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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영 칼럼] 자기 의견 없으면 빨간불…‘미네르바 스쿨’ 다녀보니 (하)

by | 2021년 2월 1일 | 국제, 기획 · 연재

2019년 5명의 미네르바 스쿨 학생들이 서울에서 진행한 ‘Global Immersion’의 한 장면. 학생들은 샌프란시스코, 부에노스아이레스, 베를린, 서울 등 주거지를 옮겨다니며 학업과 진로 탐색, 다양한 프로젝트(Civic Projects)를 진행한다. (사진=미네르바 스쿨 유튜브 캡처)

강의실과 캠퍼스가 없고 기숙사만 있다. 학생들은 입학 후 1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수업을 듣고 이후 3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 대도시를 순회하며 수업을 듣는다. 2014년부터 입학생을 받은 미국 미네르바 스쿨은 21세기 대학의 혁신 모델로 평가받는다. 2020년 가을학기 전형에는 180개국에서 2만 5000명이 지원해 이 중 200명만이 합격했다. 하버드대학보다 입학이 어렵다는 평가가 과언이 아니다.
홈스쿨링으로 십 대를 보낸 임하영 필자는 지난해 미네르바 스쿨 가을학기 전형에 합격해 한 학기 동안 학업을 마쳤다. 임 필자는 21세기 대학교육의 혁신 사례로 손꼽히는 미네르바 스쿨의 입학 준비와 학기 중 수업에서 얻은 경험을 <피렌체의 식탁>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원고를 보내왔다. <피렌체의 식탁>은 임 필자의 원고를 입학 준비 준비과정(상)과 입학 후 교육과정(하)으로 나누어 두 차례 연재한다. [편집자]

#설립자 “당신의 뇌를 수술하겠다”
  새로운 사고를 위한 교육과정 설계
#1학년 과정 기초는 논리, 통계, 코딩
  사전 리딩 후 가설 세우기부터 시작
#중간·기말고사 없지만 매 시간 과제
  수시로 피드백, 학업 수준 알 수 있어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활동 타격
  도시 회복돼 상호작용 이뤄지기를

“Everything is intentional”

2019년 12월에 미네르바 스쿨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첫 학기는 2020년 9월에 시작했다. 개강 첫 주 설립자인 벤 넬슨이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두 문장이 아직 기억에 선하다.

첫 문장은 바로 “모든 것은 의도적입니다(Everything is intentional)”는 말이었다. 미네르바의 교과과정은 최고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설계한 결과물이니, 중간중간 의구심이 들더라도 일단 믿고 따라와 달라는 주문이었다.

두 번째 문장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살짝 섬뜩하기도 했다. 바로 “우리는 당신의 뇌를 수술할 것입니다”(We will give you a brain surgery)는 문장이었다. 사실 본래 의미는 1학년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지만 마치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게 될 것이라는 격려의 한 마디였다.

비판적 사고에 초점을 맞춘 첫 학기

미네르바에서 1학년은 파운데이션(foundation)이라 불리며, 모든 학생들이 네 가지 과목을 공부한다. 먼저 FA(Formal Analyses)에서는 ‘비판적 사고’에 초점을 맞추어 기본적인 논리, 통계, 코딩을 익힌다.

다음으로 MC(Multimodal Communications)에서는 ‘효과적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추어 글쓰기, 토론, 텍스트 비평, 시각 예술 등을 공부한다. EA(Empirical Analyses)에서는 ‘창의적 사고’에 초점을 맞추어 문제 정의 및 해결, 실험 설계, 데이터 시각화 등을 배운다. 마지막으로 CS(Complex Systems)에서는 ‘효과적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시스템, 경로의존성, 네트워크 등을 공부한다.

한 과목당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고, 매 수업마다 HC(Habits of Mind & Foundational Concepts)라고 불리는 개념들이 등장한다.

그렇게 1학년 때 배우는 HC가 총 80개가량 된다. (전체 목록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수업에서 HC 중 하나인 가설 개발(hypothesisdevelopment)을 배운다고 생각해 보자. 우선 가장 먼저 할 일은 사전 리딩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다. ‘연구 질문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관찰연구와 실험 연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수업자료에 있는 이러한 질문들을 되새기며 정해진 리딩을 마치고 나면 간단한 사전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면 리딩에 나온 데이터를 활용해 본인만의 가설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사전 과제까지 마치면 이제 수업에 들어갈 준비는 끝난 셈이다.

매 수업은 20명 이하의 규모로 한 시간 반씩 진행되는데, 시작할 때쯤 프렙 폴(Preparation poll)이라는 조그만 쪽지시험을 본다. ‘가설 수립과 연역적 사고방식은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가?’ 이런 식의 질문이 하나 등장하고, 여기에 대한 본인의 답을 3분 안에 적어야 한다. 사전 리딩을 하지 않으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교수의 화면에 학생들의 참여도가 표시되고, 말수가 적은 학생들이 수시로 지목된다.

수시로 질문하는 교수, 즉각적인 피드백 인상적

수업 중 최소 한두 번은 학생들을 3~4명씩 쪼개어 10분 정도 토론 혹은 문제풀이를 시키는데, 이를 브레이크아웃(Breakout)이라고 부른다. 브레이크아웃에는 언제나 상세한 설명(Instruction)이 존재하고, 이해를 못할 경우 손을 들어 교수에게 질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hypothesisdevelopment를 배울 때는 다음과 같은 브레이크아웃이 진행되었다.

*아래의 설명을 읽고 과학자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하세요.

연구 질문: 우주의 팽창률은 얼마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우주는 얼마나 빠르게 감속하고 있는가?

가설: 일반 상대성이론과 우주 원리(Cosmological Principle)에 따르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은 자연스럽게 도출 가능하다. 은하의 후퇴 속도에 대한 관찰 데이터를 확인한 후, 연구자들은 중력이 물질을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우주의 팽창이 느려지고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구체적 예측: 우주의 팽창이 느려진다면, 우리는 초기 우주와 고적색 편이 은하 사이의 거리가 일반적인 적색 편이의 비례 관계(허블의 법칙) 보다 가까울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적색 편이 초신성은 일반 모델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밝아야 한다.

검증: 1990년대, 과학자들은 우주의 팽창률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결과: 1998년, 두 개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모두 우주의 팽창이 예측과 달리 감속이 아닌 가속하고 있다는 것을 관찰했다. 다시 말해, 우주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 이 결과는 기존의 예측과 모순되며, 중력이 물질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우주의 팽창이 느려지고 있다는 가설을 반박한다.

안드로메다 은하 M31.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여 외부은하의 존재를 밝혔고, 은하가 일정한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사진=셔터스톡)

*과학자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해당되는 답변을 선택한 뒤 설명할 준비를 하세요.

1. 충분히 좋은 모델이고, 실험 결과를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론을 그대로 유지한다.
2. 중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수정해 기존 모델을 보완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중력 이론을 고안해 본다.
3. 우주의 물질/에너지에 관한 내용을 수정해 기존 모델을 보완한다. 팽창을 가속화시키는 새로운 에너지에 대한 가설을 세워 본다.
4. 우주 원리를 폐기해 기존 모델을 보완한다. 지구가 우주의 거시 공동(Giant void) 지역에 존재하다는 가설을 세워 본다.
5. 이 밖에 다른 가설을 통해 기존 모델을 보완한다.
6. 이론을 폐기하고 맨땅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 설명을 2-3분가량 읽고,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같은 브레이크아웃 그룹의 학생들과 열심히 토론한다. 보통 한 명이 서기 비슷한 역할을 맡아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문서로 정리한다. 브레이크아웃의 종류에 따라 시간이 길게도, 짧게도 느껴지는데, 토론이 끝나면 다시 전체가 모여 디브리프(debrief)를 진행한다. 간혹 정답이 있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정답이 없는 논의가 다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지 질문하고, 다시 전체적인 토론을 이끈다. “그룹 2가 내린 결론에 여러분 동의하나요? 그룹 1은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린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또한 중간중간 용어와 개념을 더 명확히 짚어주며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것도 교수의 역할이다.

이렇게 한 시간 반이 지나고 수업이 마무리될 무렵이면 리플렉션 폴(Reflection poll)이라는 쪽지시험을 본다. 프렙 폴과 마찬가지로 ‘이론은 과연 맞거나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 이런 식의 질문에 4분 이내로 답해야 한다.

모든 HC는 1~5점 사이로 채점되고, 그에 대한 상세한 기준(rubric) 역시 HC별로 다 공개되어 있다. 간추리자면 1점은 이해 부족, 2점은 얕은 이해, 3점은 이해, 4점은 깊은 이해, 5점은 심도 있는 이해로 정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hypothesisdevelopment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점 – 데이터의 패턴과 가설 수립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함. 데이터에 기초해 가설을 수립하지 않음. 연구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지 않거나 부정확하게 설명함.
2점 – 데이터의 패턴과 가설 수립 사이의 관계를 부분적으로 인지함. 데이터에 기초해 가설을 수립하나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음. 연구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나 충분히 정확하지 않음.
3점 – 데이터의 패턴과 가설 수립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인지함. 데이터에 기초해 가설을 효과적으로 수립함. 연구의 이론적 근거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함.
4점 – 데이터의 패턴과 가설 수립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명확히 설명함. 데이터에 기초해 가설을 수립하고, 그 과정에 대한 탄탄한 근거를 제시함. 이론이 연구 설계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명확히 설명함.
5점 – 새로운 관점에 기초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데이터의 패턴과 가설 수립 사이의 관계를 규정함. 또한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이론과 연구 설계의 연관성을 활용함.

매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수가 수업 영상을 돌려보며 내가 한 발언, 프렙 폴 답변, 혹은 리플렉션 폴 답변 중 하나에 대해 점수와 피드백을 준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한 수업에서는 내가 작성한 프렙 폴이 채점되었고, #hypothesisdevelopment 3점과 함께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받았다. “좋은 답변이었지만 가설을 세울 때 과학적 증거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함.”

미네르바 스쿨이 자체 개발한 ‘포럼(Forum)’을 통한 평가 장면. 수업을 마치면 교수가 녹화된 동영상을 돌려보며 학생들의 특정한 발언에 점수를 매길 수 있다. (사진=미네르바 스쿨)

중간·기말고사 없지만 과제는 넘쳐

학기 초반에는 매 수업마다 점수가 나온다는 사실이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특히 영어로 쓰고 말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걸핏하면 2점을 받았고, 성적을 볼 때마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동안 간간이 시험을 보긴 했지만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평가를 받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시로 피드백을 받으며 내가 어디쯤 와 있고 얼마의 공부가 더 필요한지 확인할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다.

미네르바에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없는 대신 과제가 많다. 1학기에만도 스무 개가 넘는 과제를 제출했는데, 수업에서 배운 HC들을 최대한 정확하고 심도 있게 적용해야 한다. 예컨대 연구 프로포절을 작성해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총 7개의 HC를 필수로 적용해야 했다. 과제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1. 배경 – 프로포절에 대한 간략한 묘사. 선택한 주제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세요.
2. 데이터 분석 – 선택한 데이터셋에 대한 설명과 해석. 이 세션은 데이터에 대한 시각화 자료가 최소 하나 이상 포함되어야 합니다. 도표 밑에 꼭 제목과 시각화를 통해 발견한 패턴을 담은 캡션을 넣으세요. 도표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자세한 결론 역시 이 세션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dataviz 적용)
3. 연구 목적 – 검증 가능한 가설 수립. 기존 데이터/이론과 어떻게 부합하는지, 현재 인류가 당면한 지식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서술하세요. (#hypothesisdevelopment,  #plausibility 적용)
4. 연구 방법 – 가설을 가장 잘 검증할 수 있는 연구. 관찰연구와 중재연구 중 하나를 택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 것인지 기술하세요. 본인이 제안한 연구 방법의 강점과 약점을 서술하세요. (#interventionalstudy, #observationalstudy, #variables 적용)
5. 예상 결과 – 가설과 일치하는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결과를 각각 하나씩 예측하세요. 그 결과가 어떻게 연구 주제에 대한 이해를 증대시키는지 설명하세요. (#testability 적용)

이 모든 내용을 1300 단어 안에 담아 제출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가 이 모든 HC에 대해 점수와 함께 상세한 피드백을 남겨준다. 수업 때 받는 점수는 가중치가 1인데 비해 과제 점수는 가중치가 훨씬 높아 성적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수업과 과제에서 정성적인 평가를 진행하면서도, 그 평가가 상세한 기준과 시스템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이 신기했다.

온라인만으로 상호작용 한계, 오프라인도 중요

한편 미네르바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오프라인 활동은 코로나19의 대유행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다. 45개국에서 120명 정도의 학생이 입학했지만 실제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학생들은 그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비자 문제와 코로나 등으로 자국에서 원격으로 학기를 진행해야 했다.

기숙사의 공용 공간도 모두 폐쇄되었고,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나누는 미네르바 토크(Minerva talk)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기업에 가서 전문가들을 만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을 프로젝트도 모두 화상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다. ‘도시 전체를 캠퍼스처럼 활용하겠다’(City as a campus)는 미네르바의 모토는 도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인데 왜 굳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오프라인을 강조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는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상호작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 밤늦게 모여 나누던 ‘기본소득은 좋은 제도인가’ 하는 이야기, 조지아 출신 룸메이트가 들려주는 러시아 역사, 에스토니아 친구의 우여곡절 스타트업 도전기. 이렇게 스치듯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들이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들만큼, 혹은 그보다 더 소중했다. 학교에서, 또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지 못한 것이 그래서 너무나 아쉽다. 서울로 옮길 즈음이면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그래서 도시로 더 깊숙이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과 시선을 맞댈 수 있길 바란다.


임하영 필자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잘 알지 못하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소년 여행자>,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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