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서 민주당을 한다는 것, 그 어려움에 부치는 편지

나만 참으면 될 걸...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도 민주당을 숨겨야 하나

일곱 번의 선거에서 패배한 허대만, 죽음 이후 조명되지만...

대구경북이 중요하다면, 깃발만 맡기지 말고 중요한 일을 맡겨보라

총선이 3주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어떤 선거구는 전국의 미디어가 달려들어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한다. 개인 유튜버들까지 더해져 정보와 소식, 관심이 넘쳐난다. 그에 비해 어떤 선거구는 지역정당의 깃발만 들면 허수아비라도 당선될 거라며 그냥 없는 선거인 셈 친다. '농촌일기'의 공동 필자 중 한 분인 영수농부가 그런 답답한 현실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대구경북, 아니 경북의 농촌 마을에서 민주당원으로 사는 것, 민주당을 대표해 선거에 나서는 것의 간난신고와 특히 고립감에 대해 적었다. '구조신호'라는 말에 반응하는 지혜와 눈길을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방류 규탄 시위를 했다. 민주당의 이름으로 지역에서 농성을 벌인 것은 최초였다. 아랫줄 "해양재판소 제소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이가 민주당 영천청도 지역위원장이자 총선에 후보로 나선 영수농부다. / 사진=영수농부 제공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방류 규탄 시위를 했다. 민주당의 이름으로 지역에서 농성을 벌인 것은 최초였다. 아랫줄 "해양재판소 제소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이가 민주당 영천청도 지역위원장이자 총선에 후보로 나선 영수농부다. / 사진=영수농부 제공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어릴 적 꿈은 훌륭한 농촌지도자였다. 

중학교 때부터 희망 대학란에 서울대 농대라 적었다. 운이 좋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어릴 적 꿈을 위해 17년 전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고 고향마을에 돌아와 복숭아 농사꾼이 되었다. 당시 귀농이라는 말도 없던 시기라 농민은 사회에 실패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직업쯤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진짜 농민으로 살아남기까지 무수한 사건들이 있었다. 다행히 천신만고 끝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복숭아 맛집으로 인정받고 내 고향 마을에서 이장으로 3선을 했으니 나름 성공한 인생이다. 하지만 청춘을 바쳐 농민운동을 했지만 뒤돌아보니 해놓은 것은 없고 사회는 외려 퇴행하는데 현실은 기승전 정치로 귀결되고 있다. 

그런 고민을 하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당원이 되어 선거에도 출마하게 되었다. 결코 자랑일수 없지만 오십 즈음에 평생 처음으로 당에 가입했다. 그것도 경북에서 민주당원이 되었다.

이제 3년차지만 경북에서 민주당을 한다는 것은 참 고독한 일이다.

지역민들에게는 진보정당보다 더 빨갱이로 취급받고, 함께 사회운동을 했던 동지들에게는 권력에 눈 먼 배신자 취급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중앙당에서는 늘 찬밥신세다. 험지에서 수고한다고 격려해주지만 특별한 지원이나 전략은 없다. 막상 선거가 닥치면 당장에 한 석의 가능성이 더 있는 부산울산경남이 중요하고 캐스팅보트 충청이 우선 급하기에 대구경북은 늘 뒷전이다.

더 큰 문제는 일상에 있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 즐겁게 놀다 정치이야기를 하면 민주당원들은 거의 대부분 집단린치를 당한다. 무엇보다 나만 참고 있으면 될 걸 괜히 못 참고 이야기해서 분위기를 흐린 책임이 온전히 내게 있는 것 같은 그 찜찜한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그래서 대부분 민주당원임을 숨기고 산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가게를 하시는 분들은 더하다. 민주당원임을 드러내는 순간 매출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더더욱 보안에 신경을 쓴다. 

다른 지역은 어쩔지 모르지만 경북에서 민주당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희망이 있는 고통은 아름답다는 말을 좋아한다. 당장은 어려워도 희망이 있다면 현실을 견딜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경북에서 민주당으로 선거에 출마하고 정치에 나선 사람들에게 가장 큰 힘든 일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경북에서 민주당으로 정치를 나설 때는 힘든 현실을 각오했다지만 희망이 없는 현실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우리가 기억해둘 이름이 있다.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향 포항에 내려와 내리 7번을 민주당의 깃발로 선거에 나섰다 번번이 패하고 2022년 쉰셋의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허대만이란 분이다. 고인이 되고서야 민주당은 ‘허대만정신’을 이야기하고 유지를 받들겠다고 떠들썩했지만, 막상 그분이 살아 계셨을 때는 청와대에 불러 일 한 번 시킨 적 없다. 지금껏 경북에서 수많은 허대만들이 인생을 갈아 넣고 있지만 청와대에서 일해 본 사람은 딱 한 사람이다. 민주당의 처사도 인색하기 짝이 없다.

농촌일기에서 뜬금없이 왠 정치 이야기냐고? 경북에서 민주당을 한다는 것이 자랑일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딱히 특별대우를 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4월 10일 총선이 다가오니 정치 이야기도 하고 싶고, 경북에도 민주당원들이 있다는 일종의 구조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얼마전 진보 농민 정치인의 상징이자 어른인 강기갑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왼쪽). 강기갑 전 의원은 17대, 18대 국회에서 농민을 대변하는 의정활동을 했다. 오른쪽은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방류 규탄 시위 도중 1인 시위에 나선 모습이다. / 사진제공=영수농부
얼마전 진보 농민 정치인의 상징이자 어른인 강기갑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왼쪽). 강기갑 전 의원은 17대, 18대 국회에서 농민을 대변하는 의정활동을 했다. 오른쪽은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방류 규탄 시위 도중 1인 시위에 나선 모습이다. / 사진제공=영수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