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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비핵평화의 관문인가?

by | 2018년 8월 26일 | 한반도

ⓒ 셔터스톡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 및 비핵화 논의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이번 주로 예정되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갑작스런 제4차 방북 취소로 그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회담일정 취소와 번복을 오갔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추진과정상의 전례를 들어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미중 무역전쟁 및 중국의 개입 의혹과도 연계시킨 이번 결정으로 북 비핵화와 북미·남북 관계 ‘9월 돌파구가능성은 옅어졌다. 그럼에도, 북미 대화의 문은 계속 열어두고 있겠다고 트럼프 대통령도 밝혔듯이 성패를 단정하기엔 이르다. 이번 폼페이오 방북 취소 사태를 부른 핵심 문제 중 하나는 비핵화 도정에서 거쳐가야 할 종전선언 관련 이해충돌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북의 비핵화가 선행돼야 종전선을 할 수 있다, 북은 종전선언부터 해야 비핵화 작업을 본격화할 수 있다고 한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3단계에서 1단계인 북핵 동결과 미국의 대북 군사위협 중단은 달성되었다. 종전선언을 거쳐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제로 가는 2단계가 막히면 3단계인 평화체제 수립과 남북통합도 물 건너 간다. 2단계 관문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편집자주>

 

 

1. 6·12 이후 한반도

비핵화 답보, 남북관계 진전으로 돌파구 마련?

8월의 무더운 날씨만큼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종전선언 문제이다. 종전선언이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데 필수적인 간이역인가, 아니면 불필요한 논란거리인가? 만약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추진하는 것이 적합한가?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할 대화가 지속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남북, 북미정상회담 이후 두 차원에서 고위급회담이 진행되어 왔다. 가령, 8월 13일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려 9월 중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였다. 그 사이 남북 간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판문점 선언 이행 노력을 벌여왔다. 9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그즈음 북미고위급회담이 재개되면 교착상태에 있던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종전선언 채택과 북한의 가시적 비핵화 조치로 돌파구를 마련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물론 그 길은 아직 불확실하고 탄탄하지도 않다.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도 작지 않다. 4·27과 6·12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비핵평화로 향하는 급물살을 타기보다는 답보상태에 빠진 것 같다. 한국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에 비핵화와 대북 안전보장의 동시이행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며 지켜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6·12 이후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렸지만 싱가포르 합의 이행 방안을 도출하지 못하였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북핵문제에 대한 피로감과 혐북의식이 높아질 수 있다. 미국은 8월 하순부터 11월 중간선거를 향한 지역별 사전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비판의 표적이 될 수 있다.

6·12 이후 답보상태를 타개하려는 듯 문재인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다시 평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진전을 보지 못하는 비핵화 문제를 북미 협의에 기대기보다는 남북관계를 통해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문 대통령은 평화를 키워드로 활용했다. 특히 진단과 대안을 언급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의미 있는 발언을 내놓았다. 다시 한번 종전선언이 비핵평화로 가는 주요 관문임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는 동력”이라며 비핵화 추진의 축에 한미 협력은 물론 남북관계도 포함된다는 점을 밝혔다. 현재 남북관계, 특히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 간 합의 이행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로 제한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비핵화 촉진을 전개하겠다는 입장은 대북 강경론의 시각에서는 파격으로 보일 수도 있다. 8.15 즈음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는 남북관계와 비핵화의 관계, 구체적으로 남북관계가 비핵화 진전의 종속변수인가를 둘러싸고 입장 차이가 나타나는 듯했다. 물론 한미 양 정부는 상호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럴 가능성을 차단했지만, 향후 비핵평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미 간 입장 차이를 조정하는 문제는 대두할 수 있다.

 

 

2. 종전선언의 다각적인 의미

정전체제 변화의 신호탄이자 사실상의 통일로 가는 관문

낙관론과 신중론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과연 종전선언이 비핵평화를 달성하는 효자 역할을 할 것인가? 이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종전선언과 관련된 이슈를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우선, 평화협정과의 관련성이다. 평화협정의 개념에 비춰볼 때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종전선언은 필요가 없다. 적대세력 간의 물리적 충돌 상태를 종식시키고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평화협정의 목적이자 기본 내용이다. 그렇다면 평화협정 체결을 추구하면 되지 왜 종전선언이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한국전쟁 중단 이후 북미 적대관계가 길고 상호 불신이 깊어 평화협정 체결이 단기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협정 혹은 관계정상화로 가는 장도(長途) 중간에 천명하는 공식적이고 깊은 신뢰의 표현으로 종전선언을 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이 지났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전쟁이 끝났다는 주장도 있지만, 긴 세월 동안 핵공격 위협까지 포함한 군사적 대치 상태와 같은 깨지기 쉬운 평화상태였기 때문에 평화회복 조치가 더 필요한 것이다.

다른 측면은 한국과 미국 등 관련국들은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협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강력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는 북한의 가시적이고 뚜렷한 비핵화 조치와 연계해 접근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에 즈음하면서부터 북한은 비핵화 조치 없이 미국에 종전선언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채택되면 조선반도에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게 되는 것은 물론 세계의 안전보장에서도 획기적인 전진이 이룩될 것이다.”(노동신문, 2018년 8월 17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공약한 “완전한 비핵화”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비핵화-평화체제가 상호 연계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 완료가 쉽지 않은 가운데 두 사안을 병행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그 모멘텀으로서 종전선언을 북한의 적정 비핵화 조치와 연계해 추진하자는 것이다.

둘째, 종전선언은 자연스럽게 북한의 비핵화와 연관된 문제이다. 현 단계에서 핵심은 종전선언을 북한의 어떤 수준의 비핵화 조치와 연계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합의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임박한 것으로 예측되는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8.15 전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접촉이 활발하고 나아가 종전선언-비핵화 이행에 관한 북미 합의에 낙관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미국은 북한의 핵탄두 및 장거리미사일 일부 반출을 통한 폐기와 핵개발 동결을 조건으로 종전선언에 응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그에 비해 북한은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채 종전선언을 “호상신뢰를 실천”하는 문제로 접근하면서 협상에 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를 종전선언 채택의 반대급부로 제안하기도 한다. 북한으로서는 구두선에 불과한 선언을 얻어 내는데 너무 많은 양보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선언 대 신고는 그럴듯한 교환일 수도 있다.

셋째, 종전선언은 남북관계 발전과도 관련이 있다. 종전선언은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의 결과인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처음으로 공식 언급되었다. 두 정상은 평화체제 구축 방안의 하나로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 방안이 판문점 선언에서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로 진화한 것이다.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지 못하면 남북관계에 적신호가 올지는 모르지만, 종전선언을 하면 남북관계가 발전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남북은 수차례 합의한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을 추구할 수 있다. 종전선언과 비핵화 촉진으로 남북은 전쟁 위험 예방 및 평화정착, 경제 분야를 비롯한 다방면의 교류협력 증진, 그 과정에서 상호신뢰 제고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에 진입할 수 있다.

종전선언은 또 관련국 간의 관계 발전은 물론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과도 관련이 높다. 종전선언 논의에 소외되어 온 중국은 자국이 포함된 4자 종전선언에 적극적이다. 중국은 미국에 4자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 명분으로 북미간 신뢰 부재 상태에서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촉진제라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중국이 북미 대화를 방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이야기는 종전선언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서로 끌어당기기 위한 경쟁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종전선언을 수용하면서 비핵평화 이후 동북아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때 한국은 종전선언으로 촉진될 비핵평화 프로세스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요청된다. 실제 종전선언은 정전체제 하의 기존 한반도 질서 변화의 신호탄이기 때문에 동북아 냉전구조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3. 최적의 종전선언 채택 경로

-‘비핵화부터’ ‘종전선언부터’, 이 둘을 묶는 3(4)자 회담 필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간의 논의 배경과 일정한 필요를 감안할 때 종전선언 채택은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할 정치적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련 행위자들이 상호 신뢰를 증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협상력 제고의 일환으로 종전선언 없이 본격적인 비핵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발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유인이라는 전략적 차원과 11월 중간선거의 호재 마련이라는 정치적 차원, 그리고 종전선언에 긍정적인 한국과의 외교관계 등 3차원에서 종전선언에 계속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4자 종전선언론을 거론하며 북한에 밀착하고 한국에 다가가고 있는 점도 부담일 수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구도는 어떤 조건에서 종전선언을 채택할 것이냐이다. 오는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의 성공 여부는 미국의 종전선언 수용 대신 북한의 추가 비핵화 조치에 양국이 합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종전선언에 대한 양측의 인식 차이를 정리하는 것도 합의에 필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북한은 비핵화와 무관하게 종전선언은 상호 적대관계 청산과 “새로운 북미 관계”를 향한 조치로 보고 있다. 그와 달리 미국은 종전선언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유도하는 보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최적의 종전선언 채택 경로는 종전선언의 목표와 방향에 관련국들이 공감할 때 성립가능하다. 그 목표와 방향은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선언에서 제시되어 있다. 문제는 그것을 남북미(중)로 묶어내지 못한 채 이행 방법을 아직 마련 못한 데 있다. 묶어내자는 측면에서는 3자 혹은 4자회담을 개최하는 것 자체가 유의하다. 물론 당사자들이 3자 혹은 4자 사이에서 결정해야 한다. 핵심은 북미 간에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적정 비핵화 조치에 합의하는 것이다. 그 조치에 관해 다양한 제안이 있을 수 있지만 양측이 상호 만족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 하나의 조건은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전문에 나와 있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향해 양 정상이 상호 신뢰하고, 협상대표에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3단계 동시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징검다리이다. 1단계인 북한의 핵 모라토리엄과 미국의 대북 (핵)공격 위협 중단은 이루어졌다. 3단계 최종 목표를 향해 2단계에서 북한의 핵동결과 남북미(중)의 종전선언이 기다리고 있다. 핵동결은 기술적으로 수많은 조치로 구성된 반면에 종전선언은 일회성 이벤트 형식이다. 북한의 우려와 미국의 곤혹스러움이 여기에 있다. 그 디테일을 협의해 합의할 때까지 1단계 상황을 유지하고, 남북, 북미 정상이 합의한 다양한 신뢰구축 방안들을 이행하며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지속시켜가는 인내가 요청된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발전을 비핵화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자세는 고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됐던 폼페이오 장관의 제4차 방북을 돌연 연기시키고 이를 미중 무역전쟁과 연계시킴으로써 폼페이오 장관 방북을 통해 북미관계와 북 비핵화에 중요한 진전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실망을 안겨주었으나, 북한과의 대화 지속 의향을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미국 쪽의 이번 조처로 유엔 총회 기간 중의 남북미(중) 정상 종전선언 가능성은 더욱 멀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완전히 버리고 싶지는 않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인문한국(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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