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를 겪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돌아봐야 할까. 신종 감염병은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오는 것일까? 왜 이렇게 빠른 속도로 퍼지며 인류를 위협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지난달 27일 열린 ‘팬데믹과 동아시아’ 컨퍼런스의 첫 번째 강연자인 박기수 고려대 의대 교수(환경의학연구소)는 ‘세계가 직면한 보건학적 위기’를 주제로 코로나19 위기의 본질을 묻는  화두를 던졌다.
박 교수는 인류문명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바이러스의 종간이동을 부추기며 신종 감염병 가능성을 더 높여 왔다고 지적했다. 눈앞의 바이러스 확산을 해결하는데 급급할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구적 건강’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제1차 유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기이지만 <피렌체의 식탁>은 바이러스 감염병의 본질과 미래를 중심으로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기술발달, 바이러스 종간이동 가속
  이동성·연결성 확장은 최적의 환경
#인류, 발전이란 명목으로 무한 확장
  물적 욕망만 좇는다면 위기 재현될 것
#눈앞의 바이러스 너머로 시야 넓혀
  지속가능한 '지구적 건강' 고민해야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Covid-19) 사태가 서너 달 만에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인적 피해는 물론, 사회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진 진단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만 전 세계적으로 330만 명(5월 1일 기준)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는 23만 명에 이른다. 2002년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된 사스(SARS)가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8000여 명에게 퍼져 800명가량 숨졌고, 2009년 신종플루(H1N1)로 163만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1만9000여 명이 사망한 데 비하면, 이번 코로나19는 확산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감염 규모 역시 매우 크다.

더 큰 문제는 강한 전파력과 무증상 감염 등을 통해 앞으로 제2차 유행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1918년 전 세계 인구(18억~19억 명) 중 4분의 1이 감염되고 5000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의 경우 1차 유행보다 2차 유행이 훨씬 치명적이었다. 코로나19의 2차 유행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2015년 중동에서 한국으로 유입돼 186명의 환자와 38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메르스(MERS)와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기술발달로 바이러스 종간이동 빨라져

바이러스의 ‘인간 공격’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안타깝게도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먼저 접근하기보다 인간이 먼저 바이러스에게 접촉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변이를 일으킨 각종 바이러스를 인간 세포가 수용체(receptor)라는 문을 열고 받아들여 지금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른바 종간이동(cross-species)이다. 물론 바이러스의 종간이동은 근세에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종간이동은 인류가 사냥, 수렵채집 생활에서 가축을 키우는 농경 생활로 이동하던 수천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추정할 만큼 역사가 오래된 산물이다.

문제는 인간이 과학기술 발달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더 빠르게 확장하고 지리적으로 더 널리 이동하면서 바이러스의 종간이동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918~1919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돼지), 1920년 시작된 에이즈(원숭이), 1976년 에볼라(원숭이), 1997년 조류독감(새), 2002년 사스(사향고양이), 2012년 메르스(낙타) 등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감염 바이러스 모두 사람에게서 시작되지 않았다.

바이러스 위협은 인류의 이동성 확장으로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2012년 의학전문학술지인 란셋(Lancet)의 발표는 바이러스와 이동성 확장 간의 연관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 세계의 일일항공지도에 따르면 2012년 당시 하루에 9만 대  이상 민간 항공기가 전 세계적으로 이동했고, 주요 항공 허브에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다. 과거에는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을 감염병이 이제는 단 하루 만에 지구 차원의 위협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성 증가, 바이러스 확산에 최적

코로나19 사태는 '하인리히 법칙'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이 이미 예고된 위기였다. 전 세계 인구가 100년 전(18억~19억 명)에 비해 4배 이상 급증했고(77억 명), 국가 간의 물적 및 인적 교류를 통해 총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연결성(connectivity), 이동성(mobility)이 최고 수준에 달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게는 자신의 영역을 최대한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실제로 코로나19의 전 세계 감염현황과 항공운항 흐름은 정확히 맥을 같이 한다. 전 세계 감염자 현황지도를  보면 항공기가 주로 몰리는 곳에 감염 피해가 집중돼있다. 물론 각국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보건의료 대응역량, 문화인류학적 특징 등에 따라 좀 더 세분화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가 초기에 교역 및 관광 허브에 집중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팬데믹은 감염병 위기의 초기 단계나 혼란 상황에서 인적 피해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다. 특히 항공 산업의 경우, 이미 전체 민간항공기 90% 가량이 권고적 혹은 강제적 이동제한에 따라 공항에 멈춰 섰다. 각국이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격리 통제를 지속함에 따라 경제활동 자체가 사실상 마비되었다. 그 결과 세계경제의 올해 성장률(IMF 기준)은 작년보다 3% 뒷걸음질치고, 우리나라 역시 -1.2%까지 내려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도 1분기에 -6.8%란 성장률을 보였다.

한국의 차별화된 3T(진단, 추적, 치료)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선 1월 20일 첫 확진자가 확인된 이후 이른바 ‘3T’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방어해온 덕에 지금까지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첫째는 진단(Testing)이다. 코로나19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확보된 지난 1월 중순부터 진단키트가 신속히 개발되고 생산되었다. 이 진단키트를 바탕으로 초기부터 저인망식으로 감염자를 적극 확인해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이른바 억제(containment) 정책을 통해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 최대한 덜 퍼지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보건의료당국의 통제능력을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둘째는 추적(Tracing)이다. 2005년 메르스 이후 선진화된 역학조사에 따라 핸드폰 위치 활용, 카드사용 내역, CCTV 자료 등을 활용해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의 명단을 어느 나라보다 훨씬 더 빨리 확보했다.
셋째는 치료 기술이다. 우수한 의료진과 의술 덕분에 상대적으로 조기 진단, 조치 치료(Treating)가 가능했다. 아직 코로나19의 전용 치료제는 없지만, 일반적인 대증 치료와 인공호흡기-에크모(체외 산소공급 장치) 사용, 기존 유사 치료제(에볼라, 에이즈, 말라리아 치료제) 투약 등을 통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의학 방역에 이은 ‘사회적 방역’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물리적 거리 두기다. 사람들의 접촉을 통한 바이러스 확산인 만큼 보건당국은 사람간 거리 두기를 통해 바이러스 전파 속도를 낮추거나 멈추게 할 수 있다. 여전히 전 세계적인 유행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물리적 거리 두기가 제대로 지켜진다면 2차 유행의 재등장 및 확산 방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이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를 보건학에서는 기초재생산지수(R0)라고 한다. 기초재생산지수는 특정 사회에서 한 명의 감염자가 일반적인 자연상태에서 바이러스를 몇 명에게 전파하느냐로 표현된다. 이는 한 번 접촉시의 전파력, 특정 시간의 평균 접촉 수, 전파가능기간 등 세 가지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 변수 모두 마스크 착용, 손 씻기, 각종 모임 축소 및 금지, 신속 격리와 같은 사회적 방역을 통해 대폭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의학과 사회학 간의 정책 조화가 더욱 요구된다.

감염병 위기에도 들끓는 인간 욕망

신종 감염병은 앞으로도 종간이동을 통해 새롭게 출현하고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다. 인류는 경제발전과 자본축적이라는 명목 하에 지속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문명 팽창 과정에서 인류는 45억 년 전 지구가 생성되고 이후 인류 탄생 과정에 기여해왔던 미생물, 다생물, 그리고 동물의 영역을 계속 침범했다.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더 빠르게 취하려는 욕망이 시들지 않는 한, 인류는 언제든지 새로운 바이러스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올해 발표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자료는 감염병 위기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 심리를 잘 보여준다. 지금은 잠시 하늘 길을 닫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드는 시기가 되면 인류는 또 다시 시동을 걸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시 바이러스의 확장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무한확장에 대한 성찰과 지구적 건강

어찌 보면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 모른다. 인류는 생존을 좌우하는 큰 한계에 봉착하지 않는 한, 생태계 파괴의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보다 훨씬 빠른 적응력을 가진 바이러스는 인류를 겨냥해 계속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 태세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이 위기를 다시 만날지 모를 일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는 기존의 많은 변화를 평가하고, 인류 문명의 향후 개선 방향을 느꼈다. 그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이뤄낸 연결성과 이동성이 우리를 위험사회로 몰아놓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렇기에 물리적 이동과 디지털 이동, 대면과 비대면 사이에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또한 이익 추구에만 매몰되었던 인류 문명에 대한 성찰과 지구적 건강 관점(planetary health perspective)의 필요성에 대한 재인식 역시 코로나19가 가져다준 값진 결과물이다.

코로나19의 1차 유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차 유행 또한 시작되지 않았다. 이번 위기는 우리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거듭 묻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채, 당장 눈앞의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한 노력에만 골몰할지, 아니면 좀 더 시야를 넓혀 지속가능한 공존의 세상에 대해 고민할지, 이 모두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박기수 필자

고려대  의대 환경의학연구소 교수. 보건학 박사 및 커뮤니케이션 박사. 세계보건기구(WHO) 외부등재위원으로 활약하며, 베트남과 필리핀의 감염병 대응역량을 평가했다. 2015년 메르스 발생 때 보건복지부 부대변인으로 일했다. 2016년엔 질병관리본부 위기소통담당관으로서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저서 및 논문으로 <공중보건 소통 안내서>, <정보공개의 감염병 방역 효과>, <한국보건의료시스템 만족도 연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