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상승하는 등 새로운 화폐 금융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은 최근 굴지의 글로벌기업들과 연합해 '리브라'(LIBRA)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거대 네트워크/금융 자본이 기존 시스템에 도전하는 것일까? 리브라가 비트코인과는 무엇이 다른지, 리브라의 본질은 무엇인지, 당국은 이 신종 서비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금융 전문가인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가 안내한다. [편집자]

리브라(Libra) 프로젝트의 꿈은 원대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은행 문 앞에도 가지 못하는 소외 계층이 17억 명에 이르는데, 이들의 일상생활은 많은 불편과 높은 금융수수료라는 장벽에 막혀있다. 이들이 40달러짜리 스마트 폰으로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상품을 거래하고 낮은 비용으로 송금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리브라 프로젝트의 목표다. 리브라가 글로벌 지급수단으로서 성공한다면, 일물일가법칙(law of one price)이 보다 잘 작동하여 국제무역도 촉진될 것이다. 상거래의 촉진과 지급결제의 편리성을 넘어서 인류가 지향하는 금융 민주주의의 도약도 가능해 진다.

그런데 리브라 프로젝트에 관해서 말할 때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이는 이 프로젝트의 원천인 블록체인기술의 확장성에 호기심을 보인다. 어떤 이는 페이스북(facebook)을 포함한 다국적 소셜네트워크(SNS) 기업의 진화 방향에 초점을 맞춘다. 또 어떤 이는 기존 화폐와 금융제도의 운명에 관심을 기울인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이다.

골드만삭스, 바클레이즈, JP모건, UBS 등 굴지의 글로벌 은행들도 비슷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1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리브라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비자카드사는 이미 같은 금액을 투자해서 지급수단 상용화 방안을 연구해 왔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리브라 프로젝트는 달랐다. 지난 6월 18일 리브라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전 세계는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초우량 글로벌기업인 ‘페이스북’(facebook)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리브라 프로젝트를 혹독하게 비판한 이유도 이 회사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고객정보를 철저히 보호하지 못하여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5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는 러시아가 페이스북 계정을 이용하여 선거에 개입한 사례도 드러났다. 그러니 이 회사의 계획을 곱게 보기 어렵다.
리브라 프로젝트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페이스북이라는 회사를 떼어놓고 보아야 한다. 그렇고 나면, 흥분과 편견이 사라지고 몇 가지 분명한 특징이 드러난다.

페이스북을 떼고 봐야 본질이 보인다

리브라는 비트코인 등 기성 암호자산과 기술은 같지만, 철학이 다르다. 대부분의 기존 암호자산들은 시스템 참가자들이 채굴(mining)하는 방식을 통해서 신규 물량이 공급된다(재고증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다. 반면 리브라는 그 이용자가 자국의 화폐로 리브라를 구매하는 방식을 취한다. 즉 무(無)가 아닌 기존의 법화로부터 창조된다. 그런 점에서 리브라는 미리 충전(입금)해 놓고 쓰는 선불카드를 국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불카드의 사용지역이 한 나라에 국한되는 데 비해서 리브라의 사용지역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려면 기존 화폐들과 교환비율이 안정되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비트코인은 이 점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다.

세계가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상황에서 리브라의 가치를 안정시키려면, 결국 리브라의 관리자(리브라협회)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받은 돈(리저브)을 각국의 경제규모에 맞게 골고루 분산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다. 받은 돈을 각국에 골고루 분산투자하다 보면, 리브라의 가치는 결국 전 세계 모든 화폐(실제로는 주요 기축통화)의 가중평균 수준이 된다. 어떤 화폐보다도 가치가 안정되므로 글로벌 지급수단이 갖추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킨다.

현재도 그런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이 그것이다. SDR는 IMF와 그 회원국의 정부와 중앙은행들만 사용하는 가상의 화폐다. SDR은 1970년 미 달러화의 위기를 계기로 IMF가 고안했는데, 당시 SDR을 화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미국의 주장에 따라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이라는 기괴한 이름이 붙었다. IMF를 상대로 안정적 인출(자금회수)을 보장한다는 뜻이다.

SDR은 여러모로 리브라와 비슷하다. 우선 SDR의 가치는 미국(41.7%), 유로지역(30.9%), 중국(10.9%), 일본(8.3%), 영국(8.1%)의 화폐로 구성된 바스켓의 평균이며, 그 구성비는 세계경제 여건에 따라 정기적으로 조정된다. IMF 당국은 각 회원국들로부터 실제로 받은 각종 현금자산과 장부상 SDR의 가치가 괴리되지 않도록 SDR의 구성비만큼 5개국 금융시장에 분산투자하고 있다.

SDR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만 이용하는 ‘특별인출권’이라면, 앞으로 등장할 리브라는 모든 네티즌에게 개방된 ‘일반인출권’이다. 이용자의 범위가 넓고 블록체인기술이 적용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리브라는 SDR과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리브라는 별로 혁신적이지도 않다.

리브라는 결국 MMF다

한편, 리브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관(주주) 입장에서 볼 때 리브라는 글로벌 머니마켓펀드(MMF)다. 초기 투자금과 향후 리브라 이용자들이 맡긴 돈(리저브)을 각국의 단기금융시장에 분산해서 운용하고 그 수익을 배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리저브를 관리하는 리브라협회는 다국적 금융투자회사가 아닐 수 없다(페이스북은 이 협회가 비영리단체라고 선전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리브라의 투자수익이 각국의 민간 주주에게 배분되는 점에서 명백한 영리기업이다).

따라서 각국의 금융당국은 리브라협회 즉, 스위스에 소재한 다국적 금융투자회사가 자국의 투자자를 제대로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사기방지와 자금세탁방지에 관한 규제체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리브라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는 투자자보호와 자금세탁방지 등에 관한 각국 또는 글로벌 규제와 공존할 수 있는 지 여부에 달려있다. 미 상·하원 청문회에서 페이스북이 “규제당국의 승인이 있을 때까지 리브라의 출범을 연기할 것”임을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리브라’라는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의 금융질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출범과 존립이 가능하다(기존 금융시스템에 도전을 선포하면서 출범한 비트코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이제 먼 훗날을 상상해 보자. 페이스북의 생각대로 수 십 억의 세계인들이 리브라를 통해 국경 없는 상거래와 송금을 하게 된다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어떤 일을 계기로 리브라의 대량인출(뱅크런)이 생겼을 때 해결책이 없다. 곧장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진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MMF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미국의 단기국채나 어음, 예금 등 초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그래서 수익성, 안정성, 환금성을 모두 갖추었다. MMF의 순자산가치(NAV)는 항상 플러스였기 때문에 정부가 원리금을 보장하는 은행예금과 거의 같다고 간주되었다. 그러다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자 그토록 자랑했던 수익성, 안정성, 환금성은 한방에 날아갔다. 무수한 MMF 투자자들은 파산의 위험에 몰렸다.

그나마 2008년에는 미 연준이 구제금융에 나섰다. 반면 리브라의 환불사태가 벌어진다면, 그것을 구원할 중앙은행이 이 지구상에는 없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서 숨만 죽이고 있는 국제사회가 리브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방법과 법률로써 전 세계에 흩어진 이용자와 투자자를 구제할 수 있겠는가?

리브라에 대한 공포가 다소 과장된 것도 있다. 어떤 이들은 리브라가 확산될수록 기축통화의 기반이 약해진다고 전망한다. 단언컨대, 그런 전망은 틀렸다. 리브라가 보편화된다는 것은, MMF와 같은 금융투자상품이 지급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과 지급수단의 경계가 흐려짐으로써 19세기 이전의 상품화폐(commodity money) 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당국은 2년 전 비트코인 사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리브라로 인하여 신(新)상품화폐 시대가 도래 하더라도 기축통화의 위상이 위축되거나 사라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리브라를 굳이 상품화폐라고 한다면, 과거처럼 금속에 기초하는 상품화폐가 아니라 현재의 기축통화를 기초로 하는 상품화폐이기 때문이다. 리브라의 가치는 기축통화 가치의 평균수준으로 정해지므로 기축통화가 없는 리브라는 존재할 수 없다. 리브라의 확산이 기축통화의 수요와 무관한 것은, 신용카드의 보급이 기축통화의 수요와 무관한 것과 같다(좀 어렵게 말하자면, 신용카드의 보급이 현찰(cash)의 수요를 줄이지만, 통화(money)의 수요는 줄이지 않는다. 통화의 수요는 금리 등을 통해 중앙은행이 관리한다).

기축통화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점은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각국 정부가 리브라로 자국의 예산을 편성하거나 세금을 거둘 가능성은 ‘제로’다. 영국의 케인즈나 독일의 크나프에 따르면, 화폐의 존립기반은 국가예산편성을 위한 회계단위의 제공과 징세의 집행에 있으며, 각국의 예산편성과 징세를 위해서라도 현재의 법화들은 존속한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리브라는 지급수단인 동시에 금융투자상품이다. 그래서 편익과 함께 위험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은 이것을 도대체 왜 시도할까? 그것이 궁극의 질문이다.

그 질문의 대답은, 리브라가 사람들을 페이스북 플랫폼에 머물도록 하는 최상의 고객유치(customer loyalty) 수단이라는 사실에 있다. 플랫폼을 통해 사진과 텍스트만 공짜로 교환한다면, 현재의 소비자는 다른 경쟁 서비스를 향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리브라를 구매해 두면, 그것으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상품정보를 검색하며 플랫폼에 오래 머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지급수단은 자주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보험사는 자주 바꾸지만, 급여가 들어오는 은행계좌는 직장을 옮겨도 바꾸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리브라는 현재 페이스북이 누리는 시장지배력을 영속적으로 만들려는 발명품이다. 그 기대효과가 아주 탁출하므로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IT업체들도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거나 수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 우리나라의 정책당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이 리브라에 관한 뉴스를 접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다.

리브라와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소비자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관련 정부부처들이 질서 있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이스북은 이미 한국에서 상당한 광고수입을 거두고 있는데, 이쯤 되면 한국 정부가 그 책임자를 불러서 리브라에 대한 계획을 듣고 정부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막연한 기대와 ‘규제지옥’이라는 악명 사이에서 정책당국이 햄릿처럼 좌고우면해서는 곤란하다. 중구난방 속에서 정책의 이유와 방향이 확실히 제시되어야 국민이 편안하다. 국민은 편안함을 느껴야 정부를 지지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마찰을 마다하지 않고, 페이스북 등 미국의 초대형 IT기업들에게 ‘디지털세’를 부과하려는 프랑스 정부의 과감성을 보라! 지난 7월 11일 프랑스 의회가 ‘디지털세’를 승인하자 7개월간 분분했던 논란은 사라지고 국민들은 똘똘 뭉쳤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비단 침대의 덕목일 뿐만 아니라 국가운영의 덕목이기도 하다. 2년 전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을 때처럼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은행이 일제히 나섰지만,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하다.

차현진 /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 사족
본문에서는 리브라의 성공 여부 즉, 리브라의 미래나 위력을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리브라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다.

리브라의 미래를 알려면,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를 보아야 한다. 리브라를 관리하는 리브라협회는 한 마디로 말해서 현재의 국제결제은행(BIS)을 모델로 한다. 국제결제은행은 회원국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을 위탁운용해 주고 있다. 만일 리브라가 보편성과 함께 수익성, 안전성, 환금성을 충분히 확보한다면,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BIS 대신에 리브라협회에 외환보유액을 맡기고 일정 수준의 배당을 받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각국 중앙은행들의 외화자산 운용수익률은 똑같아 질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을 포함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왜 현재도 외환보유액을 전액 BIS에 맡기지 않고 대부분을 직접 운용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더 높은 수익을 얻으려는 욕심 또는 자신감 때문이다. 그런 욕심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각국 중앙은행은 BIS보다 더 위험한 투자를 감행한다.

장차 리브라협회는 각국 중앙은행들이나 BIS 당국보다도 더 안전하게 투자하면서 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까? 이것이 리브라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를 묻는 사람에 대해서 필자가 되묻는 질문이다. 핵심은 블록체인기술이 아니라 금융능력인 것이다!

전 세계가 합심해서 범지구적 중앙은행(범지구적 화폐)을 만들거나 고정환율제도로 복귀하지 않는 이상 완벽한 글로벌 지급수단은 기대할 수 없다. 조금 불편한 지급수단과 조금 위험한 투자를 감수하면서 버티는 것이 국제금융사회의 현실이고 운명이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그런 현실을 일깨우지만, 해답은 되기 어렵다. 이것이 신기술에 회의적인 필자의 결론이다.