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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환 칼럼] 러시아 강경론으로 선회하는 프랑스 주류

By | 2022년 4월 17일 | 국제, 미분류, 정치

 직전 대통령인 올랑드가 최근 푸틴에 대해 “거짓말은 그에게 제2의 천성”이라며 부차 학살을 비판했다. 미셀 뒤클로를 비롯한 프랑스의 노련한 외교관들은 “우리가 알던 그 푸틴이 아니다”며 최근 부쩍 푸틴을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한 인물로 묘사하곤 한다. 프랑스는 서유럽의 주요 축이다. 프랑스가 러시아와의 대화를 거둬들이고 미국, 영국과 같이 강경론을 걷는다면 유럽내 균형은 상당히 달라진다. 물론 예선 2위로 대선 결선에 진출한 마리 르펜은 24일의 결선투표를 앞두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고 꼬집으며 우크라이나의 양보를 은근 촉구하는 쪽이다. 여론조사에서 결선투표 1위가 유력한 마크롱 현 대통령은 양비론 속에 러시아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프랑스의 주류는 선거후 마크롱이 푸틴에 대한 고삐를 좀더 세게 잡아당겨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같다. [편집자 주]          

✔올랑드 전 대통령, 푸틴 억제하려면 힘의 균형 필요하다 강조
노르망디 포맷, 민스크 합의 앞장선 국가 원로의 대 푸틴 강경선회
✔외교통 미셀 뒤클로는 푸틴 체제 해체를 언론 인터뷰에서 시사
“푸틴이 권좌에 머무르는 한 생산적 관계 돌아갈 수 없다”
✔시앙스포 교수, “유럽 전쟁에 한국은 공감도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 지적
우크라이나 분단 시나리오 속 한반도 분단 모델도 새삼 회자되는 중
✔러시아산 가스, 석유 차단하고 우크라이나에 방공
미사일망 지원하자는경제-군사 강경론 점차 우세

모스크바 관광 상품점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마트료슈카. (사진:셔터스톡)

프랑스가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유럽의 운명

지난 4월 1일, 키이우(Kyiv) 북쪽에 위치한 부차(Bucha)에서 민간인이 대규모로 학살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세계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를 상대로 각종 추가 제제를 발표했다. 민간인 학살은 전쟁범죄에 해당하며 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퇴출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대통령 엠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가 국제사회의 정의를 위해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철저히 조사하고 자료를 확보할 것이며, 러시아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네버 어게인(Never Again)>이라는 슬로건으로 민간인 학살과 같은 일이 결코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한 소망을 바탕으로 <유엔>이 창설되었고 나아가 <세계인권선언>이 작성되었다. 특히 프랑스는 1789년 인권선언을 최초로 명문화한 나라이며, 또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참여한 당사국이기도 하다. 따라서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프랑스 당국은 지난 4월 11일 부차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 조사단의 파견을 선언하였고, 러시아의 범죄 증거를 최대한 많이 수집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에 협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프랑스는 지금까지 유럽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또 중재한 나라이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직후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목표로 하였으며, 푸틴 대통령을 베르사유 궁전에도 초청하였고, 또 대통령 별장에도 초대하였다. 2019년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은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진다고 말하면서 러시아는 “유럽공동체의 일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위기가 격화되었을 때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지난 2월 7일 전쟁을 막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과 만나 그의 일방적 독백을 수시간 들으면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했다. 심지어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과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휴전을 성사시키고 인도주의 통로를 개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마크롱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시간을 합하면 총 20시간이 넘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제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과 명분 없는 폭력이 계속되면서 대화를 지속하는 게 어려워졌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이제 무의미하다”

결국 프랑스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에 대한 입장을 재정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입장 변화는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유력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그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돈바스의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했을 당시 독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러시아와 수차례 협상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의 제안으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 <노르망디 포맷>이 발족했고, 또 우크라이나와 돈바스 분리주의자 간의 휴전을 성사시킨 <민스크 합의>가 탄생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분쟁의 해결을 위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참여하는 노르망디 포맷 회담 중인 메르켈, 푸틴, 올랑드의 모습. (사진:셔터스톡)

☞ 노르망디 포맷(Normandie Format)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분쟁의 해결을 위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참여하는 4자회담 형식의 협의체. 201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 행사에서 프랑스의 제안으로 발족하였으며, 2022년 현재까지 총 8차례 만남을 가졌다.

☞ 민스크 합의(Misk Agreement)

우크라이나, 러시아, 돈바스 분리주의 지역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 이 협정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 아래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서명되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온전히 보전하고 동시에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의 자치를 보장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아울러 양측의 군사행동 중지, 포로교환, 인도주의 통로 개설, 외국세력의 개입 금지 등을 명문화하였다.

 

올랑드 전 대통령은 이제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감정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무의미하다. 푸틴과 대화하는 건 마치 그가 약속한 걸 전혀 실행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또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전혀 말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수시간 동안 듣는 것과 같다. 현재 그의 목표는 주의력을 떨어트리고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의 수단은 끝없는 독백이다. 이를 통해 많은 세부 사항과 광범위한 역사적 고려사항을 생략하여 특정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을 회피한다. 또 정치적으로 혹은 인도주의적으로 예상되는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도 모면한다.

그에게 거짓말은 제2의 천성이다. 민스크에서 그는 나에게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주의 지도자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2013년 8월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벌어진 화학무기 폭격이 바샤르 알아사드의 반대파가 벌인 소행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부차의 끔찍한 이미지를 연출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아주 부당한 일이다. 결국 푸틴 대통령이 무엇을 하도록 유도하거나 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유일한 수단은 오직 <힘의 균형> 뿐이다.” (르몽드와 인터뷰, 2022/4/5)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는 건 올랑드 전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주 시리아 대사를 지내고 현재 프랑스의 권위있는 국제관계 싱크탱크 몽테뉴연구소(Institut Montaigne)의 특별고문을 맡고 있는 미셸 뒤클로 또한 이에 못지 않은 강경한 언사를 내뱉고 있다. 그 또한 <르몽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푸틴이 더 이상 권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푸틴은 그 어떤 신념도 없는 무법자이다. 그는 무엇도 존중하지 않고, 오직 잔혹한 힘만을 믿는다. 우리는 그가 체첸과 시리아에서 한 짓을 보았다. (중략) 오늘날 푸틴은 중국과의 동맹을 통해 서방을 파괴시킬 수 있다고 믿으면서 모든 다리를 불살라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푸틴은 2011~2012년의 푸틴도 아니며, 크림반도를 합병한 2014년의 푸틴도 아니다. 특히 2000~2008년 집권 초기 억압적인 국내정치를 펼치면서도 동시에 서방과의 협력을 도모했던 푸틴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실질적인 패배를 당해야만이 그와 생산적인 논의를 재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패배하지 않는다면 그는 계속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푸틴이 권좌에 계속 머무를 경우 러시아와 생산적인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르몽드와의 인터뷰, 2022/04/06)

우크라이나 전쟁, 서방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나?

프랑스에서 이와 같이 격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곧 유럽, 나아가 서방문명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대사(2013~2017)와 중국대사(2017~2019)를 모두 역임한 베테랑 외교관 장-모리스 리페르, 그리고 미국대사(2007~2010)를 역임하고 마크롱 대통령의 러시아 특사(2019~2022)를 역임했던 피에르 비몽은 “푸틴의 목표는 유럽연합의 파괴”라고 단언하면서 유력 경제지 <레제코>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푸틴의 집착은 유럽연합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시진핑 대통령과 달리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나쁜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대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는 권위주의 정권의 논리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독재자들은 하나의 국민적 서사를 창조하길 원하며, 푸틴이 창조하는 서사는 모든 러시아 민족의 차르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역할을 이상하게 혼합한 것이다. (중략) 러시아는 단순히 소련의 부활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원한다. 푸틴에게 문제의 근원은 제국의 종말에 있다. 우리 다른 유럽국가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갈등으로부터 벗어났고 유럽연합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 러시아는 이 문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며 푸틴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중략)

푸틴은 협상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 끝없이 말할 뿐이다. 푸틴과 그의 측근들은 민주주의에 반대하며 보편적인 인권이란 개념을 맹렬히 거부한다. 푸틴은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이란 개념을 일종의 일탈로 바라보고 있으며, 서방국가들이 세계를 자국의 가치에 따라 지배하려고 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저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레제코와의 인터뷰, 2022/3/25)

미국대사와 러시아대사를 역임한 프랑스의 베테랑 외교관들이 자칫 비외교적일 수도 있는 강경한 언사를 내비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 러시아는 유럽의 질서와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폭력과 혼란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지난 12월 미국과 나토를 상대로 최후통첩을 보내면서 나토군이 1997년 이후에 회원국이 된 나라들에 주둔하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 이는 현재 이미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와 체코공화국 그리고 발트3국의 방어를 사실상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그는 같은 문서에서 또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등 구소련 국가의 나토 가입 금지 명문화를 요구했는데 이는 민족자결에 위배되는 것이고 또 개별국가들의 주권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통일성>이란 제목의 장문의 글을 기고하면서 우크라이나의 국가성과 독립을 정면 부정하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논리는 러시아 국영매체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었으며, 급기야 제노사이드를 촉구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칼럼까지 실리게 되었다. 지난 4월 4일 러시아 국영매체 <리아 노보스티(РИА Новости)>는 이하와 같은 내용을 담은 칼럼을 기고했다.

“나치 정부를 따른 군중 대다수를 모두 전범처럼 처벌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치를 지지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도록 해야 한다. 나치로부터 해방된 나라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 탈나치화는 탈우크라이나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는) 인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조지아와 발트3국과는 달리 우크라이나는 국민국가로서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나치즘을 통해 국민국가를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 반데라(2차 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협력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추종자들은 재교육시킬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리아 노보스티, 2022/4/4)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오직 더욱 강한 제재만이 해결책”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민간인에 대한 피해가 늘어나면서, 프랑스와 유럽각국은 현재까지 러시아 외교관 400여명을 추방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늘렸고 또 제제를 더욱 강화했다. 지난 2월 22일부터 4월 7일까지 러시아 금융망과 첨단분야를 겨냥한 각종 제재안이 통과되었으며 추가 제제안도 계속 검토되고 있다.

일자 주요 내용
2/22 • 유럽연합 금융/자본시장에 대한 접근 제한
2/25 • 러시아 주요 은행 제재 • 정유시설 관련 기술 수출금지

• 항공부품 수출금지 • 군사기술 수출금지 • 러시아 주요 기업인 제재

2/28, 3/9 • 러시아 중앙은행 제재 • 유럽 영공통과 제한

• 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 주요 7개 은행 차단

• 항해 관련 첨단기술 수출 금지

3/15 • 러시아 철강제품 수입 제한 • 사치품 수출 제한

• 러시아 국영기업 및 기관에 대한 신용평가 서비스 제공 제한

4/7 • 러시아 석탄 수입 제한 • 러시아 선박 유럽 내 취항 금지

• 러시아 차량 유럽 내 진입 금지 • 반도체부품 등 첨단기술 수출제한

• 러시아 시멘트/해산물/목재 수입제한

그러나 현재 제재하기 가장 어려운 분야는 에너지이다. 유럽각국이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현재 소비하는 가스의 40% 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으며, 헝가리나 라트비아의 경우 거의 10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 가장 효과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분야는 에너지 분야이다. 러시아 또한 수출의 50~60%를 에너지 분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원유 판매의 50~60%를 유럽시장에 의존하고 있으며 유럽시장을 대체할 수 없는 건 러시아도 매한가지이다.

이에 러시아 가스를 직접 겨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언론인이나 시민운동가 뿐만 아니라 앞서 보았던 올랑드 전 대통령이나 미셸 뒤클로와 같은 외교관 출신도 이를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올랑드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저지른 만행과 마리우폴에서 계속되고 있는 민간인에 대한 폭격은 참을 수 없는, 용서할 수 없는 전쟁범죄이다. 가해자들은 언젠가 반드시 국제 재판소 앞에 서야한다. 말로만 하는 규탄성명이나 반복적인 유감성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쟁의 종결은 러시아에 부과되는 제재의 강도에 달려있으며 특히 가스와 석유에 대한 제재가 중요하다. 아울러 무엇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반격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무기를 지원해야 하며 여기에는 장거리 방공미사일이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교전당사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자국을 해방시킬 수 있는 수단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르몽드와 인터뷰, 2022/4/5)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미셸 뒤클로 전 대사는 4월 11일 별도의 칼럼을 통해 유럽이 희생을 감수하고 러시아산 가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이 석유와 가스에 대한 제제를 머뭇거릴 경우 러시아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이 유럽은 자기가 내세우는 신념과 안보를 위해 희생할 용의가 없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시간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아울러 그는 전쟁의 장기화가 단기적 희생보다 나쁜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러시아에 빠르게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에너지 분야 제재를 조속히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럽이 에너지 분야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는 만큼 미국도 우크라이나에 미사일방어체계를 지원하는 등 군사분야에서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한편 주미대사를 지낸 또 다른 베테랑 외교관 제라르 아로의 경우 사태를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3일 시사 주간지 <르푸앵>에서 전쟁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솔직하게 토로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어설픈 평화를 받기에 우크라이나는 이미 많은 피를 흘렸고, 러시아도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패배를 감수할 수 없기 때문에 양측 사이에 타협을 찾을 여지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칫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처럼 평화 없는 휴전으로 귀결되어 유럽은 과거 냉전보다 더욱 위험한 제2의 냉전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최대의 위기, 민주주의 선진국 한국의 애매한 입장 유감

이처럼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유럽의 운명은 우크라이나에서 결정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는 비단 프랑스만의 시각이 아니라 유럽의 많은 식자층이 공유하고 있는 위기감이기도 하다. 유럽은 자기들이 내세우는 가치를 위해 얼만큼 희생할 것인가? 군사지원의 수준과 경제제재의 강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것인가? 핵전쟁으로 치달을 위험은 없는가? 혹시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유럽과 서방세계를 아예 뒤흔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유럽의 입장에서 현재 위기는 변방에서 일어나는 사태가 아니라 유럽의 존재의의를 근원부터 따지고 묻는 역사적 변곡점이다.

한편 이는 유럽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운명과도 결부된 일이다. 노골적인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민족자결과 주권평등의 원칙 아래 자유로운 항행과 무역이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 민주주의와 법치, 표현의 자유와 각종 인권 등이 선으로 인식되고 존중받는 이유는 미국과 유럽이 협력하여 그러한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그 질서 아래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나라 중 하나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950년 한국은 미국과 유럽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지켰고, 서방세계의 관심과 지원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화상으로 연결하여 이루어진 4월 11일 대한민국 국회 연설. (사진:연합뉴스)

그런 맥락을 고려하면 지난 4월 11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한민국 국회 연설은 매우 부끄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본회의장이 아니라 국회도서관의 작은 회의실에서 진행되었고 또 참석한 국회의원 수도 매우 적었다. 한국 국회의 반응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서방국가 뿐만 아니라 50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기립박수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예우한 일본과도 매우 대조적이었다.

프랑스 시앙스포(Science Po)에서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가르치는 앙투안 봉다즈는 이 소식을 접한 뒤 트위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유럽연합에 항상 한반도 종전선언을 지지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정작 그들은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에 공감을 표시하지 않았을 뿐더러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았다.

유럽은 유럽 나름대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커다란 비용을 감수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공감은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책임있는 국가의 자세이며, 또 우리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글쓴이 신태환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다닐 때 한국외교사 수업을 통해 나라 안과 밖의 문제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배웠다한반도의 여러 비극은 국제정치적 맥락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으며 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계속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다책을 좋아하며 특히 일본프랑스 쪽에서 나오는 출판물을 읽고 종종 SNS를 통해 관련 안내 내용을 소개해왔다현재는 민간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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