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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의 티핑포인트]
트럼프는 왜 김정은을 만났을까? – 03

by | 2018년 7월 31일 | 한승동의 티핑포인트

그들은 정말 같은 편일까.

“그들은 연합해서 공동의 적에 대항했다. 그 적은 진보적이고 세계화 지향인 기득권세력(liberal, globalist establishment)이다.”(7월 19일, <이코노미스트>)
‘그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그들 ‘적’의 대표자로 꼽은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과 그 후원자인 투기적 금융투자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 반트럼프, 반푸틴 운동의 핵심인물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트럼프와 푸틴의 첫 정상회담을 두고, 그것이 언론에 보여주기 위한 알맹이 없는 이벤트였고, 쌍방 모두 자국 국내정치 상황을 겨냥한 점수따기 행사였다고 비꼬았다.
핀란드 대통령궁 거울의 방(the Hall of Mirrors)에서 열린 회담이 두 나라의 국내정치를 비추는 거울이었고, 두 주역 또한 서로 닮은꼴인 상대를 비춘 거울 같았다고도 했다.

회담 뒤 미국 주류 언론들과 민주당은 지난 미국 대선 때의 러시아 개입 의혹과 관련해 개입하지 않았다는 푸틴 쪽을 두둔한 트럼프를 ‘반역자’, ‘푸틴의 봉’, ‘크렘린의 꼭두각시’라며 연일 사정없이 두들겼다. 공화당 집권 이후 계속돼온 트럼프 때리기는 그러나 그 최고조에 이르렀던 이번 공세로도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회담 직후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45%로 지난 6월보다 오히려 소폭이나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패착 요인

요란한 반트럼프 캠페인이 민주당과 그 지지세력권 안에서만 맴도는 메아리로 끝나는 것은 거기에 내용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이 지금껏 매달려 온 것은 트럼프가 적대국인 러시아의 푸틴과 손잡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세계를 리드해온 미국적 가치를 손상시키고 팔아치웠다는 일종의 반공 이데올로기 공세였다. 역설적으로 헬싱키 회담을 통해 이런 매카시즘적 이데올로기 공세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재확인된 셈인데, 문제는 민주당에 다른 대안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열세를 단번에 만회해줄 ‘대박’거리로 오직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트럼프와 푸틴의 공모라는 ‘음모론’에 집착해 왔다. ‘공모’의 진상만 드러나면 여론이 뒤집힐 것이라는 민주당 측의 바람은 충족되지 못했다. 미국 특별검사가 러시아 군인 12명을 추가 기소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기대한 반전은 없었다.

이런 전략 부재로 인한 미국 민주당의 패착은, 친북좌파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기려느냐며 반공 이데올로기 공세에 매진한 끝에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의 패착과도 닮았다.

 

계급·문화의 차이가 전략의 차이로

<이코노미스트>도 지적했듯이 민주당 지지세력은 힐러리로 대표되는 워싱턴 중심 도시권역(Beltway)의 중상층 계층, 그리고 조지 소로스로 대표되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가들이며, 비교적 유복한 자유주의 글로벌리스트들이다. 이에 비해 트럼프 지지층은 비도시 지역 중하층 계층, 중서부 제조업 중심지 등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미국 우선 보호무역주의자들이다. 대체로 그렇다. 이에 따른 계급적·문화적 차이는 공화당 중심의 트럼프 지지세력과 힐러리 중심의 민주당 지지세력 간의 서로 다른 대외정책이나 전략의 차이와도 직결돼 있다.

예컨대 트럼프의 중국 봉쇄 내지 고립 정책은 그의 제조업 강화를 통한 미국 재건론과 연결돼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선민적인 미국 ‘예외주의’, 미국의 글로벌 헤게모니 유지를 자신들 세계전략의 기본줄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실천전략 내지 전술에선 차이가 있다. 예컨대 트럼프의 공화당이나 힐러리의 민주당이 중국과 러시아를 분리시켜 어느 한쪽을 고립시키고 다른 한쪽과 손잡는 전략을 쓴다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공화당 쪽은 러시아에 접근하면서 중국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는 데 비해, 민주당 쪽은 푸틴의 러시아를 고립시키면서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오바마 정권 때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2012~2014)를 지낸 마이클 맥폴은 <포린 어페어즈>(2018년 7~8월호)에서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대전략을 논하면서 푸틴이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러시아 정부에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을 러시아에서 떼어 놓고, 북의 비핵화 같은 문제로 베이징과 협력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렇게 하라고 주문했다.

이건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트럼프의 전략과는 분명 방향이 다르다.

대국들의 헤게모니 경쟁에서 최강의 가상적국을 고립시키고 약화시켜 도전 기회를 봉쇄하려는 건 헤게모니 국가들이 쓰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이미 미국과 더불어 G2로 호명되는 중국은 무엇보다도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경계대상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최강의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제조업 재건으로 미국 헤게모니를 강화, 유지하려는 트럼프에겐 중요한 전략적 고려사항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저지하지 않으면 미국 헤게모니(팍스아메리카나)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중국이냐 러시아냐

트럼프 정권이 2015년에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 그리고 유럽연합과 더불어 이란과 합의해 서명한 ‘이란 핵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강력한 대이란 제재를 부활시킨 것도 중국 고립화 전략과 밀접하게 얽혀 있지 않을까. 북핵 해체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북 전략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르다. 민주당의 대북 전략은 중국과의 협력관계 속에 주한 미군과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인데 비해, 트럼프의 대북 전략은 궁극적으로 중국에서 북을 떼어내는 쪽에 중점이 두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고, 필요하다면 주한 미군 감축이나 전면 철수까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이나 남의 대미, 대중 전략, 남북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트랜드’이론과 중국 봉쇄

지리학과 지정학(geopolitics), 전략지정학(geostrategy)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런던대학 경제학부(London School of Economics) 학장을 지낸 핼퍼드 맥킨더(Halford Mackinder, 1861~1947)의 ‘하트랜드(Heartland)’ 이론이라는 게 있다. 동서냉전 시절에 미국의 전략 수립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회자되는 그의 하트랜드 이론은 동유럽을 지배하는 세력이 하트랜드를 지배하고, 하트랜드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섬(World-Island)을 지배하며, 세계섬을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트랜드는 대륙의 내륙 요지를 뜻하며, 세계섬은 유라시아 대륙에다 중동지역을 연결점으로 아프리카 대륙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리킨다. 해양대국 영국의 전략가였던 맥킨더에게 거대 대륙을 지배하는 단일 강자의 출현은 영국 헤게모니의 붕괴를 의미했다. 해양세력 영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면 하트랜드와 세계섬을 지배하는 세력의 등장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리처드 닉슨·제럴드 포드 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와 지미 카터 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의 저명한 전략가들 얘기와 함께 거론되는 하트랜드 이론을 현대판으로 옮기자면, 해양세력 미국엔 유라시아 대륙의 패자가 돼 가고 있는 지금의 중국이야말로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최강의 도전세력일 것이다.

중국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해양 실크로드와 육로 실크로드의 재건(‘일대일로’ 구상)은 이른바 ‘차이나 스탠더드’로 대표되는 중국의 막강 파워 속에 아프리카까지 망라하는 ‘세계섬’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란 핵협정 일방 파기 이유

트럼프 정부가 잘 준수되고 있던 이란 핵 협정을 지난 5월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도 이런 지정학 내지 전략지정학적 관점에서 짚어볼 수 있다. 이란의 기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외부 사찰을 받으며, 핵 시설을 줄여가되 민수용 핵시설 일부 가동을 용인하기로 한 그 협정을 미국은 다른 서명국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기해버렸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등에서도 일방적으로 탈퇴해버린 트럼프 정부지만, 수많은 문제와 인간적 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이란 핵협정 파기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석유·가스 에너지 생산과 유통의 중심인 중동지역 요충인데다, 중국에 대한 주요 에너지 공급국이며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일대일로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이란의 지정학적 위상. 이런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전면적으로 막고 이란과의 모든 거래 당사자들의 금융까지 막겠다는 트럼프의 일방적 행동은 이란 팔레비 독재체제 지원과 1979년 ‘이란혁명’ 이후 4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대이란 제재 등 미국의 오랜 중동 분리·지배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만, 이번 조치는 특히 중국 고립화전략과 연결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트럼프와 푸틴의 접근도, 전통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위협이면서도 시리아 내전 등에서 보듯 협력국인 이란을 중국에서 떼어놓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면, 트럼프가 러시아의 G8 복귀를 주장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가 예루살렘이 수도라는 이스라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자국 대사관까지 옮기는 ‘만행’을 자행한 것도 그와 연관돼 있지 않을까.

푸틴은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뒤에도 계속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유럽쪽 확장과 옛 사회주의국들에서의 잇따른 탈사회주의 색깔(컬러)혁명, 특히 2014년의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러시아 자체의 전복 위협까지 느낀 러시아 지배세력의 이해를 대변한다. 푸틴은 나토확장과 러시아 멸시, 색깔혁명 등의 배후에 미국이 있고, 러시아 체제변동이 그 최종목표라고 본다는 관측들이 있다. 푸틴에겐 민주주의와 자유무역, 자유시장경제를 앞세우며 워싱턴 스탠더드를 압박하는 미국 정치·경제세력의 핵이 바로 민주당이다. 마이클 맥폴의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만일 푸틴이 읽었다면 심한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트럼프가 정말 중국 고립화를 기본전략으로 상정하고 있다면, 지금의 북미 접근도 그런 맥락에서 북을 중국에서 떼어놓는데 최종 목적이 있다고 추론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미국은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북과 그에 걸맞은 거래를 할 것이다. 역시 추측이지만, 그렇다면 당연히 앞으로도 북중, 북러관계, 그리고 남북관계에도 오바마 정권 때와는 전혀 다른 전략이 필요한 연쇄 충격파들이 계속 밀려오지 않을까.

 

한승동/ 본지 편집인, 전 <한겨레> 국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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