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들 사회진출 증가 추세 
  왜 아이를 안 낳는지 고민해야
#1934년 뮈르달 부부가 제안한 해법
  핵심은 부모 육아휴직 대폭 확대
#각자 240일,  각자 최소 90일 써야
  다 못 쓰면 상대가 나머지 사용 가능
#덴마크선 다양한 형태의 가족 포용
  총 37가지 유형을 동등하게 지원
#정치권·관료, 미래세대 배려 안 보여
  욜로族처럼 정책 펼치면 효과 못 거둬

어느 날, 회사 후배에게 속상하는 일이 생겼다. 똑똑하고 야심 있는 친구다. 같은 회사에서 짝을 만나 사내 커플로 결혼했다. 인사철이 되어 희망부서에 지원을 했는데 해당 부서장이 연락해 조심스레 묻기를 “이제 아이도 가져야 할 텐데, 알다시피 우리 부서는 업무강도도 세고 야근도 많잖아. 그래서 말이야.” 후배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답했다고 한다. “아직 계획도 없지만, 저희는 아이가 생겨도 남편이 육아휴직하기로 했어요.” 후배는 남편에겐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미래가 사라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운 세상을 대비하며 각종 비전과 전략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묵은 과제를 다시 한 번 내밀어본다. 바로 ‘인구 위기’다.

통계청이 내놓은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는 2019년 5165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67년 3365만 명(1972년 수준)까지 줄어든다고 한다.(저위 추계 기준)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고령인구로 진입하면서 올해부터 연 평균 33만 명씩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가 은퇴할 무렵인 206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42.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입사원은 뽑지 않고 간부만 늘어나는 회사와 비슷하다.

지금부터 5년 후인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다. 스웨덴은 이미 2014년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지금은 한국이 스웨덴보다 젊은 사회지만, 20년 후에는 두 나라의 사정이 역전된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40년 스웨덴에선 네 명중 한 명이, 한국에선 세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이다.

고령인구는 느는 데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생산인구가 줄어 총부양비가 늘어난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할 인구가 2017년에는 36.7명인데, 2067년이 되면 126.8명으로 늘어난다. 한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나 하나 책임지기도 버거운 세상인데 나 말고도 한 명을 더 먹여 살려야 한다.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의 인구문제 위기론이 불거졌다. 갖가지 대책과 위원회를 만들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지원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신통찮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세계 유일의 ‘출산율 0명대’ 나라다. 말 그대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누구도 이견이 없다. 한데 그러기 전에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봤으면 한다. 무슨 정책을 구상할 때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을까’가 아니라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아이를 더 많이 낳도록 장려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지원책, 즉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많게는 1000만 원의 축하금을 준다. 교육비를 지원하는 곳도 있고 건강관리 지원, 심지어 가족 앨범을 만들어 주는 곳도 있다. 아이 수가 두세 명으로 늘면 장려금도 따라서 늘어난다.

“이렇게 지원이 많은데 왜 아이를 안 낳는 거지?”하고 의아해하는 정책입안자가 있다면 그에게 질문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 이런 지원을 해준다고 여성들이 아이를 낳을까? 이런 지원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아이를 낳으라고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게 만든 디센티브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참고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혼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첫 번째 이유가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25.3%)인데, 이는 ‘경제적 이유’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여성의 꿈이 현모양처였던 시대도 있었지만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여성의 포부는 또래 남성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다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룰 수 있다면 좋고, 아니면 말고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니 될 수 있으면 정년까지 일자리가 보장되는 직장을 원한다. 수많은 젊은이가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요즘 여성은 아이를 낳기 싫어한다? 그건 아니다. 낳아서 기를 형편이 되면 낳는다. 요즘 30대 전문직 여성들끼리 오랜만에 만나면 인사처럼 묻는 말이 “난자 냉동해놨어?”다.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일 때문에 출산을 늦추는 이가 그만큼 많다. 과거엔 남성이 성공을 위해 일, 가정 중에 택일을 강요받았다면 이젠 여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자리가 모여 있는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 저출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도, 고학력 전문직 여성을 중심으로 미혼·비혼이 증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육아휴직이 비교적 자유롭고 휴직 이후에 안정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공무원이나 교사,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실제로 직군별로 혼인 여부, 자녀 수를 조사해보면 비교적 육아휴직과 복직이 자유로운 직장일 경우 출산율이 높다.

1. 인구 위기, 뮈르달 부부의 해답

90여 년 전에 인구 위기를 극복한 스웨덴의 사례를 보자. 스웨덴은 1934년 알바 뮈르달과 군나르 뮈르달 부부가 발표한 ‘인구 문제의 위기’ 보고서(아래 사진)를 토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인구 증가 정책을 펼쳐 왔다.

이미 지난 세기의 일이지만 현재 한국이 참고할 지점이 많다. 20세기 들어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스웨덴 정부는 이를 국가 전체의 위기로 보았다. 태어나는 아이가 줄면 인구가 줄고 인구 고령화가 빨라진다. 사회가 늙는다는 것은 노인 한 명을 부양하는 노동인구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생산인구가 줄어드니 세수(稅收)가 줄고, 경제 활력이 떨어져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스웨덴 정부는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라며,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뮈르달 부부에게 연구를 맡겼다. 무려 400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를 통해 경제학자인 군나르 뮈르달은 저출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통계, 정책들을 다뤘다. 사회학자인 알바 뮈르달은 변하는 사회상과 가족 모델, 육아,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달라진 인생관과 사회정책의 제약에 대해 언급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가족과 육아를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주택문제, 청년실업, 출산·육아에 드는 비용, 여성의 사회 진출에 따른 갈등을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았다. 보고서에 있는 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열악한 환경에 미래마저 불안한 젊은 부부가 출산을 결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90여 년 전의 스웨덴과 오늘의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후 스웨덴은 갖가지 정책을 도입해 국내 출산율을 높이는 동시에 해외 이민자를 적극 수용해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폈다. 단일민족임에도 사회통합을 이루기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적극적 이민정책을 당장 본격화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일 것이다.

2. 출산율, 디센티브를 제거하니 올라갔다

1930년부터 2018년까지 스웨덴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주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뮈르달 부부가 제안한 ‘인구문제의 위기’에서 시작된 인구위기 해법은 한 마디로 디센티브를 제거하는 방식에 가깝다. 여성이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경력 단절의 위협인지, 양육비인지, 혹은 믿을 만한 어린이집이 없어선지 출산·육아에 디센티브가 될 만한 요소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었다. 스웨덴 정부는 경력 단절을 염려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고용 안전을 보장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육아휴직 제도를 강화하되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대상으로도 장려 정책을 폈다.

과거 100년 동안 스웨덴이 펼쳐온 정책에 맞춰 실제 출산율을 대입해보면 각 정책에 따라 출산율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그중에 가장 큰 효과를 보인 것이 유급 육아휴직이다.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늘린 이후 출산율이 눈에 띄게 올라간 현상이 두드러졌다. 스웨덴은 1974년 세계 최초로 출산휴가 대신 엄마, 아빠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부모휴가’라는 명칭의 육아휴직을 도입했다.

현재 스웨덴의 유급 육아휴직 기간은 부모 한 명당 240일, 최소 90일은 부모 각자가 반드시 사용해야 하며 나머지 150일은 배우자에게 양도할 수 있다. 부부를 합치면 총 480일인데, 그중 390일 동안 정부가 월급의 약 80%를 지원한다. 현재 스웨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비율은 95%가 넘고, 평균 육아휴직 사용일수는 107일이다. 그 결과 현재 출산율은 1.8명에 이르고 지난 50년간 1.5명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아래 그래픽 참조)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 자체는 스웨덴에 뒤지지 않는다. 성평등 측면에서는 스웨덴보다 앞서 있다 볼 수도 있다. 주변을 보면 많이 늘어난 것 같은데도 2018년 기준 육아휴직 대상자 중 실제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고작 4.7%에 불과하다. 전체 대상자 중 여성은 11.9%가 육아휴직을 했고, 남성 육아휴직은 1.2%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다니는 이들의 이야기다.

4대 보험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한국에 좋은 제도는 이미 많다.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제도의 활용도를 최대치로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남성과 여성 모두 적극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안전하게 직장에 복귀할 수 있는 풍토가 정착된다면 앞부분에 언급한 직장 후배의 고민은 사라질 것이다.

3. 덴마크엔 37가지 가족이 있다

오랫동안 한국의 이상적 가족은 아빠와 엄마, 토끼 같은 아이 한두 명으로 이루어진 구성이었다. 하지만 21세기의 가족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30%에 이르렀다. 일반적인 가족 구성이라 여겨온 '부부+자녀' 가구 수를 넘어섰다. 자녀 없이 부부로만 구성된 가구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제는 결혼제도 안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이가 점점 느는 상황에서 결혼을 전제로 이루어진 가정을 인구 재생산의 단위로 한정하면 모수(母數)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출산율이 올라간들 인구 증대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인구문제란 관점으로 보자면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포용하고 아이를 기를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덴마크 통계청(www.statbank.dk/BRN12)의 구분 방식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가족을 파악할 때 총 37가지 형태로 나눠서 집계한다. 싱글 맘+아이, 커플+모계 자녀, 커플+부계 자녀(방문) 등 가능한 모든 경우를 분류해 놓았다. 여기에 이성혼, 동성혼, 사실혼, ‘등록된 동반자 관계’ 등 다양한 커플의 형태까지 곱하면 수백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평생 함께하고 싶은 파트너는 못 찾았지만 아이와 함께 가족을 꾸리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덴마크 정부는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읽어내 이 모든 유형의 가족을 동등한 가족으로 적극 홍보하고 포용했다. 정부와 사회가 앞장서서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아이도 어른도 각기 다른 고유의 가족 형태를 인정한다. 가족의 유형에 대한 편견이 없이 동등한 육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자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와 아빠, 커플 모두 증가했고 전체 출산율도 저절로 올라갔다. 덴마크 정부는 시대의 흐름을 읽었고 이를 반영한 제도를 통해 출산율을 견인했다.

4. 정책 입안자들이야말로 욜로族 아닌가?

스웨덴에선 총리실 산하에 30년 후를 내다보고 각종 정책을 준비하는 ‘미래위원회’가 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이 위원회가 낸 첫 번째 보고서는 앞서 언급한 알바 뮈르달(<인구문제의 위기> 보고서 작성자)의 책임 아래  2년 만에 완성됐다. 이후 인구문제를 중심으로 노동환경, 에너지·환경, 사회통합, 민주주의, 평등, 가치관, 지속가능발전, 기술변화, 국가경쟁력 등 온갖 분야에 대한 연구결과를 망라해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낸다. 정부 부처별로 대비를 하는 한편으로, 모든 정책을 유기적으로 큰 틀에서 조율하고 선도할 필요가 있어서 국가 최고지도자인 총리가 의장을 맡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인구 위기 해결과 국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정책 입안자들이 YOLO(You Live Only Once; 인생은 한 번뿐!) 정신으로 사는 게 아닌가 묻고 따지고 싶을 정도다. 생산인구 1명이 노령인구 1.27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곧 온다. 그나마 모든 생산인구가 경제활동에 참여할 때 1대1.27의 비율이 나온다. 성별을 나눌 일이 아니다.
저출산은 인구 문제이고, 경제 문제이고, 대한민국 미래가 걸린 문제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세대에게 숙제만 잔뜩 남기고 갈 수는 없지 않나.


하수정 필자

북유럽연구소 소장. 한국,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공부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서울시장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라곰:스웨덴식 행복의 비밀>(번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