급 대상자를 늘리고자 노력 중이다. 연방 건설 프로젝트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화물파업 종료도 줄리 수의 작품이다.

이런 이력의 줄리 수를 노동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바이든의 대선 전략을 읽어내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바이든은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지지도 받아서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반도체 혹은 청정에너지 프로젝트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의회와 여론을 설득하고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서, 주지사 출신인 제니퍼 그랜홀름 에너지장관(미시간)과 지나 레이먼도 상무장관(로드아일랜드)을 임명했다. 피트 부티지지 운수장관은 인디애나 출신이고 지난해에 미시간에 정착했으며, 사우스벤드 시장을 지낸 바 있어서 역시 시민, 언론, 입법부와 소통을 잘한다. 그랜홀름과 레이먼도는 백인 여성이고, 부티지지는 몰타계 백인 남성이며 성소수자이다. 바이든의 줄리 수 임명은 다양성의 확실한 확립과 함께, 노동정책 추진과 백인 노동자와의 소통을 기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줄리 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 (사진: 연합뉴스)

 

또 다른 포석도 존재한다. 2004년 미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아시아계 유권자 43%가 공화당을 지지했다. 아시아계의 공화당 지지율은 2012년에 26%까지 하락했으며, 2020년에도 29%를 기록했다. 공화당은 2022년 중간선거 당시에도 아시아계 유권자 지지율에서는 18%포인트 차 열세였다. 미국은 아시아계와 태평양 도서민을 하나로 묶어서 AAPI(Asian American/Pacific Islander)라고 부르는데, 그들이 오바마에게 열광하면서 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이 대만계인 캐서린 타이를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임명하면서도 아시아계 장관을 등용하지는 않았기에, AAPI 의원들과 활동가들은 줄리 수 임명을 요구하며 바이든을 압박했다.

대선 구도로 보면 AAPI가 경합주인 조지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어서, 바이든이 그 압박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APIAVote(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투표)에 따르면, 조지아 유권자 중에서 253,165명(3.4%)이 AAPI 유권자였다. 언뜻 보면 비중이 낮은데, 톰 보니어 타겟스마트 CEO의 리트윗을 보면 AAPI의 2018년 대비 투표율이 2.5%포인트 상승해 37.4%를 기록했다. 흑인(4.6%포인트)과 히스패닉(2.5%포인트) 투표율은 하락했으며, 백인 투표율은 0.4%포인트 상승했다.

출구조사 결과는 어떠했을까? AALDEF(아시아계법률변호교육펀드)가 한국어, 중국어, 베트남어, 벵골어, 영어를 활용해 AAPI 유권자 337명과 접촉했는데, 그들 중에서 78%가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민주당·재선)을 지지했다. 워녹의 지지율이 1차 투표 대비 18%포인트 상승했기 때문에, AAPI 유권자가 워녹의 재선과 민주당의 상원 다수당 수성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바이든도 조지아에서 또 이기려면 AAPI 유권자를 최대한 결집시켜야 한다.

바이든은 내각의 다양성도 강화했다

 

그렇지만 상원 민주당은 줄리 수 임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가 없다. 밥 케이시 주니어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3선)이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후에 복귀했으나, 89세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캘리포니아·6선)이 대상포진(shingle)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고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 그녀는 2024년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은퇴를 함께 선언하지는 않았다. 존 페터먼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초선)은 직무를 올해 1월부터 수행 중인 신인 의원인데, 뇌졸중 치료를 지난해부터 받다가 임상우울증을 앓게 되어서 월터리드국립군사의료센터에 입원했다.

즉, 상원 민주당은 49표를 모두 확보해야만 줄리 수 인준안을 표결에 부칠 수 있다. 그러나 존 테스터 상원의원(몬태나·3선)과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3선)이 지지를 선언하지 않으며 지도부를 애타게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텃밭) 출신이거니와 내년에 선거를 치러야 해서, 자신들이 캐스팅 보터로 부각되지 않아야만 줄리 수를 지지할 수 있다. 공화당은 재계의 입장을 지금도 대변하고 있어서 노동차관 임명 표결 당시에 그랬듯이 줄리 수를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테스터가 바이든의 안건을 맨친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상원 민주당으로는 파인스타인과 페터먼의 빠른 복귀를 염원할 수밖에 없다. 일단 페터먼은 4월 셋째 주에 복귀하기로 했다.

바이든은 내각과 사법부의 다양성을 골고루 강화하고 있다. 그는 카멀라 해리스 당시 상원의원(캘리포니아·초선)을 2020년에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장관으로 재닛 옐런(재무), 데브 할런드(내무), 지나 레이먼도(상무), 마르시아 퍼지(주택도시개발), 제니퍼 그랜홀름(에너지)을 기용하고 있다. 상원이 줄리 수 인준안을 가결하면, 바이든이 여성 장관 6명을 기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아시아계 여성 장관은 줄리 수 한 명밖에 없다.

줄리 수의 임명은 공화당 소속으로 노동장관을 지낸 일레인 차오(Elaine Chao)를 떠올리게 한다. 일레인 차오는 타이베이에서 태어났으나 1961년에 미국에 정착했으며, 부시 주니어(노동)와 트럼프(운수) 시절에 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켄터키·7선)의 부인이기도 하다. 일레인 차오는 특히 노동장관을 8년이나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 바이든으로선 줄리 수를 노동장관으로 임명해서 화룡점정을 찍고, 아시아계를 포함한 소수인종을 차기 대선에서 총결집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미 공화당 소속으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일레인 차오 (사진: 연합뉴스)

 

주목할 만한 현직 여성 장관, 바이든의 전략

바이든은 할런드 내무장관을 2021년에 임명함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할런드는 뉴멕시코에 연고를 두고 있는 라구나 푸에블로(Laguna Pueblo) 부족 소속이다. 즉 원주민 여성이다.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원주민과 유럽 혈통을 모두 보유했던 찰스 커티스를 부통령으로 기용한 바가 있으나, 할런드는 원주민 여성 정치인으로서 주목할 만한 경력을 쌓고 있다. 그녀는 2018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해서 ‘최초의 원주민 여성 하원의원’으로 워싱턴 정가에 합류했다. 2020년에도 이겨서 재선 하원의원을 역임하고 있다가 내무장관에 임명되었는데, 내무부는 미국 영토 중에서 20%를 관장하면서 공유지 육상(onshore) 및 연안(offshore)에서의 석유, 천연가스, 석탄 개발을 허가하고 감독한다. 574개 원주민과 국립공원 관리, 멸종위기종 보호도 내무부의 담당 업무이다.

예를 들어서 내무부는 2017년에 유타의 거대 국립공원인 베어스 이어스(Bears Ears)와 그랜드 스테어케이스(Grand Staircase)의 면적을 대폭 축소했다. 트럼프답게 오바마의 유산을 없애고 에너지 개발을 촉진하려 했으나, 유타의 국립공원들은 원주민의 유적 등을 보존하고 있어서 원주민으로선 중요한 곳이었다. 내무부가 원주민을 오랫동안 박해했다 보니, 트럼프의 정책은 원주민으로 하여금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뿐이었다.

 

그런 정책은 정치적 맥락으로 보면 트럼프의 실책이었다. 바이든은 2020년에 위스콘신에서 20,682표(0.63%포인트) 차이로 신승했다. 대도시 득표수와 백인 노동자 지지율을 높였으나, 메노미니 부족(Menominee)의 거주지인 메노미니 카운티에서 1,303표(81.95%)를 득표하기도 했다. 득표율이 역대 최고인 89.12%(1964년)보다 낮았으나 득표수로 보면 1,025표 차이로 이겨서 격차를 2012년(1,012표)보다 벌렸다. 원주민 유권자들은 경합주인 애리조나에서도 바이든의 신승을 뒷받침했다. 그는 토호노 오담(Tohono O’odham) 투표소 대부분에서 90%를 초과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나바호(Navajo) 부족의 지지율도 90%였다. 원주민의 지지는 인구 비율로 보아도 중요했다. 두 부족을 포함해 애리조나 출신 원주민 424,955명(약 6%)이 2018년 당시에 유권자로 등록했다.

대선 승리 이후에 원주민 장관을 임명하라는 요청을 받았거니와 할런드가 공유지에서의 천연자원 개발에 단호하게 반대하기도 해서, 바이든은 원주민의 지지에 화답하고 그들과 연방정부 간 관계를 확실하게 개선하고자 그녀를 내무장관으로 발탁했다. 성향 때문에 공화당의 지지를 받기 힘들 것으로 보였으나, 머코스키가 에너지·천연자원위원회 표결 당시에 공화당원으로는 유일하게 할런드를 지지했다. 상원 민주당 지도부는 그 덕분에 할런드 인준안을 표결에 부칠 수 있었고, 인준안은 찬성 51에 반대 40으로 가결되었다. 콜린스, 그레이엄, 머코스키, 댄 설리번(알래스카·초선)이 할런드를 지지했다. 미국 최초의 원주민 여성 장관이 공화당의 지지까지 받아 임명된 것이다.

미국 최초의 원주민 장관 데브 할런드 (사진: 연합뉴스)

 

알래스카는 공화당 표밭이다. 그러나 인구조사국(Census Bureau)에 따르면, 원주민 인구 비율(20.7%)이 50개 주 중에서 가장 높아서, 공화당원이라고 해서 원주민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 설리번은 2020년 선거에서 이겼으니 할런드를 맘 편히 지지할 수 있었겠지만, 머코스키는 트럼프 지지층의 증오를 받는지라 선호투표제를 최대한 활용해서 4선에 성공하려면 원주민과 민주당 지지층을 포섭해야만 했다. 그런 연유로 알래스카 정치인답게 천연자원 개발을 지지하면서도 할런드를 지지했던 것이기에, 7선 상원의원 출신인 바이든이 알래스카의 정치 지형과 선거 일정을 노련하게 활용해서 할런드를 임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바이든은 여성 장관을 적재적소에 기용해서 다양한 민주당 지지층을 아우를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최소 과반(51명)을 상원에서 확보하고 있어서, 당 소속 의원들만 일사불란하게 묶어내면 가결을 이룰 수 있다. 할런드가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네 명의 지지를 받았듯이, 때때로 공화당 표까지 포섭할 수도 있다. 공화당은 사회·문화 전쟁을 벌이면서도 여성과 소수인종 지지율을 유의미하게 높이고자 하므로, 바이든의 행보에 적절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그런데 2022년 중간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흑인(88%), 히스패닉(66%) 여성 모두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민주당의 백인 여성 지지율은 45%였으나, 43%가 2016년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찍었다. 공화당이 여성과 소수인종 지지율을 확실하게 높이지는 못하고 있으며, 바이든이 공화당의 그 딜레마를 노련하게 공략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바이든의 여성장관 기용을 ‘정치적 올바름(PC)이나 워키즘(Wokisem)에 편승하면서 여성장관을 발탁한다’라고만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글쓴이 신은철은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이다. 영어영문학과 출신으로, 2012년 미국 대선을 지켜보면서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는 물론, 주요 정치 사이트, 블로그, 주와 카운티 단위의 지방 언론까지 수년 간 섭렵하면서, 미국 정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다. 미국 정치에 대해 정리된 생각들을 2016년부터 SNS 등을 통해 알리고 있고, 지난해 8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칼럼을 쓰고 외부 강연을 하고 있다. 미국 유권자층의 변화, 그리고 이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을 미시적 수준까지 추적해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