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천국’,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은 21세기 들어 혁신 국가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혁신 인재를 바탕으로 벤처 강국, 경제 강국으로 떠올랐다. 중국이 시장가치 10억 달러를 넘는 세계적인 유니콘 기업들을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혁신 인재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것을 실현할 인재가 없으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만다. 인구 대국에서 인재 대국으로 변한 중국은 이제 전 세계 젊은이들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찾아가는 기회의 땅이 되었다.

한국은 중국의 창업 생태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중국의 젊은 부자들≫의 저자 김만기 박사는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혁신 인재의 양성이다. 둘째,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창업 인프라의 구축이다. 셋째,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다. 그는 중국에서 공부한 뒤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투자자·사업가로서 중국의 혁신 기업과 유니콘 기업들을 연구해왔다.

한국의 창업·벤처 지원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나눠주기 식의 예산 집행이나 무늬만 벤처인 ‘국고(國庫) 헌터’를 경계해야 한다는 뼈아픈 지적도 내놓았다. [편집자]

 

미국선 혁신局, 이스라엘은 혁신廳

창업 생태계 조성이 중요한 이유는 혁신 창업을 통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1년 ‘스타트업 아메리카(Startup America)’ 정책을 통해 5년간 약 14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 프랑스의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 싱가포르의 ‘스마트 네이션(Smart Nation)’ 등 각국 정부가 앞 다퉈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2017년 백악관 산하에 혁신국(Office of American Innovation)을 신설했다. 이스라엘은 2015년 혁신청(Israel Innovation Authority)을 별도로 설치해 정부가 직접 창업 생태계를 주도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中 유니콘기업 206개…미국 추월

중국은 정부가 ‘대중창업 만중창신(大衆創業,萬衆創新)’의 기치를 내걸고 창업 생태계 조성에 주력한 결과, 2018년 기준으로 하루 1만6000여 개의 벤처 창업이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가치를 갖는 유니콘 기업이 잇달아 탄생했다.

최근 후룬(胡潤) 리포트는 전 세계 494개 유니콘 기업 중 중국이 206개를 차지해 미국의 203개보다 많다고 발표한 바 있다. CB 인사이트에 의하면, 스타트업 중 기업가치가 가장 높은 유니콘 기업은 중국의 바이트댄스(Bytedance)인데, 2018년 투자 유치 때 우버(Uber)보다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았다.

2012년 바이트댄스를 설립한 36세의 장이밍(張一鳴)은 2019년 《포브스》가 발표한 억만장자 부호 순위 70위에 올라 65위인 이건희 삼성 회장에 맞먹는 부를 쌓아올렸다. 이처럼 이름도 낯선 수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중국 경제를 역동적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우리는 영혼 없는 ‘國庫 헌터’ 양산

우리나라도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불어넣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미비한 것은 우리가 잘하는 것, 반드시 해야 할 것에 대한 치밀한 분석 없이 나눠주기 식의 예산 집행이나 중복 투자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지원은 오히려 정부 지원금만 쫓아다니는 영혼 없는 스타트업, 이른바 ‘국고(國庫) 헌터’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디테일 없이 겉도는 스타트업 정책으로는 어떤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다른 나라들의 스타트업 정책을 외형적으로 따라 하기에 앞서, 우리가 왜 혁신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창업자들도 혁신적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가치지향형 창업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혁신 스타트업을 발굴하여 기술 및 네트워크 지원을 통해 독식이 아니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 창업자, 대기업 모두 혁신 창업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 상태에서 각자 역할을 제대로 해낼 때 진정한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창업생태계의 핵심은 ‘혁신 인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한다.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을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으로 보는 이유도 혁신적 아이디어와 가벼운 조직으로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서다. 급변하는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를 과연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위기의식을 느끼고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국가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그랜드플랜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창업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혁신 인재이다. 이들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창의적 아이디어와 결합하여 공유경제, 핀테크와 같은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다. 페이스북처럼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도 하고, 우버·에어비앤비처럼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내 소비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낸다. 이들에게 성장 잠재력을 발견한 투자자들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고, 마침내 새로운 글로벌 강자로 변신해 세계 시장을 리드한다.

인공지능 뉴스큐레이션 서비스 ‘진르터우탸오(今日頭條)’와 15초 동영상 앱 ‘틱톡(TikTok)’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는 사용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으며 공룡 기업인 바이두와 텐센트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1980년생 황정(黃崢)이 설립한 스타트업 ‘핀둬둬(拼多多)’는 전자상거래 2위였던 ‘징둥(京東)’을 누른 뒤 알리바바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세계 최초의 폴더블 폰을 만든 스타트업 ‘로욜(Royole)’은 창업 6년 만에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공지능의 눈에 해당하는 안면인식기술로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하며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쾅스커지(曠視科技)’ 역시 청년 3명이 20대에 의기투합하여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中 혁신 주역은 20∼30대 젊은층

중국은 새로운 혁신과 미래를 8090세대(1980년대, 1990년대 출생자)가 견인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주인공이 정보통신기술(ICT) 1세대인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에서 TMD(터우탸오, 메이퇀, 디디추싱)를 비롯한 차세대 기업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6070세대가 미국의 신기술·신제품을 카피해 중국에 ICT 관련 시장을 구축했다면, 8090세대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도전하여 세상을 바꾸는 ‘창조적 파괴’에 능숙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을 이끄는 경제 주역이 6070세대에서 8090세대로 자연스럽게 교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선 넘쳐나는 혁신 인재가 왜 우리에겐 부족한 것일까?

중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때마다 과학기술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할 때만 해도 자본, 기술, 인재가 부족한 나라였다.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외국의 자본·기술을 들여와 외화를 벌어들여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이 되었고, 그 자본으로 가장 먼저 해외 M&A를 통해 선진 기술을 빠른 속도로 흡수했다.

“2049년 미국 과학기술 뛰어넘겠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수출에 타격을 입자 단순 제조업에서 첨단 기술·산업으로 옮겨간다는 경제 전략을 세웠다. 해외에서 공부한 1000명의 인재를 유치한다는 ‘천인(千人)계획’을 세워 첨단 분야의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산업분야 곳곳에서 기술굴기를 일으켰다. 이런 과정에서 ‘인터넷 플러스’, ‘중국제조 2025’ 정책들이 나오고 젊은 인재들은 더욱 힘을 얻어 오늘날 같은 유니콘 기업 대국으로 변신했다.

중국 정부는 2049년, 신(新)중국 성립 100주년을 기점으로 미국을 뛰어넘는 최첨단 과학기술 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이 목표를 향해 오늘도 젊은 혁신가들이 전력질주하고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40년 만에 미국에 맞먹는 G2 국가로 압축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선 기술과 우수한 인재들을 끊임없이 흡수하여 각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부터 도전적 인재 양성

혁신 인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혁신 인재들의 공통점은 대학 시절부터 직접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부수는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안면인식기술 스타트업 쾅스커지의 창업자 인치(印奇), 최초의 폴더블 폰을 만든 로욜의 창업자 류쯔훙(劉自鴻) 모두 ‘칭화(淸華) 챌린지컵 대회’에 참여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칭화 챌린지컵은 1983년부터 시작된 칭화대학의 과학기술경진대회인데, 매년 300여 건의 작품이 출품되고 1000여 명의 대학생이 참가할 만큼 큰 축제이다.

인치는 대학 2학년 때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안면인식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 기술을 이용한 게임을 만들어 칭화 챌린지컵에 출품했다. 이 게임은 아이폰 앱 순위 5위에 오를 만큼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대학 때 아이디어 기획, 기술·제품 개발, 시장 반응까지 모두 경험한 셈이다. 류쯔훙 역시 가정용 콘솔 게임 붐이 일기도 전에 먼저 가정용 오락게임을 만들어 칭화 챌린지컵에 출품해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중국의 많은 대학에는 이런 과학기술 경진대회가 있고, 1989년부터는 전국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전국 대학생 과학기술대회’가 큰 규모로 열리고 있다. 젊은 인재들은 다양한 대회 참여를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로 생각을 깨우고, 아이디어 구현으로 도전정신을 기르고, 이론 공부가 아닌 실험적 경험을 통해 혁신적 사고를 길러내는 토양이 1980년대부터 이미 형성돼 왔다.

도전 경험도 스펙으로 인정해야

우리나라에선 똑똑한 젊은 인재들이 의사, 판·검사, 공무원이 되기 위해 밤잠 설쳐가며 열심히 공부한다. 반면 중국의 혁신 인재들은 밤새워 프로그램밍을 하고, 하루 16시간씩 방에 처박혀 뭔가 뚝딱뚝딱 만들고 부수며 몰두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두 나라 젊은이들이 똑같이 미래를 위해 매진하지만 그 결과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큰 차이를 낳는다.

우리 사회가 선호하는 의사, 판·검사, 공무원과 같은 직업은 개인의 입신양명으로 끝나지만, 과학기술 인재의 역량 강화는 국가 미래의 혁신 성장과 경제 발전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과학기술 인재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도전을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하다. 도전도 스펙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DJI를 창업한 왕타오(汪滔)는 홍콩과기대학에서 헬리콥터 제어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밤새워 연구에 몰두했지만 졸업작품대회에서 모형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평소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 본 교수가 그를 대학원 제자로 받아들인 뒤 기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창업 초기엔 지분 투자를 해주는 등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왕타오의 사례를 보면, 학교 성적과 같은 스펙이 아니라 진짜 실력을 중시한 교수 덕분에 드론 업계 1위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이론 교육보다 실험·체험에 중점을 둔 교육을 중시하고, 학생들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퇴사 후 창업 실패해도 재입사 환영

3년 전 텐센트 본사를 방문했을 때였다. “(텐센트) 퇴사 후 창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그 해 다시 돌아온 직원이 300명이나 된다”는 말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회사가 다시 받아주느냐는 질문에 텐센트 직원은 “그들은 우리가 하지 못한 값진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며 “오히려 사업을 보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젊은 인재들이 마음 놓고 도전할 수 없다면 당연히 창업을 망설이게 된다. 대기업에 입사할 기회를 놓칠까 봐, 군대 때문에 스펙이 단절될까 봐, 퇴사하면 되돌아갈 곳이 없을까 봐, 실패하면 무능력자로 낙인찍힐까 봐, 우리 사회에선 섣불리 창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문제적 현상들을 정부가 하나씩 제대로 해결해 나아갈 때 건강한 스타트업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中 선전의 창업 인프라는 세계 최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에 돈을 투자할 때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시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경험해보고 평가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스타트업은 PPT 자료를 말로만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질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현실로 구현해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인 셈이다.

중국은 제조업 창업 인프라 구축으로 전 세계의 혁신 인재와 엑셀러레이터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경험이 풍부하다. 개혁개방의 일번지인 선전(深圳)은 애플 아이폰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의 전자제품 생산기지였던 곳이자 짝퉁 천국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선전은 중국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혁신창업기지로 다시 태어났다. 영세 부품상을 모아 세계 최대 부품기지로 만들고, 조립가공업체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한 프로토타입 전문 제작소로 거듭나면서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맘껏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창업 인프라를 구축했다. 전자상가도 밀집해있어 판매상을 통한 시장 테스트까지 가능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매력적인 창업 인프라 덕택에 세계적인 하드웨어 전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헥스(HAX)’는 실리콘밸리에 있던 본사를 선전으로 옮겼다. 드론계의 애플로 불리는 DJI, 세계 최초의 폴더블폰을 만든 로욜 등 많은 스타트업이 이런 창업 인프라의 매력 때문에 선전에 새 둥지를 틀었다. 창업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 놓자 세계의 혁신 인재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곳이 됐다. 선전은 ‘짝통의 메카’라는 오명을 벗고 ‘창업의 메카’로 다시 태어났다.

용산 전자상가는 왜 몰락했나

중국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선전 화창베이(華强北)와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모두 1980년대만 해도 전자제품을 조립하고 부품을 판매하던 전자상가 밀집지역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용산, 청계천과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다. 두 지역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변신하는 동안 우리의 용산은 수십 년 전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창업 생태계가 왕성해지려면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 언제든 찾아가서 시제품을 만들 곳이 있어야 한다. 선전 화창베이에서는 개인이 부품을 구입해 스마트폰은 물론 로봇도 직접 제작할 수 있을 만큼 부품 공급 업체가 집중되어 있다. 아이디어가 있지만 어디에서 부품을 구입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우리나라와 아주 대조적이다.

중국 선전시

스타트업이 몰입할 환경 조성해야

스타트업이 모든 에너지를 오직 혁신적 아이디어 구현에만 몰입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프랑스의 창업지원센터인 ‘스타시옹 F’는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모든 업무를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한다. 사무실, 회의실, 숙소, 창업 관련 교육은 물론 관공서의 행정업무 지원센터, 세무 및 지식재산권 무료 상담, 장비·기술 지원, 엑셀러레이터까지 모두 하나의 공간에 모아놓았다. 오로지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국적은 물론 학력도 문제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혁신 인재들이 모여 들도록 혁신 기업의 창업자와 가족에게는 최대 4년간 프랑스에 머물 수 있는 비자도 발급해준다. 혁신 인재들이 모인 곳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글로벌 혁신 스타트업을 한 곳에 모으려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곳에 입주해 스타트업을 직접 교육시키고 투자 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연결고리를 형성했다.

우리도 마포에 원스톱 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내년 5월 오픈 예정인 스타트업 플랫폼 ‘프론트1’을 공사 중이다. 이곳에 글로벌 혁신 인재들이 모여들고, 한국의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통로를 갖도록 민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先개혁 後보완’ 유연한 방식 배워야

아이디어를 구현하더라도 제도가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기존에 없던 창조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은 법적 규제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점을 중국은 ‘선(先)개혁 후(後)보완’ 방식으로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1980년대 개혁개방 당시 계획경제를 탈피하면서 직면하는 모든 상황이 처음이었던 중국 정부는, 시범지역을 설정하여 일단 시도해보고 그 성과를 지켜본 후 조금씩 확대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즉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문제점이 발생하면 보완하는 방식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중국은 40년 동안 그런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몇 년 전에 어느 한국 기업의 직원들과 선전 화창베이에 가서 드론을 제작해 날려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직접 제작한 드론을 갖고 빌딩 옥상으로 올라가 각자 공중에 띄웠다. 당시 중국 측 드론 제작 담당자에게 드론을 날려도 되는지 법적 규제에 대해 물어보니, 날짜·시간을 미리 지정해서 신청하고 허가를 받으면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무조건 된다, 안 된다’ 식의 이분법이 아니라 ‘원칙상 안 되지만 이러이러한 경우엔 가능하다’ 식의 유연한 정책은 우리도 채택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시장’ 극복 위해 ‘큰 기업’ 유치를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수 시장이 작은 한국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는 인구나 면적 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작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이 많이 찾는 창업 기지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경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과 같은 다국적 기업이 이스라엘 국내에서 직접 창업 보육시스템이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통한 네트워크를 타고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은 미국 시장으로 진출한다. 다국적 기업은 혁신 스타트업들을 물색해 투자하고, 미국 내 네트워크를 소개해주고 나스닥 상장까지 이어지도록 지원한다,

싱가포르는 세계 최대의 마이스(MICE) 산업국답게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를 가장 많이 개최하는 국가다. 정부는 스타트업과 글로벌 투자자와의 교류의 장(場)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내부적으로는 혁신 인재를 길러내고 글로벌 투자자들과의 접촉 기회를 늘려 이들과 함께 동남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상생 구조를 정착시켰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데도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강점 분야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자

스타트업의 시장과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 세계 어느 곳이든 혁신 인재가 있는 곳에 글로벌 자본이 몰리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하지만 단기간에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혁신 인재를 육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스타트업 양성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일단 우리가 남들보다 잘하는 분야, 경쟁력이 강한 분야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바이오, 뷰티, 콘텐츠 등 다른 나라가 인정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그중에서 성공 모델을 단 하나라도 만들고 하나씩 확장해 나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생태계 선순환에 대기업 역할 중요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려면 성공한 스타트업 혹은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자신이 투자할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창업 기지를 돌아다닌다. 혁신 스타트업에 대한 성공적인 투자가 자신들의 성장을 추진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는 국내에서 잘나가는 스타트업 대부분에 이미 투자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자세를 지켜왔다.

그러나 이들은 투자와 지분이라는 명목으로 스타트업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파이를 키워 이익을 셰어(share)하는 형태로 윈윈 구조를 만든다. 한때 ‘대륙의 실수’로 불렸던 중국의 샤오미는 <포춘>지가 발표한 ‘2019년 글로벌 500대 기업’에 진입하며 ‘대륙의 실력’을 입증했다. 회사 설립 9년 만인데, 500대 기업 중 최연소 기업이다.

샤오미 성공 뒤에 협업 모델 있다

샤오미는 어떻게 단기간에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까?

스타트업과의 윈윈 구조를 만든 샤오미 생태계 덕택이다. 샤오미 역시 2010년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에서 큰 성과를 내자 샤오미는 IoT(사물인터넷)로 사업을 확장했다. 2013년부터 유망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 및 인큐베이팅의 형식으로 협업관계를 맺고 샤오미 생태계를 구축했다. 샤오미는 자본, 공급망 유통, 브랜드, 기술을 지원하되, 스타트업은 제품을 공급하고 제품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샤오미는 투자 지분을 갖고 있지만 회사 경영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종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샤오미 가치관을 전파한다. 이렇게 생태계에 편입된 스타트업은 자체 브랜드를 출시해 자체적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200개 이상의 기업이 1600개 이상의 제품을 만들며 샤오미와 서로 윈윈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유니콘 기업이 4개 나왔고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성과를 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스타트업과 함께 하면,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김만기/숙명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