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통계사용설명서] #3.왜 한국이 저평가될까?

PER이 아니라 PBR이 문제다, PER은 ‘평균’ 했지만…‘PBR 열등생’ 한국

낮은 PBR과 ROE, 몸집만 크고 이익은 형편없는 한국 기업들

곳간에 자본 쟁여두는 풍조, 한국식 기업 지배구조가 원인

일본도 비슷한 문제, 현 정부의 해결책엔 일본 정도의 고민도 안 보여

코리아 디스카운트, 기업 밸류업... 요즘 정부가 많이 거론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쓰임새가 알쏭달쏭이다. 서로 다른 상황들에 그냥 가져다 쓰는 말인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있다. 구두선(口頭禪)은 '실행이 따르지 않는 실속이 없는 말'을 뜻한다. 이 정부에서 참 많이 만나는 현상이다. 실속을 찾아 숫자로 따져본다. [편집자 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24년 2월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제공<br>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24년 2월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새해 벽두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대통령 입에 오르내린 단어가 있다.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그가 이 단어를 직접 언급한 횟수만 새해 들어 10번이 넘는다. 요새 뜨거운 감자가 된 ‘기업 밸류업(value up) 지원 방안’이 급하게 등장한 배경이다.

시장에서는 연초부터 떠들썩했던 것에 비하면 그 결과물이 다소 초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왜 그럴까. 일단 아래 발언들을 정독해보자.

“일반주주·투자자의 권익 보호가 미흡한 것과 제도의 글로벌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이 우리 자본시장의 주된 디스카운트 요인임을 확인했다.”(2022년 11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2024년 1월4일, 윤석열 대통령)

“크게 두 가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본다. (중략)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나.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거기다 할증세까지 있어 가지고. (중략) 결국 상속세와 과도한 할증 과세라고 하는 것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좀 있어야 한다.”(2024년 1월17일, 윤 대통령)

여기까지 읽으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되는 소액주주의 취약한 지위와 내년에나 도입 예정이었던 금투세, 정확한 맥락을 알기 어려운 대주주의 상속세 부담 등 갖가지 요인들이 번갈아가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상을 진단하는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정제된 문제의식을 제시하지 못하고 삐거덕댄 셈이다. 시장에서 정부의 ‘밸류업’ 방안을 둘러싼 실망감이 팽배했던 이유도 이런 난맥상과 거리가 멀지 않을 테다.

그렇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부터 다시금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답은 역시나 숫자에 있다.

 

20년 넘은 고질적 문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는 표현의 연원은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요 일간지에서 찾을 수 있는 첫 기록은 2000년 10월 한 미국 애널리스트가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 기사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이 두달째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운 원인에 대해 이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선진국 업체와) 비교해 항상 쌌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소액주주를 무시하는 한국 기업의 성향 탓이다. 삼성전자 주식은 늘 마이크론의 60~70%선에서 거래됐으며, 예외는 없었다.”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아직 생생한 시점에 외국 자본이 ‘셀 코리아’(Sell Korea)를 암시하자 국가적인 위기의식이 커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2000년 9∼10월 두달간 외국인이 순매도한 한국 주식만 1조원어치가 넘었다. 당시 한국 주식시장 전체 규모가 200조원 남짓 하던 시절이었다.

결국 얼마 안 돼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직접 언급하고 타개책을 주문하기에 이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까지 생겨난 것은 기업의 투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투명하지 못한 기업은 기업활동을 제대로 하기 어렵게 된다.” 며칠 후 삼성전자도 발맞추고 나섰다. 실적 설명회에서 삼성전자의 ‘뛰어난 투명성’을 강조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풍조가 가시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토록 오래된 용어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보통 주식시장에서 ‘디스카운트’는 ①최근 벌어들인 이익이나 ②현재 보유하고 있는 순자산(자기자본) 규모가 비슷한 다른 기업에 비해 특정 기업의 주가가 낮은 현상을 일컫는다. ①을 나타내는 지표가 ‘주가-수익비율’(PER·price/earnings ratio)이고, ②가 ‘주가-장부가 비율’(PBR·price/book ratio)이다(순자산의 장부상 가치를 따지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각각의 산식은 다음과 같다.

① PER = 최근 시가총액 / 최근 4개 분기의 순이익

② PBR = 최근 시가총액 / 최근 분기 말 순자산(자기자본)

가령 2024년 3월13일의 PER은 ‘당일 시가총액’을 ‘2023년 1∼4분기 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다. PBR은 ‘당일 시가총액’을 ‘2023년 4분기 말 자기자본’으로 나누면 된다. 두 지표 모두 숫자가 작을수록 이익이나 자산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있다는 얘기다.

 

PER은 ‘평균’ 했지만…‘PBR 열등생’ 한국

주요국의 PER 지표. /&nbsp;출처: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블룸버그
주요국의 PER 지표. / 출처: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블룸버그

그렇다면 한국 상장사들의 PER과 PBR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먼저 통상 ‘퍼’라고들 부르는 PER을 살펴보자. 한국 상장사의 PER은 14.16인데, 이는 최근 시가총액이 지난 1년간 벌어들인 순이익의 14배가량 된다는 얘기다. 신흥국 평균(14.32)과 큰 차이가 없다. 중국(13.09)보다 살짝 높고, 경제 규모가 한국과 엇비슷해 자주 비교 대상으로 소환되는 대만(15.95)보다는 다소 낮다. 이익의 측면에서는 한국 기업의 주가가 그다지 높지도 않지만, 유달리 저평가돼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주요국의 PBR 지표. /&nbsp;출처: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블룸버그
주요국의 PBR 지표. / 출처: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블룸버그

반면 PBR로 눈길을 돌리면 한국은 확연한 ‘열등생’이다. 최근 10년 평균값이 1.04에 불과하다. 대만(2.07)과 신흥국 평균(1.58)은 물론, PER에서는 거뜬히 제쳤던 중국(1.50)보다도 눈에 띄게 낮다. 혹시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되지는 않았을까? 아쉽게도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2023년 말 한국의 PBR은 1.05로 10년 평균값과 거의 같다. 대만(2.41)이나 신흥국 평균(1.61)과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하는 건 ‘저PER’보다는 ‘저PBR’의 문제란 얘기다.

한국 평균 PBR이 1을 간신히 웃돈다는 사실의 함의는 가볍지 않다. 이는 곧 PBR이 1 미만인 회사들도 상당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66∼67%의 최근 PBR이 1 미만이다(2024년 3월10일 기준). PBR이 1보다 낮다는 것은 기업이 보유자산을 모두 매각하고 청산했을 때 (장부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전제하에) 받을 수 있는 현금 액수보다 주식시장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가 더 낮다는 뜻이다.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계속 영업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청산하는 게 낫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PBR. /&nbsp;출처: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PBR. / 출처: 한국거래소

‘저PBR’의 주범은 낮은 수익성…낙제점 위기인 ROE

PER은 평균 정도 하면서 PBR만 두드러지게 낮은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업이 버는 돈(순이익)에 비해서는 주가가 괜찮은 편이지만, 기업의 덩치(자본 규모)에 비하면 주가가 턱없이 낮다는 소리다. ‘주가’라는 공통요인을 제거하고 나면 결국 기업의 자본 규모에 비해 벌어들이는 순이익이 시원찮다는 뜻이 된다.

무슨 소린지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다면 다음 식을 보자. PBR을 다음과 같은 계산식으로 풀어서 보면 이해하기 좀 더 쉽다.

PBR = 시가총액 / 자기자본

      = ( 시가총액 / 순이익) × ( 순이익 / 자기자본 )

      ≒ PER × ROE

주식 투자 좀 해본 이들이라면 익숙할만한 등식이다. 등식에 따르면 ‘저PBR’은 PER이나 ROE가 낮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PER은 평균 정도 한다고 했으니, 남은 선택지는 ‘낮은 ROE가 PBR을 깎아먹고 있다’는 설명뿐이다.

ROE가 낮다는 건 무슨 뜻일까. ROE는 수익성 지표로 자기자본이익률(return on equity)을 가리킨다. 기업의 덩치(자기자본 규모)에 비해 최근 1년간 벌어들인 돈(순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본 것이다. ROE가 낮다는 것은 몸집만 크고 버는 이익은 영 형편없다는 뜻이다.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들이 몸집에 비해 돈벌이가 시원찮다 보니 주가가 낮아진 현상을 일컫는 셈이다.

실제로 다음 그래프를 보면 한국의 ROE가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국의 ROE 지표. /&nbsp;출처: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블룸버그
주요국의 ROE 지표. / 출처: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블룸버그

통상 ROE는 8%를 밑돌면 ‘낙제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PER이 신흥국 평균인 14배 정도 된다는 가정하에 ROE가 8%에 못 미치면, PBR도 1을 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14×8%=1.1). 일본 도쿄거래소도 지난해 내놓은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서 ‘ROE 8%’를 일종의 하한선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한국의 지난 10년 평균 ROE는 정확히 8.0%로 간신히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다. 그마저도 지난해 말에는 ‘반도체 혹한기’가 덮치면서 이익이 크게 줄어 5.2%로 추락했다. 마찬가지로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대만이 지난해 말에도 12.5%를 기록했으며 10년 평균은 13.6%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이가 놀라울 정도로 크다. 최근 10년간 신흥국 평균도 한국보다 크게 높은 11.1%다.

 

ROE가 낮은 이유는?…일본 사례 참고할만

낮은 ROE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이라는 점은 실증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자본시장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여러 잠재적 원인에 대한 회귀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여기서 한국 기업들의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한국의 ROE와 자본지출, 무형자산 등이 주요국 수준으로 개선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의 ROE가 유독 낮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주로 기업이 자본을 지나치게 많이 쌓아두고 있다는 데에서 원인을 찾는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에 쓰거나 신규 투자에 써야 할 돈을 창고에 쌓아만 두고 있다는 얘기다. 아까 본 ROE의 산식에서 분모와 분자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ROE의 분모에 해당하는 자기자본 규모가 과하게 크다 보니 ROE 값이 작아졌다는 소리다.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들은 왜 자본을 쟁여만 두고 있는 걸까. 이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논할 때 단골손님으로 소환되는 지배구조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2019년 한국ESG기준원(옛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지배구조 등급이 낮을수록 현금성자산과 비영업자산의 보유 비중이 높은 경향을 띠었다. 경영자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연구개발 투자 등에 나서는 대신, 현금 등의 보유를 늘려 본인의 재량적 권한을 키운 결과로 연구진은 해석했다.

지배구조 등급별 현금보유 현황 비교 /&nbsp;출처: 한국ESG기준원
지배구조 등급별 현금보유 현황 비교 / 출처: 한국ESG기준원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대체로 낮은 ROE로 설명되며, 여기에는 취약한 지배구조와 미흡한 주주환원 등 복잡다단한 문제가 한 데 어우러져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당국이 이 난해한 고차 방정식을 제대로 파악하고 풀 방법을 제시해야 시장도 호응할 테다.

일본은 이런 맥락에서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은 케이스다. 일본은 자국 기업들의 ROE가 낮은 이유 중 하나가 ‘상호 주식 보유’(cross-shareholding)라고 봤다. 상호 주식 보유란 일본 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애용해온 방법으로, 타기업과 일종의 동맹을 맺고 서로 지분을 사줌으로써 외부의 인수합병(M&A) 시도를 막아준다는 개념이다. 힘들게 번 돈을 다른 기업 지분에 묶어두니 수익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도쿄거래소는 이런 주식을 유통주식 수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개선을 유도해왔다.

반면 금융당국이 이번에 내놓은 ‘밸류업’ 지원 방안에서는 이 정도로 구체화한 문제의식을 찾기 힘들다. “우리 주식시장이 양적 성장에 걸맞는 평가를 받으려면,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금융위 보도자료) 기업들을 향한 다소 맥빠지는 주문이 사실상 전부다. 이밖에 기업들의 주주환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지원을 하겠다고 예고한 것이 유일한 ‘알맹이’다. 다만 이마저도 어떤 형태의 세제지원이며 어느 정도 규모인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업무계획에서 ‘밸류업’ 추진을 공식화한 지 한 달여 만에 급하게 발표한 대책인 탓이다. 시장에서도 아직은 설익은 정책인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일본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내기까지 수십년 걸린 만큼, 단기적 성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성숙한(?) 문제의식도 있다. 다만 수십년 뒤에 돌이켜봤을 때도 이처럼 관대한 평가를 받으려면, 앞으로 당국의 훨씬 더 깊이 있는 고민이 뒤따라야 할 테다.


글쓴이 이재연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한겨레신문 경제산업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한국거래소, 공정거래위원회, 자동차·배터리 산업 등의 출입처를 거쳤다. 주로 금융시장과 금융정책, 경쟁법 분야를 취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