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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05.13, 00:00

[Not One Inch 저자 사로티 인터뷰] 푸틴이 말하는 약속은 애초에 없었다

By | 2022년 5월 3일 | 국제, 미분류, 여성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 국제정치학계의 화제를 모으는 책이 있다. 1990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붕괴당시 미국과 나토가 단 1인치도 동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을 다룬 책이다.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주제를 막 해제된 봉인 외교문서를 재료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파이내셜 타임즈를 비롯한 매체들은이 책을 올해의 책, 올해의 필독서로 선정했다. 저자 메리 엘리스 사로티(존스 홉킨스대 교수)를 <피렌체의식탁> 윤영호 기획위원이 단독 인터뷰했다. 나토가 동진하지 않겠다는 논의와 약속의 정황은 있으나 명시적 약속은 없다는게 클린턴 도서관 문서 등의 관련 자료를 다 들춰본 저자의 해석이다. [편집자 주]

✔ 미국의 동진 저지 논의는 오갔으나 약속은 애당초 존재 않아
✔ 잠시 오간 논의를 빌미로 한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성 없어
✔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오히려 나토 가입을 희망하고 있었다
✔ 소련 붕괴보다 더 큰 타격으로 기록된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1980년대 한국 시골 마을은 가난했지만 평화로웠다. 우리 동네도 그랬다. 이웃끼리 싸우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한 차례 큰 싸움을 기억한다. 우리가 텃밭에 가지를 가지런히 심었는데, 줄이 삐뚤어져 옆집 텃밭을 아주 조금 침범했다. 옆집 아주머니의 분노가 대단했다. ‘우리 땅을 손톱만큼도 넘어오지 말라’라는 악에 받친 경고가 있었고, 고성과 눈물이 오갔다. 손톱만큼도! ‘땅이란 무릇 손톱만큼도 넘어서는 안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어린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나토 팽창의 역사>(저작권: Reddit Inc)

나토가 약속을 어겼다는 푸틴의 주장

푸틴은 나토가 약속을 지키기 않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고, 그것을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전쟁에 앞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때도 나토가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깼으며, 그로 인해 러시아 안보가 위협받았다고 말했다. 푸틴의 표정은 차가웠고, 사용한 단어는 냉혹했다. 나는 그의 러시아어 담화를 대부분 이해했지만, ‘니 아드나버 듀이마(Ни одного дюйма)’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그 단어는 Not One Inch라는 뜻이었다. 푸틴의 냉혹한 말은 가지 밭을 두고 벌였던 이웃 간의 싸움을 떠올리게 했다.

나토가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는가? 미국은 그 약속을 어겼는가? 그것은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수 있는 정당성을 제공하는가? 이 질문에 답해 줄 사람은 메리 엘리스 사로티(Mary Elise Sarotte)다. 왜 그녀가 최고의 적임자일까?

최고의 국제관계 전문가 매리 엘리스 사로티 교수

메리 엘리스 사로티 교수. (사진: 존스홉킨스 대학 홈페이지)

그녀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예일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USC 교수를 거쳐,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로 국제관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1989: 탈냉전 유럽 형성을 위한 투쟁(2009년)>, <붕괴: 뜻밖에 열린 베를린 장벽(2014년)>를 썼다. 그리고 2021년에 화제의 책 <Not One Inch: 미국, 러시아 그리고 탈냉전 이후 교착상태의 형성>을 썼다. <Not One Inch>는 포린 어페어스가 선정한 ‘2021년 최고의 책’이며, 파이낸셜 타임즈가 선정한 ‘2022년에 읽어야 할 최고의 책’이다. 필자는 어렵게 사로티 교수를 섭외하여,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 <Not One Inch>는 미국과 러시아가 나토 동진과 관련하여 벌인 논쟁을 정리한 책이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데에 이 책보다 더 시의적절한 책은 없다. <Not One Inch> 본문은 359페이지에서 끝나지만, 이후 361페이지에서 507페이지까지 총 146페이지에 걸쳐 증빙 자료가 각주 형태로 달려 있다.

사로티: <Not One Inch> 주요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자료를 얻기 위해 2015년부터 3년이나 싸워야 했다. 2018년에 마침내 클린턴 라이브러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크렘린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크렘린은 클린턴 라이브러리가 공개되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 관련 내용이 세상에 나오게 되어, 그들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이란 푸틴을 의미했다. 크렘린에서 그렇게 빠르게 반대하고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실망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기뻤다. 공개 반대는 중요한 정보가 그곳에 많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서로 다른 주장과 기억이 존재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수준 높은 입증 자료를 가지게 되었다.

푸틴이 말하는 약속,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 미국과 소련 사이에 나토가 1인치도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실제로 존재했는가?

사로티: 1990년 2월에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와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독일 통일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에 제임스 베이커는 소련이 독일 통일에 동의하고 동독에서 물러나면,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좋은 생각이며, 나중에 더 논의해보자고 반응했다. 푸틴이 말한 ‘이 약속’은 공식적으로 서명된 것도 아니었고, 문서로 남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구두상으로도 합의된 것이 아니었다.

제임스 베이커는 미국으로 돌아와 대통령이자 친구였던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부시는 즉각적으로 반대했다. 부시는 소련과 전쟁에서 승리한 나토가 승자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토가 1인치도 동진하지 않는다면, 통일 독일의 절반은 나토고, 절반은 나토가 아닌 것이 되어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았다. 부시는 유럽의 안정을 위해 필요할 경우에 나토는 독일을 넘어서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소련에서 요청하지도 않은 것을 미국이 먼저 약속할 이유가 없었다. 당황한 베이커는 다시 유럽으로 가서 자기가 한 말을 모두 주워 담았다. ‘미안하다.’ ‘내가 한 말은 모두 잊어 달라.’ ‘내가 한 말을 취소한다.’ 등등.

고르바초프는 2014년에 1990년을 회상하면서 서유럽 국가나 동유럽 국가 중, 어떤 나라도 NATO의 확장에 대한 논의를 제안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증언에 따르면, 그런 합의는 없었지만, 논의는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역사적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NATO 확장에 대한 논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독일 통일에 대한 합의가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서독과 동독 사이에서 이뤄졌을 때, 나토가 독일을 넘어 동쪽으로 확장하는 것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 당연히 1인치에 대한 이야기도 공식 문서에 남아 있지 않다. 대신에 서독이 소련에게 지불할 금전적인 대가에 관한 것은 상세하게 다뤘다. 미국 국방부 장관은 통일의 가장 큰 수혜자인 서독이 소련에게 뇌물을 지불하여 독일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독은 소련에게 돈을 지불하고 통일을 이뤘다. 결과적으로 나토가 독일 내부에서 동진하는 데에 소련이 동의한 형태가 되었다.

‘약속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심리적인 것에 가깝다. ‘미국이 나토가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소련에게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런 약속은 없었다. 말은 나왔지만, 유야무야 되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1991년 백악관에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로버트 스트라우스 당시 소련 주재 미국 대사와 함께 가진 기자회견 사진(사진:셔터스톡)

푸틴은 네러티브 자체를 왜곡하여 이용하는 중

: 당신 말대로라면 약속은 없었다. 푸틴은 ‘깨어진 약속’이라는 서사를 국내외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 서사는 어느 정도는 통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국내에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로티: ”Not One Inch와 관한 네러티브는 미국과 러시아 관계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사용되어 왔다. 때로는 조작되고, 지금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조작된 네러티브는 Not One Inch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미국과 러시아가 협상했던 합의문 초안이 있었다면서 기자들에게 문서를 나눠준 적이 있다. 문서는 마치 사인만 남겨둔 상태의 합의문 형식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서 내용은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었다. 문서에는 나토가 1997년 5월 27일 이전의 나토 지역보다 동쪽으로 확장할 경우에 러시아가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적도, 서명된 적도 없었다. 다만 옐친이 러시아가 비토권을 가진다는 말을 자국 내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국내 정치용 카드였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가 항의하자 러시아 당국자는 ‘우리도 옐친을 통제할 수 없고, 술을 많이 먹고…’ 등등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푸틴은 1990년 1인치 문제, 1997년 비토권 문제를 자기 정당화를 위한 네러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누군가 특정 컨텍스트 아래에서 말한 부분을 잘라서 활용한다. 이러한 네러티브가 우크라이나 비무장화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나토 가입을 희망했다

: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러시아의 나토 가입을 추진하거나 고려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 것인가?

사로티: 고르바초프는 부시의 즉각적 거부 이후에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을 것이란 약속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는 나토를 해체하고, 소련을 포함한 새로운 군사 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단숨에 거절했다. 소련이 나토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타진했고, 미국은 그것은 판타지라고 했다. 1990년 봄에 고르바초프는 2차 세계대전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다시 동맹국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미국은 연거푸 거절했다.

소련이 붕괴했고, 옐친이 등장했다. 옐친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나토는 옐친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토 회원국과 동유럽 및 구소련 국가 간의 신뢰를 증진시킬 목적으로 PfP(평화를 위한 파트너쉽)을 만들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체첸 전쟁을 일으켰고, 러시아가 정상 국가로 가는 과정은 실패로 보였다. 미국은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국가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옐친은 나토 가입을 강하게 희망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푸틴도 정권 초기에 나토 가입과 관련하여 말한 적이 있다-필자 주)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나토 사무총장을 지낸 영국의 조지 로버트슨(George Robertson)에게 푸틴은 ‘언제 우리를 나토로 초대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로버트슨은 ‘글쎄. 우리는 누구를 나토로 초대하지는 않는다. 가입 희망자가 신청서를 쓰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푸틴은 ‘중요하지도 않은 여러 나라가 그러는 것처럼 우리는 줄을 서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푸틴이 말한 중요하지 않은 나라는 2004년에 나토에 가입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러시아의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여지는?

: 나토는 점진적으로 동진하여 현재 러시아와 나토 사이에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가 남아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은 안보 위협을 느낀다고 말한다. 1인치와 비토 네러티브가 푸틴의 왜곡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러시아 입장에서는 나토의 동진을 위협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사로티: ‘Not One Inch’는 처음에는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주는 말이었다. 미국의 승리가 보다 명확해지고, 소련과 러시아가 점점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미국은 점차 더 큰 승리를 원했다. 나토의 동진은 과정이었다. 내 생각에 나토 동진은 일회성 이벤트여야만 했다. 영국의 입장이 그러했다. 영국은 나토 동진은 동유럽 국가 중에 나토에 도움이 될 몇몇 나라를 선별하여 그들을 한 번에 받아들이고,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은 나토 가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과정이어야 하며, 나토에는 1인치 한계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런던과 워싱턴의 생각 차이가 있었고, 워싱턴이 이겼다.

나의 주장이 오해의 여지가 있다. 나는 나토 동진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토 동진은 필요했고, 합리적이었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나라가 소련과의 관계를 끊고 민주화되었고, 유럽의 강력한 동반자가 되었고, 지금은 유럽 평화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독일 통일 후 나토 확장이 다섯 차례나 있었고, 나토 가입이 공격적으로 열려 있다는 것이다. 나는 푸틴 체제에 대해 어떠한 동정심도 없고, 러시아의 군사 행위 어느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푸틴의 판단이라고 다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유럽의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

혼돈과 헛된 기대만 남긴 2008년 나토의 실수

: 역사가인 당신은 역사적 이벤트는 대부분 하나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 않으며,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판단 착오 때문일 수도 있고, 러시아 군사력에 대한 과신 때문일 수도 있고, 푸틴 머리 속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토 동진 때문일 수도 있을까?

사로티: 2008년 4월에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나토 정상 회담이 있었고, 그때 미국과 유럽 사이에 의견차가 있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나토 가입은 러시아를 자극하여, 유럽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지 부시(아들)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단히 명확한 의견 차이였는데, 결국 유럽과 미국은 절충안을 생각해 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언젠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면서도 실제로는 가입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절차는 하나도 밟지 않았다. 이는 생각해 낼 수 있는 절충안 중, 최악의 선택이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혼동과 헛된 기대를 남겼고, 러시아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후 러시아는 2008년 8월에 조지아를 공격했고, 2014년 2월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했고, 2022년 2월에 다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그렇다고 전쟁 책임이 나토에게 있다는 말은 아니다. 푸틴은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명분으로 아주 일부의 역사적 사실만 인용하여, 전쟁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대한 나토의 애매모호한 타협안은 푸틴이 선택적으로 가져다가 활용하는 네러티브의 새로운 소재가 되고 말았다.

세상이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 당신은 책 제목으로 <Not One Inch: 미국, 러시아, 독일 그리고 탈냉전 교착상태의 형성>을 원했지만, 예일 대학교 출판사 측에서 독일이라는 단어는 빼기를 원했다. 저명한 학자도 책 제목을 자기 맘대로 정할 수 없다니 놀랍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구 주제는 나토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독일의 입장이었다. 세상의 관심을 끌고 있는 <Not One Inch>라는 세 단어에는 주권 국가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없다. 물론 이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고, 당신 연구 주제가 그러했을 뿐이다.

사로티: 1991년에 우크라이나는 84%의 투표율과 90%의 찬성율로 독립을 결정했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키이우 찬성율은 95%가 넘었다. 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에서도 찬성 비율은 80%가 넘었고, 크림반도의 독립 찬성도 54%를 넘었다. 당시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인 로버트 스트라우스(Robert Strauss)는 ‘1991년 러시아에게 가장 혁명적인 사건은 공산주의 붕괴가 아니라 러시아 정체성의 일부, 그것도 심장에 가까워 매우 중요한 일부인 우크라이나를 잃었다는 것이다.’라고 본국에 보고했다.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의 의사는 명확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 가까워지려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30년이 지났고, 한 세대가 흘렀다. ‘우크라이나는 한 번도 별도의 민족인 적이 없다’라는 자신만의 ‘러시아 민족론’을 주장하는 푸틴은 지금이라도 우크라이나의 유럽행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1991년에 잃어버린 러시아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다시 찾아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푸틴은 냉전 이후에 국제 안보 질서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지 못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무력으로 굴복시킨다면, 우크라이나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국민이 보여준 의지와 능력은 푸틴의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는 우크라이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까?

사로티: 우크라이나 국민은 유럽 정치 지형에서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 침략에 대항하는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침략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인에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경의를 보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피할 수 없었는가?

: 당신의 책을 읽은 독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군!’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덮는다면, 그것은 책을 오독한 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사로티: 나는 이번 전쟁이 피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전쟁이 최종적으로 결정될 때는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거의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역사적 사건이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그것은 항상 다른 식으로 흘러가고, 다른 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마지막까지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 이러한 침략으로 흘러간 것은 매우 큰 비극이다.

사진:셔터스톡

국제관계에 있어 여성의 역할에 대해

: 시간과 지면의 한계로 이야기를 여기서 줄여야 하는 것이 아쉽다. 우리나라에 [Not One Inch]가 번역 출간될 때, 다시 한번 인터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성이 국제관계를 다루면, 국가 간의 관계는 부드러워지고, 전쟁도 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재미로 들었는데, 이제는 우스개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다. 이 전쟁에 푸틴이라는 인물의 개인 성향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여성 리더쉽은 향후 국제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로티: 미국의 외교관이며 역사학자였던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은 여성은 국제관계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왜냐면, 너무 진지하게 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연히도 나는 케넌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에는 올브라이트를 포함한 뛰어난 여성 국무장관이 있었고, 유럽의 리더와 외무장관 중에도 걸출한 여성이 있었다. 앞으로 국제정치에서 여성 리더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고, 이는 국제정치에 큰 함의를 가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몇 인치냐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와 공존

인치(inch)란 영미권에서 널리 사용되는 단위다. 1인치는 2.54cm이지만, 이렇게 규격화되기 전에는 엄지손가락 끝에서 첫 번째 관절까지의 길이를 뜻했다. 엄지손가락 첫 관절을 구부려 보자. 그중 절반을 손톱이 차지한다. 1인치는 손톱 두개 길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옆집 아주머니는 미국, 유럽과 러시아보다 엄격히 자기 땅을 지키려고 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그마한 텃밭에서 손톱 만큼보다 유럽 대륙에서 1인치가 훨씬 세밀한 단위다. 1인치 네러티브는 강력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가지를 심었던 그 땅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잡초가 무성한 땅이 되었고, 지금은 그 땅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싸움의 당사자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앙금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손톱만큼도 1인치도 아니고, 평화와 공존이다.


글쓴이 윤영호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증권사, 보험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카자흐스탄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세븐 리버스 캐피털(Seven Rivers Capital)에서 대표로 일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자산을 운용하며 런던 라이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 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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