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짜증난다.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의 기세에 숨이 막히는데, 코로나19까지 재유행하고 있으니. 몸과 마음의 활력이 자꾸만 바닥을 향하는 느낌이다. 이럴 때 '책 세상’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면 어떨까. <피렌체의 식탁>은 대표적인 독서가 6명한테서 8월 휴가철에 읽으면 좋을 책 1권씩을 추천받았다. 그야말로 믿고 읽어도 되는 도서들이다. 게다가 독서가 6명의 ‘추천의 글’ 또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짧지만 강력하다. [편집자 주]

✔장하석 <물은 H2O인가?-증거, 실재론, 다원주의>
✔레슬리 컨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돈 존반, 캐런 저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프레데릭 쿠퍼, 제인 버뱅크 <세계제국사>
✔브루스 왓슨 <프리덤 서머, 1964>
✔우춘희 <깻잎 투쟁기>

 

사진:셔터스톡

 

김공회(경상대 경제학부 교수)

장하석 저, 전대호 역,<물은 H2O인가? - 증거, 실재론, 다원주의>, 김영사, 2021

“위대한 과학적 성취들은 이런 식으로 미결정성을 육성하는 것에서 나오지, 미결정성을 제거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과학방역이냐 정치방역이냐. 상반기 내내 우리 사회를 달구었던 화두 가운데 하나다. 정답은? 둘 다다. 감염병에 대응하는 정책의 주체가 국가인 한 어떤 방역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나, 그 어떤 방역정책도 과학에 입각해야만 할 터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해서 논란이 될 것도 없는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과학방역 vs. 정치방역’ 논쟁이 몇 달이나 지속된 것은, 과학에 대한 일종의 신화 같은 것이 우리 대중의 심성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와 달리 과학은 불편부당한 진리일 거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물은 H2O인가?>는 이러한 통념에 일침을 가한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아니, 물이 H2O가 아니라고? 실제로 현대의 과학에 따르면 물은 단순히 H2O라고 표현하기엔 복잡한 대상이지만, 저자의 관심은 물이 H2O냐 아니냐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 책은 어떤 과정을 거쳐 고대 그리스 이래 하나의 원소라고 여겨졌던 물이 H2O라는 화학식으로 표현되는 화합물로 굳어졌는지를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우리가 아는 과학적 진리란 사실은 서로 경합하는 다양한 견해들 중에서 당면한 상황에 따라 선택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한 선별의 과정이 언제나 충분히 ‘과학적’이지 않음을 보이고자 한다. 이는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다원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양승훈(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레슬리 컨,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열린책들, 2022

 

"엄마가 외면당하지 않고, 여성들이 우정을 나눌 수 있으며, 여성 어느 시간에도 혼자서 산책하고 달리기를 할 수 있으며,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공포와 처벌이 아닌 민주주의로 질서를 만들어 가는 도시"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는 말을 이따금 곱씹는다. 모든 도시가 자유를 만드는지 불분명 해 보여서다. 자유로움의 경계는 도시의 다양한 ‘요철’을 통해서 체감이 되곤 한다. 지하철(도시철도)이 없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통근을 위해 자동차에 의존해야만 한다. 여성을 채용하고 유자녀 여성에게 모유 수

유할 공간을 제공하는 정규직 일터가 없는 도시에서 여성은 ‘커리어’라는 말을 곱씹기 힘들고 사무보조직이나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같은 핑크칼라를 전전하기 일쑤다. 지리학자 레슬리 컨은 엄마가 외면당하지 않고, 여성들이 우정을 나눌 수 있으며, 여성 어느 시간에도 혼자서 산책하고 달리기를 할 수 있으며,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공포와 처벌이 아닌 민주주의로 질서를 만들어 가는 도시여야 한다고 전한다. 저자의 ‘여성 친화적 도시’는 여성 친화 그 이상이다. “여성 친화적 도시는 물리적, 사회적 장벽이 해체된 곳이자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수용하는 곳이어야 한다. 여성 친화적 도시는 돌봄 중심이 되어야 한다. 돌봄 노동을 계속 여자들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돌봄 노동을 보다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 잠재력이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86-87)

이주현(한겨레 기자)

 

존 돈반·캐런 저커 저, 강병철 역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꿈꿀자유, 2021

“자연이 긋는 선은 항상 주변으로 번진다.”정신과 의사이자 자폐인권리옹호 활동가인 로나 윙이 자폐 스펙트럼(연속선)의 개념을 제안하며 만들어낸 격언(439쪽)

 

사람처럼, 책도 운명이 있다. ‘때’가 있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폭발적 인기와 더불어 역주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가 딱 그렇다. 극단적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극단적으로 주변 환경의 변화를 싫어하는 성향, 언어와 감정을 통한 세상과의 연결이 불가능한 상태, 재능과 결함이 기묘하게 뒤섞인 모습. 이런 사람들이야 호모 사피엔스의 시작부터 존재했을 테지만 ‘자폐증’(autis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194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이 책은 자폐의 ‘발견’부터 시작해 오해와 편견의 파고를 헤쳐온 험난한 과정을 풍부한 사례와 깊이 있는 분석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결국 ‘영원히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알려져 있던 자폐증에 회복의 희망을 제시한 것은, 헌신적인 부모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들은 ‘어딘지 다른 사람들’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자폐인들이 간직한 재능을 세상 에 알렸다.

우영우는 우리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묻는다.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인간이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존재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힘은 역시 아버지 ‘광호’와 상사 ‘정명석’, 동료 ‘최수연’과 친구 ‘동그라미’의 응원과 지지였다. 그래서 자폐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임명묵(칼럼니스트)

프레데릭 쿠퍼, 제인 버뱅크, 이재만 역 <세계제국사>, 책과함께, 2016

러시아와 중국이 그들의 제국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체제를 실험하는 지금, 우리의 정치적 상상은 무엇이 있는가

 

 

역사는 흔히 국민 국가를 향한 행진으로 이해되고는 한다. 한국의 공식 역사는 고대 한국인들이 통일을 이룬 역사, 해방과 분단의 역사를 겪고 다시 통일 민족 국가를 이루고자 하는 서사가 핵이다.

하지만 제국사 연구자들인 프레더릭 쿠퍼와 제인 버뱅크의 <세계제국사>는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보자고 제안한다. 인류 역사 내내 함께했고 다수 인류에게 영감을 주었던 정체의 형태는 국민 국가가 아니라 바로 제국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제국의 본질은 역설적으로 다양성이다. 내부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함께 끌고 가야 하는 어려운 과업이 제국을 따라다녔고 제국의 통치자들은 ‘차이의 정치’를 다루기 위하여 위계적 통치 구조를 만들었다.

로마와 중국에서 21세기까지 제국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이 책은 여전히 ‘차이’를 다루어야만 하는 우리 시대에도 계속 질문을 던진다. 당연히 제국을 다시 만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국민 국가가 아니더라도 다른 ‘정치적 상상’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대안적 상상을 위해서라도 제국의 경험을 참조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그들의 제국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체제를 실험하는 지금, 우리의 정치적 상상은 무엇이 있는가.

박누리(더핑크퐁컴퍼니 IR & 기업전략 리더)

브루스 왓슨 저, 이수영 역 <프리덤 서머, 1964>, 삼천리, 2014

 

미시시피를 불타오르게 하고 미국에 마침내 민주주의를 가져온 여름

 

미국의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 국가 등을 근거로 선거권 행사와 공공시설의 분리 사용, 학교 및 직장에서의 차별을 금지한 역사적인 법안이다. 이 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미국 남부의 많은 주들에서는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이 헌법에 보장된 자유와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백인과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버스의 옆자리에 앉지 못했으며, 선거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말그대로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이 법이 만들어진 배경은 1964년 6월에 있었던 프리덤 썸머(Freedom Summer) 운동이다. 미국의민권운동단체들이 주도한 이 운동은 미시시피 주의 흑인들이 유권자 등록을 하도록 독려하고 시민으로서 그들의 권리에 대해 계몽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흑인을 결코 백인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았던 남부의 반발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7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을 겪어야 했고, 실제로 살해 당하기까지 했으며, 수많은 집과 학교와 교회가 불탔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브루스 왓슨의 <프리덤 서머>는 객관적인 관찰자 관점을 차분하게 유지하면서도 저자의 열정과 분노를 행간에 그대로 담아낸, 그 뜨거웠던 1964년 여름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붙인 부제 <미시시피를 불타오르게 하고 미국에 마침내 민주주의를 가져온 여름>는 이 책을 한 구절로 요약한다.

미국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듯 급격하게 보수화하고, 한국에서는 공정이라는 단어가 기득권의 백래쉬를 상징하게 되어버린 이 여름, 차가운 눈과 뜨거운 가슴으로 함께 읽고 싶은 책.

하인혜(석유화학 공단 관리직/칼럼니스트)

우춘희 저, <깻잎 투쟁기>, 교양인, 2022

밥상 위 가장 흔한 반찬인 깻잎이 실제론 수 많은 외국인들의 눈물과 아픔으로 일궈졌단 사실을 알리고 있다.

"사장님 나빠요" 십 수 년전 인기를 끌던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풍자해 많은 공감을 끈 코미디물이다. 이 개그를 통해 중소 공장의 저임금 문제는 꽤 알려졌다. 반면, 우리의 식탁을 책임지는 농촌 소도시 인권문제는 막연히 알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깻잎 투쟁기>는 바로 이런 농촌 소도시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폭로했다.

내국인들이 꺼리지만, 밥상의 유지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국가와 고용주들의 니즈에 맞춰졌을 뿐이다.외국인 노동자이 고용주의 착취, 폭력에 노출된 문제는 외면됐다. 이 책은 그런 문제들을 다룬다.

 밥상 위 가장 하찮은 반찬인 깻잎이 실제론 수 많은 외국인들의 눈물과 아픔으로 일궈졌단 사실을 알리고 있다. 사유할 시간이 생기는 휴가기간에, 우리의 식탁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