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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으로의 초대] ‘아들+남편+아빠’가 말해주는 여성 혐오의 흑역사

By | 2021년 8월 13일 | 책 세상으로 초대

아일랜드 화가 제임스 바리(James Barry, 1741~1806)의 ‘판도라의 탄생’ (맨체스터 아트갤러리)

최근 폐막한 도쿄올림픽은 이전의 올림픽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하계올림픽에 출전한 역대 한국선수 가운데 첫 금메달 3관왕의 영예를 얻은 여자 양궁 국가대표인 안산 선수가 ‘페미니즘’ 논란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안산 선수의 짧은 헤어스타일과 과거 발언들을 빌미로 일부 남성들이 안 선수에게 ‘여성 혐오’를 표출했고 이로 인해 한국사회는 한 차례 큰 홍역을 겪었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는 이처럼 한국사회의 큰 갈등으로 부각한 ‘여성 혐오’ 문제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간 책이다. 책을 번역한 김하나 필자는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며 “남녀가 평등해야 하는 이유가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편집자]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고대그리스부터 시작한 여성 차별
# 딸 가진 아버지의 시선으로 탐구
   성녀와 마녀 사이 박제된 ‘여성성’
#남성들도 여성 혐오의 피해 입어
   反페미니즘 흐름을 경계해야 

남녀 갈등은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현대에 와서도 그 힘을 잃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도 2000년대에 퍼진 된장녀란 단어를 비롯해 김치녀, 맘충 등 각종 신조어가 생겨나면서 여성 혐오를 표출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 후에는 ‘미러링’이라는 명목으로 남성 혐오 표현들이 생겨났으며, 요새 언론은 20대 남성의 분노와 반페미니즘 현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를 원서로 처음 접한 작년 이맘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반페미니즘 기류는 쭉 거세어져만 갔다. 원제가 ‘A Brief History of Misogyny’인 이 책을 번역하면서 고민스러웠다. 남녀 갈등이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이때 논란에 더 불을 지피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갈등의 역사를 되짚어가는 게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성 혐오가 전개된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된 역사로 접할 기회가 될 테고, 페미니즘 반대자라면 여성 혐오로 고통받아온 사람들의 처지에서 서술된 역사를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존에 지녔던 관점과 비교하며 자기 생각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은 고되다. 그에 반해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픈 유혹은 언제나 크다. 그래서 저자는 조지 오웰을 인용한다.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아버지가 딸에게 전하고 싶었던 ‘여성혐오’의 역사

저자인 잭 홀런드는 북아일랜드 분쟁 전문가였다. 하지만 그러기 이전에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자 한 여자아이의 아버지였고 여성이 해온 경험을 깊이 공감하고자 했다. 그리고 2004년에 암으로 사망하기 전 그 결과물로 이 책을 남겼다. 그런 만큼 혐오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여성을 향한 따뜻한 시각과 남녀의 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이 두드러진다.

잭 홀런드와 그의 딸

잭 홀런드는 남녀가 평등해야 하는 이유가 정의, 평등. 개인의 온전성처럼 계몽주의에 기초한 철학과 정치 원칙 때문이라고 믿는다. 남녀는 서로 다를 수도 있지만, 차이점이 한 성을 더 우월하게 하지 않으며 차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 혐오는 남녀 관계에서 일부일 뿐이며 여성과 남성은 생산적이고 즐겁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여긴다. 저자가 가진 시각이 상식적이고 온건하기에 세부 내용에서 다소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방향에 독자들도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저자가 지닌 관점은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닿아있다고 본다.

책은 여성 혐오를 주제로 다루며 여성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들과 여성 혐오가 빚어낸 결과, 그리고 문학에 반영된 여성 혐오를 추적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판도라 신화가 탄생한 기원전 8세기 그리스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판도라 신화에 따르면 처음에 세상에는 남자밖에 없었다. 이들은 슬픔도 노동도 질병도 없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이 행복했던 시절은 신이 인간에게 징벌을 내리기 위해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를 세상에 내려보내면서 끝이 났다. 판도라가 봉해진 항아리를 열자 고통과 악이 세상에 풀려나왔고, 그 후로 인간은 생존하려면 노동해야만 했으며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병에 걸리고 노쇠하여 죽을 운명을 맞게 되었다.

유사한 신화가 유대인들의 경전에서도 발견된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이 처음 창조한 인간인 아담은 에덴동산이라 불리는 낙원에서 풍족함을 누리며 살았다. 하지만 하느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첫 여성인 하와를 만든 뒤에 상황이 바뀌었다. 하와는 하느님이 단단히 일러둔 말을 어기고 뱀의 꾐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먹었고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두 신화 모두 인류가 고통과 죽음을 겪게 된 책임을 여성에게로 돌린다. 이런 신화는 그리스인과 유대인의 세계관을 형성했기에 단지 이야기로 남지 않고 여성의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 후로 기독교가 유대인의 경전을 받아들였기에 오늘날에도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판도라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간 여성차별

인류가 타락하고 신에게서 멀어진 이유를 여성에서 찾은 초기 신화들 이후로도 여성을 정의하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세상을 이분해서 바라보며 여성을 자연, 혼돈, 비이성적인 성향, 열등함과 연관 짓고 남성을 문명, 질서, 이성, 우월함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불완전한 남성’이라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은 우월하고, 능동적인 성향을 타고났으며, 인간의 잠재력은 남성으로 태어났을 때만 온전히 발휘된다고 했다.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 한 철학자가 낸 개인 의견으로 치부하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는 너무 막강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은 17세기에 과학 혁명이 일어나면서 권위를 잃을 때까지 2천 년 가까이 서양인의 사고를 지배했다. 게다가 이 편견은 17세기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여성이 보잘것없는 자신의 음핵을 부끄러워하며 남근 선망에 사로잡힌 존재인 것처럼 그렸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여성이 불완전한 남성이었다면 프로이트에게 있어 여성은 남근이 없는 남성이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르더라도 나름의 온전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남성이 되지 못한 열등한 존재였다.

여성은 때로는 숭앙받고 때로 경멸받았다. 하지만 둘 다 여성을 피와 살을 지닌 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둘 다 현실의 여성에게 피해를 주었다. 여성을 비하하고 경멸하는 일이 여성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점은 누가 보아도 자명하지만 여성을 추켜올리는 게 왜 여성에게 피해를 주었는지는 이해하려면 한층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 예시를 성모 마리아 숭배나 빅토리아 시대 ‘가정의 천사’들에서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는 모든 여성이 따라야 할 본보기로 제시되었으며 순종적이고 순결한 모습이 강조되면서 현실의 여성이 사회규범에 순응하고 성적인 면모를 억누르도록 했다.

빅토리아 시대에 사회는 중산층 여성에게 정숙한 아내란 역할을 맡기며 ‘가정의 천사’로 떠받들었다. 이러한 이상화나 숭배는 다른 집단을 향한 증오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며, 저자가 말하듯이 여성 혐오를 복잡하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숭배의 이면에는 이상에서 멀어진 여성들을 향한 경멸과 폭력이 있었다. 중세 말기와 근세 초기에 성모 마리아 숭배가 중요성을 더해가는 중에도 수많은 여성이 마녀로 몰려서 살해당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성의 ‘과다한’ 성욕이 질병으로 여겨졌으며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은 타락했다고 여겨졌다.

남성에 의해 이루어진 여성에 대한 정의

이렇듯 여성을 정의해온 다양한 개념에 공통점이 있다면 정작 여성 본인은 목소리를 거의 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여성이 무엇인지 여성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면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은 우리가 현재 아는 것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바스에서 온 여인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를 남자 대신 여자들이 썼다면 남자의 악행을 고발하는 일화들로 넘쳐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녀의 남편이 지닌 책 안에는 여성의 악행과 결함을 꾸짖는 내용으로 가득하고, 남편은 여성 혐오적인 훈계를 끊임없이 여인에게 읽어주며 그녀를 화나게 한다. 의견을 내고 자기 생각을 담론화할 수 있는 건 커다란 권력이다. 현대에 이를 때까지 주로 발언권은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역사가 주로 남성들의 이야기(history)였던 이유이다.

물론 여성들은 여기에 저항했다.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져서 역사에 남지 않은 여러 사건도 있겠지만 공적인 영역으로 나와 발언했던 여러 여성이 드문드문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진다. 여성은 억압받는 수동적인 피해자 역할을 고분고분 받아들이지만은 않았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생생한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고대 로마 시대에 살았던 호르텐시아라는 여성은 “명예도, 지휘권도, 국정 참여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데, 왜 우리가 세금을 내야 하죠?”라고 물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살았던 페미니스트 작가 메리 아스텔은 “만약 모든 남자가 자유인으로 태어난다면 어째서 여자는 노예로 태어난다는 것일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노예제 폐지론자인 루크레티아 모트는 1840년에 런던에서 열린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모임에 참석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발언권을 얻지 못하자 뉴욕주 세네카 폴스에서 첫 여성 권리 대회를 열고 “우리는 남녀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자명한 진리라고 믿는다”라고 선언했다. 여성의 지위가 개선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인물들이 역사 속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투쟁해왔기 때문이며, 경제권과 투표권, 생식권 등 성인으로서 존중받는 데 필요한 권리를 하나하나씩 쟁취하면서 여성이 사회에서 조금씩 목소리를 키워나갔기 때문이다.

‘반페미니즘’ 분위기 우려, 남녀 서로 이해해야

현재 점점 심해지는 반페미니즘 정서가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역사를 고려해보았을 때 반페미니즘이 점차 힘을 얻으면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가 변질되어 가고, 여성의 권리에 관해 말하기 주저하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간다는 건 분명 걱정할만한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권리는 중요하다. 특히 여성은 역사 내내 그 권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남성이 기득권과 발언권을 지닌 사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갈등은 상대방이 발언하지 못하게 막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서로 의견을 표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해결될 수 있으며,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완전히 종식하는 데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테고 사회와 정치 차원에서의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이 해온 경험을 깊이 공감하고자 했던 아들이자 남편이며 아빠였던 저자가 쓴 이 책이 그런 노력들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김하늘 필자

프랑스 렌 2대학에서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판도라의 딸들 여성혐오의 역사>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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